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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재론

조회 수 1154 추천 수 0 2008.03.13 16:28:36
일관성(아이추판다)  에 대한 답변. (그간의 논쟁 관련글은 아이추판다 님이 이 글에 링크해 놓았다.)


논쟁의 시작은 아이추판다 님이 1) 프로이트, 융과 라캉을 분리한 것 2) 라캉에게 대상명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것 에 대한 내 반론이다. 1)에 대해 아이추판다 님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셨지만 이제는 아예 정신분석학 자체를 거론하고 있기 때문에 재론하지 않겠다. 2)에 대해 나는 라캉의 이론이 라캉의 임상으로부터 유래했고, 그것에 대해 심리학 전공자들이 의문을 제기할 수는 있겠으나, 대상명제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덧붙여 한 덧글에선 만일 라캉의 이론이 문화비평 이론으로 옮겨 가서 활용되고 있다면, 그 경우에는 대상명제가 각각의 개별적인 문화비평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시 정신분석적 접근의 치료효과를 언급하고 있다.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다시 라캉의 이론은 대상명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특별히 정신분석학적 의료행위를 방어해야 할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자료도 없기 때문에) 논쟁 과정에서 의료행위의 효과에 대한 그의 주장에 대해 한번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마 라캉의 지지자들은 '저들'이 말하는 정신분석적 접근은 미국의 자아심리학자들이고 라캉주의자들과는 상관이 없다고 반론할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이 주장대로라면 아이추판다 님은 지금 의학의 일부분인 '심리의학'의 대상명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추판다 님 스스로 이미 심리학을 마음에 관한 학문이라 정의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신분석학의 존재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 어째서 신약개발을 금지시키고 모든 의료행위를 의사의 개인적 철학에 따라 (이 구절도 그의 편견이겠지만. 적어도 '집단적 철학'이라고는 말해줘야 할 게 아닌가.) 실시하자는 주장과 동일시되는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의 예상대로 당연히 나는 그런 주장에 반대할 것이다. 그 주장에 반대하면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들과 불일치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가? 그렇지 않다. 내 주장은 방어적인 것이다. 반면 아이추판다 님의 주장은 공세적인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예시를 보면 내가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옳지 않다.


