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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미녀들의 수다>와 자밀라

조회 수 967 추천 수 0 2007.11.21 17:09:08
미수다의 흥미는 두가지 시선이 얽히는 데에서 발생한다. 하나의 시선은 물론 외국인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들의 시선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외국인 여성들의 시선이다. 두 가지 시선의 위치는 동등하지 않다. 굳이 미수다를 구성하는 시선을 정의하자면, "외국인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외국 여성을 바라보는 한국 남성의 섹슈얼한 시선"이 될 터이다. 이것에 대한 경악은 이택광의 이 글 http://wallflower.egloos.com/1603720 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미수다의 제작진은 미수다를 교양적인 성격이 있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고급한 오락프로그램으로 여기고 있는 듯하다. 하긴 컨셉 자체가 일반적인 토크쇼와 차별화되어 있고 시사성이 있다고도 우길 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다. 나의 경우 말년병장의 신분으로 일요일 오전에 하던 이 프로그램의 초반부 몇화를 보고 나왔는데, 그런 의미에선 꽤나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저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바는 "당신이 외국인 여자라고 쳐보고, 한국사회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을지 써보세요. 되도록 평이하게."라는 문제를 내주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이었지만, 그 시사성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시사적인 시선과 섹슈얼한 시선 사이에서 어떻게든 균형을 잡아보려는 제작진과 패널들의 아둥바둥이 흥미진진했던 것이다.


당연히 전역을 한 후로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근 자밀라라는 이 프로그램의 뉴페이스가 검색어 순위 1위에 등극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냥 그런갑다 하고 다시 한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도미니크라는 출연자가 그 현상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싸이에 올렸다고 한다. 보도의 대강을 보니 윈터라는 출연자가 증언한 한국 사회의 어떤 문제는 묻혀버리고 자밀라의 섹시함에만 시선이 쏠리는 것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어느 땐가는 출연진들이 연예인화되어서 더 이상 한국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기를 꺼리는 것이 걱정이라고 제작진이 불평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당연한 얘기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나 보다. 여기에 대해 네티즌들이 반발하고 윈터가 다시 한번 도미니크에 대해 지지를 표명한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인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면, 이 두사람이 이렇게까지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 자밀라에게로 집중되어 버린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흥미로운 것은 도미니크의 불평 속에 들어있는 자의식이다. 그녀들은 이런 컨셉 속에서도 자신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무언가를 발언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그런 자의식을 드러내기에 적합하다고 보진 않지만, 여하간 그런 종류의 자의식은 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남성들을 불편하게 할 것은 당연한 사실. 도미니크의 발언을 보도한 네이버 덧글을 잠깐 동안 눈팅하니 수많은 남성들의 성토가 있었다. 내 눈에 띈 성토의 논거(?)는 1) 그저 오락프로그램인데 뭘 그러냐. 2) 자밀라를 '에로틱 댄서'라고 표현하다니, 니가 더 성차별적이다. 3) 도미니크씨, 지금 자밀라 질투하는 거지 말입니다. 다들 너무나 익숙하고 어디서 본듯하다. 과연 한국적인 반응이다.


3)은 상대방이 무슨 감정상태에 있는지 전혀 상상하지를 못하니 자기 식대로 사태를 따져본 반응이고, 2)도 어떤 의미에선 그렇다. 에로틱은 프로그램에 있는 거지 도미니크의 잘못된 용법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반응에 담긴 정서들은 결국엔 1)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1)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가령 100년동안 클래식만 듣고 만족할 이가 아니라면, 특정한 대중문화 텍스트의 저급성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도 없다는 걸까? <디워>논란에서 보듯, 종종 사람들은 그런 것을 의도하는 것 같다. "오락영화잖아." 이 한마디면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 것처럼. 이 말만 듣자면 우리는 우리의 감성이 흘러가는 방향에 어떤 비판적 논변이 끼어드는 것도 허용치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야말로 서양식 이성중심주의의 반대편 극단이다. 서양인들이 철학책에서 공갈처럼 서술하는 디스토피아. 하지만 실제로 한국이 그런 곳일수야 없다. 사람이 그렇게 살기는 불가능하다. 실제론 아무리 한국남성들이라 해도, 여자들 앞에서 야동을 보면서 "왜? 다 보고 싶어하는 거니까 네가 싫어하는게 잘못이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나도 야동을 봤는데, 그럼 나도 쓰레기라는 거야?" 이렇게는 말하지 않는다. 다른 많은 문제에 대해선 멍청하게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만. 내가 군대에서 미수다를 재미있게 봤다는 것과 미수다가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왜 양립할 수 없는 걸까? '보면서도 욕하는 것들이 제일 위선적이야.' 오히려 그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야동의 사례에서도 보듯 그들도 실천적으로 자신들의 판단을 극한으로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사실 감성은 우리가 판단의 심급으로 삼을 정도로 끝없이 샘솟는 마법의 우물이 아니다. "그때그때 꼴리는 음식을 먹자."고 판단의 기준을 잡는다면, 당신은 식사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욕망이 자연스럽게 샘솟지 않는 걸 깨닫고 죽은 자식 ** 만지듯 욕망을 일깨우느라 골치를 썩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앞서 말한 두 가지 시선의 겹침으로 이루어져있던 허위의식이, 자밀라의 위치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나도 이 글을 쓰기 위해 돌아다니는 동영상을 찾아보긴 했는데, 입안의 혀처럼 구는 이 백인여성은 더 이상 미수다가 토크쇼로 기능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자밀라의 거짓말 논란이 일었다가 별 문제가 안 되고 사그라들었는데, 토크쇼의 입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자밀라의 거짓말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이상 토크쇼와 양립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말하자면 자밀라는 두 가지 시선의 아슬아슬한 공조가 파괴될 수밖에 없는 지점에 서서 두 개의 줄을 마음껏 끌어당긴다. 다른 출연자들이 불만을 지니는 것도 당연하다. 그들로서는 적어도 수세적 균형 정도는 맞추고 있던 프로그램의 공익성이 한번에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테니까. 그것이 무너지는 것은 단지 윤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판이 깨지는 정국이라는 깨달음이 엄습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지금껏 미수다가 그렇게 재미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미수다에서 어떤 욕망을 충족시키겠다고 기대하고 자리에 앉지만, 매번 그것을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던 거다. 열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열광시키기도 힘들었던 것. 그렇다면 신음료와 단음료를 섞어서 주기가 힘들었던 방송사가 제공한 애초부터 두 개의 맛이 섞여있는 (물론 단맛에 치우쳐서) 인스턴트 튜브가 자밀라인 셈이다. 그렇게 그녀는 환상의 정점에 서서 환상을 파괴한다. 나는 그저 한국 남성들이 어느 순간에 자밀라가 그들의 환상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는지나 지켜봐야겠다. 깨닫기나 할지도 의문이지만.
 

kritiker

2007.11.23 01:40:51
*.232.120.5

"비밀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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