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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대학내일] 사회주의자와 국가보안법

조회 수 1651 추천 수 0 2008.09.06 10:42:34
지난 8월 26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의 운영위원 7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긴급 체포 되었다가 같은 달 28일 오후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으로 풀려났다. 오세철 교수가 체포되었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굉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오세철 교수는 원래부터 사회주의자임을 커밍아웃했던 사람이고, 북한체제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사정권도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를 잡아 가두지는 않았다.


오세철 교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는 어느 20대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수강생들이 만일 이명박이 당선되면 교수님 같은 사회주의자는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고 말했을 때, 오세철 교수는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그 누가 되더라도 이젠 시대가 바뀐 만큼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오세철 교수의 생각이 틀렸고, 우리 사회가 지난 세월 이룬 것들은 정말 너무나 얄팍해서 최소한의 상식이든 도덕이든 기본적 권리든 다들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것이 그가 이 사건에 대한 놀라움을 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법원은 이틀만에 경찰의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사노련의 활동이 국가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검경은 이 사실에 대해 승복하지 않았고,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ㆍ보완해서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쯤에서 국가보안법이 어째서 악법인지 간단히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보존본능이 있는 것처럼, 모든 체제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것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 같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자유는 예외로 둔다. 그러므로 가령 다수결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또한 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고 시도 또는 모의하는 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짚는 일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이들 중 전자는 헌법에 의해, 후자는 형법의 내란죄나 내란음모죄 등을 통해 금지되고 처벌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법은 이미 국가를 보존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방책들 위에 서 있는,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처벌하거나 정치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간첩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해외동포이던 시절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거나, 그저 조총련 단체와 접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을 ‘조직적인 간첩단’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던 마법의 장난감이었다. 이 장난감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두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그들은 진정으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인가? 둘째, 설령 그들이 체제전복의 의사를 표시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국가에 위해가 되는 세력인가? 친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사노련 사건을 평가하려는 시각도 있지만 그건 ‘친북세력’을 주로 잡아가뒀던 국보법의 현실태를 용인하는 소극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차라리 “친북(親北)이든 아니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은 모두 처벌대상이다.”라고 말하는 조선일보 사설의 시각이 국보법 옹호론자의 일관성을 담지한다. 우리가 반박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 것이다.   


사노련의 문건에서는 혁명을 일으켜 국가를 뒤엎겠다는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들이 입법 사법 행정 등 대한민국의 모든 체제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사노련 문건이 주장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폭력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사노련은 현실적으로 국가에 위해가 되는 세력인가? 유럽에서는 선거철이 되면 붉은 깃발을 들고 혁명을 하겠다고 거리로 뛰어나오는 청년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친구들도 다 잡아가두어야 한다는 얘기일까? 친북세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기나 몇 번 흔들고 김정일 사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이들이 얼마나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잡아가두어야 하는 것일까? 조선일보 사설은 “법원은 과거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문건을 배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재판에서는 유죄로 판결해왔다.”고 투덜댄다. 이게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에 대한 처벌이란 말인가? 그들은 진정 대한민국이 문건 몇 개에 허물어질 허약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까? 쪽팔리게 설마 그런 나라에서 ‘보수’를 자칭하고 있는 걸까? 


영장기각으로 풀려난 오세철 교수는 이 사건을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로 보는 것에 반대하며 국보법을 철폐하지 못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한나라당 당선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회주의자답다. 여기서 굳이 따지자면, 국민의 정부는 원내에서 소수정당이었고, 참여정부는 ‘탄핵 역풍’으로 원내 다수당이 되었는데도 국보법 철폐에 실패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에서도 국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오세철 교수의 지적처럼 한나라당의 문제를 넘어선다.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탁월함은 통제될 수 있는 수준의 관용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든 보수주의자들의 문제다. 그들은 구제불능의 겁쟁이거나, 손안에 있는 장난감을 넘기기 싫어하는 편의주의자다. 경찰이 사회주의자를 두려워해준다면 그건 나름대로 고마운 일이겠으나, 실은 그들은 촛불시위에 빨간 물을 들이기 위해 사노련을 체포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정말이지 편의주의의 극치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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