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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성공하지 못한 라캉 토벌 작전

조회 수 1228 추천 수 0 2008.03.25 16:48:46

1. 듣보잡?


“각 개인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기준들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식으로 훈련받은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을 신뢰하는 것이 좋다고 나는 주장하였다.”는 쿤의 말을 토벌대장 아이추판다 님은 인용했다. 무리가 없이 받아들여지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훈련받은 심리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을 받아들여 그가 라캉 정신분석을 폄하하든 말든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주장을 확장시켜 ‘철학에서도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거나,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논변을 전개하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 문제에 대해 정교하게 탐구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훈련받은 철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을 신뢰’하는 것 외의 방법이 없고, 그들의 판단은 라캉의 이론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철학에서 탐구해야할 가치가 있는 이론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학문의 훈련받은 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을 신뢰하며 논의하는 쌍방이 타협을 거부하고 (이 논쟁이 그닥 생산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몇 차례 타협의 신호를 보냈으나 토벌대장 님은 자신의 입장이 용가리 통뼈라고 생각하는지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의 의견을 견주어 보고자 한다면, 더 이상 학자의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라캉 토벌대는 그러한 근거를 제시했는가? 심리학이 이렇게 심란한 학문은 아닐텐데, 그들의 주장은 시시각각 혼란스럽게 바뀌는지라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해야 했다.



2. 실증주의의 관점에서 비판했나?


“경제학과 심리학은 모두 자연과학의 강력한 영향력 속에서 성장한 학문이지만 서로 상반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경제학은 자연과학의 이론중심적 태도를 따르는 반면에 심리학은 실험중심적 태도를 따른다. 경제학자들은 우아한 수식과 그래프로 이뤄진 근사한 이론들을 가지게 되었고, 심리학자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인종, 언어, 문화, 지역에서 재현되는 확고부동한 실험결과들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쪽이 더 과학적인가는 설령 '과학주의자'라고 해도 윤형님처럼 간단히 결론짓기 어렵다. 예를 들어 이론적 반실재론자인 실증주의자들은 심리학의 손을 들어주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토벌대장 님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니 일단 그의 라캉 비판이 심리학을 옹호하는데 적절하다는 ‘이론적 반실재론자인 실증주의’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간주해 보자. (노정태 님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경우 토벌대장 님의 논변은 대략 다음과 같은 구조를 지니게 된다.


1) 실증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임상에서 효과가 없는 이론은 쓸모가 없다고 볼 수 있다.
2) 정신분석적 접근은 임상에서 효과를 보이는데 실패했다.
3) 정신분석학은 쓸모가 없다. 철학적으로도 검토해 볼만한 가치가 없을 만큼.


이 논증엔 크나큰 난점이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정신분석학’을 ‘정신분석 일반’으로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프로이트, 아들러, 융의 기법을 심리학에서도 일부 차용해서 쓰는 만큼 심리학은 쓸모없는 이론을 포용하는 학문이 되고 만다. 특히 토벌대장 님은 심리학을 명백한 과학으로, 정신분석학은 명백한 사이비 학문으로 규정하는 만큼, 명백한 과학인 심리학이 명백한 사이비 학문의 방법론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상한 모자 님의 증언에 따르면, 심리학과에서 프로이트나 아들러, 융의 기법을 가르치는 과목이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이론을 유달리 신뢰해서가 아니라 ‘혹시나 환자치료에 도움이 될까봐’라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이론적 반실재론자인 실증주의자’가 가져야 할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토벌대장 님의 주장을 정신분석학 일반으로 확장시키면, 그의 단호한 언명은 실증주의자의 태도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쓸모가 있다, 쓸모가 없다, 는 명제는, 과학이다, 과학이 아니다, 라는 단언에 비해 훨씬 상대적이다.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해서 그것 전체를 사이비로 재단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임상심리학자라고 말씀하시는 웰던지기 님이 “치료 기법이 400개가 넘어가는 요즈음에는 치료만 잘 되면 어떤 치료적 개념도 사용할 수 있다는 통합-절충주의의 시대”이며 “정신분석치료는 치료가 안 되고, 인지행동치료는 치료율이 높다고 주장하는 건 어리석은 주장”이라고 단언하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토벌대장 님의 주장은 이 경우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정신분석학’을 ‘라캉학파의 이론’으로 좁혀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즉 심리학과에서도 잠깐 맛은 본다는 프로이트, 아들러, 융의 이론은 사이비 정신분석이 아니라고 치고, 그의 논변이 라캉 학파만 씹은 거라고 생각해 보잔 말이다.


