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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심상정 사퇴'에 붙인 단상

조회 수 3753 추천 수 0 2010.05.30 19:21:00

레디앙 기사에 떴으니 더 이상 침묵할 필요가 없겠다. 진보신당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오늘 중 사퇴 기자회견을 할 계획이다.


1.
일반 유권자나 민주노총 경기본부의 압력 이상으로 전방위적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온 세상이 자신을 비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때 버틸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듣보잡에 불과한 나조차도 가끔 그런 느낌을 받고 좌절하곤 하는데, 심쯤 되면 오죽 했을까. 그녀의 완주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악다구니쓰는 사람들 사이로 당신이 거기에 버티고 서 있어 다행이라고 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명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나 자신의 약소한 활동까지 포함해서, 그 점이 아쉽다.


2.
정치적 판단에 대한 평가는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유시민이 당선이 될까, 안 될까? 심이 사퇴한 경기도는 노가 완주하는 서울에 비해 진보신당 지지율이 더 높게 나올 것인가? 심이 이번에 패를 던졌기 때문에 2012년에 심이 고양 덕양갑에 다시 출마할 때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이 거추장스러운 후보들을 치워주는 시늉이라도 할 것인가? (2008년 총선에서, 심에게 걸리적거렸던 건 민주당 후보 뿐만이 아니었다. 유시민 보좌관 출신도 하나 나와서 "노무현 팔아 국회가겠습니다."라며 약소한 표를 가져갔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들은 심의 '대승적(?) 결단'에 대해 기억이나 할까? 내 생각엔, 이중 어느 것도 택도 없는 소리다. 트위터 타임라인을 보라. 지지율이 높았을 때 협상했어야지 단물 다빠진 후 투항하면 뭐하냐는 비아냥에서부터, 어째서 유시민 지지를 공식 선언하지 않느냐는 호통까지 각양각색이다. 사퇴 기자회견의 레토릭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존엄을 지키는 투항은 불가능하다. 상대방은 빤스까지 벗어달라고 난동을 부릴게다. 그리고, 한번 패를 던진 후보는 다시 판에 돌아올 수 없다. 그냥 이렇게 퇴장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정치적 판단에 대한 평가는 심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진보신당 전체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심의 사퇴는 진보신당의 지방선거 선거전술의 총체적 무능력의 화룡점정일 뿐이다. 본인의 정치적 책임도 있겠으나, 전후사정을 살펴보면 결코 혼자서 책임질 사안은 아니다.


3.
선거가 끝나면 각종 종류의 책임론들이 대두되겠지만, 솔직히 이쯤되면 어디에 전선이 그어질지도 모르겠다. 진보정당 운동은 뿌리부터 말라죽어가고 있다. 당게시판은 거대한 정신병동이고 어쩌면 오프라인 모임의 분위기도 거기에서 크게 멀지 않다. 역시 나 자신을 포함해서 그렇다. 우리는 뭔가 모자란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노회찬과 심상정은, 진보정당 운동의 뿌리가 더 튼튼했을 때 필 수 있었던 두 송이의 꽃이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노심사당'을 우려하는 이들에 맞서 두 사람을 언제나 옹호해왔다. 지금의 역량으론 다시는 그런 꽃을 피우지 못할 것임을 알기에, 나는 2012년 두 사람이 진보정당 소속으로 의회에 진출하여 '위로부터의 진보정당 운동의 변혁'이 시작되기를 바랐다. 꽃을 보고 유권자가 다시 물을 뿌려 민망하게 말라붙어가는 뿌리에 다시 활력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척박한 뿌리 위에 핀 싱싱한 꽃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뿌리를 살리려고 하는지는 알 수 없다. 꽃들은 갈 데가 많다. 한나라당으로 가면 변절자 소리를 듣겠지만, 민주당에 가면 현실적으로 변했다고 칭찬해 줄 것을. 누가 유시민 송영길을 두고 변절했다고 하던가? 심의 머리 속의 타임테이블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조금 두렵다.


4.
노회찬의 설명에 따르면, 공산권 붕괴 이후 운동권의 이탈은 크게 두 시점으로 갈렸다. 하나는 소련이 붕괴한 시점인 90년에 나간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적인 정리상 92년 백기완 대선 선거운동까지는 도와주고 나간 사람들이다. 비관론으로 말한다면, 2010년과 2012년은 비슷한 식으로 진보정당 운동 붕괴의 두 기점이 될 수 있다. 나는 그래도 2012년까지는 당비내고 도울 생각이다. 그리고 이 당이 망하면 한동안은 당적을 가지려고 하지 않을 게다.


 

5.
이미 만들어 놓은 신문광고는 어쩔거야... 어쨌든 일단 노회찬은 파이팅. 우리 어디까지 막장될 수 있나 한번 가보자.

도요한

2010.05.31 10:04:34
*.88.34.136

심상정 씨가 후보단일화에 대한 압력을 꽤나 받았을거라 생각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나 보군요.

진보신당의 당원이건, 그렇지 않더라도 평소 진보적 정치입장을 견지한 사람은 누구나 한번 쯤 선거시기가 오면 '반한나라당 후보단일화 압력'을 받아왔습니다.

대선 때는 이번만 도와달라. 국회의원선거 때는 너희쪽에 투표하겠다. 국회의원 때는 지방선거..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 때는... 다음 선거...

심상정 후보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입후보한 진보신당의 후보자는 진보신당의 당원만을 대표로 한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도 반한나라당 보수쪽의 압력이 선거철마다 있을 것이고 이번 심상정 후보의 사퇴는 그러한 압력이 얼마나 유효한 행동인지 저치들에게 가르침을 준 것입니다.

민주당의 이중대 혹은 합리적(?) 보수의 이중대로 전락시킨 심상정 후보의 선택은, 그동안 얼마나 부당한 압력을 받아왔는지를 불문하고, 진보정치의 토대를 뒤흔든 결정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라보라돌이

2010.06.01 01:22:58
*.171.69.90

앞으로의 심의 행보가 궁금하네요. 님 트위터 대로 대중정치로 나아갈지, 나아간다면 어떤 범위까지 포용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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