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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문국현, 혹은 '새로움'의 소란스러움

조회 수 945 추천 수 0 2007.12.04 15:28:40

1.
나는 문국현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지만, '단일화 제안' 뉴스를 보고 분개할 뻔 했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시스템 부재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말 그대로 '바람'의 향방에 정치를 맡기는 러시안 룰렛형 정치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안 내용을 읽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고 정동영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압박이더라. 그러니까 문국현도 완벽한 뻘짓을 할 정도의 그릇은 아니라는 거다.


2.
문제는 정동영측. 원래 단일화 제안은 정동영의 몫이다. 단일화를 위한 통큰 양보 따위의 드라마없이는 결코 지지율을 높일 수 없는 것이 범여권이기 때문이다. 문국현의 제안서를 보면 상황은 간단하다. 이명박이 부패했다는 사실엔 정동영도 문국현도 동의한다. 그리고 참여정부가 무능하다는 사실엔 이명박도 문국현도 동의한다. 문국현의 참여정부 비판의 핵심은 참여정부가 그 실정을 통감하고 전향적인 자세를 취할 때 과거세력의 집권을 막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의 단일화 제안조차도 범여권의 전략을 변경시키기 위한 (물론 그의 입장에서 최선의 전략 변경은 '문국현으로의 단일화'일테지만) 일종의 정치적 기동이다. 적어도 단일화 제안서의 문장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여권은 참여정부의 무능이나 실정이라는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들은 현재의 지지율을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여론조작, 그리고 국민의 '노망'으로 치부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아마도' 뒤의 문장은 조심스러운데, 하여간 그 앞의 문장에 논리필연적으로 연결된다. 그게 아니면 뭔가 다른 심오한 원인을 생각하고 있다는 건데, 그런 얘기는 못 들었다.  여하간 그렇기 때문에 정동영측은 문국현측보다 조직력은 월등히, 지지율은 좀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수세적인' 입장이다. 담론적으로 수세적이면 그걸 인정하고 모든 걸 다 던지는 통 큰 단일화 시도로 바람을 불러 일으켜야할 텐데, 수세적인 주제에 "나 잘못한 거 없소."라고 주장하려니 이 정국에서 할 일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문국현에게서 제안서가 나오는 것일 테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그들의 행동을 '삽질'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가혹하겠지만, 이 상황을 살펴보면 그런 표현을 안 쓸 수가 없다.


3.
그렇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명박의 부패와 참여정부의 무능을 말하는 문국현의 포지션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부패는 그저 '부패했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는 것이지만, 무능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무능했단 말인가, 유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문제가 자동적으로 따라나온다. 문국현은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말하지만 그것은 "지금 현재 중소기업에 활력이 없다."는 현황적인 문제제시에 불과하고 그것 자체가 비전은 아니다. 도대체 무엇을 통해 중소기업 중심 경제를 만들 것인지가 하나의 비전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문국현은, 한나라당과 똑같이 참여정부를 (구)이념 중심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이란 수사가 그의 발언 곳곳에 넘쳐난다. 이라크 파병 때 민주당에서 탈당한 자칭 사민주의자 정범구 역시 참여정부와 자신들의 대립을 구세력 대 미래세력으로 잡고 있는 것 같다. 우려되는 것은 이 '새로움'의 수사는 기본적으로 탈이념적인 데다가 결코 새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4.
세상엔 이념이 한나라당 것과 참여정부 것밖에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념이란 단어에 반드시 '교조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이란 개념이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이념을 몰아붙이는 사람들은 결국 내가 뭘 할지 설명하기는 귀찮으니 그냥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는 얘긴데, 이렇게 가다가 잘 되는 경우도 간혹 있기는 있지만 침몰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단적으로 참여정부 역시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새로움'의 수사를 엄청나게 좋아한 사람이었다. 2002년의 노무현 후보의 표어가 '새로운 대한민국' 이었다. 노무현은 자신의 이미지에서 민주당의 색채를 완전히 지우려고 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물론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하지만 민주당 이상으로 한심한 어떤 정당이다.