이 경우에도 그의 논변은 모순이 된다. 왜냐하면, 실증주의자인 그는 오직 임상효과에 의해서만 이론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심리학에서 듣보잡 취급해서 다루지도 않는 라캉에 대한 임상자료는 ‘제한적’이라는 기타 정신분석학의 임상자료보다도 미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듣보잡이니까 문제가 끝났다고 말한다면 다시 논점은 1로 워프를 하고 그의 대담한 주장은 시궁창에 빠진다. 순수하게 실증주의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때에 그의 라캉 비판은 제대로 자료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성급한 판단에 불과하다. 노정태 님이 했던 것처럼 왜 자료를 남기지 않는가, 라고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물론 가능하지만, 이 비판은 엄밀히 말하면 실증주의를 넘어서 있다. 실증적 자료를 도출하는 틀 안에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하나의 이론적 기준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정태 님의 기준은 스스로 말했다시피 일종의 '태도'의 문제에 기대고 있어서, 과학철학인지 지식인의 윤리의식에 대한 규정인지 분간이 안 간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종교적인 폐쇄성은 그들 수리철학의 철학적 타당성과 별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게다가 라캉 이론이 무슨 용가리 통뼈길래 다른 정신분석학과는 특별히 구별되어야 되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또 우리가 안 받아들였으니 듣보잡! 이라고 반응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러면 우리의 논점은 다시금 1로 존트를 하고 그의 대담한 주장은 시궁창에 빠진다. (이 논쟁이 어느 순간부터 쳇바퀴를 돌고 있는 건 사실 토벌대장 님의 주장의 본질이 논점 1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내 추측이다.)


그리고 누차 지적했듯이 '마음에 관한 이론'의 타당성을 전적으로 치료의 효율로 따지는 것이 정당한 일인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심리학을 옹호하고 정신분석학을 사이비로 치부하려는 이들은, 너무 손쉽게 자신들의 의사들의 입장에 동일시한다. 하지만 의사들의 관점에서는 심리학을 전공한 임상 심리학자나 정신분석을 전공한 심리 치료사가 얼마나 다르게 느껴질까? "의사들이 손을 떼고 전적으로 심리학 전공자들에게 환자를 맡긴다면 어떨까요?"라고 제언한다면 의사들도 "어 그건 곤란하죠."라고 반응한다(고 한다). 그런다고 심리학의 효용이 사라지는 건 아닐진데, 왜 이와 동일한 구조의 야바위를 정신분석학을 욕하는데 사용하는 걸까? 치료의 효과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태도는 의학과 구별되는 심리학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실패하는 것이 아닐까?  


토벌대원들조차도 오직 임상에 의해서만 얘기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은 웰던지기 님의 글을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야 할 것이다.) 가령 토벌대장 님은 "내성을 믿지 말라."는 자신의 주장도 실증주의적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 경우에 이 '실증'은 이미 임상을 벗어나 방법론에 대한 검증의 영역으로 나아가 버린다. 임상에 대한 집착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론적인 접근이 필요한 차원으로 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토벌대는, 어떤 이론적 접근으로 라캉을 분쇄하고 있는가?



3. 그러면 이론적 관점을 제시했나? 


상술했듯이 ‘이론적 반실재론자인 실증주의자’의 입장에서 토벌대의 주장을 일관되게 해석하는 것은 굉장히 난해한 일이다. (노정태 님의 주장이 논쟁 지형을 넘어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렸다고 내가 판단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사실 토벌대장 님은 라캉은 나쁜 놈이라는 주장 이외엔, 딱히 어떤 포지션을 취하고 있지 않다. 그가 ‘이론적 반실재론자인 실증주의자’를 들먹인 건 그게 “사실 심리학도 통합된 방법론이 없는 잡학이 아니냐?”라는 내 질문에 답변하기 편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2번에서 적어놓은 모순을 진작부터 어렴풋이는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마하니 그가 '이론적 반실재론자' 운운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가 라캉을 적어도 심리학과 대상을 공유하는 영역에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는 그가 심리학에서 듣보잡이고,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것인데 이 정도의 주장을 '과학주의'라고 부를 과학철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의학이나 라캉 등의 정신분석학은 임상 이론으로서 제한조건을 통과하지 못하는 이상 과학외적 요소를 들먹일만한 자격도 없다.”