우울증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약이 필요없다고도 보지 않는다. 라캉의 경우를 보면, 이 일파는 적어도 정신병에 대해서는 그게 어떻게 발병되는지에 대해서만 논하고 거의 손을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어떻게 정신분석학의 지지자들이 심리학을 몰아낼 수 있겠는가. 라캉은 크게 보아 인간 전체를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으로 구분하는데, 이중 정신병은 고칠 수 없다고 본다. 그가 관심있는 건 주류 심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들의 구조인 것 같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 사람들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읽는 이들이 자신의 마음의 구조를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겠구나라고 동의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론이 쉽사리 다른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 이유도 그렇게 설명할 수 있다. 아이추판다 님의 경우 이런 설명을 들으면 정신분석학을 일종의 좀 더 세련된 통속심리학(믿음-욕구 심리학)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고, 그에 대해서도 나는 (동의하지는 않으면서) 굳이 논쟁할 생각이 없으나, 거듭 얘기하는 것은 그 경우에도 라캉에게 대상 명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두번째 논제는 (논변을 지키기 위해 의도된?) 무지에서 비롯된다. "라캉이 임상적으로 의미가 없더라도 철학이나 비평을 위해 인용할 수도 있"는게 아니라, 라캉 스스로가 철학자들에 대한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을 철학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라캉을 읽는 것이다. (노파심에서 말하는데 물론 모든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라캉을 읽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비유가 부적절한 그래서다. "대상 명제가 없으니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을 방어하기 위해 너무 이상한 나라로 가 버렸다. 프린키피아와 성서를 읽지 않으면 일관성이 없다는 말도 하나마나한 말이다. 그건 마치 "나는 중국요리를 좋아해서 짜장면을 먹었어."라고 했는데 "그럼 왜 짬뽕은 안 먹어? 깐풍기는? 탕수육은?"이라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상대방의 위장을 파열시키려는 행동과 흡사하다. 그런 요구를 '일관성'에 대한 요구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왜 그의 글의 제목이 '일관성'인지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아이추판다 님이 라캉을 모르는 건 아무런 문제도 안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의 이론 자체가 성립할 수 없음을 논하면서 황우석과 비슷한 취급을 하고 있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그는 "라캉을 모르면 막장"이란 명제를 비판하면서 후에 그가 끌어들인 임상 데이터를 통해 라캉을 비판하거나, 아니면 "철학자 숫자가 얼마나 많은데 특정한 철학자를 가지고-"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 "철학은 메타-이론인데, 라캉은 대상 학문의 차원에서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메타로도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내가 끼어든 것이다. 사실 이 주장은 그 자체가 철학적인 논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점에 대해 철학적으로 논박하는 것은 (가능은 하지만) 읽는 이들에게 너무 복잡하고 생산적인 작업이 아닐 것 같았기 때문에, 명제에 반례를 제시해 보려고 노력한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이 철학적인 논점들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 때에 아이추판다 님은 더 이상 심리학 전공자의 데이터를 근거로 들이밀 수 없는 다른 영역으로 진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는 두 개의 교의 사이에서 대리전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지성세계의 지도를 정확하게 그리자는 것이다. 설령 그 지도에 그려진 상대편 국가를 무시한다 하더라도 말이다. 논증이란 것은 일개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태를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와의 논쟁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추판다 님은 지금 전 세계 철학의 절반을 점유하는 세력이 모두 언급하는, 그 중 절반은 열렬히 옹호하고 그 중 절반은 격렬히 비판하는 어떤 철학자를, 분과 학문의 차원에서 아예 소거해 버릴 수 있다고 믿는 거다. 논리적으로만 본다면 훗설의 현상학을 심리학 전공자가 임상을 통해 반증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훗설을 싫어하는 철학자라도 그런 말은 비웃는다. 물론 아이추판다 님은 훗설과 라캉의 출신성분의 차이를 언급하겠지만, 그렇다면 그 명제는 "다른 이들은 몰라도 너희 아버지는 우리 집 종이었잖니. 어서 이리 내려오렴."이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해진다. 라캉은 이미 메타가 문제가 아니라, (이 논법을 따른다면) 메타-메타-메타로 올라가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박권일

2008.03.14 02:14:21
*.254.121.177

재미있네요. 아이추판다님의 생각은 이런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이 인간의 마음(그리고 그 병리현상에 대한 탐구)에 관한 것이며 임상치료를 실시하고 있다면, 왜 그 효과를 측정하는 기준이 치료의 효과성이 아니라, 문학이론이나 문화비평이 되어야하는지 의문이이라는 것. 만일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부분집합이라면, 논리필연적으로 심리학의 규준으로도 역시 그 진리값을 판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라캉의 경우에 그 규준으로 판별불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생물학자가 화학자의 이론을 (기초지식을 공부할 경우) 명백히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는 것은 두 학문이 공유하는 규칙-가설과 실험 검증 등-이 있기 때문이거죠.


1> 임상의 효과성이 현저히 낮은데도 도태되지 않았으므로, 라캉 정신분석학이 생존하고 있는 이유를 주류과학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1-1> 따라서 라캉 정신분석은 이론도 아니다. (황우석같은 사기행각이다)

2> '라캉을 모르면 막장'이라 타박한 사람이 있다.

2-1> 라캉 정신분석을 주류과학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은 라캉이 한국에 수입된 맥락을 살펴보면 매우 낮다. 그보다는 라캉을 (속물적) 교양의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


앞의 1>, 2>, 2-1>는 사실상 같은 맥락의 이야기입니다. 1>에 대한 훌륭한 하나의 사례가 바로 2> 거든요. 그런데 아이추판다님은 2>를 반박하기 위한 근거로 1>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논증순서가 헝크러져버린 셈입니다. 게다가 1>만 주장해도 좋았을 것을, 1-1>로 또 한발 더 나가버립니다. 1>과 1-1>은 라캉 정신분석과 심리학의 관계에 대한 또다른 방대한 토론과 논증을 필요로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 간단히 말할 수 없는 주제죠. 아무튼 저를 포함해서, 두 분 토론 당사자가 1> 정도에는 동의할 수 있을거라 봅니다.

노정태

2008.03.14 23:29:05
*.162.2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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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과 정신의학, 그리고 관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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