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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1) 현재 상황 브리핑


최초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계기로 터진, MB식 사회정책과 (아마도,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참여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불씨를 지피는 데엔 MBC PD 수첩의 저널리즘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조중동이 이에 대해 ‘잘못된 방송의 선동’, ‘비과학적인 괴담’, ‘배후세력론’으로 대응하면서 점차 ‘사람들이 뿔났다’. 다이나믹하고 감정적인 한국 사람들은 머슴을 자처하던 대통령의 흰소리를 참지 못했다. 갑자기 사람들의 정서는 “너는 대체 뭔 용가리 통뼈길래 우리 말을 이렇게 안 쳐듣는 건가효?”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정치세력은 거의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론은 촛불시위의 대세가 되었다. 박근혜와 이회창마저도 재협상론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성난 시민들의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운동’은 조중동의 논조를 길들여 드디어 조중동조차 이명박 정부의 협상은 졸속적이었고,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가 여론과 소통하는데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청와대가 제발 독자적으로 사고치지 말고 자신들의 ‘보수적(!)’ 태도에 귀기울이길 원한다. 거리에서 십만 명이 자신들을 욕하는 꼴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와대 사람들도 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2) 시위의 성격


앞서 얘기했듯이 이 시위는 참여자들이 느끼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는데,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시피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 시위’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반-세계화의 문맥에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위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명박이 독재정권이라서가 아니라, 1)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2) 그 결과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외칠 수 있도록 국가의 권한을 시장에 양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국가와 시장을 하나의 대상을 포섭하는 두 개의 다른 권력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국가가 삼성에 권력을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보다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국기업에게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이 월등한 것이다. FTA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 국가를 허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말타고 벌판 달리는 참여정부의 공익광고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듯 싶다. 그것이 이 시위의 성격을 ‘친 참여정부’적인 것으로 만든다. 노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를 한번이라도 지지했거나 잠깐이라도 호감을 가졌던 이들이 모두 그러하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성격을 간략하게 규명하면, 시위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민주주의’나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간단하게 말하면 ‘관료들의 나라’였다. 정치경제적으로는 관료들이 대기업 편의적인 경제정책과 그 편의적 정책의 한 방편으로서의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체제였다. 참여정부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임종인 전 의원의 지적이나, 참여정부가 써버릴 수 있는 정책을 다 써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양극화의 심화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의도한 바대로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관료조직의 외곽에 있는 ‘위원회’를 통해 문화적인 면에서는 민족-국가담론을 유포하는데 힘썼다. 민족주의자들의 용어를 활용하면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조중동이 비아냥거린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거기서 나왔다. 과거사 진상규명, 친일파 청산, 문화재 복원 등을 실시했던 이 위원회들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이념적인 이유로, 그리고 이명박은 반실용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부인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참여정부의 개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위원회에 있고, 이것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시책마저 국가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 일컬어진 참여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을 보자면, 참여정부의 담당자들조차도 지지자의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국가를 약화시키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는 국가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은 이처럼 다소 혼란스러운 ‘국가’나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봐도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의 이념을 훼손시키는 것이 명명백백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참여정부의 ‘우파적 관료주의’를 더 오른쪽에서 혁명적으로 돌파하려다 삽질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시위대와 그 지지자들은 그들이 이명박이 노무현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정당하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문제를 갈파하는 이들이 아무리 분석한다 해도, 이 경험은 넘어설 수 없고,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도 막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위대의 구호가 자기 진화하여 그 향수에 모순되는 행위에 나서도록 시위대와 ‘함께 하는’ 일이다.


반면 시위의 성격을 그 자체로 뜯어 고치려는 행위는 아예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적절한 반응도 아니다. 차라리 그보다 일관성있는 비평은 아예 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위가 해야 할 일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적절한 반응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파트에서 논의한다. 


(3)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일


카드가 별로 없다. 크게 보아 1) 계속 이대로 간다! 와 2) 한나라당(박근혜와 홍준표?)에 항복한다. 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재협상 수준에 근접하는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것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WTO 위반에 해당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재협상보다도 미국 행정부를 더 당황하게 만들 일이다.


