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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타인의 취향

조회 수 1045 추천 수 0 2007.08.30 02:49:08

김규항 : 타인의 취향


김규항은 ‘취향’이라는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평론’이 무엇인지, ‘평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도 없이 글을 싸지른다. 평론가들이 저속한 대중의 취향에 선빵을 날렸고, 그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감이 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서술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선빵을 누가 날렸다고? 디시 디워갤에 돌아다니는 ‘디워 사건일지’라도 정리해서 붙여줘야 할 판국이다.


“천박한 취향은 고전음악을 듣는 사람도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도 아닌, 고전음악을 들으며 대중음악을 듣는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에게 있다.”


이 문장 자체의 의미는 올바르다. 하지만 글 전체 맥락에서, 이 문장은 예술의 모든 문제를 취향으로 환원한다. 고전음악 중에도 좋은게 있고 나쁜게 있을 수 있고, 대중음악 중에서도 좋은 게 있고 나쁜게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오늘의 대중음악이 내일의 고전음악이 되기도 한다. 양자의 구별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비평은 존재한다. 그러나 김규항의 글에선 모든 대중음악이 비슷한 것으로 치부된다. 비평가의 평가를 받을 만한 대중음악 텍스트가 나와도, 김규항은 비평의 역할을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대중’음악인데, 뭘 따져?


“알다시피 오늘 생산되는 상업 영화의 9할은 언급할 가치가 없는 영화다.”


이 ‘뭘 따져?’라는 정서가 그의 글을 지배한다. ‘개혁? 웃기고 있네. 어차피 보수정당이고 다 우파인데. 다 똑같지. 그걸 몰랐어?’로 일관하는 그의 정치평론의 행태와도 비슷하다. 참여정부의 한심한 행동은 김규항 류의 평론가가 마치 옳은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착시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정말로 대중을 무시하는 것이다. 돼지목엔 진주목걸이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목걸이를 뺏어가는 격이다. 그리고 그 자신 자랑스럽게도, 그 돼지들 옆에 나란히 선다. ‘난 너희와 같은 편이야.’ 다른 평론가들과 달리 용감하게 진주목걸이를 반납하겠다는 거다.


김규항의 딸은 <디워>가 재미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거기까지가 그녀의 취향이다. 그런데 그녀는 <디워>를 "스토리나 구성은 괜찮은데 CG는 좀 엉성해." 라고 평했다고 한다. 김규항 스스로도 ‘평’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건 취향이 아니다. 하나의 판단이다. 그리고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지독한 운명을 타고난 생명체인 인간은, 판단을 내리는 한 다른 인간과 그것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나도 그 순간 딸과 논쟁을 벌이는 것이 올바른 교육방식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녀의 판단은 성장할 것이고, 이런 종류의 오류는 굳이 그 순간 바로잡아줄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좀 더 많은 서사를 접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녀의 판단이 성장하도록 도와주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 그녀의 판단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또 별개의 것이다. 이런 것까지 취향이라 부르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진중권을 본받아 다시 아리스토텔레스로-.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그리고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평론도 있어야겠지만 대부분의 평론이 그렇게 된 건 적이 식민지적 풍경이었다.”


언젠가부터 김규항은 한국의 영화평론가들, 그리고 평론가 지망생이 쓰는 글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글쟁이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글쟁이가 그렇게 된 건 퍽이나 식민지적 풍경이었다. 그리하여 오직 문장생성능력에서만 대중과 차별성을 지닌 그들은 자신들의 우아한(?) 문체를 활용해 대중의 원한감정에 부화뇌동하게 이르렀다.

그들의 글은  읽는 이를 인류의 축적된 지적 유산으로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글쓴이의 정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김규항의 글에선 오직 자기 자신만 보인다. 마치 자신이 소우주의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다른 이의 권위를 호출하는 진중권의 화법이 대중 앞에 오만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김규항은 전 인류의 정신사 앞에 오만한 것이다. 여기, 단지 이 순간 이 지구를 점거하고 있을 뿐인 우리 세대가 인류의 앞선 모든 세대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P.S <디 워> 현상을 386 진중권에 대한 20대의 봉기로 이해한 조선일보 모 기자님의 글은 (그 음험한 정치적 의도는 차치하더라도) 사실에도 부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디 워>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정서적 지지세력은 10대 자녀와 함께 영화를 관람한 40대 386들이다. (조선일보가 386이란 조어를 만든지 십여년이 되어 가기 때문에, 이런 모순적인 지칭이 가능해진다.) 딸의 판단을 알리바이 삼아 영화에 접근하는 김규항의 행동 패턴 역시 바로 거기에 있다. 여기엔 좌우파의 구별도 없는 것 같다.

오히려 20대들은, 물론 진중권의 블로그에 가서 배설물을 쏟아낸 치중엔 20대도 많았겠지만, 그렇게까지 <디 워>를 결사옹호해야 할 이유는 찾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구경하느라 영화를 놓치지도 않기 때문에, 보고 나와서 별로였다고 욕하는 치들도 꽤 많은 것 같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유의미한 통계자료에서 나온 분석은 아니다. 그냥 '깜'일 뿐이다.



