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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최태섭의 "진보의 재탄생" 서평

조회 수 1280 추천 수 0 2010.02.22 14:27:07

경향신문 2030 콘서트란에 기고를 하는 최태섭 님이 오마이뉴스에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에 대한 서평을 기사로 올렸습니다. 깔끔하고 인상적인 서평입니다. 읽어보시구요. 혹시 여유 되시면 젊은 필자에 대한 후원도 부탁드립니다. 오마이뉴스에선 기사에 대한 원고료를 지급할 수 있는 거 다들 아시죠? ^_^



노회찬씨, 여기 판 좀 갈아주세요!
[서평] 홍세화·김어준·우석훈·진중권 <진보의 재탄생>
10.02.22 13:31 ㅣ최종 업데이트 10.02.22 14:12 최태섭 (curse13)
  
▲ 진보의 재탄생 표지그림
ⓒ 꾸리에 북스
노회찬

정치인들은 책을 많이 쓴다. 출판기념회 같은 걸 통해서 기존 지지자도 결집해야 하고, '나는 책도 낸 사람'이라는 지식인스러운 후광도 뒤집어 써야 하고, 새로운 지지자를 모으는 '삐끼질'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많은 책들 중에 자신이 직접 집필하는 책은 매우 드물 터다. 그나마 일부라도 집필을 한다면 다행인 셈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대필자의 손에 맡기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 내용이라는 게 돈을 주고 사서 보기에는 낯뜨거운 것이 대부분인지라, 나는 정치인의 책을 제대로 본 일이 없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일일 터다.

 

여기 새로 나온 정치인의 책이 한 권 있다. 첼로를 켜는 노회찬이 책의 앞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노회찬의 책이 분명한데, 제목에는 노회찬의 이름이 중심으로 들어가지 않고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문구를 크게 써놓았다.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이름 있는 8명의 논자들이 이 책을 위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런 구성은 두 가지 의문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는 대체 노회찬이 무엇이기에
무려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책 제목에 자기 사진을 떡하니 붙여 놓았는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마찬가지로 노회찬이 무엇이기에 이 콧대 높은 논자들이 한 명의
정치인을 위해서 모여들었는가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들춰본 책 속에는 "노회찬이 뭐길래?"라는 물음에 대한 차고 넘치는 답변들이
가득했다.

 

노회찬은 노회찬이다

 

노회찬, 그는 한국의 진보정치계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내공들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8명의 논자 중 에필로그를 쓴 우석훈 박사를 제외하고
나머지 7명과 벌어진 대담(혹은 토론)에서 그는 자신의 다양한,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면모를 보이며 치열한 답변들을 토해놓았다.

 

물론 노회찬씨가 말을 잘한다는 것은 2002년의 대선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 정치의) "불판을 갈아야 한다"는 그의 언술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를 대변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TV토론회와 인터뷰에서 그는 뛰어난 은유와 수사들을 통해
보수정치세력에 대한 날카로운 공세를 펼쳤다. 그 덕에 그는 한국 진보세력의
'스타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며 대중적인 지지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단지 말 잘하는 정치인으로만 각인되어 있는 것 역시 일정부분
사실이다. 노회찬의 달변은 도리어 그의 깊이를 가리는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자기연출에 있어서는 지독히도 젬병이라는 것까지 겹치면
(그는 아버지가 60년대에 입으셨던 와이셔츠를 아직까지 입고 있다고 한다.
내 나이보다 오래된 와이셔츠라니...) 당최 토론회가 없었다면 무엇으로
정치했을지 궁금해질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런 의미에서 <진보의 재탄생>은 그가 가지고 있는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그의 비유와 수사 하나에도 오랫동안 갈고닦은 신념과 정확한 정세판단
들이 스며들어있었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상당부분 해명된다.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세판단은 오랫동안 축적되어 왔으며 가장 최신의 것까지 업데이트 되어
있는 놀라운 버전이다. 또 이것을 정치공학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석해낼
수 있는 분석도구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책이라기보다는 진보정치 전반을 아우르며 말 그대로 진보의 재탄생을
사유하려는 노력에 가깝다.

 

진보와 진부의 사이에서

 

각각의 입장은 미세하게 다르지만 노회찬과 모든 논자들 그리고 독자인 나까지를
포함해서 모든 이들의 공통명제는 "진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
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분당사태와 MB정부의 등장 이후 진보가 다시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지금, '위기'와 '변화'는 거의 모든 진보적인 행사들
에서 주문처럼 외워지고 있는 단어들이다.

