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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스타리그의 세대론

조회 수 1797 추천 수 0 2009.12.30 12:26:08

포모스 자유게시판과 매니아칼럼방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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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즈음에는 신규 게이머들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엄청나서 스타리그가 망할 거라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택뱅시대가 리쌍시대로 바뀌고 리쌍도 흔들흔들할 때쯤에 그런 얘기가 나왔던 것 같다. 스타리그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모르는 사람의 리플레이를 보며 경탄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게임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설령 그런 사람이더라도, 게이머들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대한 몰입의 쾌감을 부정할 수 없다. 해설자는 단지 경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니라 종종 '서사'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왕년에 훌륭한 만화 스토리 작가셨던 엄옹의 '포장'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그런데 게이머가 조금 익숙해질 쯤하면 훼손되고 사라져 버린다면, 우린 무슨 재미로 스타리그를 볼 수 있겠는가? 스타리그의 현기증 나는 속도감이 그것 자체를 멸망시키리라는 예감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2007년 이후의 속도감 쩌는 순환을 통해 구성된 '택뱅리쌍'이라는 신조어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켰다. 과거의 '4대천왕'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닌 이들 신규 4인방은 신예들과 투닥거리면서도 자신들의 위치를 (어느정도는) 고수하고 있고, '서사'의 중심이 된다. '4대천왕' 담론을 파괴한 것이 마재윤의 '본좌론'이었다면, '택뱅리쌍'은 본좌론 이후에 나타난 본좌론 이전으로의 복귀다. 네 사람은 살벌한 투쟁으로 야기된 사이좋은 공존의 결과로, 본좌론을 훼손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시대의 1인자인 이제동은 당당하게 "본좌론은 싫다."고 말한다. 사실 그는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네 사람은 '상향평준화'의 속도감 속에서 자신들의 시대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일까? 물론 그들이 너무나도 뛰어난 게이머였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가능하다. 이런 얘기는 '언제나 맞는 말'이지만, 4대천왕 이후에 명멸해간 게이머들 중에도 4대천왕 정도의 재능이 있는 사람은 있었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좀 다른 얘기도 가능하다. 스타리그라는 '환상의 스크린'을 유지하는 유물론적 조건에 대한 분석이 가능해지는 거다.


'4대천왕' 이후의 게이머들은 '4대천왕'을 극복하고 권좌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4대천왕'의 영향력 때문에 '짧은 전성기'라는 이름의 저주를 받았다. 소년소녀들의 스타가 된 4대천왕은 게임질 열심히 해도 돈 많이 벌고 (젊은이들에게는) 존경받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예전보다 훨씬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e스포츠판에 유입되었다. 홍진호와 이영호는 모두 대전 사람이다. 하지만 홍진호는 공단이 있는 신탄진 소년이었고, 이영호는 대전의 대표적인 중산층 동네인 월평동에서 살았다. 이 점이 무엇을 보여주겠는가? 스타리그는 그것에 도전할 매력을 느낀 소년이 중산층 엄마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자라난 것이다. 임요환의 아버지 어머니가 자기 아들내미가 학교 안 가고 피시방 베틀넷에서 양민학살하고 다니는 걸 전혀 몰랐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격세지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리고 그 흐름이 '택뱅리쌍'에서 멈췄다는 것은 스타리그 팬들에게는 안도할 만한 일이지만 또 다른 우려를 가져온다. '4대천왕' 이후의 게이머들의 속도감 있는 명멸을 가능케 했던 그 물적조건이 이제는 붕괴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스타리그 팬들은 언제나 이 판이 언제든지 멸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4대천왕'이 그것을 잊게 해주는 상징이었다면, '택뱅리쌍'은 다시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실재의 충격일 거다. 하지만 스타2 출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리라. 이 판이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소년들이 호흡을 고르고 길게 생각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스타2 이후 스타1리그가 유지될지, 스타2리그로 순조롭게 이행할지, 아니면 모든 게 다 망하고 끝날지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2가 출시되는 날, 스타리그의 역사는 하나의 국면을 닫는 것일 게다. 우리는 파티의 끝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오래 파티가 지속될 줄은 누구도 몰랐기 때문이며, 우리는 새로운 파티를 준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즐거운 믿음 위에 '택뱅리쌍'의 쩌는 위엄이 존재한다. 스타2가 나오기 전에 택뱅리쌍이 완전히 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소년들의 노력은 택뱅리쌍과 함께 스타리그의 마지막에 기억되는 선수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파티의 끝이 멀지 않았다. 그러니 소년들이여, 분투하라!


이상한 모자

2009.12.30 13:53:49
*.114.22.131

망할거야

unknown

2009.12.30 13:59:37
*.132.15.26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

abrasax

2010.01.01 01:04:01
*.254.220.212

공감되는 부분이 많네요. 어찌된 것인지 제가 스타를 그만보게 된 시기가 딱 2007년입니다. 글쓴님이 지적한 것처럼, 여러모로 스타리그의 전환기가 된 때이지요.
최근에 수능이 끝나고서야 다시 게임을 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이거 아는 게이머가 거의 없군요.

글의 요지만 말하라면, 지금이 분명 '끝물'이라는 것이겠지요. 이런 비관적인 이야기(글의 필자는 '새로운 파티'라는 표현으로 반대되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가 나올 때마다 '예전에도 그랬다.' 같은 말들이 또 나오곤 했지만 스타2의 발매가 임박한 지금, 분명히 끝이 왔습니다.
제가 이 파티의 끝을 원치 않는 이유는 스타2를 플레이할 컴퓨터 사양이 절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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