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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뉴라이트든 뉴레프트든 이념운동도 흥망성쇠를 겪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파의 본보기가 되겠다던 그룹이 2004년 태동한 지 몇년이 지나지 않아 쪼그라든 모습은 보기 딱하다. 또 그렇게 된 이유가 시대의 변화와 같은 객관적 요인보다는 리더십 부족과 분열 등 주체적 요인이 더 크기 때문에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우파 진영 입장에서 씁쓸한 것은 뉴라이트를 대체하거나 뉴라이트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우파 이념운동의 동력이 정권 재창출은커녕 5년 정권을 지탱하기조차 힘겨운 듯 보인다. 교보문고의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보면 좌파 서적뿐이다. '진보집권 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는 국내 좌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는 외국 좌파계열 책들이다. 지적(知的) 싸움의 결과는 현실 정치 세력 간 싸움의 결과를 예고해준다. 우파는 내년 대선전(戰)에서 이미 기울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조선일보 칼럼 : 추락한 뉴라이트의 대안은 뭔가



과연 한국 사회의 기득권 언론 중에서 유일하게 '말에 의한 통치'를 고민하는 조선일보다운 칼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요. 그래서 제가 요즘 조선일보더러 종종 공론의 역할을 고민하는 몇 안되는 신문 같다고 한탄조로 찬사를 보내드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뉴라이트가 왜 추락하고 있는지에 대한 원인파악은 잘 안 되시는 것 같아서, 이 부분에 대해선 좀 지적을 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뭐 새로 쓸까 했는데 검색해 보니 벌써 1년 반전에 제가 왜 제 책이 이렇게 안 팔리는지(아, 제가 뉴라이트 이데올로그들을 비판하는 책을 썼거든요!) 한탄하면서 적당하게 정리를 했더라구요. 그냥 옮겨 봅니다.


말하자면 그 명사의 인식에는 ‘정당화’라는 차원이 결여되어 있다. 내가 가진 것이 있을 때, 남들 앞에서 왜 내가 이것을 가져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내 것은 그냥 내 것이다. 다른 이들은 그것에 대해 토를 달지 못한다. 설령 토를 단다고 해도 (그는 그것을 듣지도 않을 테지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테니 상관이 없다. 딴지일보는 먼 옛날에 “한국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콩사탕 싫어, 기득권 좋아.’ 여섯 글자 밖에 없다.”고 논평했는데 이는 정확한 것이다.

(...)

뉴라이트 문제 역시 그렇다. 오늘날 사람들이 뉴라이트를 거론할 때 뉴라이트 역사논쟁에 관심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뉴라이트 스스로가 사실 그런 문제들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이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 좌파 학자들을 쫓아낸 밥상에 내 숟가락을 올려놓는 것 뿐이다.

(...)

안병직은 다시 사상투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며 ‘피가 끓어 오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지금 안병직이 사상투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이명박 정부가 권력을 잡은 지금 뉴라이트는 안병직도 이영훈도 신지호도 아닌 어떻게든 교수 한 자리 해먹으려고 뒤늦게 합류한 모리배들의 집합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이 뉴라이트라는 기획의 최초의 의도를 해체해 버린 셈이다.


한국의 우익들은 이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뉴라이트는 우익에 이념이 없다는 사실에 개탄하며, 좌파정권 척결을 위해 우익의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일종의 이념투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면 우익들은 다시 이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익들에게 이데올로그는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국 정치사의 ‘변절’에 대한 어떤 구조적인 설명이다. 우익은 담론의 재생산을 못하고 좌익은 일자리를 못 주는 사회에서, 오늘의 진보담론에 맞서 싸우는 것은 왕년의 진보투사일 수밖에 없는 거다. 뉴라이트는 우익을 견인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컷 이용만 당했고, 이제는 실체도 사라져 버린 셈이 되었다. 뉴라이트의 이데올로그들이 이 사실에 개탄하고 나선다면 그들은 지식인적 양심을 지킬 수 있겠지만 권력으로부터 점점 소외될 것이다. 반면 이 사태를 그저 방치한다면 뉴라이트와 변희재 사이의 거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2009/09/17 - [정치/메타-비평] - ‘정당화’가 필요 없는 사회에서 정치평론하기



강조는 원래 없었는데 이번에 새로 한 겁니다. 기가 막히죠? 그냥 여기서 설명이 끝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뉴라이트가 추락하는 이유는 무슨 주체들의 역량이 부족하고 권력투쟁을 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한국 우익들이 이념집단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집권을 하면 이념집단이 필요가 없으니 떡고물이나 나눠먹으려고 싸우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인과관계가 이렇게 엮여 있는데 반대로 말씀하시면 안 되죠.


