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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안티조선 운동의 주요 쟁점

조회 수 3678 추천 수 0 2001.05.22 03:16:00

이건 뭐 직접 쓴 거보다는 편집이 더 많긴 하지만서도.... 역시 강연회꼬마자료집의 한 꼭지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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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의 주요 쟁점



1. 기타 언론 운동과 '안티조선 운동'과의 관계

안티조선 운동은 기타 언론 운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그 차이를 존중하고 같이 나아가자는 입장이다. 대신에 기타 언론 운동이 맡을 수 없는 부분을 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경품 등의 과다 경쟁 금지, 무가지 규제, 발행부수 인증 등은 제도개혁의 부류이다. 그것의 목적은 신문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어, 광고비를 남용하거나 스스로의 영향력을 부풀리지 말게 하자는 데에 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안티조선 운동이 의도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즉 우리는 <조선일보>라는 특수 신문의 문제가 신문 시장을 바로 잡는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거기에 힘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발행부수가 투명해지면 광고료를 지금처럼 턱없이 올려 책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름대로 신문 권력의 거품이 빠지겠지만 그렇다고 <조선일보>의 사회적 의제 발언권이 크게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며, <조선일보>가 옹호하는 극우 헤게모니가 당장에 깨지지도 않는다고 우리는 보고 있다. <조선일보>가 가장 널리 읽히는 신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면, 우리의 활동은 정당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개혁을 위해 운동하는 분들을 존중하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언론개혁 운동의 대안이라고 주장하는데는 반대한다. 양자는 같이 가야 한다.

조선·중앙·동아를 중점적으로 비판한 <한겨레신문>의 언론개혁 시리즈나, 제도권 언론의 문제를 모두 지적하는 운동 역시 안티조선 운동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 현재 언론이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일부 사안에 있어서는 제도권 신문들의 논조는 다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많고, <조선일보>의 기사가 가장 우수한 질을 가지고 있을 때도 있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조선일보>의 특수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언론 중에 <조선일보>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예전의 한국언론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문이라고 볼 수 있다. 사상의 다양성, 인권 등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가치조차 잊게 만드는 냉전시대의 반공주의, <조선일보> 내의 편중인사에서도 드러나는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반호남주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행태 등은 사실 과거에는 조선일보가 주도했다고는 할 수 있을 망정 거의 모든 언론이 다 가지고 있던 문제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다른 언론이 변한 만큼 <조선일보>는 변하지 않았다. 다른 언론이 시대에 굴복했다면, <조선일보>는 시대를 만들어갈려고-물론 좋은 의미로 쓴말이 아니다-노력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지금도 계속되기에 우리는 그 해악에 치를 떤다. 그런 면에서 <조선일보>는 분명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도덕성의 문제이다. <조선일보>는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왜곡을 자행하고 있어 신문의 가장 큰 철칙인 '사실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과감한 왜곡'의 수위는 다른 언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전술적인 측면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가 아닌, 모든 언론, 혹은 조중동을 다 문제삼는다면 그 싸움은 도저히 승산이 없어진다. 지식인들에게 기고 거부·인터뷰 거부 선언을 요구한다거나, 학생들에게 취업거부 선언을 요구한다거나 하는 액션도 취할 수 없다. 그리고 우선은 만약 그럴 경우 일반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인터넷이 발달했다지만 진지한 글을 읽기 원하는 사람은 신문을 믿는다. 인터넷에서는 골치 아픈 글을 읽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신문사의 기사가 올바른 시각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더 많은 언론을 상대하게 되면 그 실현이 어렵다.