토벌대장 님은 거듭해서 라캉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경험적 근거가 없다고 말하고 있고, 어느 덧글에선 그 사실을 과학자(심리학자?)들이 검증하기도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과정에 대해서는 서술하고 있지 않다. "내성을 믿지 마라"에서 그가 정의하는 '내성'은 너무 폭넓어서, 뭐라 코멘트하기도 어렵다. 그가 언급하는 사례는 언어학 교양강좌에서 흔히 인용되는 것이다. 누가 그런 걸 부인할까? 여하간 "내성을 믿지 마라"고 했으니 라캉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경험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려면 그는 다른 종류의 과학적 실험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서술해 달라는 나나 GT 님의 요구에 논문을 찾아보겠다고 반응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역시 그 내용을 숙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정신분석학을 사이비로 매도하는데 충분한 과학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훈련받은 과학자들의 집단적인 판단을 신뢰”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시 논점이 1로 돌아가 버리며, 그가 제시했던 대담한 주장은 또 한번 시궁창에 빠진다.


경험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를 해설하든지, 아니면 과학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 무엇인데 심리학에는 이런 이유로 그것이 잘 적용되는 데에 비해 정신분석학은 이런 이유로 그것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이상, 정신분석이 사이비라는 그의 주장을 내가 받아들여야 할 어떤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심지어 토벌대장 님은 후자의 설명조차 성실하게 한 일이 없다.누구에 의하면 과학의 기준이 이거네 저거네, 언급은 했지만, 그 기준을 적용시켜 '비평'을 한 일이 없다. 그러고도 그가 라캉을 토벌하고 있다고 믿었다니 놀랍지 않은가?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고 안 되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건 뭐가 있어야 받아들이든지 말든지 하지. 그러고도 외려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그들 토벌대의 논변은 ‘아직 언급하지도 않은 과학적 자료에 벌써부터 경의를 표하라고 요구하는’ 뒤틀린 권위주의에 해당할 듯 싶다.



4. 논쟁에 임하는 토벌대의 잘못된 방식


그런 권위주의를 토대로 그들이 철학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으니 정말로 우스운 일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전통철학을 다 도려내야 하는데?”라고 반응한 것은 정말로 전통철학이 다 잘려 나갈까봐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들의 논변대로 하면 사태가 그렇게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다.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노정태 님은 혼자서 철학의 미래를 걱정하더니 이제는 그 걱정에 대한 정답을 찾았다고 희희낙락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뭐하자는 짓인지 모르겠다. “당신은 왜 그렇게 비열하게 최장집을 털었나요?”라는 질문에 대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우리 어디 1950년대에 이승만 노선이 옳았는지 김구 노선이 옳았는지 토론해 봅시다.”라고 반응한 왕년의 이한우를 연상시킨다. 나는 노정태 님이 그 진지한 철학적 열정을 지도교수와의 토론을 통해 해소했으면 한다. 그건 나같은 일개 학부생과 해야할 논쟁도 아니고, 이 논쟁은 철학에 대한 그의 관점과 별 상관도 없다.


느닷없이 철학적 문제를 한정지어보자고 타협안을 제시(?)하신 토벌대장 님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하는 말은 미국 심리철학에서 사용하는 구별법인데, 문제는 그게 대륙철학에 적용할 수 없는 기준이라는 데에 있다. 러프하게 말하면 통약불가능한 것이다. 대륙철학의 이론적 체계 중에서 현대의 심리학 데이터를 반영해야 하는 부분이 어디이고 데이터와 상관없는 부분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난해한 철학적 문제일 것 같다. 아마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가 시작된다 해도 철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거기에 동의해야 하는데? 거듭해서 내가 지적하는 것은, 철학자들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잘 모르는 어려운 문제를 그들이 판정해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그 지독한 오만이다. 철학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고, 그 단순하지 않은 학문이 과학도 지탱하고 있는 거다. “뭐 저딴 게 있어?”라고 외면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이렇게 복잡한 문제일 리가 없어.”라며 그들의 잣대로 후벼파는 건 정말 무식한 일이다. 


