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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덧글로 쓰려고 했는데 한정없이 길어져서 본문으로 씁니다. 하늘빛마야 님께 양해를 구하며, 트랙백을 보냅니다. 하늘빛마야 님의 질문은 라캉 논쟁에 대한 생각 정리 에 달린 덧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글 내용의 어떤 부분은 본문에서도 언급된 홍준기 선생님의 <라캉과 현대 철학>을 뒤적이면서 따왔습니다. 따옴표 있으면 통으로 인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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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님의 의문은 상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하면 정신분석학을 분과학문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신분석학의 자기규정에도, 실질적인 내용에도 합치하지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프로이트의 경우 (당대엔 심리학이 이만큼 발달하지도 못했으니) 정신분석학을 자연과학이면서 메타심리학이라 생각했지만, 그 메타심리학의 내용은 애초부터 철학적 맥락에 포섭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무의식 개념은 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항한 하만, 쇼펜하우어, 니체의 전통 속에 있다고 해석됩니다. (별로 관심없으시겠지만 프로이트가 니체를 직접 읽은 건 아니고, 니체를 읽은 누구를 읽은 누구의...뭐 이런 식으로 서술을 합니다.)


라캉은 이른 시기부터 프로이트에게 주석을 달면서 프로이트의 과학주의가 일정한 역할은 했지만 분명한 문제가 있다고 얘기했고, 정신분석학을 경험주의적 모델이 아니라 논리적 모델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라캉의 이론은 그 자신이 프로이트파의 의사가 아니었다면 시작되지는 않았겠지만, 기본적으로 실험주의에 입각한 모델임을 스스로도 부인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데카르트에서 훗설에 이르는 주체 철학에 '정신분석학의' 코멘트를 달기 시작하죠.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출발부터 경험과학이 아니라 하나의 사변적 논리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 논리를 구성하는데 '임상'에서 도움을 얻었다는 말을 하곤 있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프로이트의 기존 이론에 구조주의 언어학을 도입해서 논리적으로 재구성한 부분이 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이 이론에서 경험과학을 배제한다 해도 새로 재구성을 해야 할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무의식을 임상 과정을 통해 경험주의적으로 입증하려고 한 반면, 라캉은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을 시도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임상의 부분을 배제한대도 이론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진 않을, 그런 이론입니다. 세상에 이런 종류의 과학은 없습니다. 제가 애초에 "라캉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시작하는 이유는 그래서이죠.


