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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 외 지음, 이종태 엮음/부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중계권을 둘러싼 갈등, 즉 스폰서 구단들의 대변자인 협회가 그 동안 실질적으로 게임방송을 일궈온 온게임넷과 MBC게임의 프로리그 독점 중계권을 인정하지 않고 중계권료 및 연단위로 갱신되는 자유로운 중계권 계약을 요구했다가 협상이 결렬되자 선수들의 개인리그 불참 불사를 운운한 사건을 보고 뭔가 정신이 얼얼했다. 마치 영화 <반칙왕>에서 주인공이 꿈에서 열심히 상대편을 때리다가 그의 마스크를 벗겨봤더니 직장 상사여서, 그 다음부터는 (현실세계에서와 마찬가지라) 쪽도 못 써보고 헤드락 걸리고 신나게 터지는 시츄에이션을 보는 느낌이랄까.


2004년도쯤에 미디어몹 블로그에 스타리그를 “하층민 소년의 로망”으로 정의했다가 열렬한 비난에 시달린 적이 있다. 심지어 같이 술먹는 친구들조차도 절반쯤은 그 정의에 반대했다. 그에야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미디어몹의 반박 리플들은 절반쯤은 내가 스타리그를 폄하하고 있다고 믿었고, 절반쯤은 내가 하층민을 경멸할 만큼 잘 사나보다라고 추측했다. 우리 세대가 갑자기 하향평준화되어 이제 나는 하층민도 아닌 것 같지만 어쨌거나 그 추측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스타리그를 매우 좋아하고 하층민을 경멸하지도 않는다. 이택광은 언젠가 조폭이 한국 소년들의 판타지인 건, 이른 나이에 아무런 배경없이 출세할 수 있다는 가능성(비록 그것이 과장되어 있을지라도) 때문이라며 그 판타지를 ‘노동계급의 판타지’라고 말했다. 잘 사는 집 아이들 중에서도 스타를 잘 하는 이들은 있었겠지만 그들 중에서 프로게이머라는 미래도 수익도 불확실한 직업을 선택한 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선 그때 내가 한 말도 이택광이 한 말과 거의 일치한다. 다만 나는 천성이 좌파가 아니라서 노동계급이란 말보다 하층민이란 말을 더 좋아할 뿐이다. 또한 ‘서민’이란 말에 숨어있는 달짝지근한 자기연민을 싫어하기도 하고. 거기엔 왠지 부유층 말고 모든 이들이 다 끼어 “나도 서민이다.”라고 주장할 것만 같다. 2002년도 서울시장 선거 티비 토론에서 김민석이 이문옥을 공박하면서 그렇게 말했듯이, 영어 유치원 확대와 같은 정책이 ‘서민적 정책’이라고 주장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하층민이란 단어를 확산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그들의 세상(결코 좋지 않은 의미에서)이 될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로망은 그런 그들의 성공 스토리이다. 그리고 하층민이란 단어가 스타리그와 결부되는 것에 많은 스타리그 팬, 혹은 팬이 아닌 사람들이 히스테리를 부렸듯이, 흔히 다른 나라에서 오히려 성공한 이의 하층민성이 과장되면서 ‘하층민 로망 신화’가 탄생하는 것과는 달리, 이 로망의 본질은 교묘하게 억압되었다. 엄재경이 주로 주조한 프로게이머들의 별명이 판타지 소설의 도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는 어느 누군가의 지적은 이런 억압의 흔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스타리그의 스크린은 완벽하게 현재를 억압한다. 그리하여 나에게도, (물론 직접 이스포츠를 취재했던 기자들이 그들의 고단하고 전근대적인 삶을 알려줌에도 상관없이) 스타리그는 ‘꿈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영역에 지극히 한국적인, 한국적인 태클이 들어와 버렸다. 최종적인 결말이 어찌 날지는 좀더 지켜봐야겠지만, 협회는 정말로 스타리그를 없애버릴 지도 모른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를 쓸 때 “일본 야구가 사라진 근미래”라는 배경은 소설의 설정에 불과했지만, 우리는 정말로 현실적인 배경에서 <우아하고 감상적인 한국 스타리그>를 쓸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협회의 망동을 ‘자본주의 논리’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들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숙련된 요리사의 특이한 메뉴로 성업하던 한 구멍가게를, 사장과 담합해서 요리사를 쫓아내고 그 특이한 메뉴를 대형 요식업체로 옮기기만 하면 큰 돈을 벌 것처럼 편리하게 생각한다. 그건 도대체 자본주의고 아니고를 떠나서 장사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스타리그가 방송사 두 개와 수백명 프로게이머를 먹여살리는 수준 이상의 큰 돈을 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스타리그는 소득없는 세대를 위한 관람료 없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스포츠는 주로 지역의 대결로 팬을 단합시켰으나, 이 세대에겐 그런 것도 없기 때문에 엄재경이 필요했다. 스갤의 반-엄재경 역시 엄재경의 틀 안에서 자라난 것이다. 실재가 완전히 억압된 이곳엔 절대군주 마틀러가 있고 광통령과 마틀러의 <성전>이 존재하며, 아이우가 아니라 푸켓을 프로토스의 성지로 만든 김택용이 있다. 그저 그 정도가 이들의 활동영역이다. 현재의 스타리그라는 것은 이스포츠 전체의 장래성과는 무관한, 방송국과 팬들이 세밀하고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온 집단적인 환상 스크린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스타리그 관계자들은 오늘은 계란을 낳은 이 거위가 내일은 황금알을 낳을 것처럼 선전해 왔고, 급기야 이 거짓말 혹은 오류를 믿은 자본가들이 그럼 그 거위를 잘라보자고 덤벼들고야 말았다.