위에서 점검한 바와 같이, 끊임없이 과학이라는 주문을 되뇌이는 토벌대의 논증 방식은 과학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들의 논변 수준을 고려해 보건대 설령 쓸만한 데이터를 손에 쥐고 있다 한들 그 데이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들은 라캉을 토벌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를 제시했는가? 제시하기는 개뿔. 그들 자신도 제시하지 못하는 과학적 판단의 권위로 논의를 단정하거나, 몇몇 인문학도들(나를 포함해서)의 잘못된 인용을 지적하기에 바빴다. 특히 토벌대장 님의 논쟁행태는 상대방이 뭐라고 주장하면 논지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발언을 부인하고 자신의 논변을 옹호하는 듯한 어떤 학자의 주장을 긁어다 붙이는 식이었는데, 이런 식의 논쟁방식은, 마치 논쟁 내용과 상관없이 맑스의 언명을 적절하게 긁어다 붙이는 걸로 싸움의 승패를 가리던 구 운동권의 대자보 논쟁의 악습을 연상시킨다. 나는 그런 식의 논쟁에 피식하는 사람이라 굳이 따지지 않았는데, 사실 라캉이 상담한 환자의 수는 1000명이 아니라 400만 명이고, 그가 언젠가 자신의 글 말미에 갖다 붙인 이안 해킹 교수는 심리학은 하드한 과학이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제발 훈고학질 그만 두고 논점이나 챙기기 바란다.


지금도 GT 님의 발언을 털어버리는 걸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있는 모양이다. 한마디로 벌쳐로 프루브 잡는 컨트롤을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던 셈인데, 그러다가 본진에 캐리어 한 부대 뜨면 어쩌시려는 건지 모르겠다. 아머리는 지었나? 골리앗 사업은 했나? 근데 내가 왜 이런 걸 걱정해 줘야 하는 거지? 아, 클로킹 레이스가 준비되어 있다고? 라캉 이론에 대한 과학적 반증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그의 서술을 기대한다. 적어도 그쯤은 되어야 3의 관점에서 그들 토벌대의 입장을 정리하는 일이 가능할 테니까 말이다.


토벌대의 궁극적인 목표는 1) 라캉 이론을 사이비 학문으로 단정하고, 2) 그러므로 철학적 입장에서도 다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텐데, 2)는 고사하고 1)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2)는 노정태 님의 심오한(?) 고민이 보여주다시피 그 자체로 심각한 철학적 문제이니 토벌대와 논의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차라리 1)의 문제에 대해서도 토벌대가 정합적인 관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그들 과학도(?)들끼리 희희낙락하는 희안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링크목록 :

  1. 라캉을 모르면 막장인가효?(아이추판다)
  2.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이 아닌가?(아이추판다)
  3. 정신분석학과 심리학(한윤형)
  4. 라캉 논쟁에 대한 심도 깊은 대화(노정태)
  5. 일관성(아이추판다)
  6.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한윤형)
  7. 논쟁의 효과, 그리고 인문학과 과학(한윤형)
  8. 프로이트, 융, 라캉(아이추판다)
  9. 라캉 위에 그어진 선(아이추판다)
  10. 라캉과 정신의학, 그리고 관념론(노정태)
  11. 라캉을 읽지 않겠다 - 한국라깡학회 저널을 보고(새로운 세상)
  12. 1000명(아이추판다)
  13. 라캉적 임상 진단 및 치료(노정태)
  14. 과학학은 반과학주의인가?(아이추판다)
  15. 메타 이론, 과학, 물리주의(한윤형)
  16.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노정태)
  17. 쿤, 과학학, 김재권, 그리고 해킹(아이추판다)
  18. 라캉과 심리학의 화해 가능성(이상한 모자)
  19.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 - 아이추판다 님과 노정태 님에게 답변(한윤형)
  20. 과학과 철학에 대한 논쟁을 넘어(노정태)
  21. 콰인 가라사대(아이추판다)
  22.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하늘빛마야)
  23. 라캉 논쟁에 대한 생각 정리(한윤형)
  24. "과학에서 인증받지 못한 정신분석학이 철학적 이론을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 - 하늘빛마야 님께(한윤형)
  25. 쪼가리 : 라캉의 학문이 철학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박(하늘빛마야)
  26. 쪼가리 : 딱히 끼어들 생각은 없었거늘(하늘빛마야)
  27. 내성을 믿지 말라(아이추판다)
  28. 아리스토텔레스와 귀머거리 곤충(노정태)
  29. 쪼가리 : 라캉 논쟁을 보며 II (1)(하늘빛마야)

노정태

2008.03.25 17:29:36
*.162.212.41

"대륙철학 그래도 안 망한다"는 것이 내 논지인데, 그에 대해서는 블로그 포스트로 대답해주기로 하고, 일단 아주 간단한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도록 합시다.

