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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조중동이 포퓰리즘으로 몰아가고 있고 대통령은 사회주의 정책이라 일갈했지만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은 진화되지 않는 것 같다. 일부 한나라당 지방선거 주자들과 의원들마저 무상급식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정책에 대한 서민들의 지지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모두가 무상급식 수혜를 받으면 부자들도 혜택을 받지 않느냐."는 식의 대통령의 항변은 "그게 문제가 될 거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으면 되지."라는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의 답변에 막힐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인 차원을 떠나 조중동이 반대하는 정책이 살아남는 이유에 대해 조명할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이 여전히 이슈가 되는 이유에 대해선 길거리에서 장삼이사를 붙들고 물어도 90% 이상 정답에 가까운 반응이 나올 것이다. "서민들의 지지를 얻기가 쉬워서." 그러면 그 이유는? "자신의 삶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정책이기 때문에." 문제는 이 '모법답안'이 다른 종류의 이슈에는 적용될 수 없느냐는 고민일 것이다. 이는 소위 진보/개혁 세력이 고민해야 할 본질적인 부분이다.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에서 김어준은 노회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른바 좌파들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정하는 '죄의식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죄의식'을 공유하는 이들은 같이 운동을 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시도는 다수의 사람에겐 거리감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김어준의 지적은 본질적이지만, 이게 '좌파'들에게만 향해야 하는 문제의식은 아닌 것 같다.


가령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오는 "국민의 탐욕이 이명박을 뽑았다."라는 명제를 생각해 보라. 그 종류의 사람들을 대표할 법한 유시민이란 정치인의 "이명박은 이를 추구했고 노무현은 의를 추구했다."는 명제를 생각해 보라. 이런 가치체계에서 2007년 대선의 결과는 결국 "조중동의 세뇌와 국민의 오류"라는 이유로 수렴된다. 그리고 그런 조건들은 언제나 있었는데 그럼 다음 선거도 포기하겠단 말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그 오류의 비극적 결과로서의 "노무현의 죽음"을 들이밀고 그의 원통한 죽음에 대해 원수를 갚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속삭일 것이다. 매우 모범적인 '죄의식 마케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죄의식 마케팅'은 좌파들의 그것보다는 오십배 내지 백배는 더 상업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 차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좌파들의 '죄의식' 담론은 좌파진영에 소속되어서도 끊임없이 '죄'를 고백해야 하는 불편한 담론인 반면 노무현 지지자들의 '죄의식' 담론은 노무현 진영을 지지하기만 하면 '죄'가 완전히 사하여지는 수준의 '죄의식' 담론이기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 진영을 지지한 이후에 그들의 '죄의식'을 촉구하려는 모든 담론은 '진보 원리주의'라는 수사나 "극좌는 극우와 통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비판하면 될 일이다. 거칠게 비유하자면 한국사회에서의 좌파적 '죄의식' 담론은 고해성사 의식을 살벌하게 하고 자칫하면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 '카톨릭 교회의 극우파 버전'을 닮았고, 개혁진영의 '죄의식' 담론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개신교회의 극우파 버전'을 닮았다. 문제는 후자가 전자에 비해 아무리 더 대중적이더라도 대선국면에선 절대로 승리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분명 노무현에게 죄의식을 느끼는 듯하다. 하지만 그 죄의식의 총량이 온전히 유시민에게 전이될 거라는 건 믿기 어려운 가설이다. 그 점은 2012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명백해질 것이다.


