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참여정부가 민주화를 완성시켰다는 견해가 있다. 한나라당 개혁파와 중앙일보 등에서 승인한 견해인 것 같은데, 이 말의 속뜻은 ‘민주화는 완성되었으니 이제 경제문제만 생각하자.’쯤 되겠다. 꽤나 중립적인 평자들도 이 판단에 동의하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87년 이후 직선제가 부활했지만 직선제만으로 민주주의를 논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후 우리 국민들은 군사독재 세력의 정치참여 농도를 두고 민주화 정도를 가늠해 왔다. 가령 노태우 정권은 75%, 김영삼 정부는 50%, 김대중 정부는 25%,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의 독재세력 농도는 0%이므로 민주주의의 완성을 논할 수 있다. 이때 말하는 민주주의의 완성은 다름이 아니라 에누리없는 민주화 세력의 승리를 의미한다. 이런 논법은 실제의 민주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다른 논법도 있다. 많은 노빠들은 대통령이 하고 싶은 일을 맘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좀더 정제된 언어로 말하면 다른 권력기관들이 종종 대통령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이유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도 민주주의의 정도를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는 된다. 권력의 분산과 통제는 대의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정신을 적실하게 요약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자기 맘대로 못했다고 해도 (과연?) 민주주의는 전진하지 않았을 수 있다. (한편 그 자기 맘대로 못한다는 대통령은 사면권 등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은 마음껏 쓰면서 임기 말에는 ‘사면권을 헌법으로 제한하자.’는 제의를 할만큼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국민들의 의견이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는가, 이것을 척도로 민주주의를 논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하려면 중앙정부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행정이나 경찰 업무 등에서도 지역시민들의 견해가 반영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시도를 하기는커녕 중앙정부의 정책에서도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시민의 의사를 수렴해서 정책을 결정하기 보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밀어붙이는 식으로 정치를 해왔다. 지지자의 의사를 위배한 그들의 정치는 부동층을 양산했다. 그야말로 라틴 아메리카식 ‘위임 민주주의’의 극단을 보여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의 민주주의 수준은 국민의 정부 때보다도 못 하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민주화의 완성자이기는 커녕 민주화 후퇴세력이라고 불려야 마땅하다.
여기서 잠깐, 다수결과 민주적 의사결정을 혼용하는 분들을 위해 부언해야겠다. 참여정부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로 우리는 한미 FTA를 논할 수 있을 텐데, 이 경우 노빠들은 “많은 사람들이 한미 FTA를 지지했는데 뭔 소리냐.”고 대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정책의 반대자들이 어떤 대접을 받느냐를 두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한 나라가 얼마나 자유주의적인 적인지를 평가하려면 주류 사상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되는 것과 유사하다.
고종석이었던가? 어느 글에서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사상의 자유를 누린 건 심지어 왕정 시대나 히틀러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고. 가령 노빠들은 자기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지껄여도 서프라이즈에서 전혀 삭제되지 않는데, 왜 니들은 삭제의 폭력을 운운하느냐고 대꾸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정책의 찬성자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건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한미 FTA의 반대자들이 정부로부터 받았던 대접을 환기시키며 민주주의의 후퇴를 말하는 거다.
한미 FTA의 경우 협상 타결 전에 찬성 지지율은 47%, 반대 지지율은 41% 정도였다. 반대세력이 이 정도 많으면 각계각층의 요구조건을 조율하는 과정과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의사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그것을 생략했고, 반대자들의 시위를 탄압했으며, 시시껄렁한 찬성 광고는 방송 3사에 융단폭격식으로 때리면서 농민들이 나락을 모아 만든 반대 광고의 방영은 금지했다. 이보다 반대자들을 무시하는 방법도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것은 정권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무려 40%에 달하던 반대자는 한미 FTA 타결 이후 오히려 10% 가량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비민주적인 의사 결정 방식에 반감을 느끼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식으로 해야 뭔가 ‘과감하게 일을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반대자를 무시하는 리더십(?)에 박수를 보내는 의식은 이명박이나 노무현 류의 정치인의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정부와 시민들이 이토록 비민주적인 ‘짜고 치는 고스톱’을 치고 자빠진 사회에서 ‘민주화 완성’을 논하다니, 간이 배밖에 나왔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2. 민주주의 정체의 운용이나 경제정책의 향배를 보면, 오히려 중남아메리카에서는 그 지역 고유의 '위임민주주의' 체제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이 감지되기도 하는데 오히려 남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건 '중남미화' 라고 하기도 그렇고 '남한화' 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해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