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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중산층

조회 수 1082 추천 수 0 2008.10.01 17:27:58
이택광, "중간계급" : http://wallflower.egloos.com/1809869
노정태, "중산층, 중간계급, 소자본가" : http://basil83.blogspot.com/2008/09/blog-post_6125.html (덧글에 제 반론이 있음)
노정태, "중산층을 위한 감세정책" :
http://basil83.blogspot.com/2008/09/blog-post_8467.html (덧글이 존나 웃김)
이택광, "다시 중간계급" :
http://wallflower.egloos.com/1816737


이 논쟁은 전적으로 일개인의 난동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난동이 무의미한 것이었음을 확인하며 끝맺어야 한다.


이택광이 말하는 '중간계급'의 용례는 학적인 맥락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마지막 포스트에서 설명하고 있으니 상술할 필요는 없다. 이에 대해 노정태는 그런 식의 용어사용이 강만수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전략적으로 그르다는 것인데, 아마도 여기에 그쳤으면 이 소동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거다. 문제는 그가 신문기사 쪼가리 몇개 긁어와놓고 이택광이 용어를 "잘못 사용했다"고 주장한 데에 있다. 이에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자 다시 "나 영어할 줄 아는 남자거등요-"라고 외치며 영어기사 쪼가리 몇개를 긁어왔다. 그리하여 학자 본인이 수고스럽게도 본인의 용어 사용에 대해 스스로 백업하도록 만들었다. 만일 백업하지 못할 줄 알았다면...... 흠좀무. 


계급의 경계가 어디냐의 문제는 누구의 이론을 사용하고 그 이론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본다. 노정태의 주장은 이러한 사회과학의 특성을 무시하고, 마치 공대생이 인문학을 재단하듯이 "하나의 기준"으로 논의를 재단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공대생의 "하나의 기준"은 물리주의라는 탄탄한 방법론을 가졌지만, 그것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노정태의 방법론(?)은 신문쪼가리 몇 개라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개념 하나를 재단하거나, 자신이 세운 '전략'의 효용성에 용어의 정의를 종속시켰다. 


비평이란 건 기본적으로 여러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이 얘기만 가능하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평이 아니다. 물론 정치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시작하는 프로파간다나 팜플렛도 있을 것이고, 비평과 그것들 사이의 무언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해당하는 주장들은 전략적 타당성이란 걸 따지면서 논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것만 옳다"는 노정태의 발상은, 팜플렛도 아니라 군대에서 통용되는 전시 작전계획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노정태는 자신이 전략회의의 참모라고 착각하고 "논쟁태 작계 0809"를 따르지 않는 놈들은 강만수의 편이라고 우기고 있는 거다. 굳이 비유하자면 그는 담론의 영역에서 과거의 '비판적 지지', 그러니까 "좌파는 노무현(혹은 김대중)을 찍어야 한다. 아니면 너희는 좌파도 아냐!"라고 외치고 있는 꼴이라 하겠다.

 
이택광의 논의를 비웃을 수 있는 그보다 더 심오한 반응은, "너희 지식인들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든 우리 민중들의 용어에서 사고해야 한다능!"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노정태가 예전부터 비판해오던 '반지성주의'적 반응인데, 반지성주의가 좋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유아론보단 낫다. 그러니까 나는 노정태에게 앞으로는 내 말이 맞다고 우기지 말고 우리 민중의 말이 맞다고 우기는 전략을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노정태 블로그에 반론이랍시고 단 내 덧글은, 찬찬히 자료를 찾아보니 그리 정확하지 않다. 나는 중간층은 미들 클래스의 번역어고 중산층은 프티 부르주아지의 번역어라고 주장했는데, 후자는 정확하지 않을 뿐더러 어떤 의미에선 오류다. 프티 부르주아지는 노정태의 주관적 희망과는 달리 경멸어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계급론에서 그것은 어찌됐든 생산수단의 보유 여부를 말하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소득분포로 볼 때는 빈곤층에 해당하는 빈곤한 농민이라도 이 분류에선 그냥 '농촌 프티부르주아지'가 되는 것이다. 마침 자료에서 발견한 표를 하나 소개한다. 