저희같은 인문대생의 입장에선 애초에 라캉의 임상에 대해서는 배울 일이 없고, 그가 주체에 대해 어쩌구 저쩌구 한 부분에 대해서만 읽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분한 철학적 함의를 가지고 있지요. 그가 의사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그저 근대철학에 대한 어떤 주석가라고만 이해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라캉은 프로이트를 '데카르트주의자'라고 규정했고, 정신분석학은 실존적 공허 혹은 존재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주체, 분열적 주체가 타인들과 세계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이상적'인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했습니다. 이 규정은 명백하게 철학적이거나, 윤리학적이죠. 그래서 <라캉과 현대철학>의 저자 홍준기 선생은 정신분석학을 일종의 윤리학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라캉은 임상에서 효력이 없으므로 철학적 논의의 유효함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는 말을 들으면 꽤나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가장 방어적인 입장에서 말하더라도 "임상의 유효성에 상관없이 그의 이론은 이미 철학에 편입되었다. 이런 수준의 철학적 논의가 과연 반드시 경험과학에 대한 메타 이론으로 나와야 하는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캉의 철학을 색출해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엔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라캉에게 영향을 받은 철학자들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 가령 동시대의 철학자인 데리다도 라캉과의 논쟁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임상의 유효성 문제 때문에 라캉을 도려내면서 데리다의 일부 논리에 반박한다면, 데리다가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임상의학자도 아닌 데리다가 어떤 부분에서 라캉과 비슷한 통찰에 도달했다면, 라캉의 통찰 역시 임상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것들은 이미 경험과학에서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임상이론이 구체적인 정신질환을 고치는데 무능하다고 해서 이런 맥락이 모두 사라질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요약하자면, 1) 라캉 이론의 출발은 과학과 거리가 멀었고, 2) '대상 이론'이 따로 있고 '메타 이론'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애초부터 철학적 이론에 가까웠으며, 3) 여러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에 도려내자고 얘기할 경우 도대체 어디까지 도려내야 할지 알 수 없다. 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생각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관한 철학적 이론들은, 마음에 관한 과학적 학문인 심리학의 데이터를 배경으로 형성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강력한 반론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장하게 될 경우에는, 라캉과 라캉에게 영향받은 철학자들의 논의 정도가 아니라 전통철학의 대부분을 도려내야 할 것 같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가령 훗설의 현상학을 보면 '데카르트의 전통에 따라' "선험적 주체가 객관적인 인식을 보장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라캉의 이론이 어찌됐든 인간의 마음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심리학의 데이터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이렇게 얘기한 훗설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라캉이 정신분석학의 정의를 내리신 부분을 보셨지요? 얘기하는 레벨이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관한 철학적 이론들은, 마음에 관한 과학적 학문인 심리학의 데이터를 배경으로 형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현존하는 심리철학의 논의를 넘어 대륙철학에까지 적용한다면, 우리는 굉장히 많은 철학사조를 도려내거나, “심리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 했을 때 생긴 역사적 유물”로 치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은 직관적으로 볼 때 꽤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 같고, 또한 꽤 많은 사람들의 격렬한 반발을 낳을 것 같습니다. 과학적 연구와 철학적 연구의 결합이 활발한 분석철학의 전통 안에 있는 학자들 중에서는 은연중에 이런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심리학에서 출발한 것은 아닙니다만 비슷한 일을 하려고 했던) 논리실증주의가 퇴색한 이후 굳이 이런 견해를 시끄럽게 표명하려고 하지 않을 뿐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대륙철학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설령 데카르트식으로 영혼이 육체와 별도의 실체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더라도, 인간 의식에 대한 물리적인 규명과 그에 수반되는 이론들과 구별되는, 전통적인 의식철학이 규명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할 것입니다.


