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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영도의 장점과 단점

조회 수 870 추천 수 0 2007.06.05 21:42:19
 

파울로 코엘류의 소설이 ‘철학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 단어에 대해 별로 기대할 것도 없지만, 여하간 ‘철학적’이라는 말에는 꽤나 넓은 범위의 사태가 포함된다. 그래도 거칠게나마 그 사태를 구획해본다면 논증-철학적이다, 혹은 사변-철학적이다, 또는 세계관-철학적이다 따위의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영도의 소설을 굳이 ‘철학적’인 것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그 때 ‘철학’의 의미는 세계관-철학에 가까울 것이다. <드래곤 라자>나 <눈물을 마시는 새> 등에서 그는 멋들어진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또 그 세계에 대한 세계관을 설파할 수 있는 저자의 역량을 과시한 바 있다.


문제는 그가 스스로 사변-철학을 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발생한다. <퓨처워커>의 후반부의 무기력함이나,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가령 데카르트의 코기토 명제를 비웃을 때 오히려 독자가 느끼게 되는 난감함을 생각해 보라. 사변하는 능력은 세계관을 구성하는 능력과 차이가 있고, 위트를 과시하는 능력과도 일정한 거리가 있다. 그가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독설은 위트와 궤변의 혼합물이지, 사변의 결과물은 아니다.


판타스틱 2호에 실린 이영도의 SF 단편 <순간이동의 의미에 관하여>의 경우 이영도의 장점보다는 단점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한다. 작중인물들이 말하는 ‘순간이동의 의미’를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고, 작가 본인이 숨겨진 답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시되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영도에게 당신의 장점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그쪽에 치중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의 소설가적 자의식을 구성하는 묘한 형태의 냉소주의는 분명 그 안에 "나도 사변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포함하고 있을 것 같으니까. 대개 장점과 단점은 분리가 불가능하고, 단점을 깨려다가는 장점까지 깨기 마련이니까. 또한 그래봤자 이영도의 소설을 읽고 "에이, 이건 이상한 생각이잖아-"라고 공박할 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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