<그림> 라이트의 계급모델에 따른 한국의 계급구조 (신광영 등, 자료는 1991 경활조사)

 

자본재의 소유여부

소유

 

비소유

 

1. 자본가

0.7%

 

4. 전문경영인

1.1%

(2.0%)

7. 반전문경영인

1.5%

(2.8%)

10. 비전문경영인

0.0%

(0.1%)

+

2. 소자본가

7.3%

 

5. 전문감독인

1.3%

(2.5%)

8. 반전문감독인

4.4%

(8.1%)

11. 비전문감독인

1.1%

(2.0%)

0 조직재

소유여부

3. 프티부르주아

37.9%

 

6. 전문노동자

3.3%

(6.2%)

9. 숙련노동자

14.9%

(27.6%)

12. 프롤레타리아트

26.2%

(48.6%)

-

 

 

+

0

-

 

 

 

 

자격재 및 기술재 소유여부

 

* ()는 피고용자만을 계산한 분포

    
강만수가 얘기한 이는 어디에 들어갈까? 이 표에선 2에 들어가거나 4,5,6,7 에 들어갈 것이다. 보시다시피 이 표는 소득백분위에 의해 계급을 분류하고 있지는 않다. 그 말은 강만수의 기준은 '좌파의 방언'과 별 관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몇몇 경제학도들은 수업시간에 교수들로부터 "중산층이란 자산가 중에서 중간 혹은 그 이하에 해당하는 집단"이라는 정의를 소개받았다고 증언하는데, 이게 어떤 맥락의 정의인지는 비전공자로선 잘 모르겠지만 강만수의 정의도 그런 기준에 기반하는 것 같다. 네이버에서 '중산층'으로 검색해보면 지식인의 답변으로도 그런 식의 체험담을 확인할 수 있다. 가령 수업시간에 자기네 교수님이 "빌딩 하나는 있어야 중산층이지"라고 말했다는 식이다.


기준이 나오는 교과서를 찾을 수 없으니 이런 용례가 적용된 논문 하나를 제시한다. <황해문화> 2007년 가을호에 실린 "기러기 아빠 -월드클래스를 향한 욕망의 기호"(조은)가 그것이다. 이 논문에서 '기러기 아빠'로 지칭되는 한국형 글로벌 분산가정의 계층은 명백하게 '중산층'으로 명시되어 있다. 의사, 변호사, 그리고 대기업 부장 이상이라고 한다. 100가구 중 1.5가구에 해당한다는 기러기 아빠 가정이 '중산층'이라는 이 지칭은 어쩌면 강만수의 기준보다도 위에 있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담론의 언어로서의 '중산층'이란 말에 부합한다. 그들을 '부르주아'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고, 노정태의 주관적 희망처럼 '프티 부르주아지'라고 부르면 맞는 말일 수는 있는데 그들만을 특정하지는 못한다. 결국 기러기 아빠까진 몰라도, 적어도 자녀 두명 대학 등록금 너끈히 부담하고 어학연수까지 별 무리없이 보내줄 정도는 되어야 중산층인지 아닌지 논할 수 있을 거라는게 내 생각이다.


담론의 언어를 거부하고 세론에 기대어 노정태가 억지로 만들어낸 표를 한번 보자.


폴 크루그먼

존 매케인

강만수

노정태

상위 리치스탄

부자

부자

부자

하위 리치스탄

중산층

중산층

(강남)쁘띠

중산층

중산층

서민

중산층

빈곤층

빈곤층

빈곤층

빈곤층


여기선 빈곤층을 벗어나면 곧바로 중산층으로 도약한다. 그래서 노정태 본인은 손낙구의 분류에 따르면 "부동산 제6계급"이면서도 계급적 정체성은 "중산층"이다. 그리하여 거창하게 중산층의 계급윤리를 가지자고 주창하고야 만다. 열심히 하시라. 그런데 아무리 한국사회에서 중산층이 중간층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더라도, 상식인들이 노정태의 어휘사용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중산층은 일반적인 서민보다는 조금 더 잘 산다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산층이란 낱말의 어원이 그 사용에 남겨놓은 약간의 흔적인 셈이다. 여하튼 "빈곤층 벗어나면 곧바로 중산층"이란 노정태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이쯤되면 이쪽이나 그쪽이나 일상언어에서 벗어난 건 매한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노정태의 규정은 지좆대로라는 것. (폴 크루그먼이 "미들 클래스는 중산층이여~"라고 한국말로 정의해 준 적도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저걸 근거랍시고 들여온 것일까?) 


정의 얘기는 그만하고 노정태가 그렇게 좋아하는 전략의 얘기로 넘어가, "중산층을 수호하자능!"이란 그의 정치적 기획(?)이 무의미할 거라는 내 마지막 충고를 덧붙인다. 중산층이란 단어는 앞으로도 중간층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이긴 힘들 거라는 게 내 개인적인 예상이다. 왜냐하면 중간층 자체가 너무 얇아지고 있어서 개념을 그런 식으로 써봤자 추출할 수 있는 것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명박 시대에 중산층이란 단어의 본래적 의미가 복원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중산층'을 죽인 것이 강만수의 입인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산층'을 붕괴시킨 것은 김대중-노무현 시기 진행된 신자유주의 개혁이며, 앞으로 더욱 과격하게 진행될 이명박의 경제정책이다. 중간층은 이미 붕괴가 진행중인데, 노정태는 뒤늦게 이명박이 촛불시위대 잡아가둔다고 중산층이 붕괴한다고 떠들고 있다. 그리고 중산층이란 개념을 수호하면 중산층이 구출될 수 있다고 야무지게 착각한다. 내가 경제결정론자는 아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서양속담처럼, 팬케이크를 먹으면서 동시에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노정태는 비범한 사람이라, '좌파'라는 이름의 위장에서 팬케이크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중산층'이란 이름의 예쁜 접시 위에 팬케이크를 올려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따로 없다.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 구라는 안 믿는다.


