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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경향신문 블로그 속으로]에 싣기 위해 수정 편집하였음

(수정 편집하기 전의 버전은 http://weirdhat.net/xe/19779 입니다. 조금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은 경우 이 글을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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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지금 20대의 대다수가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제도가 빈약한 한국의 실정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88만원 세대’의 문제의식을 총선에 반영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20대 비례대표 후보’를 정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노동당은 4년 전에도 비례대표 후보였던 20대 여성 이주희를 전면에 내세웠고 진보신당 역시 ‘88만원 세대’의 대표자를 고민해보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20대 비례대표’ 담론에 찬성하기 어렵다.


첫째, 명분이 없다. 20대 아무개가 당장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적어도 50대 누구보다는 나을 거라는 우석훈 박사의 주장에 특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당장에 20대 누군가가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20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사회 전체가 인식하고 그 문제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일이다. 20대가 현재의 자신들 처지를 잘 알고 있고, 그동안 모종의 운동을 통해 그 사실을 알리려고 했다면, 그들은 충분히 자신들을 대의할 역량이 있음을 사회에 증명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윗세대가 쓴 책을 통해 이 문제를 알게 됐고 이제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20대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은 20대의 정치적 무능함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 무능함이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무능함을 그대로 둔 채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둘째, 운동 자체의 정치적 효과 역시 희박하다.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20대 비례대표를 배정하는 정당이라도 당선권에서 거리가 먼 순번에 후보를 배정하게 될 것이다. 20대 국회의원이 탄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단 뜻이다. 그렇다면 20대에 대한 투표 독려 효과는 있을까? 20대 비례대표가 문제해결 의지를 과대하게 포장하는 일종의 ‘쇼’라는 사실은 20대들의 정치적 감각으로도 파악될 수 있는 일이고, 그런 쇼에 혹할 만큼 20대의 정치적 냉소주의가 얕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셋째, 이 운동의 목표가 실현된다 하더라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개혁당과 열린우리당에서 활동했던 윤선희나 민주노동당 이주희의 사례로 볼 수 있듯, 젊은 정치인의 등장은 젊은이의 권익을 대변하는 것과는 크게 상관없고 ‘젊은 여성’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덧씌우는 정치세력의 홍보전략과 크나큰 상관이 있었다. 자신들의 역량없이 홍보전략에 의해 간택된 이들 정치인들이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발언을 하는 것을 나는 들은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얼굴마담을 세워 놓고 문제해결의 단초를 발견했다고 말한다면 오히려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의 우울한 통찰의 핵심은 경제구조상 지금의 20대는 30대가 되더라도 현재의 30대처럼 살지는 못할 거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고민은 당장에 어떤 20대 정치인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가장 정치적인 세대였던 386 아래 세대들이 정치적인 힘을 결집하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20대 비례대표라는 선정적 제안보다는 지금의 20대들이 정당활동에 참여했을 때 밑바닥으로부터 차근차근 올라올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나 문화적 변혁을 요구해야 한다. 십년쯤 세월이 지났을 때 지금의 20대들이 정당의 틀 안에서 경험을 축적하여 일정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 그때는 이 세대에서 이 세대와 그 아랫세대의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갖춘 비례대표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이 ‘20대 비례대표’라는 대안보다 더 어려워 보이지만, 문제해결은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윤형 yhhan.tistory.com>


여울바람

2008.03.15 21:30:26
*.143.20.250

음..
'정치적 무능력'이라는 말이 뼈아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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