그렇다고 안티조선 운동이 다른 언론의 문제를 방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운동의 전술적 틀 안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효과를 극대화한 대신, 그 한계가 뻔하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해악이 이러한 전술 채택에 타당성을 부여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는 내부성원들은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혹은 <한겨레신문>의 기사가 이상해도 분명히 비판할 것이고, 실제로 비판하고 있다. 그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안티조선운동'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때는 <조선일보>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조선일보>에 비판을 하면, 언론사 간의 경쟁심리를 이용할 수 있고, <조선일보>를 벤처마킹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 아니라는 인식을 언론사에 심어줄 수 있다. <동아일보>,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따라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들이 <조선일보>와 다른 상술을 가지는 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한 경쟁은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신문 권력은 서로간에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해 왔다. 동업자를 비판하지 않는 그들의 행태는 다른 이를 까발리는 언론권력을 아무도 까발리는 사람이 없는 작금의 모순된 현실을 만들었다. '안티조선'은 이를 깨뜨리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한겨레신문>의 언론개혁 시리즈는 미흡한 면이 많았지만 그 시도는 용감했다. 만약 <한겨레신문>이 그 시도를 통해 일정한 이익을 얻었다면 다른 언론도 그같은 전술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언론의 경쟁심리를 발전적인 측면에서 자극한다는 점에서 안티조선운동은 <조선일보> 이외의 신문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안티조선 운동은 다른 언론개혁 운동과 구별되어 존재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조선일보>의 도덕성을 문제삼는다

안티조선 운동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조선일보>의 도덕성이다. 신문이 사주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건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바이지만, <조선일보>가 그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도덕성 때문이다.

신문의 가장 큰 원칙은 사실보도일 테지만, <조선일보>는 스스로의 입맛에 맞게 소설을 쓴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 MBC 백분토론 사회자 유시민 씨를 공격한 <조선일보> 사설이 있다. 그 사설은 토론프로그램의 사회자 유시민이 개인적 사견을 가지는 것은 그르다고 맹공격하고 있다. 옳은 말일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일보>가 스스로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든 두가지 근거가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즉, 유시민 씨는 그날 자신이 신문고시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다만 한 패널이 찬성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말해줬을 뿐이다. 유시민 씨는 언론개혁을 위한 백인위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합류를 요청했으나, 거부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 '거짓말'을 대문짝 만하게 사설로 게재했다. 그리고 문제가 커지자 옴부즈맨 난에 조그맣게 정정기사를 올렸다. 사설을 읽고 유시민이 형평성 없는 사회자라고 인지한 독자들이 옴부즈맨 란의 정정기사를 모두 다 읽었을까? 또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 김영삼의 출입을 거부했던 고대생의 시위를 보도한 사진에서, 빡빡머리를 하고 김영삼을 포위(?)하고 있는 전경의 모습을 내보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시위 현장에 있었던 기자가 누가 학생이고 누가 전경인지 모를리는 없다. 다만 김영삼을 옹호하려는 <조선일보>의 욕망이 고대생을 좀더 흉폭하게 묘사하게 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할 뿐이다.

이전에 있었던 대표적인 왜곡 보도의 사례를 본다.

1)금강산댐 평화의 댐 보도, 집단광기의 비극                           

86년 10월 30일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석간신문을 통해 처음 보도된 금강산댐 관련보도는 정부의 정보조작과 이에 적극 호응한 언론이 만들어 낸 대형오보로 유명하다. 조선일보는 같은 해 10월 31일 이 건을 처음 보도했는데 '조국통일을 뇌까리는', '악마의 목적', '악마적 기도', '북괴', '무기화', '물의 남침' 등 어느 신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저속하고 섬뜩한 용어로 반북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섰다. 보도 첫날부터 '대응댐' 건설을 주장한 신문도 조선일보뿐이다.
10월 31일자 사설 "가공할 금강산댐,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적극적 대응책을"에서는 "예컨대, 휴전선으로 갈라진 북한강의 수로를 동해 쪽으로 역류시키기 위한 터널수로를 팔 수도 있을 것이다"라거나 "댐을 건설하여 충분한 저수능력 갖추는 것도 적극적적인 대처방안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등 '대응댐' 건설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이 '권고'를 받아들인 듯 11월 26일 정부는 대응댐을 건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조선일보는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된 이른바 '평화의 댐' 건설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정당화한 장본인인 셈이다. 결국 엄청난 예산낭비만 초래된 셈이다.