대륙철학의 옹호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맥락에서도) 마음에 관한 철학적 이론들은, 마음에 관한 과학적 학문인 심리학의 데이터를 배경으로 형성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면, 그리하여 대륙철학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표시한다면, 그건 대단히 일관성 있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 경우엔 도려내야 할 입장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은 의식해야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륙철학에 대한 우려가 합당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편이라서, 일관성 있는 입장을 취한다면 저도 그에 대해 별로 코멘트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저 역시 철학의 발달은 과학적 지식의 흡수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지금의 대륙철학은 좀 러프하게 표현하면 과거 대가들의 주석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독일철학에 가장 적절한 평일 것이고, 데리다나 들뢰즈 등의 프랑스 철학자들은 그래도 새로운 시각으로 철학사를 다시 쓰는 작업을 하는 축에 속합니다. 과학적 지식도... 에에 조금 활용하다가 소칼에게 욕을 먹었죠. “노력은 하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라캉의 수학 인용은 제가 봐도 좀 막장입니다만) 독일 철학자들보다 더 욕을 먹는 현실은 좀 안쓰럽기도 하죠. 어쨌든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논의와 최신의 논의 사이에 좀 교류가 있으면 좋겠는데, 이미 언어가 너무 달라져 버려서 쉽지가 않습니다. 대륙철학자들이 과학의 조류를 따라가는 것만 어려운 게 아니구요, 분석철학자가 대륙철학의 무언가에 대해 코멘트하려고 해도 대단히 어렵습니다. 가령 리처드 로티라는 분석철학계의 이단아이면서 미국의 국민 철학자인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대륙 철학자 인용하는 걸 보면 이것도 거의 막장 수준입니다. 다행히 그는 라캉과는 달리 그 사실을 지각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작업을 ‘창조적 오독’이란 거창한 이름으로 옹호했죠. (로티의 철학은 그 자체로는 유의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용을 잘못 했다고 해서 그 철학 전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학과 직접적으로 맞닿은 부분이 아닌, 가령 윤리학같은 분야의 경우 분석철학의 논의들이 흥미롭긴 하지만 또 어떤 의미에선 의미있는 많은 부분을 도려낸 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륙철학에도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구요. 두 가지 철학이 당장 교섭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한동안 서로 공존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철학 얘기가 너무 길어졌는데 이런 맥락을 설명드리지 않으면 철학사적 입장에서 라캉을 옹호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드러나지 않을 것 같아 조금 무례를 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상의 논의의 결과로서, 라캉 논쟁과 대체의학 논쟁과의 차이에 대해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대체의학과 의학의 논쟁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잘 고치냐, 라는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의학의 목표는 치료이니까요. 그리고 대체의학에서 사람을 고쳤다고 주장할 때 의학측에서 “그건 스테로이드 효과야.” 혹은 “플라시보 효과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런 양측의 주장을 따질 잣대는 비교적 객관적으로 갖추어져 있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앞서의 모든 논의를 고려해볼 때 라캉학파의 임상 효용으로 그들을 재단하는 문제는 좀 다른 층위에 있습니다. (라캉주의자들은 라캉의 임상이 효용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냥 이 문제는 뺄게요. 설령 어떤 특정한 국면에서 라캉주의자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임상효용이 있느냐 없느냐는 물론 경험적인 문제가 되겠습니다.) 라캉의 이론을 보면 최종적인 목표가 ‘환상의 횡단’입니다. 이를테면 님이나 저와 같은 일반인들을 ‘신경증’이라 보고 그 ‘신경증 너머’의 인간이 ‘환상을 횡단하는 인간’이라는 건데요. 이런 걸 임상의 효용으로 평가한다는 건 우습지 않겠습니까? 하이데거의 책을 읽으면 존재자가 아니라 존재의 구조를 통찰하게 된다...? 안 된다? 이런 걸 따지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의 이론이 애초부터 과학이 아니었으며 어떤 맥락을 타고 있는지 지금껏 설명드렸으니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캉에게 비판적일 수도 있고, 그의 철학에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요. 그가 요새 유명하다고 해서 꼭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철학의 긴 역사에서 그는 아직 찰나의 사람이고, 후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상황이 이렇다면 라캉을 비판한다 해도 과학의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전통철학 전체를 도려내는 터프한 입장이 아니라면)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모두 읽어 주셨다면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늘빛마야

2008.03.21 19:35:50
*.146.72.88

쓰다보니 길어져서 트랙백으로 대체합니다.

타치코마

2008.03.21 21:07:57
*.239.209.26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님의 얘기는 철학도로서의 가장 상식적인 입장을 대변하는 얘기이고, 혹여 세부적인 기술에 있어서의 오류가 있을망정 전하려는 바의 논지는 그 어떤 맥락의 뒤틀림없이 분명하고 예리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두세번 논의가 오갔을 때, 차후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던 처음 님이 제기했던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리라 보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점이 처참하게? 무시되고 있는 것이 저로서는 의아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라깡이 이렇게 대중적인 원성을 살만큼 철학적 맥락에서 가볍게 다룰 수 있는 인물은 아닌걸로 알고 있고, 혹여 전체 지성사에서의 그의 기여를 부도수표급으로 매도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그의 논리를 넘어서는 반론을 구성하는 것이 이렇게 인터넷에서의 몇줄 글로 가능한 일도 아닐텐데..

게다가 님이 라깡주의자를 자처하며 그런 분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포즈를 취한 것도 아니요, 다만 위와같은 맥락의 제시를 통해 라깡의 평가가 출발해야는 지점과 그에 얽힌 여러가지 난맥상들을 짚어 준 것 뿐인데..

아무튼 너무 앞서가서 자기 생각에 골몰해 있는 몇몇 분들의 부당한 처사로, 님의 건전하고 상식적인 논점이 묻히고, 님의 선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아, 또 왠지 그런 분위기로 님이 의기소침해 하실까봐 힘내시라고^^ 이렇게 한줄 남겨 봅니다..

