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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쉽지 않은 성매매 논쟁

조회 수 1569 추천 수 0 2004.09.25 14:52:00
여러 사람들의 논쟁을 토대로 성매매 논쟁의 어려운 지점들을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좌파들을 논박(?)하는 부분은 약간 일반인들 입장에선 생경할 수 있는데, 그 부분을 건너뛰고 읽어도 전체적인 논지를 파악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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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험과 자료의 문제


나는 천이님의 <초강력 성매매방지법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에서 세가지 정도의 긍정적인 논점을 읽어냈다.


1) 여성단체에서 ‘사형’을 주장할 만큼 인권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은 큰 문제라는 점

2) 현행법에서도 (자발적) 성매매 여성에 대한 처벌조항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점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는 점

3) 강제노동은 원래 처벌의 대상이기 때문에, 강제노동 처벌법을 ‘새로’ 만들어놓고 그것이 여성주의 진영의 공적인 양 주장하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점  


그러나 천이님의 기본적인 생각은 “자발적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절대다수”라는 인식에 의거한, 이번 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나도 이번 정책이 실패할 공산이 크다고는 보지만, 천이님의 인식에 대해서는 반론할 여지도 많다고 본다. 물론 그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고, 그 자료들도 참고되어야 하지만, 잠시 훑어본 수준의 깜냥에서도 여러 가지 상이한 주장을 하는 자료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것은 천이님의 생각처럼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선험적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기보다는, 현실의 복합적인 단면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기지촌 주변의 매춘여성들의 경우에는 ‘자발’이라는 말이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인권유린이 심각한 상태에 놓여있는 바,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먼저 생각하자는 그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그와 전혀 다른 견해를 설득력있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점을 알기 위해선 노바리님의 별로 간단하지 않은 <간단하게.>라는 글을 읽는 것이 참고가 될 것이다.


p.s 내 블로그에서도 지적한 바지만, 여기에서 본인의 ‘경험’을 근거로 성매매 여성이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룸사롱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연역추리다.


2. 노동력의 매매와 성매매


새질서님의 <성매매의 자발성에 대한 단상>은 (나를 좌파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좌파들이 성매매 문제를 보는 방식에 대해 하나의 고민을 던져준 글이었다. 나의 윤리적 직관은 성매매가 노동력의 매매보다는 윤리적으로 더욱 올바르지 못한 일일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을 딱히 정당화할 논거는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의 입장에서는 노동력이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 역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런 점에서 성매매 문제에 대해 그들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새질서님의 글에서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로 그런 태도를 느꼈는데, 이 경우 새질서님이 주장하는 자발성에 대한 부정의 논거들을 받아들이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되어 노동하는 행위나 매매춘은 비슷한 수준의 부당함을 지닐 뿐이다.



송경아님 홈페이지에서 벌어진 송경아-철학공부하는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에서도, 이 문제는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그 논쟁은 이곳에서 철학공부하는사람 님이 히아신드라는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함으로써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송경아님은 성매매의 비윤리성이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와 신체에 대한 권리 훼손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성을 구매하는 이와 성을 판매하는 이 사이에 윤리적 구별을 시도하고, 아울러 성매매와 다른 행위와의 윤리적 차별성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기에도 성공적이지 못했으며, 그렇기에 철학공부하는사람님의 반론은 타당성이 있었다.



즉, 송경아님은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의 수준에서 강간등 성폭력 > 성매매 > 자발적 의사에 의한 성교행위 의 등식이 성립한다고 믿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구별법은 강제노동 > 고용 상황의 노동 > 스스로 생산자인 상황에서의 노동 의 등식과 일치하게 되어, 중간항이 현실적으로 인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매매의 비윤리성 혹은 비합법성을 증명하는 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철학공부하는사람님은 실제로 이런 식의 비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진보누리에서의 논쟁정리 글에서 “성매매는 비윤리적이나, 합법화되어야 한다.”라는 주장을 개진함으로써 나의 우려를 정당화시켰다.



또한 신체에 대한 권리 훼손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볼 때 “성매매 활동이 비윤리적이다.”라는 명제를 정당화시킬 근거는 될 수 없다. 그것은 노동조건이나 강도의 상대성에 의해서 판별될 수 있는 상대적인 문제다. 가령 “10시간 노동은 신체에 대한 권리훼손이지만, 8시간 노동은 (적어도 상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라는 주장이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송경아님은 성매매 여성의 노동조건이 취약한 한국적인 맥락을 토대로 그러한 주장을 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이 경우 그는 ‘원칙’이 아니라 ‘인권’의 차원에서 천이님 등과 논쟁을 해야 하는 것이지, 애초 철학공부하는사람님의 주장과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히아신드라는 이름으로 올린 글에서 철학공부하는사람님은 송경아님의 논지를 일부 인용해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다.