책제목 위에 걸어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사실은 이 조그만 영역에서 현재진행중인 조그만 사건이, 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개념의 혼란 및 그로 인해 초래된 부정적인 사건들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민주노동당 당대표의 무기한 단식농성에도 아랑곳없이 집권 기간내에 체결될 것으로 보이는 한미FTA문제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어렴풋이 스타리그의 영역에 한국적 현실이 침임했음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 책을 다 읽기 전에는 감히 그것을 무엇이라 칭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의 편견을 교정하는 효과가 있다. 나 역시 방금 덮은 이 책의 내용 중 상당부분을 이전에는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럼에도 책 한권 읽자마자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저자들의 논증의 일관성이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 느꼈던 한국의 각 정파의 문제점을 나보다 훨씬 더 정밀하게 지적하고 있음을 승복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경제학자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데이터로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굳이 이념적으로 그것을 요약하자면 “반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에 가깝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일종의 허구의 개념이라고, 원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싸워왔던 개념이며 지금도 그러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한국에 훌륭한 자유주의자가 한 명(=고종석)은 있으니까 굳이 변호를 한다면, 이들이 언급하는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에 가깝다. 타인의 사상적 자유를 위해 연대투쟁해야 한다는 J. S. 밀로 대변되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이 책의 논의대상이 아니다. 혹 이들이 정치적 자유주의조차 경제적 자유주의의 하수인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념논쟁이 될 사안이고 경제학자인 그들이 이 책에서 그런 주장까지는 하고 있지는 않으니 그저 그들이 언급한 자유주의를 ‘경제적 자유주의’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면 문제는 수월하게 풀린다.


그들은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굉장히 훌륭한 경제적책이었다고 본다. 반면 김대중-노무현의 경제정책은 국민경제를 파탄내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본다. 이렇게만 얘기하면 극우파의 시각 같지만, 그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강한 노조를 옹호하고(강한 노조라는 것이 파업을 많이 하는 노조라는 건 아니고, 지금보다 조직률이 더 높은 노조를 말하는 것이긴 하다.) 참여연대의 주주자본주의를 너무 자본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논리구조로 수렴될 수 있다. 박정희는 ‘반자유주의적 반민주주의자’였기 때문에, 후자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경제정책에서는 훌륭하다. 김대중-노무현 노선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이기 때문에 후자는 평가받을 대상이지만 경제정책에서는 실패했다. 저자들은 그 실패의 원인을 민주화세력의 박정희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라는 심리적 근거로 파악한다. 참여연대의 재벌을 압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주주자본주의의 경우도 김대중-노무현 노선을 돕는 입장인데 이는 단기간의 수익을 강요하여 기업의 투자를 막고 노동유연화를 확산시키는 영미식 금융 자본주의 모델을 충실하게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저성장 저고용 현상은 이 모델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효과이다. 즉 현재의 경제상황은 '개혁의 실패'때문이 아니라 '개혁의 성공'때문이라는 것이다. 금융 자본가의 이득을 위해 재벌과 노동자들은 같이 빈곤해진다. 미국은 금융산업이 무척 발달했고 영국은 이미 선진국이었기 때문에 얘기가 좀 다를 수 있지만, 아직 투자를 통해 국민경제의 규모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 한국에는 최악의 모델이 되는 것이다.