P.P.S "영화는 상품일 뿐이다. <디 워>는 상품으로써 위대하다. 고로 <디 워>는 위대하다."는 맹구같은 논리에 대한 일침. <디 워>는 시장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아직 손익분기점의 절반에도 도달하지 못한 실패한 상품이다. 800만 관객 운운하며 사이즈를 자랑하는게 우스운 건 그 때문이다. <디 워>는 나머지 손실을 미국 시장에서 보충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하는데, 그건 아직 미래의 일이다. 벌써부터 상품으로써 탁월하고 어쩌고 할 일이 아니라는 거다. 이런 상식적인 논지에서 부정당하면, 상품론자들은 다시 '상품으로서의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하는데, 만일 그렇게 말하려면 다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의 비교를 감수해야 한다. '가능성'이란 건 원래 그렇게 평가해야 하는 거니까. (다른 방법 있나?) "(한국의 방학시즌에 맞춘) 어린이 영화일 뿐이다-." "상품으로써의 가능성을 보자는 것이다-." 두 개 중 하나만 골라라. 그리고 두 개 중 뭘 고를지라도, "너는 이미 죽어 있다."  전자를 택하면 그것이 실패한 상품이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고, 후자를 택하면 그것이 헐리우드 것들에 비해 질이 나쁘다는 진실에 맞닥트리게 되니까. 그래서 고르기 싫은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둘다 고르겠다고 우겨선 안 되지. 달걀을 후라이로 먹으면서 동시에 병아리로 키울 수는 없는 법이다.


하뉴녕

2007.09.01 01:34:12
*.176.49.134

엇 제발 수고해주세요. 중요한 부분입니다. :)

N.

2007.09.01 01:33:39
*.142.203.210

그나저나 김규항 씨 이번에는 '검열'을 안 하셨더군요. ^^

김민섭

2007.09.02 20:16:03
*.170.112.14

ㅋㅋㅋㅋ

ㄴㅇㄹ

2007.09.01 10:15:09
*.176.141.49

김규항의 재수없는 문체가 똥통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파리들에게 제대로 걸렸군 글의 본질적인 부분에 비판할 건덕지가 없으니 다들 쓸데없는 부분만 파고들고 있는 꼴이라니

수하이

2007.09.01 15:26:53
*.119.234.18

훈/웃기지도 못하고.. 내용도 없고.. 열오르게도 못하고..

하뉴녕

2007.09.01 16:25:35
*.176.49.134

유령 상대하지 마세요 제가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

이상한 모자

2007.09.02 02:14:45
*.79.125.24

평론가들에 대한 냉소, 실천에 대한 끝없는 집착, 할 필요가 없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의식.. 사실 이런 맥락들은 80년대 후반의 '대중운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아직까지 소위 '운동권 주류'가 삶을 태도로서 견지하는 바 있지. 오히려 그들의 위대한 아버지 레닌은 이론없이 실천없다 라고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않고 (실천이란것도 참 저급한 수준을 이야기 하는 거지만) 앉아서 주둥이나 놀리는게 좌파고 그게 좌파의 문제점이라고 버릇처럼 말하지만 현 시점에서 실제 운동진영의 좌파의 위기는 바로 저 이론과 평론에 대한 멸시에서 오고 있는 측면도 있는것 같아.

나름 그 동네에 있다보니.. OTL 이런걸 느끼게 되더군...

이상한 모자

2007.09.02 02:15:08
*.79.125.24

삶을 -> 삶의

노지아

2007.09.02 21:32:27
*.40.203.28

이상한 모자님의 견해에 찬동합니다?

방배준

2007.09.04 22:45:38
*.131.174.108

김규항씨도 그 자신이 비판한 적 있는 김지하나 박노해처럼,
점점 '도사'가 되어가나 봅니다.
씁쓸한 풍경이네요.

생태도시

2007.09.05 02:14:47
*.15.72.159

아무래도 디워 관련글은 김규항이 뭔가 실수하고 있구나 일반인도 아니고 자신의 블로그에 찾아오는 사람이 꽤되는 그리고 책을 출간한 적도 있는 사람의 블로그에 디워에 관해서 너무 허술하게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결국은 한 소리 듣는군요.

처절한기타맨

2007.09.06 02:16:32
*.237.156.158

현재 가장 끔찍한 일은 디워건 화려한 휴가건
반 토막난 스크린쿼터 73일 두 대?작이 다 말아먹는다는
혹독한 현실인데~ 그것에 대한 논의는 뒷전,
온리 CGCGCG 흥행흥행 대작대작
영화판은 개점휴업에 파리 날리고 있고
스탭들은 일이 없어 손가락 빨고 있고, 개봉도 못하고
기다리는 영화는 줄을 서있고 그나마 개봉해야 며칠 폼으로 걸리고
투둑 낙엽처럼 떨어지는 대다수 국산 영화들의 비루한 신세들...

어째든 아래 댓글 읽고 한참 킬킬 댔습당.
오 대단한 센스 ㅋㅋㅋ
럴커로 캐리어 부수겠다는 발상이죠. 답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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