“성행위는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신체를 통해 드러내는 행위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의 여러가지 상호소통 행위중 가장 고귀한 행위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 필수적인 행위이다. 우리는 부모-자식간의 사랑, 친구간의 우정, 인간에 대한 신뢰와 같은 사랑의 여러가지 형태를 알고 있다. 성행위로 표현되는 연인간의 사랑은 그러한 사랑의 여러 형태중 하나이다. 성행위를 매매한다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사랑을 매매하는 것이다.”


이것은 직관적으로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노동의 철학적 성격에 근거해서 노동력의 매매의 부당함을 설명했던 맑스주의의 기조와 동일한 것 같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철학공부하는사람님에 대한 질문이 도출된다.


1) 그렇기 때문에 성매매 여성에 대해서도 윤리적 비판이 가능하다는 그의 논지가 올바르다면, 그는 맑스주의자들이 ‘노동자’를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기에 대해 그는 두가지 사안에 대한 ‘질적인 차이’를 답변할 수 있다. 그러나 답변할 수 없다면,



2) 만일 그렇지 않다면, 두 가지 사안에 대한 그의 구별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노동력 매매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는 반면, 자본주의 사회의 여성은 충분히 성매매 이외의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는 ‘양적인 차이’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런 구별은 충분한 것인가? 특정한 상황의 노동자들이 김규항이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의 공동체로 가는 것과, 특정한 상황의 여성이 성매매업소에서 빠져나오는 것, 그 중에 무엇이 더 강제-자발의 구별법에서 강제에 가까운지를 판정할 수 있을까? (그는 주욱 전개되는 글에서 강제-자발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변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더욱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히아신드님이 아닌 맑스주의자들은 지금까지의 논점에 근거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1) 노동의 상품화와 성매매가 똑같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성매매 합법화에 대해서도 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노동의 상품화도 합법인 상황에서) 그렇다면 맑스주의자들은 그런 시각에서 현행 성매매방지법에 반대하고 성매매 합법화에 찬성해야 하는가?


2) 그것이 아니라면, 운동의 전략의 측면에서, “두 가지다 부당하지만, 하나는 실현되기 어렵고 하나는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성매매는 부당하다는 쪽으로 가야 한다.”라고 판단하는 것일까?



3. 합법화의 문제


먼저 나는 현상황에서 성매매 합법화에 대해 회의주의적인 입장이다. 정확히 포지션을 말한다면, ‘반대’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합법화에 대한 반대의 논거 중에서, “합법화는 더 많은 불법업소를 수반하게 된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그것이 일반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겠다. 오히려 합법화론자들의 주장은 매매춘이 합법화된 서구 유럽이 현대한국보다 성매매의 규모가 더 적다더라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합법화 -> 건전화 라는 인과관계의 공식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불법업소와 합법업소가 같이 있을 때, 리스크가 적은 합법업소로 사람이 쏠리게 된다는 분석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합법업소가 불법업소의 ‘대체재’가 될 경우에 가능하다. 가령, 불법업소가 ‘고급재’라면 어떤 결과가 탄생하겠는가? 결과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룸사롱 2차까지 합법화해야 할까? 서구에는 그런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한국의 문제는 성매매 문화가 만연하여 단순히 세계인이 생각하는 매매춘을 넘어 모든 종류의 서비스업과 연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현상의 비윤리성은 아무리 질타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합법화 논거는 “일단 (집창촌에 대해선 현실적인 추인의 의미로써) 합법화를 한 이후, 다른 부분들에 대해 엄정한 단속을 하면 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합법화와 상관없는 문제이다. 현재 상황으로도 룸사롱 등의 업소들은 집창촌에 비해 오히려 단속을 게을리받고 있기 (혹은 상납을 좀더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불법화 때에 부패했던 경찰권력이 합법화가 되면 갑자기 윤리적이 될 것이라는, 지극히 타당하지 못한 가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룸사롱 등 2차업종에 대해 그정도의 강도 높은 단속을 할 수 있는 것이 경찰권력이라면, 그러한 단속은 바로 지금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하경제에 대한 간섭문제까지 포함해서 국가권력으로서는 참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만연한 성매매 문화가 사라지고 시장의 진입과 퇴거가 자유롭다는 의미에서의 형식적인 자발성이나마 충족시키는, 그리고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는 매춘여성이 매매춘의 주류가 될 때, 합법화를 통해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쪽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여러 가지 조류가 얽힌 상황에서의 합법화는 차칫 현존하는 상황의 추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만

2011.05.22 15:47:31
*.25.134.119

본문 중 <집창촌에 대해선 현실적인 추인의 의미로써>
"로써"가 아닌 "로서"를 쓰는 것이 문맥상 더 나아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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