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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논쟁 다듬어 보기

조회 수 1816 추천 수 0 2008.09.10 19:38:47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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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이론가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이 <시대정신>에 기고한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일보의 류근일 주필이 그의 커밍아웃(?)을 칭찬하는 칼럼을 썼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 글에 대해 반대의견을 쓰더니 급기야 최병천이 레디앙 지면을 통해 주대환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 논쟁은 논점을 제기한 이들의 선의를 인정한다면 좌파정당의 진로 및 전략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켜야 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겹게 반복되어온 얘기들이 재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근본적으로는 논점을 제기한 주대환에게 있다고 본다. 그의 논변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외면하고 ‘생산적인’ 논점만 따로 떼어내어 토론하자는 최병천의 시도는 지지받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이 기회에 주대환이 그리고 있는 ‘전략’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의 오류가 무엇인지가 드러나면 이른바 ‘생산적인’ 논점들을 따로 떼어 내어 토론할 기회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주대환 논쟁 다듬어 보기”다.


이번 글에서, 그리고 과거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론할 수 있는 이론가 주대환의 현실인식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인들은 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2)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좌파정당의 모델은 이념적 결사체로서 출범한 독일 사민당 모델은 아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탄생한 영국 노동당의 모델이다.

3) 따라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아 결성된 민주노동당은 한국 좌파들이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4) 다른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을 원하고자 한다면 민주노동당 내에서 NL 운동권들과 투쟁을 해서 승리했어야 했다.

5) 명백하게 진실인 4)의 충고를 외면하고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기 때문에, 이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사민주의 정당의 가능성은 없다.

6) 그러므로 다음으로 가능한 것은 미국 민주당의 모델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미국 민주당과 같은 무지개 스펙트럼의 정당을 기획해야 하고, 그 정당의 한 분파로 참여해야 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전략은 이처럼 모종의 연역추론에 기반한다. 나는 위에 서술된 명제 하나 하나가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저것들이 2008년 대한민국의 어느 영역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명제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저것들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서술하는 모든 명제들에게 해당하는 ‘유일하게 보편적인 진실’이다. 그런데 주대환의 모든 추론과 정치적 판단은 위에 서술된 자신의 명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다. 그런 신념에 기초해서야 주대환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현실과 유리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목표’나 ‘지향’을 설정하면 거기에 맞춰서 하위의 명제들을 수정한다. 가령 전방 200미터에 중국집이 있고 나는 똑바로 직진해서 그곳에 이르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치자. 도중에 계산이 잘못되어 내가 오른쪽으로 2도 정도 삐끗하더라도 내가 중국집에 이르지 못할 일은 없다. 왼쪽으로 2도 수정해서 나아가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처럼 치밀하고 냉철한 주대환은 1) 중국집에 간다. 2) 그것은 전방에 있다. 3) 그러므로 똑바로 나아간다. 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모종의 사건이 생겨 자신이 왼쪽으로 2도 정도 삐끗하더라도 결코 3)의 명제를 수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하여 200미터를 나아갔을 때는 중국집이 아니라 문방구점에 이르러 밥을 굶고 만다.


이런 식으로 주대환이 밥을 굶은 사건이 작년부터 시작해서 두 번쯤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을 지지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당시 NL 운동권들은 권영길을 밀었고 NL에 반대한 이들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밀었다. 결선투표제가 있었기 때문에 2위 후보인 심상정이 권영길과 결선에서 맞붙었고 한번 해볼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주대환은 당시 다수파였던 NL의 전횡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 어떤 PD 정파의 사람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주사파’를 비판했던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정이 아니라 권영길을 지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민주노총이 선택한 후보였기 때문”이란다. “노조에 기반한 정당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하위명제에 충실하느라 좌파정당 하나를 말아먹을 판단을 내린 셈이다. 대선후보가 된 권영길은 주대환이 좋아하는 사민주의 노선과 가장 거리가 먼 선거운동, 민생공약은 내팽개치고 코리아 연방공화국의 깃발을 펄럭이는 코미디같은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런 꼬라지를 봤으면 자신의 판단의 오류를 자인하거나 반성하거나 적어도 회의는 해야 할 터인데 이후 그가 공적인 글에서 저 지랄맞은 사건에 대한 소회 한마디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위명제에 충실했던 자신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는 걸까?
  

