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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가족 호칭과 한국 민족주의

조회 수 2057 추천 수 0 2007.06.12 17:46:46
 

어지간한 사람은 가족처럼 호명하는 한국인의 관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가령 나의 경우는 자신들이 훌륭한 일을 한다고 굳게 믿는 일군의 대학생들이 ‘미선이, 효순이’를 호출할 때 특히 그랬다. 미군 장갑차 사고의 희생자들은 나는 물론이고 그네들과도 일면식도 없는 관계이니, 함부로 말을 놓을 처지가 아니라고 나는 느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그네들이 그들의 여동생인 것처럼, 민족의 딸인 것처럼 마음껏 호출했다. 그러나 그러한 호명은 오히려 널리 받아들여지는 듯했고,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듯 했다.



연상의 남자들을 ‘오빠’로 호칭하는 관습(?)은 ‘미녀들의 수다’에 등장하는 한 외국 여성마저도 질색을 할 정도로, 어떤 이들에겐 불편하다. 그 호칭이 뭔가 미심쩍은 이유는 너무 많은 맥락에서 쓰일 수 있고, 따라서 종종 끈적끈적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일 것이다. 남자들이 그것을 바라는 것도 미심쩍고, 여자들이 거기에 편승해서 무엇을 이득보려는 건지도 미심쩍다. 그렇다고 90년대 초반 학번들까지 그랬던 것처럼 일률적으로 ‘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미 대학사회에선 꽤 고학번인 나에게조차 식상하게 들린다. 한 명의 예비역 남성으로써 스스로를 성찰할 때, 여자 후배들이 ‘오빠’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느냐고 물으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고 보니 먼 옛날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비교적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 두엇에게 오빠라고 불러달라고 요구한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만일 ‘오빠’ 호칭 관습이 사라진다 해도 내가 그렇게까지 슬퍼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반면 연상의 여자들을 ‘누나’로 호칭하는 관습(?)이 사라진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선 꽤 난감해 할 것이다. 요새는 옛날처럼 여기저기 다니면서 술을 먹지는 않기 때문에, (술을 많이 먹는다 해도, 먹는 맴버는 한정되어 있다.) 조금 덜하지만, 나는 주로 4살 연상 이후의 여성들은 모두 ‘누나’로 취급했던 것 같다. (3살 연상까지는 맞먹었다.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를테면 누나라는 호칭 속에는 상대방의 연령적 우위를 다소 인정하면서도 은근슬쩍 눙치고 개기면서 까불까불하는 중이라는 친근감이 배어 있었는데, 물론 이는 친동생을 포함해서 남동생을 자처하는 남성들의 오랜 악습 중 하나다. 하지만 나는 이 짓이 너무 재미있어서 안 하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달콤한 악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살면서 ‘가족처럼 호명하는 한국인의 관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해봤자, 아무것도 해결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걸 나 자신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무례함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제 식민지 시기 새로 읽기(연세국학총서 93) 상세보기
박노자 지음 | 혜안 펴냄
일제 식민지 시기를 재조명한 책. 한국학의 세계화 사업단이 주관한 국제학술대회의 성과물을 엮은 것으로, 일제 식민지 시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였다. 분야별로 역사학, 문학, 사회학, 교육학, 여성학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하여 학제간 협동 연구의 틀을 갖추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기하고 일제 시기를 재조명하며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하였다. [양장본]




가족 호칭에 대한 생각은 가볍게 이 정도에서 머물러 있었는데, 최근 “예배당․오누이․죄 -한국 근대문학과 기독교-”라는 논문을 읽고 좀더 생각이 확장되었다. (연세국학총서93권으로 나온 <일제 식민지 시기 새로 읽기>에 수록된 논문이다.) 전체 주제와는 상관없이, 예배당에서 오누이의 개념이 배태되었다고 한 서술에 흥미를 느꼈다. 그것은 내가 보기엔 한국 민족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발달했는지에 대한 서술의 단초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근대 민족주의를 말할 때는 신분제의 타파를 가장 큰 요소로 본다. 허구적으로나마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는 의식이 있어야, 공동체의 구성이 완료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 국가의 경우 신 앞에서의 평등이란 개념과 종교적 동질성이 공동체의 형성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을 정점에 세우고 만들려고 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종교적 동질성을 통한 일본민족 국가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그렇기 때문에 신분제가 타파된 갑오개혁 이후에야, 좀 더 가깝게는 일제강점기 이후에야 민족을 논할 수 있다는 임지현 류 탈민족주의자들의 시각도 있고, 신용하처럼 ‘전근대 민족’이란 개념을 붙들고 한국에선 사실상 그것이 그대로 근대민족으로 옮겨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은 양반과 평민을 양인으로 대우하는 양천제 국가였기 때문에 사실상 민족국가와 다를 바 없었다는 주장은 이영훈에 의해 간단히 반박된다. 조선초기에 천민의 숫자는 무려 인구의 1/3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의 경우 다른 조건들에 비해 근대 민족이 태동하기 전에 비교적 동질성이 큰 집단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인 것 같다. 1919년 3.1운동 때는 이미 ‘거룩한 단군의 자손인 우리들’로 스스로를 호명하고 있기 때문에 -신분이나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를 ‘단군의 자손’으로 호명한다는 것은 가장 뚜렷한 민족주의의 증표다.- 아마 박노자의 생각처럼 19세기 말 정도부터 근대 민족주의로의 변환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그 통합의 방식이 무엇이었냐는 거다. ‘거룩한 단군의 자손’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레토릭이고, 개화기에서 일제시기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그 통합이 일어난 방식은 “기독교를 통한 가족의 확장”이 아니었던가 싶다. 말하자면 한국에는 사람을 묶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하나는 전통적인 방식인 가족이고 (양반들에겐 문중이라는, 더 확장된 형태의 가족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급속하게 늘어난 교회다. 교회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가족 밖의 사람들을 공경의 마음으로 대하게 될 때, 그들은 그 사람들을 마치 가족처럼 호칭하게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천주교에서도 신부는 ‘아버지’이고 신도들은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르니까. 성당이든 교회이든 오누이는 거기서 태동했던 거다. 서양인들은 물론 서로를 이름으로 호칭하겠지만, 그것은 자유주의나 개인주의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민족국가를 위한 민족주의를 만들어야 했던 당시 식민지 조선의 당위가 만들어낸 특수성이라 이해할 수 있다.



