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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FTA 체결과 민주적 리더십의 문제

조회 수 1401 추천 수 0 2007.04.05 01:42:35
 

한미 FTA 체결로 인해, 한국이 EU, 중국, 일본 등 거대 경제권역과 연쇄적인 FTA를 체결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들 거대경제권들은 서로 간에 FTA를 체결하는 것엔 부담감을 느낄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일종의 ‘FTA 허브’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관측기사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 현란한 예측들을 보자니 맥이 빠진다. 여기서 나는 한국의 자칭 ‘보수’들이 개혁세력을 참칭하는 이들에게 흔히 하는 비판을 인용하기로 한다. “총론은 이해할 수 있으나, 각론이 지극히 부실하다.”


중국, 일본, EU가 한국과의 FTA를 갑자기 희망한다고 해서 그게 한미 FTA가 올바른 선택이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보수언론들은 그들에게 충격을 줬다는 사실을 너무 즐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튕기는 주판알과 우리 국민경제의 손익은 별개다. 한국 정도 경제규모 되는 나라에 경쟁자가 먼저 상륙한다면 찜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제발 그들이 이번 협상을 통해 “한국 정부는 협상을 졸속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덤비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거대경제권역들의 완충지대가 되겠다는 것, 기본적으로는 좋은 발상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이 미국을 이용해 가까이 있는 중국에 대항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을 구사한다는 일본 언론의 시각”(4.4일자 중앙일보 최병일씨의 시론에서 인용)이 참여정부의 의중이었다면, 나는 그 외교기조 자체에는 크게 동감한다. 그러나 문제는 각론이다. 정부는 긍정적인 효과를 산출할 수 있는 어떤 한미 FTA를 체결하겠다는 자세를 가지지 않고, 한미 FTA 체결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줄 테니 무조건 그 조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자세로 일관했다. 다른 어떤 데이터보다 이 협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4개월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한칠레 FTA만 해도 7년 동안에 걸쳐 진행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사람들이, 참여정부의 한미 FTA 타결처럼 반대자의 목소리에 굴하지 않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을 훌륭한 리더십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조중동은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 FTA 타결을 비교하고 있다. 그때도 반대자는 많았지만, 한국 경제는 결국 발전했다는 것이다.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손해에도 불구하고’ 추진했다는 것은 그 추진주체의 용기는 보여줄 수 있을망정, 그 선택의 올바름과는 논리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반대자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추진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현명한 선택이었단 건 한국인들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매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현직 대통령과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적극적으로 계승한 이 박정희식 리더십에 현혹된 사람들은 FTA가 타결되자마자 찬성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찬성론자들이 더 늘었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상승했다. 이렇게 찬성이 많아지니 나도 찬성파들이 박정희와 경부고속국도를 상상하듯 또 다른 전례를 상상하게 된다. 별다른 반대에 봉착하지 않고 ‘세계화’라는 구호만으로 외국자본을 마음껏 유치하다가 나라 말아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례 말이다.


참여정부의 FTA 타결에 대한 지지는 일회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FTA 허브를 바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계속해서 EU, 중국, 일본과의 FTA도 이런 식으로 조속하게 (졸속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할 공산이 크다. 한칠레 FTA처럼 7년간 협상하다간 FTA 허브의 위치를 빼앗길 수 있으므로, 한미 FTA처럼 일이년 남짓한 기간에 협상을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그렇게 하자고 말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지금 그들은 “한미 FT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미 FTA가 초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은 바로 그 부정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FTA를 추진해야 한다고 말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한번 한미 FTA가 통과되고 나면 우리는 더 이상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빨리 빨리 끝내는 협상이 졸속적이고 우리에게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한미 FTA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FTA를 찾아다녀야 하는 몹쓸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


다시 무협지의 비유를 들어보자. 나는 일전에 한미 FTA가 “독을 쳐먹고 그 독이 울렁울렁 어쩌다가 내공으로 화(化)하는 기연을 통해 내공을 증진시키는 바로 그 방식”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무협지 조금이라도 읽은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제 그 주인공들은 줄구장창 돌아다니면서 다른 독을 먹어야 한다. 하나의 독은 나를 강하게 해주지만, 뭔가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그 독은 해독제도 없는 독이다. 한미 FTA는 한번 체결되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면 그는 이 독을 제어할 뭔가 다른 독을 먹어야 한다. 물론 그 독은 뭔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이젠 독을 계속 계속 먹어야 한다. 카드깡이 따로 없다.    

물론 한국 경제가 무협지 주인공이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 독 저 독 쳐먹다가 화타급의 의사도 한번 만나고 해서 어쩌구 저쩌구 불세출의 고수가 될 게다. 하지만 나는 각국과의 FTA가 서로의 부정성을 상쇄해줄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이끌어낼 정도의 훌륭한 정치지도자가 행정부의 수반이 될 가능성을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확률은 1% 이하다. (많이 쳐줬다.)