노무현이 무슨 일을 하던 혁명 좌파 쯤으로 몰아붙였던 조중동의 행동을 상수로 봐야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해진다. 우리는 '조중동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전진할 수 있는 루트를 발견해 내고 돌파해야 한다. 참여정부와 민주노동당(과거 진보신당 구성원들도 참여하였던)은 이 점에 대해 변명할 입장에 놓여 있지 않다. 한국인들은 군부독재시절 경제가 성장한 경험만을 했을 뿐, 개혁이니 진보니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도움을 준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런 실정에서 '탐욕' vs '도덕성'의 구도를 내세우는 건 그냥 "정치하기 싫어요!"라고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거시경제 지표와는 달리 개인의 삶이 불안정해질 때 서민들이 택한 것이 이명박의 한나라당이었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관한 논쟁은 이 글의 논점에서 다루기엔 지나치게 거대하고 소모적인 측면이 있으니 좌파들의 행동에 집중해 보자. 2002년부터 2004년까지의 민주노동당의 성공은 부유세, 무상교육/무상의료,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과 같은 슬로건과 수사법에 힘입은 것이었다. 문제는 2004년에서부터 2007년까지 펼쳐진 정치적 기회에 민주노동당이 한 일들은 그것을 실현하는 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했던 4대개혁입법 정국에서 '급진적 열린우리당'의 위치를 전유했다는 사실 자체를 비판하지는 말기로 하자. 하지만 그런 행동과 함께, 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를 충분히 정치적 행동으로 풀어내지 못한 상황은 아무리 비판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부유세가, 무상교육/무상의료가, 세율의 조정이, 단기간에 이룩될 수 있는 목표였겠느냐? 온세상이 민주노동당의 정책을 반대하고 있었는데 말이다."라고 반응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건 참여정부가 이명박 당선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없다고 강변하는 이들의 논리구조이기도 하다. 서로를 비판하는 이들의 논리구조가 동질적이란 사실은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만일 그런 항변들이 올바르다면, 우린 민주당을/민주노동당을/진보신당을 지지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지지해봤자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더라는 변명만 듣게 될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러한 장기적인 지향을 단기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으로 분절하는 정책적(혹은 정치적) 역량이다. 무상급식 문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훌륭한 정책이면서, 무상교육이란 지향을 향해 다가가는 방법일 수가 있다. 심지어 무상급식이란 정책 안에서도 지역별/초중고별 점진적 추진을 통한 구체적인 방법은 다를 수가 있다. 이는 무상급식 문제가 이슈화되는 시점에서 일부 한나라당 의원을 포함한 넓은 진영에서 실제로 논의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이런 차원의 논의가 시작되면 서민들은 그 구체적인 물질적 이해관계에 주목하게 되니, 논의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성과는 어떻게든 남게 되지 않을까.


부유세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애초에 부유세라는 공약 자체는 정책적 타당성보다는 발상의 전환을 염두에 둔 이벤트성 공약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유세라는 공약 자체에는 얽매이지 않고서라도, 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그 공약의 지향을 공유하는 구체적인 정책들을 만들 수 있었을 거다. 정책역량이 없는 필자가 적절하게 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니지만, 가령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 조정, 그보다 더 세밀하게는 몇 개 생필품과 사치품을 선정하여 간섭세율을 조정한다는 식의 접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명박 정부는 물가가 한참 오를 때 생필품 수십 개 품목을 선정하여 가격상승을 관리한다는 식의 '쇼'를 벌였다. 그런 쇼를 그대로 배우자는 건 아니지만, 국민들의 시선에 그대로 들어오는 그런 구체적인 품목을 나열하는 정책은 진보좌파의 지향 안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다. 무상급식 논쟁은 좌파들에게 그런 식의 구체성을 요구하는 '등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개혁세력'임을 자처하는 제1야당이 어떠한 진보적 지향도 돌보지 않는 현실은 우습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가 진보적 지향을 포기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담은 구체적인 정책을 설득력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은 더 우습다. 그리고 이 우스움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그건 너무나도 서글픈 일이다.






asianote

2010.02.24 11:25:41
*.170.212.186

제가 하고픈 말은 무상급식의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세금 내라고 하면 좋아할 분들이 아무도 없지요.

하뉴녕

2010.02.24 12:39:46
*.49.65.16

사실 무상급식은 재원이 그리 많이 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서울시의 경우 지방재정만으로 된다고 하니까요. 오히려 큰 계획을 세우고 재원마련 계획까지 세우는 것보다는 (참여정부의 비전 2030도 재원계획은 세웠고, 하다못해 민주노동당 부유세 계획도 재원계획은 있었습니다...) 무상급식처럼 지금 있는 돈에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정책예산 집행을 잘하고 그 효과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좀 러프하게 말하면 세금 더 내라고 주장하기 전에 지금 내는 세금을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를 먼저 보여주어야 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들꽃

2010.02.24 16:37:22
*.133.159.199

무상급식이라고 하니 두드러기내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처음부터 '의무급식'이런식이었음 어땠을려나..걍

전군

2010.02.24 18:55:05
*.14.81.53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지요.

Deepthroat

2010.02.25 01:32:27
*.122.204.16

좋은 글 트위터로 펌 신고합니다.

무주택차하위계층유권자

2010.02.28 01:19:02
*.21.3.54

부동산, 사교육, 대학등록금, 사금융, 학교폭력, 과포화상태인 택시운수업, KTX에 밀려 시간표에서 사라져가는 새마을호...대충 적어보면 이런 것들이 제가 피부로 느끼는 심각한 문제들인데요. 다른 분들은 또다른 각도에서 많이 나오겠죠. 그런데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정책적 해법을 가장 기대할 만한 당이 그나마 진보계열 당이겠는데, 여태 들어본 이야기가 없거든요. 무슨 연구를 하고 계시긴 한 건가요?

Bigcat

2010.08.12 00:34:42
*.64.244.142

윗 분 의견에 공감합니다. 좌파, 혹은 진보 정치인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뛰어난 행정가가 되어야 할 듯 하네요.

하뉴녕

2010.08.12 09:41:56
*.241.65.128

슈퍼맨이 되어야 하죠...(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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