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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주대환을 위한 변명
김정진, 2008-09-13 08:18:58 (코멘트: 4개, 조회수: 726번)

주대환을 위한 변명

 

1.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원장의 시대정신 기고글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다. 기고한 매체가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것이 문제면 문제였지 그 글은 평소에 그의 주장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대환을 여전히 1991년 신노선 이전의 기억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유럽 사민주의와 인상비교만으로 그를 질타하는 것은 별로 적확한 것은 아니다.

  많은 분들의 현란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대환이 제기하는 문제제기는 명확한 것이다. 역시 낡기는 했지만 영국노동당 노선이 한국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지금 과연 지금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이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2.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주대환이 이야기하는 사민주의는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세금이다. 사민주의의 기초는 세금이며, 이를 통한 복지가 대중적으로 사민주의의 기반이다. 지금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유럽의 사민주의 체제들이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분야의 복지는 보수적 사고를 하건 진보적 사고를 하건 보통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유럽통합 이후에도 유럽의 복지의 광범위한 후퇴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다. 1990년 이후 실제로 조세부담률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즉, 이른바 작은 정부는 재정적으로 실현되지 않았고, 심지어 영국에서 대처의 집권 이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3.

그러나, 세금과 복지의 확대는 한겨레와 경향 같은 곳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국민의 40% 가까이가 여기에 찬성을 해도 쉽게 확대되지 않는다. 체제의 변혁을 꿈꾸는 급진적 집단에게 세금은 사소한 개량이겠지만, 혁명적 시기가 아닌 일상시기에서 지배계급에게 세금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게다가 세금-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지배계급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조직은 두말할 것 없이 노동자총연맹과 그에 기초한 정당이다.

  영국노동당은 1920년대 초(1차대전 직후), 전쟁으로 인한 투기 및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하여 유산자들의 재산의 일정비율을 몰수하는 1회성의 부유세를 제안하였다. 당시 영국은 전비를 국채로 조달하여 1년 예산의 50%를 국채이자로 지불하였는데, 사람들이 세금을 내서 전쟁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광범위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영국노동당의 이러한 제안은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영국노동당의 급속한 성장에 기여하였고, 당시 재무장관인 처칠인 이러한 반소유권적 정책에 위기감을 가지고 역으로 상속세를 강화하고 노동당으로부터 중간계층을 떼어내기 위해 중산층에 대한 감세안으로 이를 완화시키기도 하였다.

 필자가 이해하기는 세금을 통한 복지확대 전략은 조직적으로 노동조합총연맹과 이에 기반한 노동당이 없이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은 OECD에서 조세부담률을 봐도 실증이 되는데, OECD의 경우 오히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조세부담률은 높은데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하여 국제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복지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일본과 미국인데 이러한 나라들은 경제규모가 커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한국처럼 보수양당이 집권하고 있어 노동당이 3당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조세부담률과 복지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극단적인 예외이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은데 복지는 극히 미약하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동당이 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4.

필자가 보기에 사실 추상적으로 복지를 원한다고 해서 사민주의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는 조직노선에서 노동조합-노동당 노선이 아니면 사민주의는 실현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대환이 보기에 한국에서 이것은 파탄이 난 것이다. 그것이 1900년대 영국의 낡은 노선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한국에서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마 가장 큰 것은 노동당-노동조합이 민족주의자에게 장악된 것이고, 주대환이 보기에 사민주의 노선을 실현해야할 민주노총 내 다수파인 이른바 국민파가 시대착오적인 자주파와 철의 연대를 하고 있고 자신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해만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대환을 비판하는 좌파들이 답해야 할 것은 유럽 사민주의자가 주대환보다 훨씬 폼난다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그것이 1900년대 이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복지”라는 유럽에서의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정치적 기획과 실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답이다.  한마디로 주대환은 1991년도 신노선을 주장한 이래 노동조합-노동당 노선을 위해 온갖 일을 해보았지만 더 이상 한국에서 실현되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린 것인데, 이러한 주대환에 대한 비판은 ‘당신은 후지다’가 아니라 ‘이런 정치전략과 기획이 필요하다’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대환이 던진 문제의식은 그가 진보신당을 지식인 집단이라고 힐난했지만 진보신당 재창당 과정에서의 주요한 문제의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4 댓글
한윤형
참이슬
주대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그의 주장처럼 미국 민주당식 노선 - 비판적 지지 노선과 다를 바 없는 - 을 채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유럽 사민주의자가 주대환보다 훨씬 폼난다"라든가 "주대환은 1900년대 이론을 주워섬긴다", "당신은 후지다"라는 식의 비판이 아니지요.