(민언련, "조선일보 허위, 왜곡보도 사례,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2) 김일성 사망설 관련보도, 세계적 특종 오보                           

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가 세계적 특종으로 보도한 '김일성 피살설'은 18일 김일성 주석이몽고 주석 영접을 위해 평양공항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틀 만에 오보로 확인되었다. 이를 최초로 보도한 조선일보는 11월 16일자에서 "북한 김일성이 암살됐다는 소문이 15일 나돌아 동경 외교가를 한동안 긴장시켰다"라고 했지만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휴간일인 17일 호외까지 발행했다. 18일에는 총 12면 중 7개 면에 걸쳐 사망 배경, 국내외 반응, 자사의 특종에 대한 자화자찬 등을 대서특필했으며 이날부터 다른 언론들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이상 징후를 발견할 수 없다는 평향주재 스웨덴 대사관의 발표나, 확인된 정보가 없으므로 분명해질 때까지 추측하지 않는다는 미 국무성의 브리핑 등 주목할 만한 내용들은 단신으로 처리, 무시했다. 더욱 중요한 도덕적 문제는 조선일보 가 이후 오보에 대한 그 어떤 사과나 반성없이 오히려 "한국 대외신뢰 실추기도 국민불신 조장 등 노린 듯"이라며 그 책임을 북측에 떠넘겨버렸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집단임을 스스로 또한번 입증했던 셈이다.

(민언련, "조선일보 허위, 왜곡보도 사례,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3) 성혜림 망명설 관련보도, 언론사 전설적 오보

조선일보가 '세계적 특종'이라고 자랑한 "김정일 본처 서방탈출" 보도는 5개 월여만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기부에 의해서 확인되었다. 안기부 당국자에 의하면 성혜림이 애초에 망명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부 차원에서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월간조선의 취재 내용을 토대로 96년 2월 13일부터 북한 최고권력자 김정일의 본처가 망명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리고 "김정일 후처들이 괴롭혀 결행"(2월 13일자),  "김정일 여성편력에 가슴앓이"(2월 14일자) 등 선정적인 제목으로 망명의 근거를 설명했다. 더욱이 조선일보는 "엄마 보러 모스크바로 갈게요"(2월 13일자), "오지마, 나 지금 무슨 계획 있어", "평양에는 안 들어가...나 갈데 있어"(2월 14일자) 등의 표현으로 마치 망명 의사를 밝히는 것처럼 긴박하고 현장감있게 기사를 써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는 등 상업적인 접근으로 일관했다. 뿐만 아니라 2월 17일자에서는 "무너지는 북한....정치권 공안통들의 분석"이라며 이를 북한붕괴론으로 이어갔다. 분단상업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광기이자, 한국언론사에 길이 남을 전설적 오보라 할 수 있겠다.

(민언련, "조선일보 허위, 왜곡보도 사례,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4) 윌 스트리트 저널 기사 왜곡, 엉뚱한 오역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의 엉뚱한 오역과 왜곡! 이른바 윌 스트리트 저널 사건이다. 지난 97년12월 24일자 조선일보 1면에는 "긴급제언 - 즉각 실천해야 산다"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필자는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 그는 이 글에서 우리에게 돈을 꾸어 줄 입장에 있는 외국, 특히 미국언론의 논조를 종합해 보면 그들의 여전히 돈주머니를 열지 않고 있는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첫번째 이유를 김대중 당선자로 지목했는데, 그 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의 언론들은 김대중 당선자를 아직도 의혹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12월 22일자 윌 스트리트 저널은 김 당선자를 가리켜 인기주의자(populist), 예측하기 어려운(unpredictable) 정치인이라고 표현하고 그의 경제정책을 근거없는(unfounded)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악의적 오역'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났다. populist는 '인기주의자'가 아닌 '인민주의자'로 해석하는 게 온당하다. 더더욱 조선일보의 악랄한 부도덕성이 드러난 심각한 문제는 다음의 두 단어 해석과 인용에 있다. unpredictable가 "예측하기 어려운"이라는 말은 맞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인용했다는 윌 스트리트 저널 97년 12월 22일자에 이 단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 단어는 12월 12일자에 북한과 관련해 나왔던 것이었다. 의미는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이었다. 너무 기가막히지 않은가? unfounded 역시 (김대중 경제정책이) "근거없는" 것이다의 의미가 아닌 (한국의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 "기반이 취약하다"로 해석하는게 온당했다.

