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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냉소주의 찌질이들

조회 수 1786 추천 수 0 2007.10.07 08:50:42

찌질이 1 : http://www.kyobobook.co.kr/booklog/myStoryList.laf?memid=toktomish
찌질이 2 : http://www.kyobobook.co.kr/booklog/myBooklog.laf?memid=ji4hk


교보 블로그는 생긴 것도 똑같기 때문에, 대충 리퍼러로그를 찍어서 확인하다보니 이름을 잘못 불렀다. 그런데 문체를 봐도 별반 구별이 가지 않는다. 이 친구들이 어차피 날 두고 꼬마 꼬마 거리고 있으니, 그냥 찌질이들이라고 표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1. <불행한 소년>에 대한 해석의 문제

사실 냉소주의 찌질이들 보라고 <불행한 소년>을 비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어떤 묘하게 엇나간 민중주의 좌파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될 것이다. 냉소주의 찌질이들은 이 만화가 계급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연대성 운운하는 내 말에 알레르기를 보이기도 한다.


나는 <불행한 소년>의 소년이 소외계층이라고 표현했다. 그 소년은 단순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한 사회에서 '마이너스 1의 평화'를 위해 왕따당하는 대상이다. 그리고 이 만화는 그 소년에게 "참지 말아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한다. 한 찌질이는 낄낄 거리면서 재미있다고, 소년이 천사의 말을 듣지 않아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만화를 하나 더 그려도 좋을 거라고 한다.


내 말은 소년이 거기서 천사의 말을 듣지 않아도 그가 경험할 세상은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남은 건 끝없이 악다구니처럼 싸울 수밖에 없는 세상 뿐이다. 소년 시절에 동네 아이들과 싸울 때엔 정말 독하게 독하게 맨날 한명씩 잡아 테러리즘 수준으로 때리면 저녀석 독종이라고 건들지 않을 수도 있겟다. 하지만 그후 사회로 나와 '어른들'과 관계를 맺게 되면 그런 짓을 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하려 해도 인생이 피곤하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했던 건 원래 그래서 혁명에 도움이 안 되는 종교를 없애자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종교라는 아편을 필요로 할 정도로 피로하다는 의미였다. 소년의 삶은 너무나 피로해서 어쩌면 악다구니처럼 싸우느니 천사의 아편에 취해있는 쪽이 더 나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천사의 말을 듣거나 듣지 않는 소년의 태도를 정치적인 것으로 해석하자고 하는 창작자의 의도 혹은 수용자의 태도가 그다지 올바르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굳이 정치적이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연대가 대안이다.


특히 냉소주의 찌질이들은 소년이 천사를 죽인 행위를 지지하면서도 연대가 대안이라는 내말엔 조삼모사 원숭이들처럼 "우우우~~" 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이 친구들은 이 만화의 장르가 '좋은 생각'에서 느와르로 건너 뛴 것에 환호한다. 소년이 덤비다 덤비다 그래도 쳐맞는 느와르가 이들에게 쾌감을 주나보다. 이 느와르에서 소년이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그냥 판타지일 것이고. 그러면서 정치적인 만화가 되려면 이 리얼리티를 서술하는 데서 그치거나 그 대안은 조금씩 불쌍한 사람들끼리의 연대성이 되어야 한다는 내 제안에는 "우우우~ 아니야. 연대하자는 놈들은 너를 속이는 '천사'의 일종일 뿐이야. 소년! 그냥 혼자서 덤비라구!!"라고 반응한다. 이건 뭐 계급도 뭐도 아니고 그저 배배꼬인 원한감정일 뿐이다.


유일하게 볼만한 덧글은 도리깨라는 사람의 것이었는데, 이 사람은 천사를 소년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산물로 해석하고 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그 말까지 언급하면 천사를 '좋은 생각'이라고 의도했을 창작자와 (비평문을 쓸 때까진 그 의도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바로 그런 식으로 수용했을 사람들과의 논쟁의 논점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굳이 쓰지 않았다. 그리고 천사를 소년의 심리적인 고안물로 보더라도 이 만화는 깔끔하지 않다. 소년이 무언가에 덤비기 위해 그 직전에 천사를 죽였다면 아다리가 딱 맞지만, 그냥 죽기 전에 뜬금없이 천사만 죽일 이유가 뭐란 말인가. 내 블로그에서 어떤 분이 덧글로 (나나 김규항이) 천사를 실체로 보는 것이 오류인 것 같다는 지적을 하셨는데, 사실 이 만화에선 애초에 천사가 너무 실체적인 것으로 나오고 있다. 