다른 한번은 모두 알다시피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정국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였다. 알다시피 당시 일심회의 범죄자를 옹호하는 NL들에게 질린 사람들은 혁신파 vs 분당파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다. 그렇지만 분당파가 이탈하기 시작한 이상 혁신파가 다수가 되어 NL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능했던 것은 단 하나, 숙주를 죽이길 원하지 않는 NL 정파들의 자정작용이 일어나 혁신안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우직한 NL들의 다행스러운 고집으로 불발되었고 모두 알다시피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창설되었다. 주대환은 이 국면 내내 1) 민주노동당이 망하면 사민주의 정당의 가능성은 끝난다. 2) 우리는 죽어도 이 링안에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저 정당의 테두리 내에서 NL을 이길 가망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위에 정리한 주대환 컴퓨터의 논리회로에 정확히 부합하는 주장이었다. 2월 3일 임시 당대회의 파국 이후 이제 당내에 같이 싸워줄 사람이 없음이 명백해지자 그는 NL 지도부들을 비난하며 자신을 제명하라고 외쳤다. 어제까지 분당에 반대했던 처지로 제발로 걸어나가기는 뻘쭘했던 것일까? 그러다가 NL이 코방귀도 안 뀌자 그는 슬그머니 민주노동당에서 나와, 진보신당에 입당하지도 않은 채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다. 단 한마디, “미안하다. 잘못 생각했다.”라고 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그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간다. 안쓰럽다. 그냥 2도 왼쪽으로 수정해서 중국집, 아니 진보신당에 와서 밥을 드시면 된다니까요. 왜 문방구에서 먹지도 못하는 지우개를 들고 우두커니 서 계세요.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 혼자 밥을 굶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가 저토록 논리정연한 글로 여러 사람들을 굶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다. 기륭전자 앞에서 밥을 굶는다면 칭찬해줄 일이겠으나, 밥을 먹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밥을 굶는 것은 매우 볼썽사납다. 주대환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내의 사민주의자 다수가 권영길을 지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했고,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서 “NL도 PD도 한심한 건 똑같아. 진보신당? 흥!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반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냉소주의자들에게 친절한 떡밥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원칙에 지나치게 충실하면서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 및 지향에서도 자꾸 멀어져만 갔다.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제 진보신당의 현실로 돌아와, “선생님. 계속 고집피우신다면 내일도 밥을 굶으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몇 가지 들고자 한다.


첫째, 나는 민주노동당 분당에 PD 운동권의 책임도 있다고 하는 주대환의 주장을 긍정한다. 가령 PD들이 주장하고 관철시킨 ‘당직 공직 겸직 금지’ 제도나 ‘지구당 폐지 반대’ 당론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특정한 시점, 그러니까 2008년 2월의 시점에서 생각한다면, 진보신당 창당 이외의 답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주대환의 말은 옳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제 한국에서 사민당의 가능성은 끝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아무런 가능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소라도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이행했어야 했다. ‘좌파정치’ 자체를 포기할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둘째, 나는 진보신당이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이 아니라 PD 운동권의 당이었기 때문에 총선에서 실패했다는 주대환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주대환은 자신의 노선에 따라 당을 만들면 지지자가 금방 생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치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중적 사민주의’ 강령을 선포한다 하더라도 (사실 진보신당은 당강령도 없이 몇 개의 민생정책만으로 총선에 임했다. 주대환이 생각하는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의 총선홍보와 뭐가 그리 달랐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이 곧바로 신뢰를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부당하다. 진보신당은 만든지 너무 얼마되지 않아서 신뢰를 줄 수 없었고, 노회찬 심상정 등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그나마 선전할 수 있었다. 진보신당은 총선에서 고전했지만, 그 고전은 분당하는 순간 예견된 것이었다. 만일 분당이 필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고난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진보신당은 고난을 당한 이후에야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주게 되었고, 그 결과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원 출신이 아닌 입당자가 증가했다. 진보신당은 이런 식으로 ‘대중’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주대환은 이런 현실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평을 하고 있다.


셋째, 나는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PD 운동권’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로 정확한 용어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나도 편의상 ‘PD 운동권’이란 말을 사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명백한 정치적 실체를 추종하는 NL 운동권과는 달리, 소위 PD들은 소련 붕괴 이후에 다양한 이론적 모색을 겪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들끼리도 높은 수준의 이념적 동질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주대환은 이런 상식을 뒤집고 과거 민주노동당의 PD 운동권들을 단일한 실체처럼 호명하고 마치 그들이 모두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도정”이란 원칙에 반대하는 이들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 진보신당에는 민주노동당을 경유하지 않은 당원들이 즐비하다. 누군가의 통계로는 6 대 4 정도로 오히려 비-민주노동당 출신이 많다고 한다. 이질적인 문화의 이 두 집단이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할 것인가, 진보신당의 지도부는 이들을 ‘운동권 정파의 조직원’ 대하듯이 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대우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문제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진보신당의 구성원과 관련된 문제다. “PD 운동권 문화 축출”이라는 그의 구호(?)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진보신당은 지금 주대환의 현실인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비록 그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주대환의 비평이 진보신당에 무용한 까닭도 그것이다.


