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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술자리 사담

조회 수 1226 추천 수 0 2007.03.30 08:26:18

어제는 친하게 지내던, 나보다 세살 많은 형이 취직을 했다고 해서, 그리하여 나보다 여섯 살 많은 KDY씨가 술을 사겠다고 해서 나가서 술을 마시고 왔다. 나는 조금 늦게 나갔는데 1차는 가보니 소주에 삼겹살을 먹고 있었고, 저녁을 먹고 온 나는 그 자리에서 계란말이나 좀 먹으면서 소주를 먹다가 2차를 같이 갔는데 2차 가서는 회를 먹었다.
 
취직한 형이 요새 20대가 취직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무엇 무엇인지를 꼽아주는데, 사실 나는 들어도 곧 까먹어서 여기 적을 수는 없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 블로그에서 그런 정보를 찾을 필요도 없을 테고. 그리고 사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KDY나 취직한 형이나 이상한 사람들이다. KDY는 하다 못해 대학 졸업장도 없는데 보험설계사가 되어 작년엔 연봉이 7천쯤 됐고 올해는 "1억은 벌어야지."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고 있다. KDY의 동생은 어쨌든 서울대를 졸업해서 은행직원이 되었으니 잘 나가는 축인데 형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기가 죽어서 '학벌이 다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 취직한 형도 흔히 말하는 '인서울'도 아닌 지방 사립대를 졸업했는데, 원래 중국에 관심이 많았고 1년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기는 했다. 토익은 회사에서 요구하는 최소 사양인 750점만 넘기고 2차엔 영어 면접보고 3차엔 중국어 면접까지 보는 혈투 끝에 입사에 성공했다고 한다.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졸업하는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그 사실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과잉이다. 무언가, 부모님 세대의 방식을 그대로 본딴 것이 분명하다는 결론을 우리 세 사람은 내렸다. 돈 때려박아서 '스펙' 올려서 사회에 나오면 그래도 취업이 되겠지 생각하고 아득바득 사는 건데, 그래서 눈만 높여서 나와도 일자리가 없는 건 마찬가지고 '취업준비' 과정이 그를 회사에 더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한다. 몇 년이 지나면 학벌은 붕괴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그대로 있겠지. 토익 900점 넘기려고 애쓰는 건 그렇게 하면 취업이 되기 때문은 아니고 (물론 취업이 되는 시기도 있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남들보단 낫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딱히 다른 방도가 없으니 다들 그러고들 있다는 것이다. (돈은 무진장 많이 쓰면서. 아마 우리 아래 세대로는 또 무언가 달라질 것이다. 지금의 40대는 우리 부모님 세대만큼 자식들에게 투자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사회적으로는 분명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는 남들 다 하는 방법에서 이탈해 보려는 용기도 분명 필요하다. 욕심이 있고 도전을 할 줄 알고 그 과정에서 대인관계능력과 문제해결능력만 배양하면,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도 취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KDY는 정리했다.

KDY와는 2002년서부터 친구인데 예전엔 둘다 학생인 처지고 그땐 내가 돈이 더 많아서 내가 술을 산 적도 많았다. 나는 그때 집에서 용돈도 받고 다른 곳에서 살짝 벌기도 하는 처지였던 것이다. 요새는 KDY를 만나면 나는 지갑 자체를 만지지를 않는다. 내 얘기도 잠깐 화제에 올랐는데 나는 우리집은 아직 중산층에서 간댕간댕 버티는 축에 속할 뿐더러 요샌 하도 취직이 안 되니까 내가 딱히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필요도 없겠더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 대학 다니면서 한달에 백 조금 안 되게 벌면서 근근히 살 것 같은데, (아직까진 집에서 등록금은 내주고 있고. 이 점 무지 중요하다.) 뭐 그런 식으로 살고 있으면 딱히 주변의 누구누구보다 더 암울한 것도 아니다.

잠깐 KDY와 성매매 문제와 관련해서 논쟁을 하다가 -이 논쟁은 우리의 친교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갑자기 FTA로 주제가 튀어버렸다. KDY는 FTA 반대파들에게 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기 생각으로는 FTA 되면 문제는 농업이 아니라 금융 쪽과 의료 쪽이 다 박살나서 넘어가 버릴 것 같은데, 협상 관련 토론 쟁점에 그런 분야들이 언급되는 것을 못 봤다는 것이다. KDY는 자기 생활에서 느낀 한국 금융업계의 문제점을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자기가 연봉 7천인데 중고차 사려는데 은행에서 200만원을 빌릴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직업이 '보험 설계사'라는 이유로. 물론 은행 다니는 동생은 2천이든 3천이든 금방 땡겨쓴다. 그 얘기 했더니 자기네 팀장이 "그건 약과야. 난 지난번 직장에 있을때 연봉이 3억이었는데 '보험설계사'라는 이유로 카드 발급을 안해주더라구." KDY는 한국 금융계가 정부에서 주라는 기업에 대출해온 역사 때문에 기업이든 개인이든 신용 등급을 판단하는 기제 자체가 없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금융이 들어오면 어느 누가 살아남겠냐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이 넘어가 버리면 그야말로 그때부터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 처지가 된다. 나나 KDY나 지금은 '이라크 파병 반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그때의 대한민국은 정말 그런게 불가능한 나라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반대파들이 이런 지점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석훈의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를 보면 3차 산업의 부문별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대충 예측해 놓았다. 금융 쪽은 십년 만에 미국으로 다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고 적어놓았고, 의료는 미국식 시스템으로 바뀌어 빈곤층은 괴로워질 테지만 의사들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다고 한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 한국 의사들을 괴롭히는 것은 FTA보다는 한국의 의료 정책 그 자체인 것 같다. 의사들도 이젠 비정규직이 될 판이니까.

그런 걸 알고 있어도 쟁점화가 되지 않는 건 물론 대개 시위나 운동을 주도하는 반대파들이 그 점을 잘 모르는 것도 있고, 찬성파들도 그쪽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논쟁 자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건 뭔가 수치로 나오기 힘든 지점이라 상대편의 "자신감 가져라."는 허무개그 논증에 딱히 답하기가 힘들기도 하다. 하여간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쌀은 지켰다."는 야바위로 협상을 마무리할 공산이 크다. 이는 우석훈이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적어놓았던 것이다.

어쨌든 모듬회는 맛있었다. 요새 내 소비수준은 소득수준을 훌쩍 상회한다.

노정태

2007.03.30 14:05:27
*.152.106.127

"욕심이 있고 도전을 할 줄 알고 그 과정에서 대인관계능력과 문제해결능력만 배양하면" 어려운 조건이지. 아주 어려운 조건이야. 도전적인 욕심과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탐욕을 구분하는 것부터가 일반적으로 전혀 쉽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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