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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경향신문] 진보정당, 활동가의 종언

조회 수 2271 추천 수 0 2010.01.16 09:21:03

경향신문 '2030콘서트' 원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1151804305&code=990000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대연합, 진보대연합, 덧붙여 진보양당 통합논의를 바라보는 진보정당 지지자의 입장은 편치 않다. ‘통합’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 이전의 얘기다.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권영길이 대선에 나왔을 때 열성적인 당원들은 전세금 빼고 셋방으로 옮기면서 돈을 부었다. 당의 ‘상근자’들은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불평하지 않았다. 온 동네에 노조를 만들라고 중뿔나게 간섭하는 이 당의 상근자 노조는 창당한지 몇 년 지난 다음에야 간신히 만들어졌다. 원내진출한 의원들의 보좌관 월급을 노동자 평균 월급(당시 180여만원)만 남기고 당에서 환수해 갔다. 부조리했다. 민주노동당은 그런 부조리의 기반 위에 서 있는 정당이었다. 


분당 사태는 이러한 ‘활동가 신화’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자기희생의 쾌감은 그것이 결국엔 역사적 의미가 있을 거라는 달콤한 환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민주노동당의 정체와 분당은 활동가의 헌신이 무의미한 짓거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헌신을 ‘리셋’하고, 두 개의 정당이 새로 출범했다. 분당이 그런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우리에겐 통합이 필요한가? 아니다. 문제는 분당 그 자체가 아니라 분당에 이르게 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통합논의는 또 한 번의 리셋을 말한다. 오랜 당원들은 두려워한다. 내 헌신과 활동이 몇몇 정치인들의 탁상잡론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말이다. 그런 두려움을 품고 있는 그들에게 누가 더 이상의 헌신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당신들과의 협의 없이 이 당이 끝나는 일은 없다고 못박고 흔들리는 활동가들을 다잡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몇몇 활동가의 자기희생이 아니라, 다수 당원들의 자발적이고 소소한 참여를 꿰매어 조직을 굴리는 방법을 체계화해야 한다. 전자가 운동권 방식이고 후자가 당원 민주주의 방식일 거다. 그런데 전자는 붕괴하고 후자는 만들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총체적 난국이다. 


‘활동가 신화’는 사라져야만 한다. 진보정당이 활동가의 벽 안에 들어가 있을 때 노무현은 그 벽을 뛰어넘었더랬다. 장인이 빨치산이 아니냐는 공세에 부당함을 말하지 않고 “그래서 나더러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라고 일갈했다. 초연한 척 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그대로 표현하며 공감을 산 것이다. 민중의 아픔만을 얘기한 궁핍한 활동가가 은근한 도덕적 우월감으로 사람들을 부담스럽게 만든 것과는 달랐다. 부담스러운 활동가가 생활인의 감각을 잃어버릴 때 운동은 결코 사회에 착근할 수 없었다. 활동가가 아닌 나 같은 진보정당 지지자는 그 사실을 지난 몇 년간 뼈저리게 깨달았다. 


 
하지만 활동가 선배들이 제 삶을 학대하며 쌓아온 성취는 사회에 계승되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한 번의 ‘무의미’와 ‘허무’를 가슴깊이 끌어안게 되리라. 90년대 내내 온 국민에게 욕을 먹은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의 한 골로 자신의 모든 과거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일이다. 운동권들에게 그런 행복한 기회는 없겠지만, 골을 넣는 순간에 어시스트라도, 피지컬트레이너라도, 아니 물 당번이라도 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활동가는 사라질 테지만, 그냥 사라져서는 안 된다. 통합논의를 하는 민주노총과 양당 지도부가 지쳐 떠나가는 활동가의 문제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는지 궁금하다. 진보정당이 가능하려면 저 활동가들이 더 이상 활동가가 존재할 수 없는 시대의 젊은이들과 만나고 어울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중은 스스로 즐기는 자를 즐기는 법이다.  



unknown

2010.01.16 11:31:51
*.60.18.72

'활동가'라는 사다리를 걷어찰 때군요. 잘 읽고 갑니다.

하뉴녕

2010.01.18 14:24:23
*.49.65.16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기에는, 아직 제대로 올라오지를 못해서...ㅠㅠㅠㅠㅠㅠㅠ

zeno

2010.01.18 00:37:42
*.136.141.204

우왕, 굳!

이상한 모자

2010.01.18 03:24:58
*.146.143.41

공현

2010.01.18 14:17:37
*.140.58.138

'희생 정신을 가진 지사적 활동가'의 종언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활동가의 종언 이후에도 운동-세력-조직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운동이 충분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운동에서 희생적 활동가를 요구하게 되는 것은, 물론 운동 안에서의 문화적 토양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운동이 충분한 자원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되는 것이 큰 것 같습니다. 진보정당들은 그만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 그 부분까지 진보정당 안에서 논의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180만원이면 저에겐 많은 돈인데... ㅠ_ㅠ)

하뉴녕

2010.01.18 14:25:43
*.49.65.16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진보신당 상근자들은 (예전에 비해) 형편이 많이 좋아지긴 했죠... 근데 지구당 폐지 때문에 당협 쪽 활동가들은 당이 지원을 할 수 없어서...여러가지 문제들이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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