하여간, 도리깨라는 사람의 견해도 결국은 소년은 덤벼봤자 별 볼일 없다는 리얼리티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소년이 천사의 말을 안 들어서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만화를 주문했던 찌질이는 그 견해를 나를 욕하는데 써먹는다. 횡설수설이다. 앞뒤가 안 맞다. 이 친구들은 이렇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


2. 원한감정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원한감정이다. 이 찌질이들의 원한감정은 도처에서 드러난다.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진중권은 당연히 민중이 아니고, 로드바이크를 타는 사람들도 민중이 아니다. 어떤 찌질이왈. '디빠든 디까든 로드바이크 타는 건 똑같다.' 여기서 디빠는 김규항이고 디까는 이택광이다. 퍽이나 단순한 놈들이다.


어떤 찌질이는 나보고 논박해달라고 요구하던데, 사양이다. 이 글의 카테고리도 잡담이다. "우우, 니넨 우리보다 잘 살잖아-. 우릴 속이지마. 우우우~" 뭐 이러고 있는데 이게 어떻게 논박의 대상인가? 원숭이들이 논박의 대상이 되나? 내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건 이게 지금 한국 사회의 정치적인 문제임을 인지하자는 것이다. 냉소주의가 팽배한 상황을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그 책임을 참여정부의 경제정책과 홍보에 돌릴 수 있다면, 나와 견해가 비슷한 사람이 되겠다. 막연하게 "노무현 대통령 된게 이회창 된 것보단 낫지 않았어?"라고 순진하게 말하기엔 사회적인 해악이 너무 크다.


한 찌질이는 나를 겨냥하고 판타스틱이나 드라마틱 따위는 의식주 걱정 안 하는 인간들이나 보는 잡지에 불과하고 그거 볼 시간 있으면 비평이론서나 밑줄 그으면서 보는게 낫다고 주장한다. 일단 판타스틱은 비평 잡지가 아니지만, 편의상 두 잡지다 비평잡지라고 치자. 이 친구 얘기는 "경제기사 보지 마세요. 멘큐의 경제학 보세요." 이런 얘기다. 그러려면 전제와 결론 사이의 논변은 "경제기사 보지 마세요. 걔들 수준 진짜 후지거든요. 그거 경제학 아니에요. 그러니까 멘큐의 경제학 보며 직접 공부하는게 나아요."라야 한다. '의식주 걱정 안 하는 인간들이나 보는 잡지'라는 비난은 이 논변과는 상관 없다. 물론 잡지 후지다고 해도 내가 동의해 주진 않겠지만, 최소한 말이 앞뒤는 맞아야 할게 아닌가? 글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는게 아니라 논리적 전개에 따라 쓰는 거다. 도미를 가위로 회 뜨겠다고 설치는 얼치기들은 물론 두 개의 차이가 뭔지 이해하지 못할 게다.


나는 일전에
세대론과 X세대 키보드 워리어들 라는 글에서 자기 블로그에 자기 얼굴과 계좌번호를 올려놓고 제발 돈 좀 부쳐달라고 생떼를 쓰는 공희준이라는 키보드 워리어가 있다. 이 분의 진중권 비평은 “그는 노점상 아주머니들의 감성을 모른다. 그러므로 그의 <디 워>비판은 무효다.”로 집약된다. 백수질을 하면서 방바닥을 오래 긁다보면 일년에 1억도 못 버는 진중권이 부르주아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에 대한 계급적 원한을 표출하면서 자신이 ‘민중의 벗’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모양이다. 야무지다. 라고 쓴 적이 있다. 이 친구들 생각하는 수준도 공희준과 비슷하다. 취미를 가질 정도만 되면 "우우~ 넌 우리보다 잘 살잖아~ 니말은 의미없어~" 뭐 이러고 있다. 386세대의 배배꼬인 민중주의가 어떻게 냉소주의 찌질이들과 조우하는지를 보라.