([딴지일보 졸라 스페셜]과  민언련, "조선일보 허위, 왜곡보도 사례,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5) 월간조선 한국통신 악의적 보도, 정정문 게재

월간조선 95년 9월호에는 '한국통신 노조위원장은 그랜저를 타고 나지지 않았다'는 정정보도문이 게재됐다. 월간조선이 지난 8월호에 '김영삼 대통령 핵심 측근 익명 인터뷰' 제하의 기사중 '한국통신 노동조합위원장이 여비서를 두거나 그랜저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고 악의적으로 보도했다고 이를 정정한 것이다. 또한 월간조선은 한국통신 사태에 대한 물음에 대해 '우리나라는 소련의 10월 혁명 때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자가 생겼고, 그 3,4세들이 지금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회 곳곳의 배후세력으로 파업이나 데모를 조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통신 노조를 적시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통신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은 데 대한 답변이어서 그것이 노조를 겨냥했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풍겨지는 대목이다. 조선일보다운 발상이었다.

(미디어오늘 95년 9월 6일자 인용, 편집)



3. <조선일보>는 극우 세력이다.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사상을 극우(極右)로 규정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사상의 다양성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자유의 한계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지 않는 한에서이다. 사상에 대한 관용은 다른 이의 사상을 문제삼지 않는 선까지 이루어진다. <조선일보>는 사상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스스로 인정받을 수 없으며 안티의 대상이 된다. 생각이 다른 것은 토론으로 해결하면 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은 때려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토론의 자격이 박탈된다. 따라서 안티조선 운동은 스스로를 '상식운동'으로 규정하고, 이 운동에 보수와 진보가 구별없이 합류할 수 있다고 믿는다. 토론을 방해하는 세력에는 토론을 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공동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조선일보>가 극우라는 우리의 주장이 맞다면, <조선일보> 문제는 진보와 보수의 노선차이보다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극우가 사상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가 양날개가 되어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과연 극우인가? 

<조선일보>를 극우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례를 모아보았다.

1) 통일은 북한주석궁에 탱크가 주둔할 때 가능?

조선일보의 대북관은 한마디로 전쟁을 해서라도 화끈하게 공산당을 섬멸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실상의 흡수통일론을 내세운다. 월간조선의 편집장은 조갑제 씨는 98년 <조선노보>에 기고한 글에서 '바보나 위선자가 아닌한 대한민국의 통일은 국군의 탱크가 주석궁을 짓밟을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우리는 모두 바보이거나 위선자이다. 조갑제의 논리를 따라가보면 어느 정권이든 북한을 화끈하게 섬멸할 자신이 없거든, 이 분단체제를 끝까지 잘 고수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현정권의 대북화해 기조에 딴지를 걸고, 동업자인 부시를 그토록 찬양하는 이유는 그 때문인 듯 하다.

2) 이성 잃은 집단 조선일보의 장난식 대북보도

지난 남북정상회담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 북한의 인민군이 연주한 음악을 조선일보가 '북한의 혁명가'라며 한참 흥분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혁명가가 아닌, 독립군가였다. 왜 조선일보는 늘 이런 식일까? 조갑제를 한번 보자. 그는 김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면 절대로 웃어서는 안된다고 주문을 했었다. 정말이지 초등학생의 입에서조차 나오기 힘든 말이다. 어떻게 생각을 해도 그런 식으로 할까? 김대중이 김정일 앞에서 조금이라도 웃으면 대한민국의 위상이 그렇게 추락이 되는가? 김정일이 우리를 그렇게 우습게 볼까? 뿐만이 아니다. 그는 월간조선 2000년 6월호에서 '편집장의 편지'를 통해 '현재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공무원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놓으면 언젠가 써먹을 때가 있을 것이다'며 협박까지 했었다.