한편 복지정책이 없는 나라에서 (수량적 유연화에 집착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은 노동자의 생존에 대한 불안감을 자극함으로써 조합이기주의를 확산시키고 오히려 짤리기 전에 하나라도 더 챙기고 나가려는 근시안적인 파업을 유발하게 된다. 또한 노동자에 대한 재교육 역시 고용불안 상황에서는 효과를 거두기 힘들어 숙련노동력 양성이 어려워진다. 저자들은 변동하는 시장상황에서는 한 명의 노동자를 상황에 따라 여러 생산라인에 배치할 수 있는 기능적 유연화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히딩크 축구 하의 한국선수들처럼 멀티플레이어로 만들면 숙련도도 높아지고 굳이 경기변동에 따라 해고해야 할 이유도 없어서 국민경제도 안정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부분에서도, 노동자 임금을 중국 이하로 낮출 수 없는 이상은 기업도 노동자도 손해가 된다. 반면 스웨덴, 핀란드, 일본 등의 모델을 보면 조직화된 노조와 그 존재를 승인하는 기업 사이에 대타협이 이루어져 고용안정과 사회복지제도가 노동력의 질을 향상시켜 성장을 견인하는 순환구조가 보이는데 이런 것이 한국 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모델이다. 이와 같은 길에서 국가는 여전히 공공성을 실현하는 역할을 떠맡아야 하며 관료제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이상의 요약이 납득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이다. 이 책은 매우 쉽게 쓰여져 있다는 미덕도 있으니까. 나도 앞으로 시간나는 대로 대담의 주체인 장하준과 정승일의 책을 찾아보는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마침 며칠전에 경제학과 다니는 친구에게서 장하준의 <개혁의 덫>을 추천받기도 했는데. 그 친구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읽었다고는 하는데, 도대체 읽은 건지....원...” 사실 이 책을 보고 있자면 대통령이 과거 자기도 종속이론 공부했지만 그게 틀리지 않았냐며 최장집 교수를 비판하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이 책에 따른다면, 박현채를 계승하는 건 최장집이 아니라 오히려 현 집권세력이니까. 그리고 한국 사회의 재벌옹호론자는 자유시장주의자이기도 하다는 슬픈 현실, 그들의 논리의 비일관성을 파고 든 것이 참여연대의 소액주주 운동이라는 현실 맥락까지도 머리 아프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노무현의 실패를 손쉽게 케릭터의 실패로 치부하려는 일부 김대중주의자들도 꼭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이 책은 민주화세력의 실패를 송호근보다도 훨씬 더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이든, 그 바깥의 민주화 세력이든 정권 한번 더 줘 보자는 어설픈 반한나라당 연대가 얼마나 몰상식한 것인지도 이 책에서 잘 알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 글이 현 시점의 스타리그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로 시작된 관계로, 그 사태의 음울한 미래를 냉소적으로 묘사하는 노동8호님의 짤방을 올리며 맺기로 한다. 사실 이 책이 국가나 재벌의 역할을 부분적으로라도 옹호하기 위해 묘사하는 금융 자본주의의 속성은, 아래 짤방에서 묘사하는 협회의 행태와 대동소이하다.





쟁가

2007.03.09 02:59:33
*.50.69.85

이 책도 대통령께서 아주 열심히 읽으셨다지요...코멘트도 날려주셨구요.
"현실인식은 탁월한데, 대안이 별로..."
그때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으로 과소평가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말이 바로 (장하준 교수와 같은)'제도학파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비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저자들도 그 얘기 전해듣고 "대통령 참 대단하다"면서 낄낄거렸다고 전해들었습니다.
곧 읽으시겠지만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도 추천합니다. <개혁의 덫>도 좋았지만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새로이 배운 게 많았어요. 듣고보니 주주자본주의랑 케스파가 참 비슷한 면이 있긴 하네요. 이 책의 내용이 정말 깊이있게 공부해볼만한 흥미로운 주제인데, 재벌 앞잡이네 아니네 실랑이만 하다 흐지부지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뉴녕

2007.03.09 13:23:19
*.46.4.35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정책방향 이쯤 짚어줬으면 실행시키는 것은 정치인 몫일텐데... 물론 대통령이 노무현이란 사실을 상기하면 "현실인식은 탁월한데, 대안이 별로..."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요. 한국의 담론 구조상 다음 대통령이 이 방향을 따라갈 일도 없을 것 같고...

정말 대단하신 철학자 대통령 각하이십니다. 모든 저서와 논문을 참여정부에 대한 사상투쟁으로 간주하고 읽으시는 것 같네요.
(그나저나 알라딘 TTB는 더럽게 실행 안되네요.)

trotzky

2007.03.10 12:34:18
*.232.157.225

프로리그 중계권과 관련해서 온겜넷의 스타 뒷담화 코너에서 엄재경 씨가 불만을 토로하던 부분을 유심히 시청했었죠.
그 때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하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등가교환의 법칙 일부- 정도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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