2008.03.21 21:57:33
*.129.64.41

위 분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몇 가지 실패한 예증 때문에 님이 곤혹을 치르고 있는 모양인데요. 제가 보기엔 님의 논지는 철학도로서 매우 합당한 관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유학하는 사람으로서 '해외(?)' 분위기를 전하자면, 라캉의 위의는 분명 대단한 구석이 있습니다. 인문학 전반에 걸쳐 라캉의 흔적을 두루 발견할 수 있지요. 저는 미술사를 전공합니다만, 1학년 처음 들어가자마자 배운 사람이 라깡이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한국에선 라깡이 지젝에 빌붙어 알려진 듯한데, 여기서는 확실한 라캉의 독자적인 우세를 확인할 수 있지요. 외려 지젝은 몰라도 라깡 만큼은 알아줘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님과 논쟁하신 아이추판다님이 그토록 라깡을 폄하하는 건(폄하까진 아니더라도 그런 기미를 드러내는 건), 철학에서의 라캉의 의미를 외면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면, 아예 모르시거나.

임상의로서 라깡이 '듣보잡'인 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합니다. 아마도 제가 그 방면에 아는 게 없기 때문이지요. 심리학이 과학의 한 축이라는 것도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심리학 안에 포섭된 철학과 정신분석학의 영역을 무시하는 건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지요. 아이추판다 님 말씀대로 라캉에게 '심리학과 철학'이 한 몸이라면, 그의 심리학적 허풍을 까발리려면, 그의 철학적인 성취에 대해서도 동시에 논의를 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이추판다 님은 거기에 대해선 언급을 안 하시더라고요. 님의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에 임했다고도 볼 순 없습니다. 제기된 여러 질문들 가운데 자기가 골라서 답변을 하더라고요.

(참고로 아이추판다님의 논쟁 태도가 영 마뜩지않습니다. 어디 남이 쓴 논문을 앞세워 자기 논변을 '방어'하고 있지요. 감정을 섞어서 얘기하자면, 그런 식의 논박은 영국에서 가장 경멸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기 의견'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논쟁 잘 받습니다^^

2008.03.21 23:47:29
*.197.35.188

남이 쓴 논문을 정확히 인용하는 게 제대로 공부 안하고 답안을 대강 꾸며서 끝까지 승복하지 않는 것보단 낫습니다.

GT

2008.03.21 23:56:45
*.141.63.247

저도 가볍게 한 마디 코멘트 하는 것으로 이번 논쟁을 관전한(잠시 끼어들기도 했지만) 소회를 밝히지요. 윤형 님과 붙은 아이추판다 님이나 노정태 님은 기본적으로 라캉을 무시하는 선을 넘어서 멸시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처음부터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윗분들 말씀대로 윤형님이 가장 상식적이고 납득할 만한(물론 이게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블로그 논쟁에서는 더 이상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고 봅니다) 견해(라캉 정신분석학은 과학적 기준에는 미달될지 모르나 철학적 숙고 면에서는 탁월한 면이 있다)를 제시했음에도 라캉 같은 사이비 과학도를 거론하는 일 자체가 '불쾌'하다는 투의 반응만을 받았던 듯싶습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라캉에 대한 이상야릇한 '혐오감'이야말로 정신분석학에 대한 가장 '순수한' 반응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조금 공부한 정신분석학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데 그 특장이 있는 듯싶으니까요. 말장난 같지만, 정신분석학에 열광하는 사람보다 정신분석학을 혐오하는 사람이 정신분석학을 가장 정확하게 수용(?)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요.