넷째, NLPDR을 비판하는 주대환의 논법은 NLPDR과 마찬가지로 ‘단계론적 사유’에 기초해 있다. 즉 우리 사회의 단계는 이 정도이므로, 우리에게 있는 문제나 과제는 이것이고, 이전 단계의 문제나 이후 단계의 문제를 고민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다는 식이다. “먼저 수구세력을 척결하고 그 다음에 좌우대립구도를 만들자.”고 좌파들을 압박한 ‘비판적 지지론’ 역시 단계론적 사유의 전형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좌파”를 평가절하할 때 주대환은 강고한 ‘단계론적 사유’를 보여준다. 반면 나는 하나의 사회, 특히 한국처럼 압축성장한 사회에선 서구 사회의 다양한 시대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중첩되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런 문제들 모두를 대면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대환식의 ‘단계론적 사유’는 극복해야할 ‘과거 운동권의 악습’ 중 하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주대환의 비평이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그 다음을 말해보자. 진보신당은 어떤 정당을 지향해야 할까? 1) 양당제의 한축이 되기를 욕망할 수 있다. 2) 녹색당과 같이 문제제기를 하는 소수정당이 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 3) 중앙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일본 공산당과 같이 중앙정치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지방자치 레벨에서 진보적인 실천을 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논의가 가능할 것인데, 주대환은 이에 덧붙여 4) 미국 민주당 모델 정당의 한 분파로서의 좌파 정치세력화를 주장한다. 


먼저 이 문제가 몇 명의 전략가들이 방향을 제시하고 이론적인 논쟁을 해서 결론을 내야 하는 성격의 문제인지가 의문이다. 처음부터 녹색당이나 일본 공산당을 욕망하는 사람이 있을까? 현실적인 조건들에 부딪히고 좌절하면 차선, 차선을 택하다가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1)은 아예 가능성이 없으니 애초에 2)나 3)을 추구하는 맞춤형 전략을 짜자는 주장도 가능하기는 한데 내가 보기엔 좀 에러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양당제의 한축인 민주당이 전적으로 신뢰를 잃고 이탈한 이명박 지지층도 ‘줏어먹기’ 하지 못하는 ‘난세’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양당제의 한축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과 투쟁이 있을 텐데, 이 정국에 무언가를 노려보지 않는다는건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또한 그러한 논의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진보신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인 이상 당원들의 논의의 차원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가령 나는 4) 미국 민주당 모델 정당의 한 분파로서의 좌파 정치세력화라는 주장이 때려죽어야 할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지려면 전체 당원들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덧붙여 나는 정당 레벨에서 한나라당 이외의 보수정당들과 사안별 연대를 하거나 연정 등을 꿈꾸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최병천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꿈꾸려고 해도 일단은 진보신당이 모종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의석이 있는 정당이라야 상대편에서 연대니 연정이니를 논의할 건덕지가 생길 것이다. 의석이라는 점에서 보면 진보신당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당인데, 탄생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시기에 나중에 커서 외교관이 되니 판사가 되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까. 진보신당이 독자생존할 수 있는 세력이 되야 연대니 연정이니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주대환을 향한 비판 중에는 필요이상으로 과잉된 것도 있는 것 같다. 변절의 테크트리를 타고 있다는 비판도 그렇고,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수사에 대한 반감도 그렇다. ‘위대한’이란 수사가 찜찜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주대환이 말한 것은 1) 대한민국이 NLPDR의 단계를 넘어서 있다는 것, 2) 공화주의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좌파질을 하자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정통성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나는 주대환이 대한민국의 나쁜 면도 모두 긍정하자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는 정통성이라는 단어를 우파들이 쓰듯이 정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사가 진전되면서 쌓여온 것이라는 식으로 동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언급방식인 것 같다. 그의 역사관에 동의안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언급 자체가 부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해서 그를 ‘사민주의 우파’라고 비판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이에 대해선 Lollapalooza 님의 “주대환의 사민주의? 1900년산 영국제 시계를 버려라”라는 탁월한 텍스트가 있으니 내가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대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사민주의 우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입장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시대엔 사민주의 우파라도 진보신당에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우파 정당들도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물론 좌파정당의 성장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보신당이 직접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진보신당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기타 보수정당들이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추구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나는 PD 운동권들의 ‘한계’를 질타하는 주대환이 진보신당에 와서 자신이 싫어하는 PD 운동권들도 제어하고 비-민주노동당원 출신의 새로운 당원들과도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이것은 2004년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그를 위해 운동했던, 그것도 단지 ‘반 NL 후보’로서 지지한게 아니라 (비록 종종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의 논리적이고 유려한 글을 좋아했던 한 명의 지지자, 아니 왕년의 팬이 그에 대해 가지는 바람이다.  




P.S Lollapalooza 님의 두 번째 글, “조선일보에 놀아나는 다원주의는 없다”에 대해서도 할말이 좀 있다. 물론 나는 주대환-최병천의 언론관이 아니라 Lollapalooza 님의 언론관에 동의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안티조선 운동의 현황에 대해 비판적 점검없이 그 논변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나는 그와는 달리 ‘안티조선’이라는 구호가 지니는 타당성이 즉각적으로 납득될 정도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이 글의 논점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이므로 가까운 시일 안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rte

2008.09.11 00:27:28
*.238.182.154

오랫만에 포스팅 올리시네요.. ^^ 덕분에 다른데서는 보지 못하는 좌파 여러 계열들의 현재 상태에 대해 좀 파악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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