이명박은 재협상을 실시하여 시위대를 만족 혹은 분열시키고 한나라당에 대한 청와대의 우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게 임기 초반 레임덕을 막을 유일한 카드다. 왜냐하면 계속 이대로 밀어붙여봤자 길게 보아 2년 후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한나라당에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게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단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한미 FTA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멍청하다. 만일 그가 정말로 스스로 말한대로, “한미 FTA 협정은 한국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협상을 파기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느 정도 멍청하냐하면,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믿는 노무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두 멍청한 정치인들은 의도되지 않은 합작 플레이로 그 둘보다 멍청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위인인 이명박을 외통수로 몰아넣고 있다. 이명박이 처한 곤경을 ‘노무현의 덫’, 혹은 ‘거짓말쟁이의 늪’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되뇌어 왔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1) 참여정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해 왔거등요~ 
2) 어머, 근데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했어!
3)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값으로 한미 FTA만은 비준해야돼!!


뭐 이런 논법이다. (덧붙여, 지금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성장의 방법으로 한미 FTA 이외의 대안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 있고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파트에서 설명한다.) 그래서 부시 있을 때 협정처리하려고 다 퍼주며 매달렸는데, 촛불시위대에 부딪혀 어떻게 하지도 못하게 생겼고, 조금 있으면 또다른 멍청이 오바마가 나타나 친히 밥그릇을 차줄 운명이다. 이명박, 두 멍청이들의 뚝심에 아주 바보되게 생겼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립인가? 박근혜라는 건 영남 보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크게 보아 이 싸움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는 멍청이들’ vs ‘제가 한 거짓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은 알고 있는 악랄한 놈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멍청이들보다는 악랄한 놈들이 이기는 쪽이 대한민국에는 좋다. 이명박은 멍청이들의 수장이고, 계속 전진하다가 악랄한 놈들에게 패배하거나, 바로 지금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4)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이런 틀에서 볼 때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도 생기게 된다. 죽쒀서 개주는 꼴이지만 일단 한나라당과 조중동, 혹은 구체적인 인물로서 박근혜가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시위대는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 좀더 완벽한 승리는 앞서 말했던 ‘악랄한 놈들’을 확실히 승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의 참여정부로의 회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재협상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대운하와 민영화를 저지하고, 다시 관료들의 느긋한 흐름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이 정부는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가 된다. 박근혜와 홍준표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면 이 정도까지는 갈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의 지지기반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북정책은 되돌리기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관료들에게 맡긴다 치면 지금의 꼴통 외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박이 시위대가 할 일이다.


나는 2008년 6월에 이명박 정부에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입조심 좀 한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이 갑자기 미쳐서 한번 더 폭력진압을 하고 말 그대로 6. 10 항쟁이 일어나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폭력진압이 오히려 사람들을 흥분시킨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쪽 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너희들은 떠들어라. 하지만 국가는 내가 운용한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인터넷 여론 담당자'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그의 여론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 보건대, 이 담당자는 '수렴'보다 '통제'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정부는 네이버나 다음에 대해 어떤 식의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이미 금칙어 설정 등의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올블로그에 대한 누군가의 해킹 시도도 석연치 않다. 만일 이명박의 속내가 그러하다면, 정말로 이제 변수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된다. 유가폭등으로 인해 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또한 미국산 쇠고기 거부 투쟁 역시 선언한 상태인데, 촛불시위와 ‘불법파업’을 분리시켜 대응하려는 정부에 대해 시위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시위대가 지지하고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시작한다면 이명박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행정부는 힘이 세다. 지방선거가 참패한 이후라면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도 ‘거리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가 승리한 이후라도 한나라당 정부의 남은 임기를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의 수준은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다고 나라가 확연히 좋아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천운이 도와 시위대가 이명박을 수월하게 패배시킨 경우에도 ‘민주주의’라는 시위의 구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가 남아 있다. 이명박의 독선은 선거가 없는 기간에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힘든 ‘87년 체제’의 허점을 드러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들도 불만이 있다. 조중동의 일각에선 ‘(노무현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받을 걸 그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단임제라서 여당이나 ‘여당 나팔수’말도 안 쳐듣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하야하고 박근혜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오지 않는 이상, 박근혜와 홍준표의 한나라당은 내각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치 행위는 시위대가 원했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행위다. 행정부의 임기와 입법부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노무현식 개헌안은 선거가 없는 기간 동안 국민들이 무력한 ‘위임 민주주의’를 오히려 조장한다. 내각제 역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제보다도 시위를 통해 압박하기 힘든 정치체제다. 이런 제안에 반대하여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 등을 고민하고 의미있는 의제로 주창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성취해낸다면, 시위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니 200% 이상 달성한 것이다.  