"나는 그런 식의 논쟁에 피식하는 사람이라 굳이 따지지 않았는데, 사실 라캉이 상담한 환자의 수는 1000명이 아니라 400만 명이고, 그가 언젠가 자신의 글 말미에 갖다 붙인 이안 해킹 교수는 심리학은 하드한 과학이 아니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제발 훈고학질 그만 두고 논점이나 챙기기 바란다."

자, 라캉은 1901년 4월 13일에 태어나 1981년 9월 9일에 사망했습니다. 80년 5개월 정도 살았는데, 계산의 편의를 위해 우수리는 떼고 윤년은 염두에 두지 맙시다. 그래서 80년 인생으로 잡으면, 1년은 8760시간이니까 라캉의 인생은 총 70만 800시간을 산 게 되죠. 그런데 지금 한윤형님은 라캉이 무려 400만명의 임상을 봐줬다고 하고 있습니다.

엄... 그러니까 인생이, 밥먹고 잠자고 화장실 가고 하는 그 모든 인생을 다 합쳐봐야 70만 시간이 약간 넘는데, 임상을 봐 준 환자는 400만 명이 넘는다는 거죠 지금. 따라서 한윤형님의 말에 따르면 라캉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시간당 5.70776256명의 환자와 임상을 했고, 그 외에는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손과 저서를 남긴 위인이 되겠습니다.

님의 '논점'을 내가 따라가주지 않는 건, 그걸 판단하고 말고를 떠나서 논의의 기초가 되는 사실에서 오류가 너무 숱하게 발견되기 때문이에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학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면 대륙철학을 다 들어내야 한다'는게 한윤형님의 주장인데, 이미 훗설, 하이데거, 그 외 수많은 대륙철학자들이 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 절묘한 논점을 형성하고 있는 판에 대체 님의 그 '논점'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겁니다.

내가 말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반성적 고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군요. 나머지 이야기는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하도록 하죠.

하뉴녕

2008.03.25 17:36:03
*.176.49.134

사전에 나와 있는 이야기고 그게 40만의 오타인지도 모르겠으나 레비나스 님의 '1천명' 덧글을 가지고 놀리고 있으니 하는 말 아닙니까. 잠깐 검색해보면 나올 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발끈하지 맙시다.

그리고 나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학적인 사실을 받아들이면 대륙철학을 다 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주체 철학에 가필하고 있는 라캉 이론 전체가 심리학의 과학적 사실에 대해 반증된다는 그 과격한 주장대로라면, 당신들은 대륙철학을 다 들어내자고 말해야 할 거요."라고 말했던 것 뿐이죠. 철학자들이 그쯤 하고 있으리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는 일인데, 님이 스스로 심각해 하다가 이번엔 답변을 찾았다고 좋아하는 게 좀 뭐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내 답변은 이쯤이면 됐고 아마 님의 포스트에 따로 답변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이네요. 지금 나는 님의 철학적 관심을 이 논쟁과 결부시켜 생각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죠.

노정태

2008.03.25 17:36:01
*.162.212.41

대체 어떤 사전에 이렇게 비상식적인 내용이 등장하는지 알고 싶군요. 출처가 어딘가요?

하뉴녕

2008.03.25 17:47:34
*.176.49.134

네이버 백과 사전에 그와 같은 비상식적인 내용이 등장하고 있지요. 개별상담이 아닌 다른 방식도 포함되어 넓게 잡았다고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 따지면 1천여명도 심하게 비상식적인 수치요. 하루에 한명만 상담해도 3년이면 그걸 넘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라캉의 병원은 무슨 수로 이윤을 남겼을까? 좀 쓸모있는 걸 따지고 들도록 합시다. 내가 무슨 라캉의 권위를 수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이상한 모자

2008.03.25 17:39:47
*.83.191.222

라캉이 임상을 봐준 환자의 수는 16억명 입니다. 라캉은 중국을 사랑했거든요. 이마저도 중국 인구가 정확히 추산되지 않아 나온 통계적 수치일 뿐.. 실제로는 더 많을 겁니다. 두 분 다 뭘 좀 알고 얘길 하세요.

노정태

2008.03.25 17:44:18
*.162.212.41

설마 그 출처가 《이상한 모자 대사전》이었나요? 껄껄껄...

이상한 모자

2008.03.25 17:45:31
*.83.191.222

http://www.iicj.org/technote6/board.php?board=seminpolicy&command=body&no=318

한윤형은 이걸 참고한듯.

이상한 모자

2008.03.25 17:49:02
*.83.191.222

뭐야, 그러니까 원래 출처는 네이버 백과사전인것 같네요.