여기서 갖는 하나의 의문. 정말 한국 경제가 불치병에 걸리기라도 한 걸까. 정부와 지지자들, 보수언론은 그렇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개구리 올챙이적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나는 한국인들이 “자기가 이미 개구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올챙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할 정도는 아니다. 대한민국이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내가 조국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모든 국가주의자나 민족주의자들의 평가의 합보다도 더 후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 우리가 세계에서 최초로, 거대경제권역들과 연쇄적으로 FTA를 하는 시험을 해야 하나? 그럴 만큼 대한민국이 쫄리나? 실험용 쥐를 자처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할 수 없을 만큼? 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다고? 그럼 선진국 되지 말자. 안 되면 큰일 나나? 솔직히 대한민국의 국민소득이 1만불일 때나 2만불일 때나 서민 생활 수준은 비슷했다. 더 못하다는 사람도 많고. 여기서 국민소득이 더 높아진다고 달라질 게 있을까? 


중산층에게 물어봐라. “당신 부자될 확률 50%, 하층민 될 확률 50%야. 전 재산 걸어볼래 어쩔래?” 그럼 99.9%의 중산층이 전재산 안 건다. 게다가 대개 저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성공확률 50%’는 대단히 과장된 수치라는 것을 다들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하지만 왜 같은 소리를 국가적으로 하면 납득하는 걸까. 쇠고기 싸게 먹네 수입차 싸게 사네 운운은 그냥 여론호도용이고, 참여정부 국정브리핑이나 조중동이 FTA에 대해 진지하게 하는 소리를 잘 읽어봐라. 바로 저 소리다. 그런데도 그게 그렇게 하고 싶은가. 선진국을 위해 하얗게 불사르다 죽어도 할 수 없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렇게 용맹하신 분들이 왜 이라크 파병 반대는 겁난다고 하는 것인지. 몇 년 안 돼 짤려나갈 네오콘도 무섭다고 벌벌기던 유시민 장관께서는 미국 자본은 별로 안 무섭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첫 독을 먹어서는 안 된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연쇄적인 FTA가 한국의 영광으로 마무리될 거라는 확신을 결코 지닐 수 없다. 그리고 연쇄적인 FTA 과정에서 한국은 민주적 리더십이란 걸 발전시킬 가능성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물론 지금도 참여정부의 리더십은 민주적이지 않다. (참여정부가 자주 헷갈리는, 아니 언제나 잘못 아는게 있는데, 권력 창출의 민주성과 권력 운용의 민주성은 별개다. 인적 구성원과도 상관없고. 그들이 욕하는 독재세력이 전자와 후자 모두 없었다면, 그들은 전자는 있으되 후자는 없다.) 그러나 다음 정권에서, 그 다다음 정권에서 민주적 리더십이라는 게 태동할 수 있다는 희망은 가질 수 있다. 하지만 FTA를 연쇄적으로 실행하게 되면 그런 희망은 가질 수 없다. 지금 하는 식으로 우리는 그저 행정부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야 할 일은 국회 비준을 막는 일이다.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는 하지만, 작은 일이 아닌 만큼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한다. 국가신인도 운운은 정말로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국가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하는 소리다. 떨어지는 건 참여정부의 신인도지 대한민국의 신인도가 아니다. 원래 의회는 행정부의 결정에 태클을 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안 그러면 비준 절차가 왜 있겠나. 의회가 비준을 안 하면, 그 결정은 무효다. 이건 국가신인도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의 문제다.


임찬종

2007.04.05 02:39:35
*.85.175.213

FTA를 국익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카이만님이 사용하신 비유를 차용하자면, FTA라는 '독물'이 설사 극강의 내공(GDP)를 만들어 준다손 치더라도, 그 대가로 한 쪽 팔이나 발을 잃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손과 발의 입장에서는 찬성해서는 안되겠지요. (손과 발만 잃는게 아니라, 전신마비에 빠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지만)

우리의 몸과 달리 대한민국은 명색이 민주주의적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인데 대한민국의 '사지'에게 제 운명을 결정할 기회는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전체 GDP가 늘어날 확률이 100%라도 이 FTA는 반대해야 합니다. 다만 내공만 올릴 수 있다면 주화입마고 뭐고 상관없다는 식의 이 놈의 '흑도'의 나라에서는 그 설득이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뉴녕

2007.04.05 12:27:45
*.46.105.45

참 난감한 일입니다. ;;

시만

2007.04.05 12:07:27
*.41.198.34

'어떤' 무협지에선 주구장창 독을 계속 먹어야 하겠지만([혈기린 외전]의 몇몇 인물들처럼)... 다수(?) '독 먹는' 무협지가 그렇지는 않을 듯. 무협지 비유 부분은 '지나친 일반화'가 아닌가 싶은 게 개인적 감상...아니면 내가 무협지를 제대로 안 봤나;;;

'하얗게 불사르다' 표현을 보고 처절한 유머, 란 게 있구나 하는 느낌을 다시 한 번 받았음^^;

하뉴녕

2007.04.05 12:27:33
*.46.105.45

모든 무협지가 주인공에에게 독을 먹인다는 건 아니고...'첫 독'을 먹으면 그 다음부턴 줄구장창 독을 먹어야 되는 경우가 많지요...아니면 영호충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다른 내공심법들을 기웃거려야 한다든지. 이것도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고요. -_-;; 뭐 시만님이 저보다야 무협지를 훨씬 많이 보셨을 테니. ㅎㅎ

yayanim

2007.04.05 18:37:04
*.142.181.131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07.04.05 19:09:12
*.176.49.134

예. 저는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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