뭐 그렇게 된 건 좌익들이 장단을 못 맞춰 줘서라고 항변하시렵니까? 뉴라이트가 수준높은(?) 소리를 하면 그에 맞춰 받아줘야 하는데 대충 친일파로 몰아버리고 상대를 안 해주니까 담론싸움이 안 되더라고 말씀하시렵니까? 그럴수도 있겠고, 저 역시 그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뭐 언제 한국 사회가 말을 말로 받아줬던 사회인가요? 그냥 좌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들이 하는 소리다 대고 '친북세력, 즐~'하면서 잡아 가두고 마녀사냥하고 그러던 걸 이제와서 살짝 되돌려 받는 것에 불과하겠죠.  


좀 문제가 되는 건, 어쨌든 조선일보도 언론이고 그 언론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말의 영역이 조금은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사실 조선일보가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도 김영삼 김대중 시기였지 그 전엔 일등신문이라 해도 정권에 찍소리 못하고 있잖았습니까?) 조선일보가 꿈꾸는 세상은 문필가가 필요없는 세상이란게 아니겠습니까?


요즘은 조선일보 논설위원들의 사설이나 거기 글쓰는 지식인 칼럼들이 진보주의자들 것보다 재미있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래봤자 아무도 관심을 안 가져주는 것도 조선일보의 정치적 포지션에서 감내해야 할 사태가 아닌가 싶습니다요. 다행히 스마트폰 시대라 저같은 사람도 타신문사보다 우월한 조선일보 어플 깔아서 공짜로 잘 보고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는 마시죠. 본인들이 한국 사회를 통치하고 있다는 그 판타지야 어찌됐든 광고받고 종편받고 사는 그 처지가 군소언론사들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다음부터는 저런 질문 던지지 마세요. 멋쩍지도 않습니까? 마치 삼성경제연구소가 부동산 가격 상승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보고서를 쓰는 걸 바라보는 심정이네요. 종편 준비 잘 하시구요. 이 험난한 세상 잘 견뎌내기 바랍니다.

   

지나가던 행인

2011.03.24 22:03:13
*.40.242.6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삼성경제연구소가 부동산 가격 상승이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보고서를 나유타에 하나 쓴다면 그거 나름 그네들 "치고는" 학자적 양심을 지켰다고 칭찬해줘야 할듯 함다. 삼성 이씨 왕조 성균관에서 나올 수 있는 것 치곤, 건희제 폐하께 믿을 수 없을 만큼 저항적인걸텐데 말임다 ㅋㅋㅋㅋㅋ

하뉴녕

2011.03.24 23:10:29
*.149.153.7

예전 보고서를 보면 그런게 하나 있나봐요. 손낙구 선생님의 <부동산 계급사회>에 인용되어 있습니다...;;;

minainsydney

2011.03.24 23:10:59
*.175.11.80

사랑해요, 한윤형!
(스토커같군..)
근데 이글은 진짜 맘에 드네요. 서점에 저런 책들이 깔려 있는 것도 조선일보에서 알려주는군요. 궁금해지겠는데요, 조선일보 독자들이.

독자

2011.03.24 23:39:58
*.190.177.69

재밌는 글을 봐서 소개해드립니다.
http://acidkiss.8con.net/xe/
에서 전진 떡밥으로 검색하면 운동권의 역사를 정리했다는글이 나오는데 제가 대학교 신입생이라서 정확하게는 잘 모르는데 한윤형님이 보시기에 글이 편향적이라든가 뭐 그런거는 없을까요?

하뉴녕

2011.03.24 23:44:29
*.149.153.7

이 시대의 큰스승 님의 저 유명한 전진 떡밥이로군요. 저는 큰스승님의 숭배자로, 그의 정리가 무오류라고 생각합니다...ㅎㅎㅎ

영춰

2011.03.25 11:10:31
*.14.81.5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간만에 좋은 글 감상요.

zz

2011.03.25 23:38:35
*.77.201.34

두번째 문단내용은 몇년전에 이상돈 교수님이 블로그에서 한탄하셨던
바로 그 내용이네요.
조선일보가 험난한 세상 잘 못견디길 바래요.ㅎㅎ

그런데

2011.03.25 23:46:32
*.77.201.34

기사에 안영직씨 댓글이 일품이네요.

abrasax

2011.03.26 02:40:29
*.147.110.134

ㅋㅋ 장난없네요. 정말 웃겼어요.

드래곤워커

2011.03.26 07:53:57
*.234.105.202

역시 항상 한윤형님 글솜씨에 감탄하게 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unknown

2011.03.27 20:12:33
*.214.206.3

"뉴라이트 사용후기" 가 팔릴려면 그래도 몇 있어줘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도 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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