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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디 워>가 재미있다는 사람들

조회 수 1047 추천 수 0 2007.09.20 13:37:48
 

<디 워>를 쓰레기라고 혹평한 미국의 평론가들은 한국 관객의 취향을 무시한 것인가? 우스운 말이다. <디 워>에 악담을 퍼붓는 미국의 관객들은 한국 관객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인가? 가당찮은 소리다. 하나의 영화를 보고 그것이 쓰레기라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그 표현에 대고 하지 못할 소리를 했다고 집단적으로 흥분하는 것이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행위다. 그건 남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거니까.


‘호러블 보이’가 두 번째 동영상에서 설파하는 건 이런 단순한 진리다. 몇몇의 동영상만 보고 ‘호러블 보이’가 그 사회에서 평균이상으로 논리정연한 위인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오히려 이건 시민에겐 체화되어 있어야 할 진리인데 한국에선 지적으로 자유주의를 이해한 이들에게나 진리라는 것이 정확한 사태파악이다. 물론 이게 한국인 입에서 나왔으면 디빠들은 “니가 영화에 대고 욕할 권리 있으면 나도 너에게 욕할 권리 있다 병진아-”라고 반응했을 것. 이 한심한 논변이 미국의 십대 소년에게도 캐발리는 한국 대중의 현주소다. 그리고 그 ‘대중’의 무리엔 김규항도 끼어 있다.


그렇지만 분명히 <디 워>를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이 존재하긴 한다. 그리고 그 숫자는 미국에서보다는 한국에서 월등히 많다. 800만의 관객이 모두 영화에 만족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2-300만의 관객은 <디 워>가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게다. 영화를 쓰레기라고 욕한다고 내가 그들의 취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는 별도로 이제부터 나는 그들의 취향을 무시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미 묵어버린 MW님의 덧글을 꺼내오자면, ‘재미’라는 것을 말할 때도 그것을 단순히 흥행성적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사람들 사이엔 어느 정도의 공통감각이란 게 있으니, 재미라는 것도 어느 정도는 코드화하고 분석하여 지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이다. 재미가 있기 때문에 흥행했다는 말은 성립하지만, 흥행했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물론 다른 변수가 없이 흥행했다면, 우리가 미처 알아내지 못했던 재미의 코드를 새로 찾아볼 수는 있을 테지만, 이 역시 ‘흥행했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는 논리는 아니다. 한국같은 독과점 체제에서는 마케팅에 따라 재미가 없어도 어느 정도 흥행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전에 이 부분을 도외시했던 건 <디 워> 옹호자들이 ‘재미=흥행’의 도식 위에서 시작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그들은 수백만씩 동원한 조폭코메디는 충무로의 쓰레기라고 갈군다. 논변이 <디 워>의 서사만큼이나 엉망진창이다.)  그것을 문제삼기에는 다른 문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재미있게 봤지만, 그 재미가 무엇인지 너는 분석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관객들에겐 이런 심리가 있다. 이택광이 마빡이를 분석할 때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 분석의 적절성에 대해선 따로 논해야 하고, ‘재미’의 코드를 분석하려고 시도할 때 그 시도 자체에 대중들이 반발했다는 사실이 기억되어야 한다. 이런 것을 이택광은 반지성주의라고 부르고, 우석훈은 그 단어를 그럴 때 쓰면 안 된다고 말하는데,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으므로 일단 나는 이택광을 따르겠다.


‘재미’도 지적으로 논의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다음 얘기를 하자. <디 워>가 재미있었다면, 논리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서사를 볼 줄 아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허접한 서사에 교묘한 쾌감을 느끼는 감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중 취향이라 불러줄만한 건 후자의 것이다. 이것을 무시하면 정말 ‘타인의 취향’을 무시하는 반자유주의적인 위인이 된다. 그리고 후자라면 다른 이들도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을 테니까, ‘디빠’질은 못한다. 그러므로 전자만을 대상으로 얘기를 해보자.


서사 상관없이 CG만 즐겼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스토리 상관없이 여자만 예쁘면 된다는 건 야동의 논법이다. 그러면 당연히 앞부분은 스킵하게 되고. 야동이 아니라 포르노 영화만 되더라도 서사가 없으면 얘기가 안 된다. 그러니까 <디 워>가 재미있었다고 말한다는 건, 서사없이 CG만 즐겼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디 워>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서사를 구별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들도 그렇게 말한다. <300>이나 <트랜스포머>나 무슨 서사가 있냐고. <반지의 제왕>이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고. 그 얘기다. 그들은 미국의 리뷰어들이 말하는 바, 부라퀴가 지나다녀도 문제가 없겠다는 <디 워> 서사의 텅빈 구멍이 보이지 않는 거다. 혹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서사의 조밀함을 평소에 보지 못했던 거다.