(진중권, "안티조선 교리문답" [왜 조선일보인가?] 인용, 편집)

3) 김정남, 한완상, 최장집 교수 등 사상 검증 

조선일보가 자랑하는 '사상 검증'은 김영삼 정권 하엔 김정남, 한완상을 그리고 김대중 정권하에선 최장집 교수 검증을 절정으로 화려한 불을 지폈다. 조선일보는 그들이 이른바 국가의 요직을 담당하고 있는 '공인'이었기 때문에 사상 검증을 했다고는 하지만, 공인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서도 수없이 많은 빨갱이 사냥을 해왔기에 이는 명백한 자기부정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자기들 비위에 거슬리는 세력들은 공인이건 비공인이건 사상을 검증해왔던 것이다.진정 사상 검증으로 따지자면 남북화해와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시국에 있어 냉전대결을 조장해온 조선일보야말로 검증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김정남, 한완상, 최장집 교수는 세간에 평가된 바대로 남북문제에 있어 좀더 평화적이고 발전적인 관계 모색을 위해 노력해왔던인물들이다.
이들이 조선일보의 눈에 거슬렸던 건 어찌보면 -그들 입장에서- 당연했을 것이다. 분단체제를 악착같이 고수하려는 조선일보에게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인사들은 여차없이 반격의 화살을 던져왔다. 그건 곧 그들에게 위기의식의 발로였고, 자기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앞으로도 언제든지 제2의 김정남, 한완상, 최장집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남북화해정책이 조선일보에 의해 유린당해야 하는지 실로 비극이 아닐 수없다.

(강준만, [조선일보 공화국] 인용, 편집)

4) 남조선 명함 파문 일으켜 이석현 의원 제명

1997년 8월, 대선을 불과 몇달 안남겨둔 시점 이른바 '이석현 의원(국민회의) 명함 파문'이 일어났었다. 범죄의 주체는 당연히 조선일보였다. 해외용 명함에 박힌 '한국'이라는 국호 옆괄호 속에 '남조선'이라는 표기를 했다 하여 이를 두고 신한국당과 극우단체들, 그리고 조선일보가 과잉 반응을 일으켜 결국 이석현 의원이 제명되는 기가 막힌 사건이었다.
그냥 남조선도 아닌 괄호 속의 남조선이었는데도, 입에 게거품을 물고 달려든 조선일보. 더더욱 비인간적이었던 조선일보의 행태는 이석현 의원이 조선일보에 직접 전화를 해 '남조선'이라는 표기는 괄호 속의 표기일 뿐(해외 인사들에 대한 친절 차원) 분명 '한국'이라는 단어가 표기되어 있다는 점을 표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일보가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고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조선일보 역시 전화 통화에서 정정보도를 해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음에도 이를 어기고 뻔뻔하게 '이석현 죽이기'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강준만, "조선일보의 비열한 이석현 죽이기", [월간 인물과 사상 98년 4월호] 인용, 편집)

5) 진보 인사 김태동에 대한 악의적 기사 남발

  조선일보의 김태동 관련 보도는 '마녀 사냥'을 방불케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대표적인 사설이 98년 2월 11일자이다.
"경제수석에 임명된 김태동씨에 대해서는 다수 언론 매체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한쪽 이익집단이기는 하지만 기업인들 역시 상당한 불안과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그러한 여론이 '검증'에 반영된 흔적은 없다. '일부 여론'이 반대하면내가 좋다고 확신하는 인재를 등용하지 말아야 하느냐고 하겠지만, 그렇다면 '언론을 통한 검증'이라는 것 자체를 처음부터 하지 않았어야 말이 된다."
그러나 조선일보, 김대중이 이리해도 저리해도 어차피 당신들은 김태동 임명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도했을 것임이 확실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은가. 그냥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우리 조선일보는 김태동 교수와 같이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들은 혐오한다. 왜? 우리는 이대로가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술을 마시며 건배를 외쳐도 절대로 '부라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럼 뭐라고 외치는가? '이대로!'이다. 개혁은 안 그래도 잘살고 있는 우리에게 귀찮은 비용일 뿐이다. 이대로, 그리고 영원히 우리는 반개혁을 외칠 것이다."