다만 한 가지.. 지적할 사항이 있다면 이런 겁니다. 아주 단순화시켜 말해서, 라캉 정신분석학에서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그것이 사실은 똥이었구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치료가 끝난다(환상의 횡단)고 합니다. 적어도 이번 논쟁의 맥락에서는 아이추판다 님이나 노정태 님에게 '그것'이란 아마 과학이겠지요. 어쩌면 윤형 님에게는 그게 철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님보다 라캉에 좀더 호의적인 제 입장에서는, 정태 님이나 아이추판다 님의 논지를 따르면 과학적 실험-검증의 절차(윤형 님은 이 글에서 심리학의 데이터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좀더 거칠게 일반화시킨 단어를 씁니다)를 거치지 않은 모든 철학은 폐기처분되어야 하는데 그건 철학사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잘라내는 역효과가 나지 않겠느냐는 우려만을 토대로 해서 님이 반론(라캉에 대한 변호)을 펼치는 게 다소 궁색해 보였습니다.

철학조차도 버릴 만하면 버려도 되지 않느냐. 아마 진짜 라캉주의자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윤형 님보고 라캉주의자가 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고 저 역시 그런 민망한 주장을 할 생각이 없으므로 그저 지나가는 농담 정도로 받아들이십시오.

다만 라캉 정신분석학은 (어느 모자란 '라캉주의자'가 과학에 구걸하는 식의 태도를 취했는지는 알 바 아니지만) 과학 '따위'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눅이 들어 있는 오늘날, 과학이 별 거냐고 말할 수 있는, 어느 정도 정합성을 갖춘 거의 유일한 '사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그럴 능력이 없지만, 윤형 님보다 더 라캉에 호의적인 누군가가 이번 논쟁에 참여했다면,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과학의 '맹점'을 공박하는 쪽으로 논의를 이끌었겠지요.

실제로 과학의 여왕이랄 수 있는 물리학에서 벌써 오래전에 등장한 불확정성 이론 같은 걸 보면 원자보다 작은 세계에서는 꽤나 오리무중한 일이 벌어진다는 얘기가 있고 수학에서도 axiom of choice니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니 하는 말들은 과학의 자명성에 묘한 균열을 내는 것들이 아닙니까. 철학적 사변이 몰매를 맞고 사라진 오늘날 거의 유일하게 거대 담론을 이끌어가는 게 생물학자들의 '성긴' 세계관 같은 것일진대, 아직까지도 과학적 기준을 대단한 것인 양 의존한다는 게 조금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전근대적 우주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을 정신분석학이 한다는 얘기는 전혀 아닙니다. 다만 정신분석학은 그런 과학의 폐허(폐허라고 부르겠습니다)조차도 차분히, 아니 냉정히 응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단, 과학이 폐허라고 해도 그 폐허에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그 폐허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라캉은 데카르트의 후계자를 자처했고 서양 계몽주의의 적자임을 강조했지요.)

아마도 라캉에 대한 혐오감은 (아이추판타 님이나 노정태 님을 겨냥한 말은 아닙니다) 우리 시대 사람들의 사유 능력의 퇴화를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즉, 사유가 아니라 데이터에 의존하려는 성향 말입니다. 논의가 너무 복잡해지고 깊어지는군요. 여기서 멈추지요. 아무튼 오랫만에 흥미로운 논쟁 잘 지켜봤습니다.