(5) 참여정부도 싫어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


참여정부에 향수를 느끼는 시민들의 시위대가 해야 할 일도 이렇게나 많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런 저런 비일상적인 변수가 오묘하게 개입하여 정말로 우리의 시위가 더 이상을 이룩해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없겠으나, 그런 가능성에 기대고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참여정부의 그것과 구별되는 사회경제정책으로 민주화를 심층화시키려는 이들은 시위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현성 있는 사회경제정책을 총괄적으로 수립해 나가고, 또한 홍보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러한 홍보의 장도 더 크게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위대 자체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이는 다른 문제다.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관료주의의 문제다.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관료다. 지금껏 한 가지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온 우리의 관료들은 우리의 지향에 도움을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경험적인 면에서 이기기란 매우 어렵다. 구호를 통해 권력만 잡는다고 그들을 통제하여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료들을 닦달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좌파 정치인의 무능으로 답습될 수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책보좌관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진보신당의 경우 이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관료들의 경험을 습득할 수 없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심화된 정책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번째는 성장 동력의 문제다. 성장-분배 논쟁이란 건 이름부터가 성장주의자들의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 실현과 성과가 매우 의심스러운) 한미 FTA 이외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문국현의 ‘중소기업론’이었겠지만, 그는 이 대안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심화된 정책연구로 제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CEO 시절의 업적과 불가능한 구호(몇백만 일자리, 8% 성장)로 그 이미지를 압축시키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명박의 대항마인 코미디언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진보신당도 가령 심상정의 3박자 경제론 등을 보완 발전시켜 분배 문제뿐 아니라 우파 정당과 구별되는 성장 동력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좌파정당 있는 민주주의 정당체제’를 한국에서 보기란 어려울 것이고, 진보신당은 일본 공산당식으로 기초의원의 구역으로 내려가 지역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에 힘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시위의 성격

2008.06.07 16:14:18
*.48.12.102

반세계화는 외국이 한국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내부에서는 누구나 이것이 반 세계화 시위가 아니라(혹은 반 소고기 시위가 아니라) 반 이명박 시위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이죠.

여기서 시민들이 반 세계화 시위를 하고 있으면서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무지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것은 외국의 관점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시민들은 알고 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모르는 척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죠. 그런데 님은 이 모르는 척을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기서 굳이 추측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반세계화 시위라는 것은 시위대의 구호만 봐도 이미 틀린 것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시위대들은 반 FTA를 외치지 않고 재협상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협상이란 무엇입니까. 기본적으로 FTA 즉 세계화 자체는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시위가 반 세계화라면 재협상이 아니라 무협상, 반 FTA를 외쳐야 할 것입니다.

하뉴녕

2008.06.07 17:47:00
*.180.10.151

"반세계화는 외국이 한국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은 맞구요. 그리고 반세계화 시위라면 FTA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지적엔 동의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의견이 분명치 않아요. 거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이번에 보니 거부할만 하다는 사람도 있고, 별 입장이 없거나 찬성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정말로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니 외신들은 한국인들을 이해 못하고 있는 것인데, 저는 좀 다른 식의 설명을 해보고 있는 겁니다.


님은 "시민들은 알고 있고 모르는 척 하고 있을 뿐"이라 하셨는데, 강조점은 좀 다르지만 제 의견도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세계화라는 논점에 대해선 신경쓰려고 하지 않죠. 그래서 '무지'라는 단어 뒤에 (?)를 붙인 것이구요.


기본적으로 제 의견은 "쇠고기 담론은 비과학적 괴담으로 생각하고 시위 자체는 반세계화의 문맥으로 파악하려고 하는" 외신의 시선에 대해서, 이 시위에서 요구하는 '민주주의'라는 요구가 반세계화의 문맥에 적합한 것임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외신은 반세계화 시위를 해야 하는데 이상한 논점을 부여잡고 있는 한국인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이상할 게 없다고 말하는 것이죠. 쇠고기 문제에 대한 열띤 반향은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죽을 것 같아서 흥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부가 국민 여론을 전혀 수렴하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단계로 넘어갔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선, 평균적인 집회 참가자들 중에서도 동의하실 분들이 꽤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쇠고기 검역주권이 한번 넘어가 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지든 국가가 통제를 못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분명 반세계화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라는 생각이죠. 시위의 본질이 반세계화라는 게 아니라, 국가를 지키는 입장에서 세계화의 어떤 부분을 거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한국인들은 왜 새삼스레 이 문제에 이토록 흥분했는가, 그동안 그들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이미 국가의 역할을 마구 축소시키지 않았던가, 라는문제에 대해서 해명이 필요했구요. 그게 본문 내용의 큰 부분을 이룹니다. 또 반-이명박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명박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 것인가, 라는 점에 대해서는 분석이 되어야겠지요. 사람들이 내건 '민주주의'라는 요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분석하면서, 그 점을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최소한 참여정부 지지자들이 이 분석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 주변의 (제가 경상도 출신이라서요.) 박근혜 지지자들과 대화를 나누어본 결과도 대동소이합니다.