앞으로 노정태가 블로그에 올린 글에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면에 헛소리를 실어준다면 공익의 차원에서 반론할 수도 있겠으나,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을 찾아 읽기에는 내 시간이 아깝다. 그러느니 잡지나 하나 구독하는게 훨씬 더 득이 될 것이다. 나나 노정태 수준의 글쟁이들은 기본적으로 지식인들의 담론을 주의깊게 살피고 그것을 좀 더 구체적인 현장에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언젠가 유시민이 자신을 지식소매상이라고 말한 적 있는데, 이 비유를 따르자면 우리는 일군의 소매상 옆에 붙어있는 삐끼 쯤 되는 거다. 그런데 노정태는 언제부터인가 이 지성의 계층구조를 이탈하여 어디선가 불량식품을 만들어와 이게 제일 맛있고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이쯤되면 상식적인 인간들은 그에게 신경을 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가 새로운 세계에서 행복하길 빈다.



마란

2008.10.01 23:00:11
*.57.232.213

노정태 안녕~ ㅋㅋㅋ

마치래빗

2008.10.02 00:15:03
*.183.105.224

허거걱... 어쨌든 이쯤되면 충격 ㅠㅠ

hyun

2008.10.02 00:29:15
*.99.80.36

아니, 이런 대인배가...

덕후나잇

2008.10.02 00:35:15
*.238.239.128

논지는 냉정하게, 태도는 따뜻하게를 기대할 수는 없나요?
노정태는 조갑제가 아닙니다.

하뉴녕

2008.10.02 01:57:47
*.49.65.32

저는 사람이 좋아서, 혹은 사람이 나빠서, 계속 참다가 한번에 정리합니다.

N.

2008.10.02 02:12:25
*.176.99.27

뜬금없지만 이택광님 글 넘 좋아요. 뭐랄까, 요즘 이렇게까지 깔끔허니 똑 떨어지는 글을 보는 경험이란 그리 쉽지가 않으니까 말이죵.
중간계급이라, 재미있는 논의긴 한데 이택광 님 블로그의 다른 글들이 다른 맥락으로 읽히는 게 더 재밌... 역시 저는 사심인생 ㅎㅎ

hyun

2008.10.02 02:53:53
*.99.80.36

"비밀글입니다."

:

2008.10.02 14:21:10
*.5.117.64

미국 통계 보면 middle은 진짜 '중간'의 의미로 쓰입니다..
주택 가격도 우리나라는 '평균'을 중요시하지만 미국 통계는 '중간 값'(정 가운데 값)을 쓰지요. 소득도 우리는 '평균 소득'을 쓰는데 그들은 '중간소득'을 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middle class란 단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통상 '중간층'이라고 안 하고 '중산층'이라고 하다 보니깐 노정태님이 헷갈린 것 같습니다.
한윤형 님이 정확하게 짚어주셨네요..
그리고 논점이 빗나가는 얘기지만 이택광 님 글 참 잘 쓰시네요..

Mr. TExt

2008.10.02 21:26:02
*.0.50.24

결국 교수님 하악하악으로 귀결되는 상황일까요?(아 저 혼자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실 팬의 입장이 강하기에 현란하게 돌아가는 문장의 진검승부가 약간
버겁기는 했습니다.

노정태님은 무섭지만 꾸준히 찾아가 뵙는 분이었죠. 물론 주인장님도 깊은 동경의
마음으로 이곳저곳에 소개하면서 '좀 읽자' 를 종용하고 있었고요^^

이번 논쟁에서 비겁하게 제 생각을 주형 鑄型 을 바꿔가며 주물러 보았습니다만...
두 분 다 끌립니다-_-; 제가 학이 부족해서 그렇겠죠-_-;

암튼 그냥 초심으로 '교수님 하악하악' 으로 돌아가야할 듯 합니다. 눈 돌아가는
논쟁이 갑자기 제 흐리멍텅한 삶에 윤활제를 발라준 듯 하여 솔직히
'두분 다' 감사합니다.

"너희 지식인들이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든 우리 민중들의 용어에서 사고해야 한다능!"

요거 참 후벼파는 맛이 있습니다. 아무쪼록 언제나 좋은 글로 윤형님을 보여주시는 것
다 윤형님의 복으로 돌아가기를 크게 기원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Mr. TExt 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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