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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정치평론의 보편성

조회 수 1578 추천 수 0 2009.08.22 11:21:19

민주주의의 역설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샹탈 무페 (인간사랑,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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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5-176


(...) 진정한 정치적 대안에 대한 민주적인 대립의 부재는 적대가 민주적 공공 영역의 기반을 잠식하는 형태로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다양한 종교적 근본주의의 성장은 물론 도덕적 담론의 전개와 삶의 모든 영역에서의 추문을 캐내는데 몰입하는 것은 경쟁적인 정치적 가치에 의해 안내되는 정체성의 민주주의적 형태의 부재에 의해 정치적 삶에서 만들어지는 공백의 결과이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상이한 전통들 때문에 성문제가 영미에서와 같이 펼쳐지지 않는 다른 나라들을 살펴보면, 경쟁자 사이의 정치적 구분선이 부재할 때 부패나 수뢰와 같은 것이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상황 하에서는 정치적 경계는 종교적 정체성이나 혹은 낙태문제처럼 타협할 수 없는 도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 있고, 그것은 모든 경우에서 좌/우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정치적 담론이 사소한 것으로 되면서 만들어진 민주적 결핍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경쟁적 대립이 일어날 수 있는 민주적 정치의 공공 영역이 약화되는 맥락에서 사법적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이 이해되어야 한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정치적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짐에 따라 사법적 영역을 특권화시키고 갈등의 모든 형태에 대해 법이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뚜렷한 경향이 대두된다. 사법적 영역은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는 지형이 되고, 사법체계가 인간의 공존을 조직하고 사회적 관계를 규제하는데 책임을 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좌/우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정치적인 방식으로 사회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질서지우고, 정치적 담론을 통해서 그들이 직면해야 하는 결정에 형태를 제공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최근의 사법적 담론의 헤게모니는 독립적 사법부의 우위를 주장하는 R. 드워킨과 같은 이론가들이 옹호하고 이론화하는데, 그들은 사법부가 공동체의 정치적 도덕성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드워킨에 따르면 실업, 교육, 검열,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영역에서의 정치적 공동체가 직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판사들이 정치적 평등의 원칙을 준거함으로써 헌법을 해석한다면 그들이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정치적 영역에는 거의 남겨진 것이 없게 된다.(...)



십년 쯤 전에 쓰여진 글일 텐데 현재의 한국 실정에 비추어 보아도 잘 들어맞는다. 첫번째 문단과 두번째 문단에서 얘기하는 것은 좌우 대립이 사라진 상황에서 정치세력들이 어떤 이슈를 가지고 변별점을 보여주려고 하느냐이다. 부패, 성추문, 도덕적 문제들이 그 예시로 제시된다.


한국의 경우는 좌우 대립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가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이념적 대립을 회피하려는 상황에서 그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고 부연할 수 있을 것이다. 양비론의 우려는 있지만 지역주의나 민주-반민주 구도 역시 이 양상에 포함되는 프레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경제적/문화적 차원에서의 호남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것을 가지고 정치적 전선을 지역주의로 그을 경우 다른 이념적/정책적 변별점들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민주당-공화당 간의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는 낙태문제와 같은 도덕적 문제의 경우, 한국에서는 전혀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는다. 미국과 가장 비슷한 유형의 기독교 국가인 것이 한국이지만, 한국 기독교인들은 그 극우적 기독교인들이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한심할 정도로) 부여잡고 있는 윤리적 명제에 무심한 것 같다. 한국에서 어떤 종교를 지니고 있느냐는 것과 낙태문제에 대한 태도 사이에는 별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신 한국에서 등장하는 도덕적 변별점은 이른바 '체제 논쟁'이다. 이것은 이념 논쟁으로 둔갑되어 있지만, 지나치게 추상화되어 있어서 현실문제와 거의 접점이 없다시피 하다. 정치적 반대자들을 대한민국 체제를 부인하는 이들로 몰아부치는 일이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대북지원을 말하는 이들을 김정일의 하수인으로 치환하는 태도는 그나마 구체적(?)인 공세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것도 정책적 효용을 판단해야 할 문제를 도덕적 문제로 바꾸어 버린 듯 하다.   


세번째 문단과 네번째 문단에서 말하는 조류 역시 한국에서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다. 헌법재판소에 과도한 기대를 하고 권한을 부여하려는 태도에 대해서는, 최장집과 박상훈 등의 정치학자들이 꾸준히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헌법재판소의 '보수적인' 판단에 분개하여 '진보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런 시각에서 볼 때는 그것은 오히려 정치의 영역을 축소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겠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논의들을 구체적인 한국의 실정들과 관련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은 최장집과 박상훈 등 후마니타스 정치학자들의 글을 읽을 때 뿐이기 때문에, 지금 한국에서 가장 진지하게 정치학을 다루는 사람들은 그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어떤 이들의 믿음과는 달리,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해명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서양제 이론과 전혀 상관이 없는 곳임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특수성을 분석하면서 보편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할 수 있는 관점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순전히 우리의 문제만을 논의하기 위해서도 공부는 필요하다. 고민없는 배움은 무력한 것이 되기 십상이지만, 배움없는 고민은 맹목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제가 어떤 면에서는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면, 그 문제해결을 위해 배움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을거다.  정치철학이나 정치학의 지반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무시를 일삼는 반지성주의자들의 정치평론들이 대개 참조할 가치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울바람

2009.08.22 12:53:15
*.222.202.200

MB의 뜻 대로, 한국에는 정치를 멸종시키고 있….

Svinna

2009.08.22 20:27:44
*.202.212.181

정치야 무슨 쓸모가 있나요...
경제만 살리면 되지...

본격 대통령이 정치 안하겠다는 나라...-_-;;;

블랙프란시스

2009.08.22 23:12:52
*.222.186.214

선임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를 잇는
후임의 '나는 정치를 혐오한다'....

루시앨

2009.08.23 01:38:15
*.14.76.220

개인적으로 최근에 브뤼메르 18일을 읽었는데, 세간의 평인 역사서가 아닌 본격 정치평론인것 같아서 흥미롭게 보았는데, 또 이런 좋은 글을 보게 되는군요 :)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Mr.Crazyani

2009.08.23 12:07:28
*.54.25.181

한국인에게 종교는 일종의 '욕망의 투사물'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이루어지지 않을, 또는 어려울 자신의 욕망을 대신하여 이루어지도록 만들 수 있는 초월자를 마찬가지로 욕망하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한국인에게 종교의 가르침과 뜻이 종교의 핵심 요소로 구성되지 못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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