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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충돌을 야기하는 편협함-하나의 전선

조회 수 1122 추천 수 0 2001.12.19 02:57:00
어릴 때부터 저는 이렇게 '심판질'을 좋아했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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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렬 님은 내게 "상대방에게 무슨무슨 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편협하고 파쇼적이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그 주의임을 인정하기 전에는. 그런데 무릇 사람이 세계관없이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분을 보고 있으면 나와 말싸움을 하다가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내가 좀 덜 맞으려고, "아버지와는 세계관이 달라서 토론이 안돼요!" 라고 외치면 우리아버지는 잠시 주먹을 거두고 굵게 외쳤다. "세계관? 나한테 그런게 어딨어?! 그런거 없어!!" 그리고 나는 죽창 더 맞았다. 세계관이 없는 사람이 도대체 토론은 왜 하는가? 자식의 "세계관"을 없애기 위해?


동렬 님은 스스로 말씀하셨듯 이데올로기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이데올로기를 인정하지 않는 다는 것도 하나의 커다란 주의가 될 수 있다.

예를들어 나는 나 자신이야말로 정말로 이데올로기 자체를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실로 내가 믿고 있는 큰 지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언제나 남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에 걸맞는 소리 혹은 행동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만 신경을 쓴다. (즉, 그 사람의 내적 일관성만을 따져보고 그 위에서 비판한다.) 나는 아무것도 진실로 믿고 있는게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말조차도. (내게 그것은, 그런 말도 없으면 너무 굶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정도의 실용적 의미를 가지는 말이다.) 


그런 내 입장에서 보면 동렬 님이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이분은 이데올로기가 없다고 말하면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악이고 촌스러운 것으로 규정하며 공박하고 있다.


얼마나 심한 공박이었는가? "자기만족을 위주로 하는 취미그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상아탑" "절망적 선택" 단지 (진보적/좌파적) 이데올로기가지고 있다고 이런 소리 들었다.  이보다 더 "편협하고 파쇼적"일 수도 있을까. 


이데올로기 병, 거대담론 병을 말할 때는 그 거창한 이념이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상태를 지적해야 한다. 붕떠서 입으로는 거대담론을 외치고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상태를 말해야 한다. 동렬 님은 자신이 그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 보다. 그러나 거듭 나오는 "상아탑"이라는 단어는 그쪽 사람들의 거부감을 일으킬 뿐이다. 현장에 나와 투쟁하는 사람들에게 상아탑이라고? 그래, 예를 들면 동렬 님이 말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사람들이 그러하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노동문제가 현실에 붕뜬 말인가? 정리해고가 현실에 붕 뜬 말인가? 이곳 게시판에서 "정리해고 없이 구조조정하라"는 노혜경님의 글이 올라왔을 때,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구체적인 정책 사안에 대해서 그렇게 말이 나왔다는 것은 한쪽이 거대담론병이 걸린게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이 다름을 의미한다. 그 한쪽을 꺾어버리고서 무슨 노무 토론이 되고 무슨 노무 설득이 되겠는가?


그리고 동렬 님이 지적한 좌파들의 잘못된 현실인식에 대해서는, 내가 말했다. 민주노동당에는 일반적으로 그런 좌파들이 별로 없다고. (사실 그동안 강준만 교수가 비판한 살롱좌파들 중 민주노동당 지지자나 당원은 거의 없다.) 이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최근에 자신은 민노당에 대해 잘 모른단다. 접할 기회가 없단다. 모르는 것에 대해 그렇게 수식어를 부여하고 큰 소리로 떠든단 말인가? 강준만과의 논쟁이란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두편의 글만 보고?