여기서 그들의 무능력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태생적으로 무능하다는 것.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을 게다. 미국인들은 대개 그런 무능력의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한국인들의 자질이 그들보다 특별히 떨어진다고 믿는다면 그건 인종주의적 편견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이야기를 많이 읽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그가 이야기에 대해선 알지만, 영화라는 장르의 문법에 익숙하지 못해서일 것이다. 실제로 마케팅의 시각에서 <디 워> 흥행을 분석한 사람은, <디 워>의 경우 흥행을 주도한 관객이 평소에 영화를 관람하는 300-500만의 고정층이 아니라 그 외의 사람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논의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백하다. 대개의 경우 <디 워>가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취향은 ‘취향’이 아니다. 평소에 안 읽거나 안 봐서 <디 워>가 재미있었다는 얘기기 때문이다. 굳이 구별짓자면 ‘몰취향’이다. 이런 걸 무시한다고 취향을 무시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류의 어느 사회에서도, 아예 하나의 장르 자체를 천박하다고 탄압한 적은 있겠지만, 하나의 장르 안에서 적게 본 인간들이 많이 본 인간들에게 큰소리치는 경우는 없었다. 가령 그리스 사회에서 오늘 비극을 처음 본 친구가 일주일에 세 편씩 몇 년간 비극을 본 친구에게 훌륭한 비극을 가리는 기준에 대해 시비를 걸었다고 치자. 사람들은 뭐라고 말할까. <디 워>의 ‘재미’에 대한 논란은 그저 그 수준에서 정리되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디 워>를 문화권력과 취향의 전쟁이란 시각에서 바라본 강준만의 평론이 어떻게 틀렸는지 이해할 수 있다.


'재미'가 없는 영화를 '재미'없다고 말하기 위해 우리는 미국 관객들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태왕사신기>와 <디 워>를 비교하는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그것들이 똑같이 팽창적 민족주의의 욕망을 담고 있다고 쳐도, 두 개의 텍스트 사이엔 말하자면 바그너의 오페라와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가 정도의 수준 차이가 난다. <태왕사신기>의 초반 신화는 개판이었고 나도 드라마틱에 그걸 까는 글을 썼지만, 3화부터는 무척 재미있다. "어쨌든 재밌잖아."라는 말은 그럴 때 쓰는 말이다. 우석훈은 잘 만들어진 극우 텍스트가 <디 워> 따위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했고 그건 참으로 맞는 말이지만, 한국땅에 살다보면 가끔 극우든 뭐든 일단 '텍스트'는 만들어 놓고 논하자는 볼멘소리가 올라올 때가 있다. 전쟁은 반대하지만 햇볕정책은 퍼주기다, 라는 소리를 노상 듣다보면 조갑제의 일관성이 존경스러워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P.S 이규영님은 지난번에 내가 강준만과 김규항을 지극히 디빠스런 논리에 의해 구별짓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글에서 김규항과 강준만이 나오는 위치가 내가 생각하는 그들 논의의 구별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당시의 글은 강준만과 김규항 논변의 차이가 주제는 아니었고, “왜 강준만의 글을 보면 김규항의 것을 본 것만큼 화가 나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 자신의 주관적인 답변이었다.  




아큐라

2007.09.20 14:08:29
*.241.136.2

마지막 문단이 좀 불친절하군요. 제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나쁜 놈도 부지런하면 그런 점은 이해해줄 만 하다'라는 의미로 읽히네요.

하뉴녕

2007.09.20 14:33:24
*.176.49.134

부지런한거야 심형래도 마찬가지고...

흠 뭐가 됐든 형체는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디 워>는 형체가 없고...<태왕사신기>는 형체는 있고...조갑제의 '무력통일론'은 '논변'이라곤 볼 수 있지만, 전쟁은 안되지만 햇볕정책은 퍼주기란 말은 이뭐...

흐흠

2007.09.20 16:09:21
*.77.70.69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이들은 두 부류, 매저키스트와 최소한
매저키스트로 보이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전자는 고통을 쾌감으로 승화시키는 묘를 터득한 이들이고
후자는 감각이 둔해 고통을 고통이라 여기지 않는 거지요.
전자야 취향이니 그냥 간직하면 되고(저 웃기 위해 두 번 봤습니다.) 후자는 앞으로도 영화감상를 취미로 할 생각이 있다면 다른
좋은 작품들을 보면서 감각을 좀 예민하게 단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흐흠

2007.09.20 16:21:05
*.77.70.69

읽고 나서 공감가는 글이길래 평소 생각을 적어 봤는데 다시 보니
의도치 않게 영감 수준도 아니고 표절처럼 보여지네요. 긁적.

어쨌든 다시 한 번 거들어 보자면
우웨 볼 영화 즐겨보는 이들이 다른 데 가서 깽판치고
다니지 않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일반인이 그런 영화에
전저리치는 모습을 더 재미있어하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고
신랄하게 까면 깔수록 함께 박수치며 더 즐거워하거든요.
그야말로 까면서 즐기는 게 제맛인 격이죠. 미국 관객이나
평단의 반응은 애초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약간 더 열렬한지라
조금 놀랍기까지 합니다.

