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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뉴스 블로그] "삼성전자 때문에 과징금 맞아"...LG 디스플레이 분개


어제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기사.


"이처럼 세계 1위의 삼성이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요리조리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리니언시(leniency) 제도 때문입니다. 똑같이 잘못을 저질러도 가장 먼저 담합 사실을 신고하면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는 것입니다. 가격 담합은 조사 당국이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밀고자에게 특혜(特惠)를 베푸는 것입니다.

(...)

LG디스플레이에서 문제가 된 가격 담합은 주로 지난 2001~2004년까지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당시만 해도 LCD 산업이 갓 태동하던 시기라 한국·대만·일본의 LCD 기업이 거의 매달 대만에서 '크리스털 미팅'이란 이름의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물론 삼성전자도 고정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 LG디스플레이의 한 임원은 '같은 한국 기업을 곤란하게 만드는 게 삼성의 LCD 글로벌 전략이냐'고 개탄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의 한 임원의 반응은 일종의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하겠다. 이에 대한 삼성전자측의 반응을 의인화하자면 "그때는 이익을 위해 담합했고 지금은 이익을 위해 리니언시했는데 뭐가 문제냐. 기업에게 이윤추구 이외의 어떤 목적이 있느냐." 정도가 될 거다. 그리고 조사당국의 반응을 의인화하자면 "우리는 기업들이 그런 것들이란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정경쟁을 위해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정도가 될 거다.


이 문제를 삼성비자금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대입해보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김용철은 리니언시를 행한 삼성전자측에 해당하며, 그를 '배신자'라 규탄하는 세간의 반응은 LG디스플레이의 한 임원의 개탄과 포개지는 것이 아닐까? 한 조직에서 같이 범죄를 저지른 이들의 행위를 폭로한 이를 '배신자'로 모는 우리의 시선은 시장경제와도 근대국가와도 상관이 없는 거다. 그나마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의 담합행위는 외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국민경제에 도움을 줬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있겠지만, 삼성비자금에도 그런 부분이 있을까.


삼성전자의 행동을 옹호하면서 김용철의 행동을 비판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첫째, "삼성전자는 올곧게 자신의 이득을 챙긴 반면 김용철은 그렇지 못했다. 삼성비자금 폭로한다고 협박했을 때 삼성이 주는 돈을 받고 끝까지 자기 이득을 추구했어야 했다."라고 비판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공익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공익을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칭찬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경련이나 자유기업원이라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공익을 생각한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경제를 망쳐온 반면, 공익에 관심이 없는 자본주의 기업가들이 경제를 성장시켜왔다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이게 그들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본다면 도대체 왜 '리니언시'라는 제도가 존재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다들 사익을 추구하면 만사형통이고 그건 굳이 국가가 시키지 않아도 잘 할텐데 왜 담합을 금지하기 위한 제도적 방책이 존재하는 걸까. 그리고 LG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폭로 때문에 과징금을 무는데 왜 삼성은 김용철의 폭로 이후에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걸까. 뭐 이런 복잡한(?) 문제를 떠나서라도, 전경련이나 자유기업원이라도 이 논리로 김용철의 행동을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용철이 삼성 비자금의 일부를 떼먹고 날랐어야 한다고 발언할 이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둘째, "LG의 이익은 LG의 이익이지만, 삼성의 이익은 대한민국의 이익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삼성의 이익을 보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방법이 가능하다. 삼성사람들은 정말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건 입증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많다. 슬로건으로는 가능해도 논리로는 좀 기능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나올 수 있는게 다음과 같는 논리다. "기업은 이윤추구만을 해야 한다. 여기에 다른 걸 하라고 요구하면 경제가 망한다. 그러므로 기업의 이윤추구는 신성한 가치이다. 하지만 개인은 다르다. 개인은 이윤추구를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협력을 해야 한다. 그게 당장에는 손해로 느껴질지라도 결과적으론 개인에게도 이득이 된다."라고 주장하는 방법이 있다. 첫번째 얘기를 좀 더 세련되게(?) 가다듬은 버전이랄까.


이는 기업의 세속적 이윤추구를 신성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현대의 노동자들을 신에게서 유래된 봉건질서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농노로 탈바꿈시킨다. 기업만이 이윤추구를 할 수 있을 뿐 개인에게 그런 대안은 없다. 이건희 회장은 그가 한국 사회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던 1990년대에 삼성직원에게 '윤리'를 무던히도 강조했다. 그는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등 실제로 '윤리'적인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화법의 본질은 "이윤추구는 기업이 하는 것일 뿐 개인은 쾌락을 유예해야만 한다."는 명령을 자신의 신민들에게 부과하는 것이었다 볼 수 있다. 


이 생각은 삼성전자의 행동을 옹호하고 김용철의 행동을 비판할 수 있는 가장 논리적으로 타당한 방법이다. 그런데 이 논리의 문제는 이쯤에서 생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논증에 대한 문제제기가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뿐더러, 기업은 단수가 아닌데 기업이 대기업 밖에 혹은 삼성 밖에 없다고 가정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다. 기업은 국가처럼 영속적이라 가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소멸하는 존재인데 (적어도 이래야 경제가 잘 돌아간다고 보는데) 이런 부분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냥 앞에 쓴 논리를 축음기처럼 반복하면서 생각을 멈춰야 한다.