인형사

2008.06.07 23:55:30
*.100.49.134

재미있는 글이군요. 결국은 반세계화시위라는 이야기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안전의 기준이 약화되었고 그것이 민감한 먹거리를 건드린 것에 대해 국민들이 반발한 것이고, 여기서 최초원인은 미국과의 협상이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무덤덤했던 공공성의 영역의 축소가 더 이상 방관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느끼는 계기가 되었겠지요. 이것은 확장시키고 연결하기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커질 수 있는 화두이겠지요.

확신에 찬 바보보다는 위선자가 낫다는 것에는 동의하는데, 과연 박근혜측 사람들은 자기들의 거짓말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가요? 그저 의자앉기 게임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지 과연 이명박의 사람들과 질적 차이가 있는 사람들인가요? 지금 이명박 측과의 대립 때문에 그 차이가 과장되게 보이는 것은 아닐까요?

두 번째 문제는 과연 박근혜 측이 승계를 한다고 난국을 수습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지요. 이번 시위와 재보궐 선거가 보여준 것은 그 동안 철옹성 처럼 보여졌던 한나라당 지지층의 상당부분이 실은 야당표에 불과했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 야당표는 이제는 여당이 된 한나라당으로 부터 신속히 이탈을 할 것이며, 한나라당이 어떤 수를 써도 그 이탈을 막지 못 할지도 모릅니다. 노무현과 열린 우리당이 지지층 이탈에 속수무책이었던 것 처럼 말입니다. 오히려 열린 우리당이 여당을 하면서 망가진 것보다 몇 배로 더 망가질지도 모르지요.

만약 그렇다면 박근혜가 사태를 장악하고 수습하는 것도 불가능할 지 모릅니다. 거리의 정치는 이명박의 몰락 이후에도 쭉 계속될 수 있습니다.

서론은 반세계화 시위인데, 결론은 신자유주의적 관료의 복권이군요.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군요.

앞으로의 상황은 훨씬 더 유동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삭줍기할 틈이 없을지도 모르지요.

하뉴녕

2008.06.08 09:49:43
*.180.10.151

저도 박근혜 측이 '위선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구요. 박근혜는 그냥 하나의 기호일 뿐이죠. 그 옆에 위선자가 포진하도록 하려면, 시민들이 더더욱 대운하나 민영화 같은 이슈에 대해 반대를 해야겠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통합민주당의 능력으로 지금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가져갈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수혜자는 박근혜가 될 수밖에 없는데, 박근혜가 무슨 일을 하고 누구를 쓰느냐는 문제는 시민들의 압박으로 결정될 것 같습니다.

ivN6

2008.06.08 01:45:42
*.77.73.75

정말 적절한 상황판단인 것 같아.

하지만, 관료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 아니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될까?

정당이 국가가 어떤 식으로 나아가야하는 지에 대한 큰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그 방향을 위한 단계적 방안과 전략은 관료가 해야 되고.. 뭐 이런식으로 나라가 굴러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정당은 그런 수준은 커녕 그 발톱의 때 수준도 안되니, 관료를 지휘하는 대통령이 그 방향을 설정하고 관료가 거기에 맞추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 _-

왠지 시위는 끝나지 않을 것 같고. 이 운동이 어떠한 정당으로 제대로 현출되었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덧말 : 진보신당이 관료에 대해서 시각을 적절하게 정립하는 게 정말 한시가 급한 듯.

하뉴녕

2008.06.08 09:51:35
*.180.10.151

오히려 관료가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게 내 생각이기도 한 것이지. 하지만, 지금의 관료들이 이른바 '진보적' 틀에서 정책을 입안해 본 경험이 없으니, 진보적인 정책을 입안하려면 관료들의 경험을 수용하면서도 넘어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고.