컥!

2007.09.20 17:49:05
*.253.248.193

디워를 재미있게본 영화인 영화 평론가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도 서사를 보는 눈이 없어서 디워를 재미있게 봤던걸까요.

모과

2007.09.20 18:14:59
*.108.87.80

후진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는 취향도 있지요. 한윤형님 글에서 이미 언급돼 있고... 이런 경우 감독의 의도와 관객의 반응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죠. ㅎㅎ

모과

2007.09.20 18:12:18
*.108.87.80

디워를 재밌어하는 사람들을 아주 깔끔하게 분류하셨네요.
문제는 그 몰취향한 사람의 비율이 꽤 크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살다보면 몰취향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비어 있는 취향의 자리에 민족주의나 성장주의가 채워져있다고 보입니다. 어쨌든 그들에겐 그 모두가 취향인 셈이고 자신의 취향을 잘게 나눠서 분석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디워가 개봉되기 한참 전부터 이 충돌은 이미 예상됐었고, 앞으로도 비슷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텐데 그때마다 출혈을 각오한 몇몇 사람들이 희생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평소에 그런 사람들의 비율을 줄이기 위한 무언가를 해야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들을 근래들어 하고는 있는데 딱히 개인이 뭘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coala

2007.09.20 19:10:21
*.101.86.74

한가지더 살아가기 참 외롭게 만드는건...

그런 성도착자 변태들이 또 지극히 고집스럽고 목소리는 크다는 점이고 상당히 공격적이란 점이져...

게다가 논쟁에서 정작 중요한건 내용이되어야하는데...

'말이되냐 안되냐'를 놓고 이런 힘겨운 소리들이 오고가야하니...

정말 지칠 뿐입니다.

Cranberry

2007.09.20 19:21:39
*.128.205.116

브라보입니다.
차마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해주시니 제가 다 속이 시원하네요. 디워를 보고서 '하도 허섭해서 웃느라 너무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취향은 얼마든 존중해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 역시 개봉 이전부터 정말 흉한 마케팅과 심사장의 장르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비위가 상하지 않았다면 기꺼이 그렇게 보아주고 하나의 괴작으로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웃을 수 있었을 겁니다. 사실 수많은 '디빠'들이 염원하고 있는 DVD 시장이라는 것도 기댈 것은 그런 취향의 사람인 것이고요. 하지만 진심으로 그걸 재미있게 보았다고 하면 제 입장에서는 취향과 안목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더군요.

hyun

2007.09.20 21:49:03
*.99.83.104

네 '몰취향' 맞구요. 그런 맥락으로 보면 그들에게 반지성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도 과분하지 않을까요? 그냥 '습성으로 사는 사람들의 발끈 혹은 발악' 이 정도에 해당하는 단어 뭐 없을라나요.

그리말디

2007.09.21 01:14:41
*.120.99.232

김규항씨에겐 "호러블 보이는 한국의 디워 팬들에게 선빵을 날린 건가요? 그래서 그 팬들이 그 소년 유튜브 가서 니거라고 욕한 건가요?"라고 묻고 싶더군요.

이방인

2007.09.22 02:38:16
*.182.56.5

우연히 들렀는데요...
글을 조금만 쉽게 써주시면 더 좋을듯.
이규영님 글은 쉬우면서도 논지가 확실하게 이해가 가는반면..

"히려 이건 시민에겐 체화되어 있어야 할 진리인데 한국에선 지적으로 자유주의를 이해한 이들에게나 진리라는 것이 정확한 사태파악이다."
"이 글에서 김규항과 강준만이 나오는 위치가 내가 생각하는 그들 논의의 구별되는 지점이다." 이런거.. 도대체 먼소린지 이해가 안가요.

하뉴녕

2007.09.22 09:52:17
*.176.49.134

저는 이규영님보다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많으니까요. :)

말씀하신 부분들은,

"호러블 보이가 말하는 건 미국에선 사람들이 자전거 탈줄 알듯이 체득하고 있는 진리이지만, 한국에서는 자유주의 관련 서적을 탐독해서 자유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머리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알고 있는 진리다."라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게 미국 대중이라는데, 정말 슬픈 현실이죠. 뭐, 한국에선 '자유주의자'라고 스스로 외치는 사람들도 자유주의를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까,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지만요.

저는 이 글에서 김규항의 경우 아예 자유주의 코드를 무시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깠고, 강준만은 취향 전쟁이라는 논지파악이 잘못되었다는 맥락에서 깠습니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이 같이 언급되지 않고 각기 글의 다른 부분에 배치되었죠. 이 점을 얘기한 겁니다. 이 글에서 두 사람이 배치한 위치가, 두 사람의 논지를 다르게 보는 제 의견이라는 거죠.

종종 들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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