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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어떻게 한 사람을 지칭할 것인가.

조회 수 918 추천 수 0 2008.05.22 00:17:03

출판이 될 수도 있는 원고를 한꼭지 맡아 쓰고 있다. 공식적인 글을 쓸 때면 언제나 나는 사람을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 에 대해 행복한 고민을 한다. 하긴, 출판은 되지 않았지만 출판할 요량으로 썼던 책 한권 분량의 원고에서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선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지칭하는 말을 써넣을 때는 조금 흥분된다.


나는 되도록 사람을 직책으로 부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직책보다는 모종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칭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니까 글을 쓸 때 나는 누군가를 *** 교수라고 칭하기 보다는, 경제학자 ***, 철학자 @@@라고 칭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사석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별다른 고려사항이 없으면 강의하는 사람이 교수이든 교수가 아니든 무조건 '선생님'이라고 칭한다.


이게 내 나름의 방법으로 그 사람을 존중하는 방식인데, 한편으로는 그러면서 내가 그 사람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가령 한 명의 학자를 '철학자'라고 부르는 것과, '** 연구가'(**엔 물론 철학자 이름이 나온다.)라고 부르는 것은 다르다. 이러한 두 가지 지칭 방법 중 한쪽을 일종의 경멸어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나는 매우 오만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나는 둘 중의 어느 것도 경멸어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다. 어떤 학자는 정말로 철학자라기보다는 누구누구 연구가라고 불려야 마땅할 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고, 내가 인용하는 맥락 역시 그 누구누구에 대한 그의 코멘트를 따오는 것이기 때문에, 누구누구 연구가라고 칭할 때엔 오히려 그의 작업의 권위를 빌려오는 것이다. 한편으로 어떤 이가 대단한 수준의 자기 자신에게 고유한 철학적 작업을 하고 있다면 누구누구 연구가보다 훌륭한 철학자인 것은 사실이겠지만, '철학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대단한 수준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 지칭 자체는 하나의 평가인 셈이지만, 우열관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철학자'라는 지칭도 비꼬는 말로 사용될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이 정도 기준만 가지고 있으면 그럭저럭 지칭할 수 있다. 물론 좀 더 복잡한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지칭되는 이의 취향도 고려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이택광은 판타스틱 기고문에서도 '경희대 영문학부 교수'라는 타이틀보다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앞에 써줄 것을 요구할 정도로, 본인이 문화평론가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나 역시 그를 문화평론가 이외의 말로 지칭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그의 글을 인용하게 된다면 당연히 '문화평론가 이택광은...'이라고 말하면서 시작하게 된다. 물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문화평론가'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거야 내 기준에서 제대로 지칭하면 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흔히 문화평론가로 불리는 이들을 나는 팝 칼럼니스트라든가, 기자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되는 것이다. 진중권에 대해선 예전엔 "미학 에세이스트이면서 칼럼니스트인 진중권은..."이라고 적었던 것 같은데, (물론 앞서 말했듯 이렇게 적은게 공개된 적은 없다. 그때 쓴 건 출판이 안 되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규정이 아주 좋지는 않은 듯 하고 그 본인은 '자유기고가'라는 명칭을 선호하니 원하는 대로 불러주어도 되겠다. 고종석에 대해서는, 물론 여러가지 정체성이 있지만 나는 대부분의 경우 '에세이스트'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물론 직책으로 부르는 게 합당한 경우도 있다. 아까 잠깐 나왔던 '기자'라는 지칭도 그렇거니와, 가령 지금의 노정태를 지칭하려 한다면 "FP 한국어판 편집장"으로 부르는 것이 제일 적당할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뭐라고 지칭되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언제나 답을 말해왔다. '키보드 워리어'라고. 현재로서는 그게 전부고, 장래희망은 '저술가'라고 말해야 겠지. 하지만 '저술가'를 생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고, 직업이 생기면 응당 거기에 맞는 윤리의식과 정체성이 생겨날 터이니, 정확히는 "저술가'도' 되고 싶다."라고 적는 것이 올바른 표기일 듯 하다.

  

N.

2008.05.22 00:53:54
*.88.216.139

레몬펜과 리플이 조금 충돌을 하는 듯하네요. 아주 한참을 기다려야 레몬펜, 광고 등등이 뜬 뒤 Comment 눌렀을 때 반응이 나온다는.

한윤형 님 정의대로라면, 몇몇 직업/직책을 제외하고, 직업, 직책으로 부르는 게 오히려 약간의 '감정'을 담는 게 될 수도 있겠군요. :) 개인적으로 제 경우는 moviegoer가 가장 선호하는 말인데, 한글로 맞는 게 없습니다. 얼추 비슷한 걸로 그나마 '영화애호가'가 있긴 한데, 실천의 면을 봤을 때 애호란 말이 좀 부끄러워서요.

근데 나이들고 나니 저 직책/직위로 사람을 부르는 것은, 듣는 사람이 아무리 어깨으쓱으로 들을지 몰라도, 실은 그만큼의 막중한 '책임'을 호출하는 말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사이비기자질을 하면서 '기자님'이라고 불릴 때 정말 얼굴이 화끈거려 죽겠는데, 호칭의 민망함보다는 오히려 책임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기자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를 받던 상관없이, 제 머릿속에 있는 '기자상'이라는 것의 압박과 책임 요구가 있는 법이지요.

그나저나, 성북구 근처 사람들을 위한 대학로 번개는 언제쯤?

하뉴녕

2008.05.22 00:54:44
*.176.49.134

헉, 까맣게 잊고 있었군요. ;;; 요즘 정신줄을 놓고 있는 듯 합니다. ;;;

그리고 본문에서도 썼지만, 기자는 어쩔 수 없이 기자로 불려야 하지 않겠어요? ^^;; 대부분의 많은 직업들이 그럴 듯 하지만, 저의 경우 '인용해야 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에 특수한 사례들에 대해서만 얘기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죠. ^^;;

N.

2008.05.22 01:01:21
*.88.216.139

기자도 기자 나름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요즘 발에 채이게 흔한 기자들(블로거기자 등등 그리고 저를 포함해)을 보면요. 하긴, 그런 사람들이 '인용'이 되는 경우는 드물긴 하죠.

하뉴녕

2008.05.22 01:06:01
*.176.49.134

블로거는 블로거로 호칭...ㅋㅋㅋ

이상한 모자

2008.05.22 01:37:25
*.147.155.253

난 뭘까. 운동권 이상한 모자씨.. 아니고.. 역시 이 시대의 큰 스승 이상한 모자님 께서는.. 이라고 하는게 가장 적합할 것 같다.

jocelyn

2008.05.22 09:12:59
*.246.187.134

아, 난 저런 거 불편하던데 -_- 그냥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던데..
방금 회사 동료들에게 XXX(내 본명) '주임' 대신에 부를 만한, 직책과 무관하게 정체성으로 하나 골라 달라고 했더니 '주당 XXX' 라고 해서.. 그냥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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