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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김영민의 언어를 빌려 안티조선 운동에 대한 스스로의 관점을 천명하고 있다. 역시 아흐리만으로 안티조선 우리모두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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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의 오랜 언론 모니터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티조선의 시작에 지대한 공로를 한 사람이 강준만 교수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문제란 것은 사실 어느 누구의 표현에 의하면 "강준만이라는 자유주의자가 발견한 문제"인 것이다.


김영민 교수는 <강준만의 실명 비판 : 단계적 자유주의자의 현실타개론> 이라는 글을 통해 강준만 교수를 비롯한 안티조선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에 대한 다른 지식인들의 비판이 어떻게 현실과 유리되어 있고 권위의식에 쌓여있는 지를 지적한다. 이 글은 안티조선 운동의 논리가 "단계적 현실 타개"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강준만 교수 본인이나 안티조선을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유는 안티조선 운동이 대안이 없고 비전이 없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는 유토피아적인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에 피해를 주고 있는 원인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는 논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으며, 그것은 카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론과 닮아 있다고 김영민 교수는 말한다. 


그래서 "이 운동이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할 말을 잃는다. 가능한 대답은 지극히 보수적 자유민주주의자가 그릴 수 있는 세계관 정도이다. 따라서 안티조선은 우파들의 운동, 부르주아 운동 등등의 수식어로 규정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안티조선은 자유민주주의 라는 우파 보수주의자를 지키기 위한 운동이며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극우파가 준동하는 세상에서 - 좌파들은 일단 극우 헤게모니가 약화되는 사회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우파들의 일을 도와준다는 김규항의 현실인식에는 일리가 있다.


극우파를 공격할 논리는 충분하다. 조선일보는 사상의 자유를 말하지만,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에는 자유를 인정해 줄 수 없다."는 훌륭한 논거가 있다. 빨갱이 사냥을 하는 조선일보가 조선일보의 논지를 공격하고 기고 거부를 하는 정도를 가지고 조선일보 논조의 자유 훼손을 말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티조선은 그것만으로 규정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는 조선일보의 주요 논객들의 글을 해부하고 극우 소설가 이인화를 강도높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 후에는 주로 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문제삼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사상과 일치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식인이 자기 안에 모순을 품고도 반성없이 살아 가고 있는 현실에 일침을 놓은 것이다.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데에 자유민주주의 라는 우파적인 가치가 자주 사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안티조선이 지극히 우파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조선일보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안보"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연유한다. 우리 사회에 흔한 일이지만, 자유민주주의를 강력하게 수호하는 조선일보의 사상은 사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물론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말하긴 하지만 그나마 훨씬 더 소신있고 솔직하게 극우적 사상을 피력하는 한국논단에 대해 우리가 관대한 이유는 그들이 조선일보보다 더 내적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내적 일관성"의 잣대로 안티조선을 바라보게 되면 좌파. 진보진영의 안티조선에의 참여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즉 그들은 단순히 우파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모순을 없애고 내적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안티조선에 참여하는 것이다. 좌파 지식인으로써 조선일보에 기고를 하고, 그것을 현대사회의 복잡성이나 다층성, 복잡한 전선 운운하며 핑계를 대는 것이 결코 일관성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들이 정말로 한국논단이나 혹은 그 이상의 극우적 인식에 갇혀있다면 이 운동은 명확한 안티-극우 전선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고,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조선일보 역시 건전한 보수의 주장 속에서 극우적인 언사를 섞기도 하고 문화담론에서는 심지어 진보적인 냄새를 풍기면서 이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내적 일관성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설령 그 모순이 발견되더라도 관대하게 넘어가는 사회이다.


그리고 안티조선은 "단계적 현실타개"의 논리와 함께 심지어 지식인 사회에서까지 실종되어 버렸던 "내적 일관성"의 잣대를 들이대며 시작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신들의 모순을 후벼파는 것은 너무도 큰 아픔이었기에 외면하고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본능적으로 그들의 모순을 알고 있었기에 김영민 교수의 말대로 "강준만의 글을 무시하면서 그의 주장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는 이중성"을 드러냈다.


물론 그것은 지식인들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할 잣대이지만, 그 잣대에 자신을 검증해 보는 일반시민이 많은 사회가 더 합리적이며 건전한 사회일 것이다. "극우파의 사상 검증이 없는 사회"라는 소망과 함께 안티조선이 목표로 해야 할 지점은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안티조선을 말하는 시민들이 단순히 조선일보만을 적으로 선정하고 타격하는 데 열중하는 환원주의에 빠지지 말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함은 이 때문이다. 스스로 많은 것을 얻고 배우는 재미가 있는 안티조선이 되었으면 한다.


                                                                  아흐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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