이게 일을 어떻게 배웠느냐의 문제이니만큼 전공노와 진보신당이 연합한다고 될 일도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고, 결국엔 정책연구를 얼마나 잘 하느냐...에 있지 않을까.

근데 나도 이건 실무경험이 전혀 없으니 그저 '깜'으로 하는 얘기이긴 해.

ivN6

2008.06.08 22:44:41
*.77.73.75

내가 관료가 되어서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점점 감이 오는 듯한 답변이군.

관료가 할 수 있는 것이 분명 많아. 하지만, 관료는 어느 방향이 맞는 지 답을 명확히 내릴 권한도 없고, 그런 성향도 부족해. 오히려 정책연구도 얼마나 잘 하느냐 보다는, 어떤 방향이 옳으냐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고 거기에 관료를 동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아무래도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게 관료니까 ㅋㅋㅋ

인형사

2008.06.08 10:30:22
*.105.72.146

의인을 찾는 것도 아니고 위선자를 찾아야만 구원 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 참으로 멋진 신세계지요.
그런데 솔직히 위선자라도 제대로 있을 지 의문입니다. 이명박이 물을 길어낸 우물이 박근혜가 길어낼 우물과 다른 우물일까요? 그들의 소위 잃어버린 십년은 스스로를 철저히 망가뜨려 온 과정이었능 겁니다. 욕잘하고, 탐욕스럽고, 허영에 찬 사람들만 키워서 전혀 수권능력이 없다는 것이 이번에 밝혀진 것이 아닐까요?
위선자라도 찾을 수 없으면 이번 사태는 한국 정치체제의 총체적 붕괴를 예고하는 서곡일지도 모릅니다.

하뉴녕

2008.06.08 12:07:23
*.176.49.134

문제는, '총체적 붕괴'는 누구에게도 좋지 않다는 거지요. 대통령이 '식물'이 되고 관료들에게 맡겨두면 참여정부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일단은 그 정도에서 버티고 다른 세력들이 더 성장해야 합니다. 그게 제일 좋아요.

그리고 체제라는 게 아무리 멍청해 보여도 자기 폐쇄적이고 자기 보완적인 측면이 있어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이 시위대는 체제를 무너뜨릴 정도의 역량이 없다는게 제 판단입니다.

게다가 그새 또 정국이 바뀌었는데, 과연 이명박은 '항복'하려고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폭력시위한 이들을 강하게 처벌하고, 그후의 시위를 진압하면서 소위 '시민' 시위대들을 분열시키려고 하겠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도 말했듯이, 이명박은 아직 진 게 아니에요.

인형사

2008.06.09 06:05:30
*.105.72.146

총체적 붕괴는 모두에게 불행이겠지요.

그런데 저의 시금석은 황우석 사태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대중의 반란을 보았다면, 저는 대한민국의 모든 제도의 총체적 실패를 보았습니다. 대중의 반란은 그 실패의 결과일 뿐이었고요.

그 당시는 다행히 일개 과학자의 사기 사건이었기에 그냥 넘어갔지만, 한국의 제도들이 전혀 위기관리 능력이 없으며 고질적인 부패, 무능, 마비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지요.

그 때부터 저는 어떤 총체적 파국이 오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과연 황우석 사태 때 보였던 실력으로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또 한건 터졌군요. "오빠, 나 이번에 안 시켜주면 울어버릴꺼야. 잉~." 청사에 길이 남을 발언이군요.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위선자나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요?

말씀하신데로 또 강경진압하겠다고 했군요. 강경진압하다 과잉진압하면서 또 사고치겠지요.

chaosnai

2008.06.08 12:31:39
*.42.129.9

잘봤습니다. 국민소환제라는 글귀를 보고, 와 이분도 나랑 동일한 생각을 하셨구나 라고 느껴서 이렇게 키보드 질을 합니다.

촛불시위가 어떤 측면에선 반세계화의 시위 일종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런점을 짚어 주셨네요, 단순히 먹을것에 대한 공포감과 정부의 삽질에 대한 분노로 나온 거리의 에너지가

결과물로 남아 모든 사람이 가질수 있는 권리로 바뀌길 기도해 보고 싶네요. 87년 국민직선제 08년 국민소환제는 딱인데.. 휴우 .. 이렇게 학습된 무기력감으로 끝나버리고 추억으로 회상되는걸 원치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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