그들과 달리 이성의 스위치를 올리고 글을 쓰자면 첫째, 만일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 그가 자신의 자원을 더 잘 먹고 잘 살려는 노력에만 투입하는 것보다는 '월등히 좋은 일'이다. 거기다 대고 "우우우~"만 해서는 희망이 없다. 둘째, 글쓰는 인간들 바닥에는, 몇몇 베스트셀러 소설가를 제외한다면 잘 먹고 잘 사는 인간이 없다. 이 사람들 생활 수준은 한국의 중산층에도 미치지 못한다. 진중권의 취미는 퍽이나 고급하지만 그가 그 취미를 즐기려면 번 돈을 다 써야 한다. 셋째, 중산층은 붕괴되어서는 안 된다. '취미를 가지는놈 나쁜 놈' 논변(?)은 모두 하층민이 되자는 것인가? 그리고 한마디 덧붙이자면, 일본에서는 비정규직 알바생들도 취미를 갖는다.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봤으면 취미가 없는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텐데. 설마 이 만화 한두번 봤다고 부르주아라고 하진 않겠지?  


이 친구들의 원한감정은 한국 사회의 경제구조와 그 자신의 찌질함이 조응한 결과이다. 사실 그들도 피해자라고 볼 수 있지만, 너무 찌질해져 버려서 사회문제를 고민해 보자는 사람들에 대해서 가장 큰 적개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3. 연대성

그 대표적인 것이 우석훈에 대한 그들의 적개심(?)이다. <불행한 소년>을 둘러싼 이들의 반응에서도 드러나듯이, 이들은 '연대성'을 강렬하게 혐오한다. 사실 이들은 우석훈의 책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책은 안 읽는 걸 자랑으로 삼는 치들이니 할 말은 없다. 하여간, 우석훈의 블로그와 책읽은 사람들의 반응을 탐독(?)하면서 그들은 <88만원 세대>를 맹렬히 비난한다. 사기라는 것이다.


프랑스 68혁명 때의 고등학생들처럼 연대하자고? 그건 우석훈 당신이 박사학위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지, 라고 한 찌질이가 말했다. 이 친구들은 생각을 하려 해도 자꾸 의식의 흐름에서 원한감정이 외삽되어서 논리적인 사유가 불가능하다. 저 말대로라면 68혁명 때의 프랑스 고등학생들은 모조리 박사학위가 있었나? 이런 건 '말'도 아니다. 도대체 저런 수준의 말로 블로그를 꾸미는 강단은 뭘까? 연대하자는 놈들은 우릴 등쳐먹으려는 놈들이야, 라고 다른 찌질이는 말한다. 386들에게 대였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노무현이나 참여정부에게? 그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것일까?


어떤 찌질이는 우석훈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차라리 모든 직장을 비정규직으로 만들자고 그래라! 그래서 모든 세대가 동등하게 경쟁해서 고용될 수 있다록 만들자고 해라!" 이게 '연대는 불가능하다.'는 인간이 말할 대안인가? 386세대와 50대들이 20대에게 일정부분 양보하기로 결정하고, 20대들이 뭉쳐서 나름의 대안을 찾아내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인간들이, 뭐 어쩌고 어째? 꼰대들이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all 비정규직으로 가야 한다는 걸 '대안'이라고? 5를 내어놓도록 하는 것보다 100을 내어놓도록 하는게 대안이라고? 어떻게 내놓게 만들 거야? 뭉치지도 않을 거라면서. 이 친구들은 현실감각이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그리고 모든 이가 비정규직이 되면 그런 자본주의는 망한다. 그러니까 제발 책 좀 보고 살아라. 지들이 기업경영자도 아니고 로드바이크 타는 사람한테도 너는 나보다 잘산다고 찌질거리는 처지인데 책도 안 보면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당연히 원한감정 속에서는 연대성이 가장 배격해야 할 짓이다. 디빠들처럼 순간적으로 우르르 다구리 치는 거 말고. 마르크스가 대규모 공장 노동자들이 혁명의 주역이라고 믿은 건 그들이 사회에서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들은 임금 꽤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주목받은 건 조직화되기 쉬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냉소주의 찌질이들은 그 사회에 있었으면 퇴근하고 술도 한잔 할 수 있는 너희들 말은 안 들을 거야, 미워미워- 하고 있었을 게다. 참 사회에 도움 안 되는 애들이다.