지금 주대환은 2002년 "권영길은 유럽, 노무현은 미국을 지향한다"고 말했던 그 주대환이 아닙니다. 주대환이 생각한 유럽은 영국일 것이고, 그래서 영국 노동당 노선 얘기를 했을 터인데, 이제 와서 미국 민주당식 노선을 취하자고 한다면 결국 2002년 주대환이 "미국을 지향한다"고 표현했던 노무현과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영국 노동당에서 미국 민주당으로 U턴한 주대환의 행보는 한 마디로 더 이상의 진보정당 운동을 포기하고 자유주의적인 보수정당에 가담하여 보수정치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주대환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 전략과 기획의 여부를 떠나, 진보정치냐 보수정치냐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할 것이냐에 대한 정치철학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거죠.
2008-09-13 17:02:50
조반유리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주대환씨가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의 고민 방향에 함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할 전략적인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전략적인 문제제기라는 거죠. 근데 그래도 그 분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아요, 요즘 이탈리아에서 과거 좌파민주당(구 공산당)이 아에 미국 민주당식노선으로 간다고 하더니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좀 안타까워요.
2008-09-13 17:59:56
김영아
민주노동당에 갓 입당했을때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주대환씨의 이 책을 읽고 지역위원회에 책리뷰와 함께 위원장에게 이책 박스로 사서 당원들에게 돌리자고 했다가 노빠 출신 주제에 여기 들어와서 황당한 짓하고 있다는 핀잔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주대환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는 하지만 인정은 할 수 없숩니다. 한국에서 의회주의 선거제도로 권력 획득을 원한다면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회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긴 하지만 양당구도의 지배집단 체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해봐야 합니다. 명박이 맨날 욕하지만 대안정치세력이 없는 한 지배세력들도, 당하는 민중들도 이 지배체제에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2008-09-13 23:27:05
리버럴
비교적 정확하게 주대환 논지의 핵심을 잘 파악한 것 같습니다. 논의 물줄기를 제대로 잡아주었습니다.
2008-09-15 02:44:29
Re: 주대환을 위한 변명
한윤형, 2008-09-16 21:18:48 (코멘트: 0개, 조회수: 62번)

김정진 동지의 정리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주대환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는 한국의 양당제가 지극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가 민주당 노선을 말아먹어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빠져도 민주당이 그 지지율을 받아먹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명박 정부가 계속해서 삽질을 한다면, 한나라당도 비슷한 꼬라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다른 종류의 정치세력에 한번의 기회는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게 좌파정당이 될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노려보지 않는 건 너무 패배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주대환의 계획 역시 큰 규모의 정계개편이 있을 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짜여져 있지요.


둘째, 저는 '일본 공산당'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컬의 영역에서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들이 많지요. 진보신당이 만일 일본 공산당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독자적인 존재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대환의 그림은 지나치게 커서 일본 공산당이나 유럽의 녹색당 류의 정당들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주대환 선생님의 주장은 진보신당에게 필요한 논점을 던져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천명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진보신당은 사실 그런 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릴 입장에 처해 있지도 않고, 재창당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운동권 당원과 비운동권 당원의 문화적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그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등등의 아주 기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할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좀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주대환 선생님이 자신의 기획으로 정당을 만든 후 좌파들에게 "비판적 지지"를 요구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설마하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추가적인 코멘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주대환은 진보신당이 녹색당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전략적 판단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그리는 큰 그림은 적어도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레디앙의 주대환 인터뷰와 홍기표의 주대환 옹호글은,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홍기표의 주장은 수긍할 수 있는 논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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