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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작가세계 여름호에 실렸던 글의 부분입니다. "삼성 문제" 관련한 원고인데 계간지 원고라 전문을 소개하긴 그렇고 해당하는 부분만 올립니다. 넷에서도 논의되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


"삼성 불매 운동"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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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와 같은 구조적 접근은 삼성을 구체적인 악의 화신으로 만들고, 삼성에 대한 찬반여부로 사회문제의 전선을 그어야 한다는 주장의 효용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런 주장의 대표자라 볼 수 있는 김상봉의 주장을 한번 검토해보자.


“군사독재가 자본독재로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일은 비슷하다. 삼성 휴대폰과 노트북은 바꾸고, 삼성카드는 자르고 가맹점 해지하고, 삼성에 든 보험은 해약하고, 삼성을 비판하는 경향신문은 정기 구독하면 된다. 부수 늘수록 적자라는 간첩들의 유언비어에 속지 말고!”


“삼성 불매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왜 삼성만 갖고 그러는가? 다른 재벌 기업들이 아니 다른 중소기업들이 삼성에 비해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지만 이런 질문은 권력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물음이다. 그것은 마치 40년 전에 왜 '박정희'만이 문제인가, 모든 군인들이 또는 모든 공화당 정치인들이 다 같이 나쁘지 않은가 하고 묻는 것이 어리석은 물음이었던 것과 같다. 박정희 씨를 제거하고서야 유신독재가 끝날 수 있었고, 전두환 씨를 권좌에서 추방한 뒤에야 비로소 신군부의 독재를 끝낼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역시 삼성과 이건희 일가를 그 권력에서 추방하지 않고서는 기업독재를 끝낼 수 없다.

왜냐하면 삼성과 이건희 전 회장이야말로 지금 우리 시대의 최고 권력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 집단이 아니라, 국가 권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지금 재벌 기업이 과거 군사 독재 시절의 군부와 같다면, 삼성은 군부의 실세였던 하나회와 같고, '회장님'은 '각하'와 같다.“


나는 철학자 김상봉의 사회참여활동이 매우 빛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설령 그의 견해에 일부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김상봉 이전에 먼저 김상봉보다 ‘사회’를 훨씬 잘 알면서도 이해관계에 묶여 침묵하는 여러 사회과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이 ‘수사적 단순화의 효용’을 상쇄하는 어떤 악덕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봉의 글에서 ‘이건희’=‘박정희(혹은 전두환)’이며 ‘삼성’=‘하나회’이고 나머지 재벌기업은 군부다. 그러므로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권력의 머리를 타격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의 도식에서 ‘신자유주의’는 곧 ‘기업독재’이며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삼성독재’에 다름 아니다. 이런 비유에는 장점도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볼 때는 절대악을 상정하는 ‘반독재투쟁’ 담론에 익숙해진 시민들을 위해 새로운 ‘절대악 퇴치 운동’의 서사를 공급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령 민주화 이전에 독재자를 겨냥하는 ‘반군부독재’ 투쟁이 있었듯 김대중 노무현 시대엔 ‘밤의 대통령’인 조선일보 사주를 겨냥하는 ‘반수구언론’ 투쟁이 있었고 이제 이명박 시대엔 이건희 회장을 겨냥하는 ‘반기업독재’ 투쟁이 필요하다는 식이다. 이를테면 알맹이는 그대로 둔 채 포장지만 반독재투쟁에서 안티조선 운동으로, 다시 삼성불매운동으로 바꾸면 된다는 식이다. 여기에선 독재권력 붕괴 이후 훨씬 더 복잡해진 사회갈등의 양상을 조망해야 하는 사회과학자의 시선이 사라진다. “권력의 본질”에 관한 물음을 스스로 거세시켜 놓고 남들에게 “권력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잘못된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을 이와 같은 프레임으로 사고할 때, 참여자들은 조선일보만 비판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진보개혁 언론들의 공정성과 당파성을 점검하고 언론의 질을 높여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조선일보의 폭력에 집중하기 위해 진보개혁 언론들의 작은 폭력에는 눈감아야 한다는 논리가 당연시되었다. 안티조선 운동을 진영논리적으로 단순화시킨 그 프레임을 ‘삼성을 생각’할 때도 써먹자는 얘기일까?


이 단순화된 논변에선 설령 ‘신자유주의 반대’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건희 회장 일가의 전횡을 비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시되고야 만다. 또한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기업독재라는 것이 한국 재벌기업에 관철되는 ‘오너 경영’이나 한국 산업계에 관철되는 재벌기업의 통치와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측면이 무시되고야 만다.


그렇기 때문에 간과되는 것은 언론에 대한 ‘자본 지배’의 다른 측면이다. 만일 칠팔십년대의 언론이 군부독재자에 대한 단호한 반대의 의사를 표명했다면 그건 그 언론이 독재체제 전체에 항거한다는 사실을 의미했을 거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삼성에 대해 단호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결코 『경향신문』이 자본권력 일반에 대해 대항한다는 사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령 『경향신문』은 삼성에 대해 단호하면서도 건설회사의 이해관계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보도를 하지 못할 수가 있다. 부동산 보도에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정치적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진보적이지 않다는 지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삼성과의 관계가 아니라 모든 광고주와의 관계가 문제가 된다면, 결국 광고주 눈치 보지 않고 진보언론이 생존할 수 있는 경제적 조건을 고민하지 못한다면 ‘독립언론’의 꿈은 성사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세밀한 비평은 이처럼 현실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모색을 가능하게 해준다.

(...)


쟁가

2010.07.16 14:14:50
*.176.2.56

옳은 지적임.

.

2010.07.25 19:18:49
*.146.60.74

사고가 저열하다. 더 큰 조명으로 김상봉 교수를 이해했으면 한다.

하뉴녕

2010.07.27 12:44:01
*.39.144.120

현장 스태프이신가요? 이 블로그엔 큰 조명이 없는데 좀 가져와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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