dodo

2008.03.22 01:05:27
*.10.214.109

방금 하늘빛마야님의 트랙백을 보고 왔는데, 하늘빛마야님께서 철학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실체’라는 말을 저와 같이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개념을 잘못 사용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대화를 하고자 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아이추판다님의 논의는, 시종일관 ‘대화’를 하고자 하는 태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논쟁을 지켜본 내내, 저는 아이추판다님이 ‘라깡 정신분석학의 어떤 지점이 심리학계에서 소외당하게 했는지’ 보다 구체적인 논증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추판다님의 태도는 일종의 ‘감정의 분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은 이 논쟁을 살펴본 저를 시종일관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추판다님의 태도가 불편하였다고 해도, 이 논쟁의 책임은 결과적으로 라깡주의자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한윤형씨는, 처음부터 라깡을 옹호했던 것은 아니었던 걸로 압니다. 하지만 라깡에 대해 남다른 애정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끝까지 논쟁을 책임지시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 논쟁이 끝이 나려면. 제도 심리학계에서 왜 라깡이 소외당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깡이 여전히 의미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는 라깡의 텍스트 깊숙한 곳에서 증명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깡주의자들이 정면에서 아이추판다님과 대결했어야 했다고 봐요. 한윤형씨께서 분투하셨지만, 사실 라깡의 텍스트 안으로 깊게 들어가지는 않으신 걸로 압니다. 또한 지금 한윤형씨는 제도 심리학 외부에서 라깡이 살아남을 가능성에 대해 묻고 있는 걸로 아는데, 이는 아이추판다님등과 함께 라깡주의자들에게 들어야 할 물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떤 라깡주의자도 이에 대한 해명을 하지 않더군요. 저는 아이추판다님의 비아냥보다, 라깡주의자들의 그 무책임이 더욱 불편했습니다. 이유는, 증명되어야 하는 사람이 문학이든, 영화든, 평론의 영역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라깡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우리 인문학의 척박함을 보여주는 듯하여 좀 씁쓸하기도 하더군요.

kritiker

2008.03.22 01:11:29
*.39.252.30

여기까지 다 읽긴 했는데 내가 덧글 달 수 있는 말은 없네'ㅂ';;; 아는 게 없으니. 히히.
나중에 시간 나면 프린트해서 차근차근 다시 읽어야겠다.

pinacolada

2008.03.22 03:45:00
*.190.2.137

"비밀글입니다."

:

fjkd

2008.03.22 04:23:33
*.131.47.204

심리학이 뭐 하는 과목인지 모르니까 이해가 안되네요.
[심리학자들은 이과 졸업해서 현미경으로 뉴런 관찰하고 뇌 속 들여다보고 수술하는 사람은 아니고, 문과 졸업해서 환자 상담하고 약 처방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연구결과가 일반인이 생각하는 거하고는 달리 과학이 됐다(오랫동안 약이 잘 듣는지 분석한 자료가 쌓였다). 그런데 정신분석학 한다는 사람들 얘기 중에는 심리학 연구결과로 보면 틀린게 많다.] 이런건가요?

이상한 모자

2008.03.22 07:49:46
*.221.215.237

사실 이 문제는 지나치게 많은 논점들과 각 학문 지지자들 간의 욕망이 얽혀버려서 논의를 전혀 수습할 수 없는 지경까지 흘러 가버린 측면이 있습니다. 서구에서도 이런 비슷한 문제 가지고 거의 전쟁을 해서.. 결국 결론이 안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걍 냅둬야죠.

jiva

2008.03.22 10:26:11
*.10.214.109

논점이 확산될수록 논쟁을 매듭짓기는 힘들겠지만, 학습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넓은 지평에서 공부하고 배울 지점들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요 몇 일, 이 논쟁에 중독되어있었던 것 같네요. 즐거웠습니다. ^^

하뉴녕

2008.03.22 13:37:27
*.176.49.134

철학적 입장들에 대한 제 태도는 있는 것들은 존중해 주자는 식의, 프래그머티즘적인 태도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은 로티와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아직 하나의 입장을 바탕으로 다른 사상들을 재단할 만큼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구요. 어쨌든 덧글들 감사드리고, "그 많은 라캉주의자들은 어디서 뭐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은 저 역시 들더군요. 하긴, 인터넷에서 논쟁을 하는 것이 그리 생산성은 없는 일인만큼, 논쟁에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그리 적절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하뉴녕

2008.03.22 16: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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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라캉주의자들이 철학자들을 다 깨고 다녀서 현상학이 박살이 나고 폴 리꾀르도 미국으로 도망(?)가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0-;; 들뢰즈의 <앙띠 오이디푸스>가 각광받은 것도 그 책을 보고 '드디어 철학이 정신분석학을 쓰러 뜨렸다!'고 사람들이 반응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라캉주의자들은 들뢰즈가 사술을 써서 '이긴' 거라고 생각해서 굉장히 기분나빠하지만... 뭐 어제 술자리에서 주워들은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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