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노지아는 2002년 여중생 장갑차 사건 추모 촛불시위의 주역에 해당하는 그룹의 맴버였다. 말하자면 '앙마'의 최측근(?) 쯤 되었던 위인이며, 그 시기엔 그 그룹에서 가장 어린 친구였다. 2002년의 촛불시위를 통해 한때 자율주의자가 되었던 - 그를 처음 만났을 무렵 지겹게 들었던 그 자율주의에 대한 얘기들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그는 이제는 한국 자율주의자들의 대부 조정환의 촛불시위 분석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다.
노지아도 지적했듯 조정환이 대부분의 촛불뽕보다 우월한 것은 2002년 촛불이 2008년 촛불을 분석하기 위한 중요한 사건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촛불을 빠는 내용으로 그가 혼자서 단행본을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율주의라는 이론적 기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블로그에서 제 직관으로 내뱉는 뻘소리만으로 한 권의 책을 쓰기란 어렵다.) 기본적으로는 촛불의 역사성을 알고 있기 때문인 거다.
하지만 조정환의 촛불이 지금의 촛불뽕들은 아예 망각의 심연으로 흘려보낸 2002년 촛불을 '기원'으로 파악한다면, 노지아는 그것을 '단절' 내지 '변질'로 파악한다. 문제는 그 단절 혹은 변질이 그의 생각에 따르면 2008년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2004년에 있었던 일이라는 거다. 망각 자체가 망각된 상태에서 2008년의 촛불이 탄생했던 셈이다.
좀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이 변화의 키워드는 지금의 내 수준에서는 '노빠'라는 단어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2000년 이후의 '새로움'을 외쳤던 여러 갈래의 운동들이 2002년 이후에는 '노무현'이라는 기호를 진보적으로 수사하는데 소모되었음은 나도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안티조선 운동이 그렇게 되는 꼴을 보았기 때문이다. 노빠들은 그 때의 조류에서 자기들이 취하고 싶은 것들만 취하고 반복한 후 이제 와서는 자기들이 그것을 모두 만들었다고 말한다. 자기가 이전에 집어넣은 것을 다시 끄집어 낸 후 여기 원래 이게 있었다고 주장하는 꼴이다.
나는 "내가 가장 어리니 이 운동은 내가 기록하는 대로 남게 될 거다."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서 스스로 실행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2002년 촛불 주도자들 중 최연소였던 노지아는 2008년 촛불을 통해서야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노지아는 사시공부의 세계로 가버렸으니 나처럼 글로서 과거를 정리할 수도 없다. 하지만 2000년대 초의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노빠들에게 정ㅋ벅ㅋ당한 후 노빠적인 방식으로 반복되는 문제는 특정한 운동을 넘어서 있는 것이니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분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와는 별개로 자율주의라는 이론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나와 노지아의 능력 바깥의 일인데, 조정환이 자신의 책에서 직접 이택광을 언급하면서 비판을 했으니 차제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질문이 있는데요. 링크가 걸리지 않아 정체도 실체도 알 수 없는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이유는 뭐지요? 요번 건은 많이 욱하신 것 같은데요. 제 경우에는 아이디도 성의없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사람들과는 타이핑을 섞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서 좀 궁금하네요. ㅎㅎ
아 그리고요. 미디어스에 올린 글에서 '적극적으로 대안교육을 찾으려는 이들'이라고 하신 부분은 지나치게 포괄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사람들의 대다수가 님이 말한 욕망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이들의 스펙트럼은 너무 넓어서 일반화시키기 힘든 점이 있어요. 불과 이삼년 전만해도 아이의 행복과 자유와 독립적 개인의 삶을 이야기하던 배우자가 아이의 성적 두세자리 숫자 때문에 연중 꽤 많은 나날의 집안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다면, 더군다나 그런 변화와 집안 분위기와 아이의 상처받는 마음을 두고 보지 못해서 배우자의 예전 교육철학부터 줄줄이 논의를 해도 결국에는 심각한 싸움으로 종결되는 나날이 계속된다면, 결국에는 대안교육을 생각하고 찾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좀 간단히 말하자면 욕망차원이 아니라 동물행동학에서 말하는 전략으로 대안교육을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단 말입니다.
하긴 저도 포털의 덧글을 한국 사회의 실체적인 무의식이라고 생각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 감지하기 위해 가끔 살펴보는데요... 볼때마다 무섭다는
제가 말한 사례는 그렇게 드문 사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한국사회라는 배경이 아니어도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 쪽의 세상은 지옥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자나요. 저는 대안교육이나 기러기 아빠 같은 경우에 교육을 빙자한 점수 위주의 막장 훈련사육 때문에 생겨나는 무지막지한 가정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한 갈등회피전략이라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욕망이라는 틀은 제가 무식해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잘 모르는데요. 일단 아이를 따라간 기러기 엄마들이 쓴 글이나 인터뷰 등에서 읽혀지는 바 그리고 일반 초등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때는 아이의 성적 때문에 끊임없는 자기분열과 가정내 갈등에 시달리던 엄마들이 대안교육을 선택한 후에 자신의 마음과 가정이 얼마나 평화로와 졌는지 고백하는 사례들이 많아요. 욕망을 자극할 기제들이 약화되거나 무력화되거나 무의미해지면서 갈등도 사라지게 되는 거죠. 그래서 기러기가족은 가족 모두가 지옥에서 함께 살 것인가, 아니면 단 한 명이 연옥에 남고 나머지는 지옥에서 벗어날 것인가라는 갈등회피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렇게 보면 기러기가족과 마찬가지로 대안학교의 경우 욕망의 단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도 대안교육에 별 기대도 없고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경제력도 없지만 일단 집안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라도 가까운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어하는 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