(강준만, [하이에나는 때를 기다린다] 인용, 편집)

6) 자신의 반대 세력은 좌파라 규정,이념논쟁화

월간 조선 95년 5월호에는 "좌담 : 인간 이승만의 크기와 깊이를 말한다"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글을 보면 조선일보는 "대한민국을 들어엎기 위해 이승만을 매도하는 친북세력이 역사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조선일보처럼 이승만을 영웅으로 떠받들면 대한 민국을 사랑하는 체제옹호자가 되지만, 이승만을 반대하면 졸지에 체제전복을 꿈꾸는 "친북세력"이 되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식으로 분단 현실을 악용해 반대의 논리를 '체제 문제'의 대결로 끌고 가려 한다.

(강준만, "한국엔 좌파와 조선일보밖에 없는가" [월간 인물과 사상 99년 2월호 인용, 편집)

7) 학문과 사상의 자유도 무조건 색깔론 제기 

93년 월간조선은 한완상 부총리의 통일관을 문제삼으며 색깔시비를 걸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학계 일부는 월간조선의 파렴치한 사상검증과 논문왜곡에 대해 강한 반발을 했었다. 월간조선은 '한완상의 충격적인 대북관 -한완상 통일원장관의 문제논문, 문제발언' 기사를 통해 그의 통일관 및 6.25 전쟁관이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을 하였다. 최장집 사건과 동일한 방법의 빨갱이 사냥이었다.
이에 대해 학자들은 이 기사가  "논문의 실제 내용과 관련된 내용은전혀 다루지 않은 채 서론의 한 구절만을 떼어내어 사회학 연구자들의 대표학회인 한국사회학회의 연구 성과를 편의적으로 해석하고 좌파적 경향성을 띈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고 지적하고, "이는 자율적인학술 논의를 위축시키는 것이며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크게 유린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후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부분만을 오려내 사상검증을 했던 이 방식은 98년 김대중 정권하에서 다시 최장집 교수에게 써먹게 된다.

(강준만, [조선일보 공화국] 인용, 편집)

8) 황석영, 조정래, 리영희 교수 등 사상 검증

조선일보가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빨갱이 사냥을 벌여왔던 건 비단 어제 오늘의 아니었다. 이에 내일신문 94년 5월 12일자 기사를 인용해 본다.
"월간조선이 소설가 황석영, 조정래, 리영희 교수 등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빨갱이 사냥'에 나선 이후 침묵을 지키던 재야 및 시민단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특히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송기숙)은 이들 세명이 모두 작가회의 회원인 점을 중시,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작가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월간조선 93년 8월호에 실린 황석영 진술서는 상당 부분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월간조선은 안기부에서 입수한 황석영씨 진술서를 세세하게 공개했는데, 이 공개 자체가 피의자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 행위일 뿐만 아니라 그 사실 자체도 조작된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 지난 85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왜곡보도에 항의한 광주 지역의 조선일보 불매운동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자 조선일보가 문병란 시인 등 광주 지역의 민주 인사들을 연속해서 월간조선에 실었던 사실은, 상품 논리 안에 묶여 있는 조선일보의 대응 방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월간조선의 섬뜩한 '지식인 사냥'으로 점화된 '작은 전쟁'의 파문은 관련단체인 작가회의를 포함한 재야, 시민단체의 대응여부에 따라 '큰 전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준만, "조선일보의 국가안보 상업주의" [월간 인물과 사상 98년 5월호] 인용, 편집)

9) 우지원, 이선희, 희망새, 한성주도 빨갱이화

조선일보는 1994년 4월 17일자 사회면에 "노래패 '희망새' 3명, 김일성 찬가 불러 구속" 제하의 기사에서
각종 집회에서 북한과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내용의 '붉은 산 검은 피'를 각색한 '아침은 빛나라'라는 노래를 부른 노래패 '희망새' 기악부장 허명순씨 등 3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는 보도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위 기사 내용 중 허명순, 최경아씨가 '아침은 빛나라'라는 노래를 부른 것은 사실이나, 위 노래는 '붉은 산 검은 피'를 각색한 노래가 아니며, '북한과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한편 월간조선 이동욱 기자는 "권오기 장관의 계인이 찍혀 있는 통일원 통일 캠페인 광고가 북한의 연방제 통일을 연상케 한다."며 "우지원, 한성주, 이선희의 광고 멘트가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른바 색깔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강준만, "조선일보의 국가안보 상업주의" [월간 인물과 사상 98년 5월호] 인용,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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