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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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교보문고에서 사서, (출판사에서 몇권 안 주셨단다.) 사인까지 해서 준 책이라서, 홍보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애석하게도 서평으로 쓸만한 감상이 없다. 책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책은 꽤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끼어들어 얘기를 할 지점이 안 보이는 것이다.
뭔가 얘깃거리가 있으면 알라딘 서평란에도 올려보고, 혹시나 5만원 적립금을 타게 되면 그 돈으로 백종현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순수이성비판이나 사야겠다... 뭐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이건 뭐 당췌 얘기가 안 나온다.
첫째는 내가 그림에 관심이 없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안 본건 물론이고, 최근 내가 본 '그림' 관련 책이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이니 이것과 엮어서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라도 봤으면 후안무치하게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몇 마디 비교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책에서도 언급된 웬디 수녀의 '인상비평'은 동생 책장에 꽂혀 있는데도 안 봤다.
둘째는 이 책이 훌륭한 교양도서이되 입문서나 개론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문서나 개론서일 경우, 나같은 아마추어라도 그것이 독자에게 미칠 긍정적인 효과가 무엇인지를 계산하여 평가할 잣대를 대략적으로나마 수립할 수 있다. 가령 전달하려는 지식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 그 지식을 쉽게 풀어쓰는 데 얼마나 성공하였는가가 일차적인 평가의 기준이 되겠다. 그후엔 이 책이 '다른' 책을 찾아 보고 싶은 욕망을 주어 지성세계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모든 지식을 섭렵한 '선생'임을 과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지를 나누어 전자 쪽에 힘을 실어줄 수가 있겠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참고문헌이 달려있는지를 보고 독자에게 얼마나 친절한지를 판단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잣대는 이 책에 적용될 수 없다. 저자는 서구의 특정한 시각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근대'가 인상파와 라파엘 전파의 그림 속에 어떻게 맺혀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작업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예 내 능력밖의 일이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사소한 참견은 가능하다. 참견 하나는 저자가 평균적인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계급'이란 단어를 훨씬 더 자주 사용하는데, 독자들은 그 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어감에서 '계급'은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인 텍스트 안에 갇혀 있다. 이 단어가 그 바깥으로 나올 경우,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일종의 범주오류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령 마네가 계급을 보여주고 있다는 서술을 보며, 이 말의 의미를 일상언어 속에 복원시키는 작업이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참견 둘은 저자가 대중교양도서를 쓰기 위해 문체의 측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구조도 비교적 쉽고, 약간 어려워질라치면 몇 문장을 거치면서 논리구조를 차근히 짚어주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보다도 더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단어에서도, 가령 '플라톤 할아버지'나 '마르크스 할아버지' 따위의 표현은 나름대로 구어체를 의도한 것인데, 솔직히 이에 대한 내 반응은 'ㅋㅋㅋ'였다. (이때 'ㅋㅋㅋ'는 대략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아니 안 어울리시게 이런 짓을." 또 하나는 "어라, 이거 의외로 잘 어울리시잖아?" 어느 쪽인지는 굳이 공개하지 않는다.) 언젠가 KDY는 저자의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에 대한 '인상비평'에서 그 문체가 김영민 문체와 진중권 문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주장했다. 같이 술먹다가 책펴보고 나온 말이라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나름대로 선견지명일 수가 있겠다.
더 이상은 참견할 수 있는게 없고, 월급 타면 책 한권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