5.
새로움이란 것은 과거의 것과의 부단한 대결에서 나온다. 가령 지금은 없는 사조를 제시한다 해도 이렇다. "A라는 사조와 B라는 사조의 중간쯤에 있는 노선을 추구하려 합니다." 이러면 듣는 사람도 이해가 되고, 뭐가 새롭고 뭐가 안 새로운지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무턱다고 새롭다는 얘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정범구의 미래세력이라는 레토릭이 문국현의 무-정책을 메꾸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하는 정당한 의구심을 품는다. 한미 FTA와 미국 쇠고기 수입에 '찬성'하는 '사민주의자'라니, 본인이 생각해도 참 말빨 안 먹히는 조합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거두절미 없는 새로움은 망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니까,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려야 내가 새롭다고 우길 수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어느 역사적인 명언처럼,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남는 것이 없고, 이 새롭지 않은 소란스러움을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명박은 새롭지 않고, 문국현도 새롭지 않다. 다만 그들이 구현하는 것은 2002년에 존재했던, 노무현을 보고 유권자들이 느꼈을 '새로움'의 이미지다. 이름하여 '새로운 것의 영원회귀'다. 이런 식의 정치흐름은 분명하게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6.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강박을 이해하게 만든다. 일제는 조선의 전통을 다 도려내버렸고, 해방 이후의 복잡한 정치정국은 그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문화적 축적물까지 다 부정해버렸다. 그야 그 시기의 것들은 다 일본어로 이루어져 있었을테니 이승만으로서는 계승할 수가 없었을 게다. 그래서 한국사에는 '고아'가 넘친다. 이승만은 조선 왕조의 핏줄과 미국 유학 경력을 자랑스러워 했지만 조선은 망했고 미국과도 불화했으니 전형적인 독불장군으로써 정치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에 충성을 바쳤지만 그후 '조국'을 바꿔야 했던 불행한(?) 군인 박정희 역시 심리적 고아다. (이것은 전인권의 <박정희 평전>의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신군부는 박정희를 계승한 주제에 박정희를 싸그리 부인하여 올곧은(?) 극우파들의 원성을 샀다. 그후 한국의 모든 정치집단은 이전의 모든 것들에 대한 부인을 강박적으로 반복해 왔다. '역사 바로세우기'도 좋지만, 그것이 이런 식의 고아의식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욕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명박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그들이 정치에 대해 기대하는 역할을 해주겠다는 사람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도 이전의 모든 것이 부정되는, '고아의 정치공학'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우려가 든다. 실제로는 새로운 것은 하나도 만들지 못하면서 이름만 바꿔놓고 새롭다고 우기는 이 세태.

이것을 이겨내려면 과거에 대한 분석적이고 엄정한 평가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되었든 과거에서 약간이나마 전거를 찾아내려는 버릇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역사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마땅히 평가해야 하지만, 어쨌든 역사는 연속적이고 우리의 삶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 부인한다면, 결코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지할 수도 없고 청산할 수도 없다. 참여정부는 5년전만 해도 새로운 정부였다. 만일 문국현이 집권한다 해도, 그는 '새로움'이란 레토릭만 내걸고 참여정부가 했던 일을 답습하지 않을까? 집권하지도 못할 그에게 이런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나는 그가 지금껏 보여준 모습만으론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7.
"나는 조봉암의 진보당을 계승하려는 거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 (꼭 이것만 있다는 건 아니다.) 진정한 새로움은 과거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큐라

2007.12.04 15:39:08
*.241.136.2

조봉암 얘길 하시니 반갑군요. 우리 나라에 존경할 만한 정치가가 있(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늘 조봉암을 거론했었는데```

하뉴녕

2007.12.04 18:37:14
*.176.49.134

"71년도의 김대중을 계승하겠다." 뭐 이런 사람들이 많아도 꽤 살맛나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정통고품격서비스

2007.12.04 20:42:14
*.216.114.61

근데 이게 다 권영길에도 더 해당되는 얘기가 아닌가 싶으네용. "세상을 확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권영길의 모토야 말로 과거는 따지지 말고 엎자는 운동권 한탕주의 논리인데용. 문국현의 "중소기업위주 사람 경제"는 "세상을 확 바꾸는 대통령"보다 단어상 더 구체적이지 않나요? 세부 공약으로 가자면 한계야 있지만, 심상정 지적대로 그 약점은 적용 모델이 한정된다는 점이죠. 다시 말해 아주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죠. 제가 문국현을 조아하는 건 아닙니다만.