일본 역시 그랬지만, 앞서 말했듯 일본은 먼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가 탄생했고, 그 국가가 주도하여 일종의 종교적 정체성을 주조해냈다. 식민지 조선은 국가를 가지지 못했고, 대일본제국에 맞서는 개인적인 방책으로는 다시 교회나 가족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 말 한국인들이 가장 악독했다고 기억하는 통치가 (조선어 말살을 제외하고)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이라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신사참배는 기독교를 타격하는 것이고, 창씨개명은 문중을 타격하는 것이니까. 일본이 200개의 지방정권으로 구별될 수 있다면, 조선은 200개의 성씨로 구별될 수 있다던 그 문중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신사참배는 성공했지만, 창씨개명은 실패했다는 것이다. 창씨개명이란 행정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일제가 시키는 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하던 효과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조선인의 이름이 완전히 일본인과 같아지는 것은 총독부 경찰들마저도 부담스러워 했다. 그래가지고선 조선인과 일본인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어서 관리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문중들은 문중회의를 통해 의논해 하나의 성씨를 정해서 집단적으로 창씨개명을 했는데, 이는 창씨개명의 의도 자체를 분쇄하는 일이었다.



여하간 한국에서 가장 끈질긴 것은 가족이다. 그리고 가족 이외의 사람들에게 무심하던 한국인들에게 그나마 가족 호칭을 전파해 준 것은 기독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동질성은 불완전하다. 공통의 정체성이 아니라, 가족이 확장된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 친해질 건덕지가 있으면 가족처럼 대해준다는 것이지 공동체의 성원에 대한 존중은 아니니까. 그리고 근대의 한국인들이 예배당에서 신분에 관계없이 오누이가 되면서 느꼈듯이, 가족 호칭의 관계가 신분제와 비교해서는 ‘평등’하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과연 절대적인 기준에서 한국의 가족관계가 얼마나 인간을 존중하는 관계인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기 때문에. 그러므로 많은 평자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한국에서 끊임없이 민족주의가 발흥하는 이유는 아직 민족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P.S 민족이 체험되지 못했다는 말은 남북통일이 필요하다는 얘기와는 또 다른 문맥이다. 가령 나같은 공화주의자들은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동질적인 정체성을 갖게 된다면 민족은 간단하게 형성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논의는 지나치게 성글다. 통일이 된다해도, 지금처럼 가족주의와 '타인은 못 믿어-'식의 파편화가 만연한 풍조에서 남북한인들은 민족적 통합성을 체험하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Glowing Petal

2007.06.12 18:02:12
*.131.147.237

잘 읽고 갑니다. ^^ 많은 사람들이 가볍게나마 조금씩은 생각해보았을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 친척간의 호칭도 복잡하지만 사실은 가족간의, 그것도 유독 윗 형제에 대한 호칭이 참 복잡하다면 복잡하지요. 부르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서도 다르고, 불리는 대상의 성별에 따라서도 다르고... 유독 이 사항만 그런만큼 도대체 이게 왜 이래야하나, 어릴적 친구들끼리도 종종 수다떨며 나누었던 이야기네요~ 그런데 이런 호명이 친형제들 뿐만 아니라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쓰인다는게 또 현대 우리 사회의 독특한 점인데..... 그것을 민족주의와 연관시켜서 생각해보는 시점을 접한건 이번이 처음인것 같습니다; ^ㅂ^ 가족간의 호칭을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까지 적용시켜 누구나가 오누이일 수 있게 된다는 의의가 있는 한편, 그 호칭 자체가 과연 평등한 것일까하는 의문이 남는다...... 인상적이기도 하고 또 어느정도 공감이 가는 관점이네요.^^

하뉴녕

2007.06.13 00:12:20
*.176.49.134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상한 모자

2007.06.12 19:06:28
*.136.140.229

프로레슬링에서는 헐크 호건이 "브라덜~" 이라고 하더군여.

하뉴녕

2007.06.13 00:12:29
*.176.49.134

워리어가 그립다...

kritiker

2007.06.13 00:19:47
*.238.59.204

브라더-*

하뉴녕

2007.06.13 15:40:13
*.176.49.134

그대는 무슨 답을 원하는고?

안드레아

2007.06.13 14:02:23
*.176.44.54

우연히 검색을 통해 들어왔는데 좋은 글 많이 읽었습니다.
오빠-여동생, 누나-남동생에 대한 분석과 지적에 특히 공감합니다.그리고 저는 '누나'라며 까불까불 눙치는 '남동생'들 '뒤치닥거리'에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남동생'들의 까불까불 눙치는~,것이 공적 영역에서도 '누나'의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읽혀졌었거든요. 연령주의가 남-녀관계에서는 달리 작용되는 것 같습니다.

하뉴녕

2007.06.13 15:40:03
*.176.49.134

넵 종종 들르세요 :)

김대영

2007.06.14 09:15:46
*.138.150.124

"오빠~오빠~~" 내 언제든 달려가리!

하뉴녕

2007.06.14 12:06:51
*.46.105.47

왜 그러십니까, 형님!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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