 

물론 위기는 실제적이고 변화는 절실하다. 사람들은 진보가 왜 존재하는지를 의문
시하고, 심지어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다. 진보는 땅값 상승
과 자사고 유치를 약속하는 보수 세력보다 매력적이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고, 사람
들이 진보의 진가를 알게 되는 순간은 그들의 삶이 무너졌을 때이다. 물론 진보가
이런 사람들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책에서도 계속 언급
되듯이 사람들의 삶이 무너져 내리기 전에 진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한 일이다. 즉 진보가 호스피스가 아니라 예방의학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오늘날의 진보는 하나의 웃기지도 않은 농담 같은 것이 되었
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무질서에 가까운 증식과 과거 진보세력이라고 명명
되었던 이들의 버라이어티한 변신들은 진보주의자들의 심각함을 웃음거리로
만든다. 사람들에게는 진보가 3단 합체를 하건, 5단 분리를 하건 큰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단지 그들의 기억 속에서 진보는 진부한 이상주의자, 그리고 무능력
한 도덕주의자들의 집단일 따름이다. 조금 더 심한 버전에서 진보는 결국 제
배불리기에 바쁜 '사기꾼'이 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향해 "허허허허 여러분 오해입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미 몇몇 현명한 이들이 "이게 다 MB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했
듯이, 진보는 반MB 투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정밀한 분석을 행해야만 한다. 만약 그것이 선행되지 않은 채로 반대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결코 "한나라당의 집권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사회"가
도래하는 상황을 막아낼 수 없다.

 

이론가와 정치인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노회찬이 보여주는 능력들은
놀라운 것이다. 만약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자면 그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도 볼 수 있는 부동산과 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이해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뼈아픈 패배를 경험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는 그 패배를 통해 대중의 '욕망'이라는
것에 대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파가 이 욕망을 추동하여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좌파가 이 욕망을
도덕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비판하며 대중을 계몽하려고 할 때, 노회찬은 이
욕망이 간단히 논파될 수 있는 허위의식이 아니라는 것을 고민한다. 그래서 그는
그 욕망의 사회적 기반들과 그것의 균열지점에 대해서 사고하려고 한다. 이것은
아직까지 진보정치나 진보운동의 관점에서는 동의되거나 공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몇몇 지식인들만이 욕망이라는 것을 진보의 정치적, 운동적 의제로
설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정치인은 몰라도 아는 척, 못해도 하는 척 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
이지만, 그가 다양한 분야의 논자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들은 단지
척으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것이 많다. 도대체 한사람의 정치인이 이런 정도의
식견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할 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당혹스러운 "그러나…"에 부딪힌다. 이토록 훌륭한 식견을 가진 정치인이
현재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이 식견들이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적인 플랜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 때문이다.

 

정치인은 어떤 단독적인 개체가 아니라 지지자들을 대변하는 위치이다. 또한
자신과 지지 세력이 염원하는 신념의 '실행자'로서의 위상을 가진다. 책에 실린
김어준 총수와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참으로 자기연출에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욕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면, 또 그것이 단순한 허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스스로도 사람들의 욕망의
층위에서 어떤 응답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거의 필수적인 일이다. 서울시장 출마선언 이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불운이 아니라면, 이것은 정치인
으로서의 직무유기에 가깝다.

 

또 그의 훌륭한 식견들이 진보정치에 힘이 될 수 있으려면 그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몇몇 논자들이 제시한 "싱크탱크"가 되었든 혹은 "민중의 집"
같은 물리적인 공간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물론 <진보의 재탄생> 역시 이런
일을 위한 작은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친절한 회찬씨를 기대하며

 

사실 이 책에서 진보는 "재탄생"되지는 못했다. 물론 진보가 재탄생을 하는데 한
권의 책으로 될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노회찬이라는
훌륭한 정치인이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 재발견은 진보의
재탄생을 위한 여정에서 하나의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여정이 조금이라도 쉬워진 것은 아니다. 오늘의 진보는
전방위의 압박에 지쳐 있다. 우파로부터는 '씨를 말리려는' 파상적인 공세를 받고
있는 한편, 조금 나은 우파들은 반MB전선의 당위를 들먹이며 진보진영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의지할 곳은 '사람들'이지만, 바로 그
사람들로부터 오는 무관심과 불신까지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처지이다.

 

그러나 물이 물고기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고, 그러기에 진보는
변화한 사람들의 물살을 가르며 적응해야만 한다. 노회찬은 한국의 진보가
"친절함" 대신에 "건방진", "비판만하는", "냉소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한국 진보의 '고난의 역사'를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은 아니지만,
결국 진보의 존재 이유와 목적과 이상이 모두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서 우파와 자본에게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더라도 "내
인민에게만은 따뜻한 진보"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친절한 회찬씨"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언젠가 진보가 성공적으로
재탄생을 하게 되면 당당히 주문하려 한다. "회찬씨, 여기 불판 좀 갈아주세요!"
라고. 


미소녀

2010.02.22 16:27:14
*.162.197.153

투명 좌파 쿠르세가 불투명해지고 있어요!

2010.02.23 11:05:35
*.195.163.38

개념어만 줄인다면 더 쏙쏙 들어오는 서평이 되었을 텐데.

유치한 악플러

2010.02.23 11:20:25
*.162.197.153

오우 스멜

하뉴녕

2010.02.23 11:50:59
*.49.65.16

...?? 어디 개념어가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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