하뉴녕

2007.12.04 20:49:37
*.176.49.134

그 동네는 너무 많은 전통(?)이 맞부딪혀서 그따위 문구로 좌초한 것이구요...

근데 님하 번번이 존댓말 쓸거여? -0-;;

정통고품격서비스

2007.12.04 23:21:53
*.216.114.61

오호호호~

fjdk

2007.12.05 01:28:27
*.131.47.149

구체적이라는게 3교대제 얘기 같은데 더 구체적으로 가면 3교대제하는 곳은 감세, 보조금, 안하는곳은 증세, 벌금 이럴 거 같은데. 강하게 가면 장난 아니겠고 약하게 가면 아무것도 아니겠는데요.

trotzky

2007.12.04 21:32:46
*.232.157.225

마지막 문단에 백분 공감합니다. 그나마 우리나라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참정치인 중에서 한 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정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굴 선택해야 할지... 15년 만의 투표권 행사에 너무 난감하네요...;;;

김수민

2007.12.04 21:53:17
*.229.81.176

본문에 노무현이 민주당 색채를 지우려고 했다는 건 동의 안한다. 그는 이인제가 DJ와의 차별화에 여념없던 국민경선 때도 자신이 민주당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적자라고 말했고, 본선 국면에서도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민주당, DJ의 계승자임을 부인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이 설령 레토릭일지라도 무게는 꽤 나가는 결정이었다. 레임덕에 봉착한 현직의 침묵과 그것을 틈탄 차별화가 한국대선의 고정 공식이었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았으니까..

단 문제가 되는 것은 집권 전후 여권의 분란과 야당 등의 맹공을 거치면서, 그리고 삼성과 관료의 입김 속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위원회공화국' 체제 속에서 정당정치적 '고아'가 되었다는 데 있지.

하뉴녕

2007.12.04 21:59:39
*.176.49.134

흠 당신 말은 동의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것이, 민주당 경선때까진 그랬어. 그래서 개혁당 초창기 연설 때 문성근이 김대중 정부의 공과 과를 다 승계한다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대선 후보들끼리의 경합 당시엔 분명히 민주당 색채를 지웠던 것이 사실이야. 포스터엔 민주당이란 단어가 찍히지도 않았어. 흔히 정당 명이 찍히는 자리에 번호와 이름만 찍혔지. 그 사실을 한나라당이 지적하면서 부패정권 심판론을 내세우자 "한나라당은 과거와 싸우십시오. 노무현은 21세기와 싸우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구. 뭐, 전략 자체는 아주 좋았지만.

김수민

2007.12.05 01:09:07
*.229.81.176

민주당 경선 때까지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경선 이후에는 DJ도 모자라 YS까지 끌어들이려고 했고...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도 공과계승 이야기는 지속적으로 펼치기도 했지. 동교동계 상당수가 정몽준에 기울어졌던 시점에마저도 차별화의 기회를 발로 차고 "나는 의리의 영남 사나이, DJ 배신하지 않겠다"는 투로 밀고 나갔지.

선거 기간에는 당신의 말대로 진행이 되었는데. 미필적 고의는 있었지만 민주당이나 DJ를 묻어버리고 가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후보단일화로 호남과 수도권 개혁표를 묶는 작업이 일단락되면서, 마지막에 부동층 표를 끌어오려고 탈색 전략을 썼는데 이것은 어느 정치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인 듯하다.

눈팅

2007.12.12 02:23:45
*.72.197.209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07.12.12 09:41:44
*.176.49.134

그러고보니 이라크 파병이 열린우리당 창당 전의 일이었군요. 수정했음 ^^;;

비담의백숙

2009.10.06 20:06:07
*.54.36.138

몇달 전에 국회 도서관에 들렀다가 죽산 조봉암 선생 서거 50주기를 맞아
21세기 진보정치와 죽산 조봉암의 재조명 토론회를 한다고해서 갔다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발언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연히 블로그 훔쳐보다 그냥 가기 뭐해서 흔적 남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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