 
진보정당이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은 것은 그들 자신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영역을 진보진영으로 확장하면, 분명히 그들의 책임일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한,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 씨부렁댈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는 거다. 강준만이 했듯 홍보자체의 부재에 대해 말한다면 또 모르겠다. 무얼 알고 떠든단 말인가. 조선일보 독자가 막연히 노무현에 대해서 지나가는 말투로 "그 사람 좀 편협하죠"라고 지껄이는 것과 당신들의 발화가 질적으로 다름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합리적 보수주의자"라는 명칭은 그저 붙여준 것이다. 일단 뚜렷이 구별되는 두 대상이 있다. 이름을 붙여야 한다. 한국상황에 꼭 맞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것을 찾아 붙여야 한다. 그것이 기분나쁘다면 "개혁적 자유주의자"라고도 해줄 수 있고, 강준만 교수가 자유주의자 명칭을 싫어한다니 아예 행동 철학만 보고 "단계적 현실타개론자"라고도 해줄 수 있다. 일단 구별되는 두개의 명칭이 있는 이상 나는 내 구별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낀다. 다만 용어가 섬세하지 못했다면 지적을 바랄 뿐이다. 김대중을 신자유주의자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것은 칭찬이라니까 그러네. 경제학을 보면 나름대로 입장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상황이 물론 특수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고대 중세 근대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나누는가? 서양의 고대 중세 근대와 고대로 똑같은 것이 우리 역사에 존재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비스무레한 것에 대해 용어를 정하는데 그토록 발끈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한쪽의 세계관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박상화 님의 사고방식과 김동렬 님의 사고방식이 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고 본다. 다른 전선을 볼 수 있는 능력자체가 없는 것이다. 전자는 한국사회에서 한줌도 안되니 큰 상관이 없다지만 후자의 존재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야 오래 살지 못해 잘 모르지만 예전엔 하나의 대의와 하나의 목표, 이데올로기로 투쟁이 가능했다고 한다. 전선은 하나였고, 이념은 강고했다. 그때의 반작용으로 이데올로기의 제거, 대중으로 돌아감, 문화담론의 의미가 커져가는 지 모르겠다. 그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조류에 편승한 최첨단 실천운동인 안티조선을 한다는 사람들이, 사고방식이 그때의 "하나의 전선"으로 되돌아간다. 대단히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노동운동은 필요하지 않은가? 기다려야 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 안티조선은 노동문제를 외면합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는 언론운동이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한국 사회의 모든 것을 책임지지는 않으니까요."라고 답해야 한다. 그것은 그리고 노동운동이 따로 존재해야 함을 무엇보다도 잘 드러내 주는 답변이다.


  나는 인터넷 매체까지 포함해서 필자들이 대중음악에 대해 쓰는 글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중음악의 질서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인디밴드다. 내가 그들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보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수준 떨어지는 뮤지션의 팬덤 내부에서도 변혁의 움직임이 있음을 그들이 보지 못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태지 팬들이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에 앞장선다거나. HOT GOD 팬들이 기획사가 가수에 휘두르는 폭력에 대해서 고발한다거나. 이들의 행동은 시스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들의 시각의 맹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그들의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활동이 의미없거나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글의 대다수가 그쪽으로 쏠려있기에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안티조선의 형세는 서태지 팬들이 "그 쪽수로 뭘해보겠어?"라고 인디밴드 지지자들을 빈정거리는 형국이다. (나는 안티-서태지 공연 자체는 삽질이라고 보지만 인디밴드 하는 애들이 서태지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은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본다.) 아이돌 가수팬들이 서태지 팬들 더러 "어이구, 서태지는 티비도 안 나오면서 무슨 수로 매체를 개혁하겠다구?"라고 말하는 형국이다. 반작용이라긴 해도 이것이 폭력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쪽수의 폭력. 꼭 그들 중 한집단만이 선이고 대중음악판을 바꿀 수 있는가? 가령 서로가 빠순이니 현실을 모르는 넘들이니 서로 욕을 하면서 나가야 하겠는가? (사실 현재 이런 실정이다. ㅡㅡ;;)


김동렬 님, 유민호 님의 평소 글은 좋아하지만, 그들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서태지로 뭉쳐라, 인디밴드는 다 삽질이다!" 물론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인디밴드는 알려진 바가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보고 떠들으랴.


미둥 님과 천이 님의 공방에 대해서는 두분의 논지에 모두 공감을 느꼈지만, 예를 들면 이런거다. 미둥 님은 룰을 정비하는 것을 노무현, 좋은 패를 가진 것을 진보정당이라고 보았다. 천이 님은 진보정당도 상식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건 세계관이 다르거나 우선순위나 방법론이 다른 거다. 여기서는 한쪽의 입장을 강권한다는 게 있을 수 없다. 힘의 논리 현실의 논리를 말하는 것은 조선일보 식에 끌려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미둥 님이 말한 것은 상식 중에서도 아주 기초적인, 어떻게 보면 뻔한 상식이다. 총선시민연대가 부정부패자는 다시 당선시키지 말자며 낙선운동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보다 더 진전된 상식은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낙선운동하는 것이다. 아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상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을 놔두는 게 어떻게 상식적이랴! 그러나 이는 이미 받아들이는 국민의 입장에서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관이 다른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전선은 반드시 나뉘어야 한다. 그 어느 쪽으로도 몰아주기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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