결국 삼성이나 자유기업원이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원리를 파악하고 그것을 사회 제 부문에 적용하며 스스로 문제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냥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왜곡으로 구성해낸 두세줄의 공리를 읊으면서 그 생각과 주어진 권력관계에 복종하는 이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나는 신원만 숨기면 자유기업원에서 주최하는 시장경제 칼럼 공모전에 나가도 상을 탈 수 있을 것 같다. 왕년에 군대에서 국가보안법을 옹호하는 대적관 스피치를 해서 포상휴가를 타먹었던 적도 있다. 글 잘 쓴다고 자랑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화석화된 논리는 그것 그대로 정리하기만 하면 그들에게 '진리'로 받아들여지게 된다는 점을 지적할 뿐이다. 3회에 이른 자유기업원 시장경제 칼럼 공모전 결과가 발표날 때마다 사람들이 "도대체 선정기준을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는 것에도 이유가 있는 셈이다.


자기가 정치적으로 깨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딱 여기까지 파악하고 체제의 단순함과 그것에 복종하는 다른 시민들을 조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진정으로 주의하고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한국 사회의 체제가 선전하는 이 교리를 사람들이 실제로 믿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이 없다. 오직 운동권들만이, 자신들만 체제의 거짓말을 간파했다고 야무지게 착각한다. 삼성직원들은 이건희가 뭐라고 하든 협력업체 사장들 앞에서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을 거다.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자유기업원이 내세우는 교리에 겉으로는 동의하면서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뒷구멍으로는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다.


이것이 한국의 자본주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며, 우리의 '시민'들이 자신들이 '신민'이 아님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김용철이 그 상황에서 삼성비자금의 일부를 떼먹고 날랐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이건희 회장 일가나 자유기업원이 아닌 우리의 시민들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시민들이 충분히 시민적이지 않다고 비판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그런 이중적인 삶을 강제하는 체제의 사악함을 질타해야 할 것인가? 혹은 그들의 이중적인 삶에 내재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진보/개혁주의자들의 무능함을 한탄해야 할 것인가? 알 수 없다. 각각의 대안은 제각기 타당한 부분이 있고 부당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식의 이중성 때문에 지금의 한국 사회가 정부도 대기업 총수도 좌파 활동가들도 그리고 시민들 자신들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뒤엔 무엇이 있을 것인가?



놀이네트

2010.12.11 15:14:18
*.235.187.84

"비밀글입니다."

:

idler

2010.12.11 18:26:49
*.182.132.40

김용철 같은 사람을 '내부고발자'라고 불러야 할 텐데, 누군가는 왜 '배신자' 등의 수사로 표현하는가? 하는 점은 다수 사람들이 "조직, 집단을 배신해선 안된다", 라고 믿게되는 관습과 관련있는 듯합니다. 위에서 논증하신 것과 같이 도저히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데, 바로 금기taboo의 일부는 논리로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인듯합니다.
삼성과 무관한 일반 대중들 가운데 일부는 왜 김용철을 일종의 배신자로 보는지, 저 또한 위에서 삼성전자의 LG디스플레이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왜 '배신행위?'에 관한 도덕적 문제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지, 이러한 것이 '배신을 금기시'하는 문화에 의한 것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겨레출판의 <배신>이란 제목의 책도 떠오르네요.

특히나, 삼성에 관한 사안은 애국심과 결부되어서 금기의 영역으로 들어가 있는 듯하네요

글쎄요

2010.12.12 03:40:56
*.142.98.216

이중성 때문에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어서 견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기대와 달리 자본과 정치권력의 관계는 견고합니다. 그래서 이중성은 무능함에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힘이 부족해 자본과 정치권력이 만드는 상황에 떠빌려가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한윤형 님이 글 뒷부분에서 일부러 장난(?)을 좀 하신 듯하네요. 장난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아실 겁니다.

하뉴녕

2010.12.12 11:27:54
*.149.153.7

힘이 없어서 견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절대충성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 '이중성'이 생기는 것이죠. 문제는 개혁진영 일각에서 이런 지점을 보지 못하고 그들이 자본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서 모든 것이 문제라는 식의 '국개론'을 설파하는 것인데요. 한국 사회의 시민들은 그 '국개론'의 환상보다 더 복잡한 존재자들이며 그 점을 인지하지 못하는 '비평'은 '무능'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이 글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게 님이 말씀하신 '장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글쎄요

2010.12.12 16:57:08
*.142.98.216

'이중성'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이중성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오히려 특정 비평관점을 관철하기 위해서 뒷부분을 쓰신 듯보였습니다.

Ken

2010.12.13 14:50:37
*.94.41.89

LG가 저런말을 하면 안되죠. LGD는 아니었지만 LG전자의 전적이 있는걸요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TM=news&SM=0399&idxno=366686
저당시 삼성이 191억 물었고 이번에 LG가 3200억을 물어낸 차이는 있지만 결국 오십보백보구요..
논점과 벗어나 있는점은 알고 있지만, 윗부분이 괘씸해서 한자 적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

2010.12.14 16:52:01
*.34.10.37

두가지 주장이 한가지 논리로 포개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이랬다저랬다하는 건, 실은 양측의 입장이 직관적으로 모두 들어줄만 하기 때문 아닐까요?
그 직관이 정의감각보다는 환경에 따라 이해관계의 문제로 습관들여진 것에 문제가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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