이상한 모자

2008.03.25 17:50:06
*.83.191.222

노정태도 라캉 생일이랑 죽은 날 참고하느라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하지 않았나요?

노정태

2008.03.25 17:53:53
*.162.212.41

아뇨. 위키피디아 검색했죠.

일반 교사가 400만명의 학생을 제자로 두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네이버에서 그렇다는데 뭐.

이상한 모자

2008.03.25 17:55:47
*.83.191.222

여 역시.. 저 같은 양민들이 네이버 검색할 때 천 권의 책을 읽은 님은 위키피디아 검색하시는군요. 저 같은 사람은 그저 굽신굽신..

하뉴녕

2008.03.25 18:05:25
*.176.49.134

자꾸 내성 내성 하니까 악플에 대한 내성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셨던 진중권 선생님이 떠오르는군요...

하늘빛마야

2008.03.25 18:39:46
*.146.72.88

슬슬 감정싸움으로 넘어가려는 것 같은데(이미 한참 전부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들 잠시 머리들 식히시고 여태까지 전개된 내용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하뉴녕

2008.03.25 18:47:46
*.176.49.134

일단 토벌대장 님이 정리하신다는 논평을 기다리려는 생각이구요. 어제 논의를 찬찬히 돌아보다가 3번의 차원에서 별로 논의된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먹었습니다.

관전자

2008.03.25 20:09:05
*.85.205.38

이 논쟁이 한윤형 님이 만들어 놓은 링 안에서 이루어지면 아이츄판다 님의 패배가 명백해질꺼 같군요. 논점이 계속 회피되고 있는건 그 이유에서 일껍니다. 아이츄판다 님은 자신의 주장을 계속해서 수정해나가는거 같고, 따라서 논쟁을 일관적으로 이끌어 가지도 못합니다. 아이츄판다님이 논쟁을 조각내는 반론의 방식을 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일겁니다.

재밌겠도, 전 이 논쟁에서 사례의 논리적 분석에는 뛰어난 과학도의 능력이 총체적인 논리적 분석력과는 별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GT

2008.03.25 20:59:49
*.141.63.247

윤형님께는 죄송하지만, (스토커도 아닌데) 아이추판다 님이랑 하늘빛마야 님이 제 아이피를 차단해서 여기다 씁니다.

저에게 고언을 해주신 어느 인문학도 분에게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분야를 '인상' 수준에서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자기 주장을 펼친 게 잘못이라는 점, 깊이 반성합니다. 기본적인 문제 의식은 과학적 관점에 의거해서 인문학을 너무 쉽게 매도해 버리는 게 과연 합당한가, 과학 자체가 그렇게 자명하거나 확실한가 라는 것이었는데, 제가 좀 더 공부한 후에 그런 주장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논쟁이 어떤 식으로 결판나던(결판이 나기는 힘들겠지요), 저에게는 좋은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진심으로' 쓴소리해주신 어느 인문학도 분에게 다시 고맙다는 말씀 드립니다.

하늘빛마야

2008.03.25 21:41:34
*.146.72.88

어머, 이분은 웬 구라를. 저 GT님 아이피 차단한 적 없습니다.
구라가 아니라면 아마 착오일 텐데, 다시한번 확인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전 스팸이 아닌 이상 악플을 달더라도 차단은 하지 않습니다.
GT님은 애초에 악플도 아니니 물론 차단하지 않았고요.

어쨌든, 지적을 받아들이신 것은 충분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봅니다.

이상한 모자

2008.03.25 23:09:32
*.221.215.237

님들, 이제 쓰잘데기 없는 논쟁은 그만하고 저에게 돈을 좀 주시기 바랍니다.

http://acidkiss.8con.net/zbxe/2021#1

돈을 주실 분을 찾습니다. 국민은행, 448601-01-231192

노정태

2008.03.26 02:19:27
*.178.27.141

수동 트랙백입니다.

"완전한 몰이해"
http://basil83.blogspot.com/2008/03/blog-post_26.html

노정태

2008.03.27 13:53:44
*.162.212.41

"대륙철학의 존재 근거와 '라캉 논쟁'의 후반전"
http://basil83.blogspot.com/2008/03/blog-post_27.html

intherye

2008.03.27 16:32:05
*.49.21.77

"비밀글입니다."

:

ㅉㅉ

2008.03.27 16:43:22
*.255.182.135

서울 안가본 놈이 이기는 게 맞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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