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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촛불시위에서의 폭력, 비폭력 논쟁

조회 수 829 추천 수 0 2009.05.05 18:23:58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 실린 내 원고는 서동진이 쓴 머릿말에서 폭력-비폭력 프레임에 대한 비판으로 요약되었다. 내 글만 보고 생각했을 때는 이것은 적절한 요약이 아닐 수도 있다. 사실 내 원고는 제대로 설명은 못 했지만 이런저런 떡밥들은 많이 뿌려놓은 원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원고를 하나의 줄거리 안에서 설명해야 하는 편집주간의 입장에서 그런 식의 요약은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은 없는데, 여하간 그러다보니 내 글이 마치 폭력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촛불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읽힌 구석이 있다.


글 말미에 폭력시위와 비폭력시위를 황금과 화폐로 비유를 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읽히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읽어보면 내가 의구심을 제기했던 대상은 오히려 "폭력시위를 했다면 촛불시위가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촛불시위 강경파나 운동권들이다. 폭력/비폭력 논쟁의 허망함이란 건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에 굴복해서 폭력을 안 썼기 때문에 허망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허망한 것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 자체가 허망한 것이었다는 거다. 사실 폭력은 우리 쪽에서 쓰고 싶다고 해서 쓰는게 아니라 진압자의 대응 정도나 시위의 목표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오기도 하고 안 나오기도 하는 것일 게다. (선제적 폭력이라는게 물론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걸 진심으로 원한 이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으니 편의상 생략한다.) 경찰의 저지선을 피해가는 게릴라 시위를 찬탄한 촛불시위에서 어떻게 폭력이 나오겠는가. 경찰이 도심의 시위대를 정면으로 덮친게 아니라 명박산성을 쌓아버린 시위에서 어떻게 폭력이 나오겠는가. 반드시 지켜야 할 장소나 되찾아야 할 장소가 있을 때 공권력과 시위대는 물리적으로 충돌하기 쉽다. (가령 노동자 파업을 하면 일터를 점거해야 한다.) 폭력이 있었으면 이길 수 있었으리라는 주장은 그래서 허망하다. 하나마나한 가정이기 때문이다.


시사in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나는 이런 얘기를 했는데, 결국 촛불시위 1주년을 맞은 내 발언은 "촛불시위가 비폭력 프레임에 갇혀서 유감"이라는 식으로 정리되어 나왔다. 이건 나 자신의 게으름에도 책임이 있다. 기자가 이메일로 몇 줄 써서 보내달라고 했을 때 보냈어야 했는데. 그날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 이 작은 에피소드에서 또 한번 확인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푸념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이택광의 촛불 비평이다.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460 이택광은 폭력을 사용한다고 해서 촛불시위가 정치성을 획득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예측을 이론적으로, 그리고 사례를  통해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이택광의 촛불분석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원고 이후에도 점점 더 세련되어 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어설픈 직관을 훨씬 더 세밀하게 풀어낸 그의 글에 경의를 표한다. 하나의 사회에 인문학자가 필요한 이유를 지금 촛불정국에서의 이택광이 보여주고 있다.

바람과나무

2009.05.06 06:29:27
*.162.38.2

한윤형님의 글은 하나의 사회에 20대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고 계시는걸요
건필하시길 ^^

시사IN 기자

2009.05.10 04:17:10
*.254.124.28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09.05.10 12:47:13
*.49.65.16

ㅎㅎㅎ 아뇨. 제가 더 죄송스럽죠. 그땐 좀 정신이 없어서. ㅋㅋㅋ 전투일지는 재미있다고 하긴 하더군요. 세일링 포인트가 애매해서 그렇지 흑흑. 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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