내가 당연하게도 갖게 되는 의문은 이것이다. "연대성은 대안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실력을 키워 살길을 찾겠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은, 무의식적으로라도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그런 이들은 그 실력인지 뭔지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산다. 그런데 그들은 왜 정치는 의미가 없다고 믿으면서도 인터넷에 긴 글을 올리는 것일까? 왜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을 실천도 하지 않으면서, 우석훈이나 한꼬마 따위를 까는데 정력을 낭비하는 것일까? 원래 글이라는 건 의사소통을 하려고 있는 거다. 연대하기 싫으면 그냥 행동으로 보여주고 자기 공간으로 들어갈 일이지 왜 "연대하지 않을 거야-"라는 글을 천만년 동안이나 써야 하는 것일까?


간단한 정답: 본인들의 찌질함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4. 반지성주의

내가 반지성주의 운운했더니 어떤 찌질이는 말한다. 그 지성을 키우기 위해, 4년제 대학을 다녀야 하고, 그러기 위해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 알아? 4년제 대학을 다니기 위해 돈이 얼마나 들어야 하는지는 안다. 내 주변에도 학자금 대출 때문에 빚쟁이가 된 친구들 천지다. 그래서 뭐? 이 친구들은 내가 말하는 '지성'이 '학력'이나 '학벌'인 줄로 착각하는 모양이다.


명문대생들 중에서도 멍청한 소리 내뱉는 사람이 많고, 대학을 안 간 친구들 중에서도 통찰력이 예리한 이들이 많다. 사실 대학을 못 갔을 정도면 집안이 꽤 어려운 처지니 책을 많이 읽었다는 의미에서 지적이긴 힘들 것이다. 그래도 어느 특정한 명문대생보다 지적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어차피 다들 책을 안 보니까.


지성 운운은 모두 대학을 가자는 얘기가 아니라 책 좀 읽고 생각 좀 하자는 얘기다. 제발 연대성도 그냥 까지 말고 <88만원 세대>를 (돈이 없으면) 누구한테 빌려서라도 읽고 까란 말이다. all 비정규직이니 이딴 소리 하기 전에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도 한번 읽어보시라. 책읽는데도 돈이 좀 들기야 들지만, 그게 등록금만큼 비싼가? 계급적 차이를 극복할 수 없을 만큼? 그래도 그게 로드바이크보단 싸잖아. 그럼 그 짓이라도 해야지.


갑자기 대학 도서관 개방 운동을 펼치던 학생들에게 "중산층 운동 좀 그만해라."고 일갈했다던 어떤 좌파 민중주의자가 떠오른다. 그러니까 그의 머리속에 들어있는 '민중'은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책을 사기 힘들지만 책을 읽고 싶은 이들을 위해 도서관을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중산층을 대변하는 것이었던 게다. 정말 냉소주의 찌질이들에게 존경을 받을 위인이다. 그중에서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쩔 것인가?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은 계급적인가?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럴 것이다. 부모님이 책을 꾸준히 권해온 친구들이 그런 욕망이 생기기 더 쉬울 테니까.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독서는 다른 취미나 방책만큼 돈이 들지는 않는다. 굳이 민중주의적 수사를 사용하자면, 책이야말로 민중의 무기다. 안 읽고 원한감정에 빠져 '싫어-싫어' 찌질거리고 있으면 답이 없다.  



이 정도면 이 찌질이들에 대한 내 화풀이는 충분한 것 같고, 냉소주의와 관련해서 내가 쓴 세 개의 잡문의 링크를 첨가한다.


'어차피'의 화용론

386에 대한 냉소, 냉소 바깥

냉소주의


Svinna

2007.10.07 11:15:09
*.148.224.204

정말 통쾌한 글입니다.
동시대에 살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하뉴녕

2007.10.07 12:17:58
*.176.49.134

찌질이 반응 보려고 잠깐 들어갔더니 지가 앞서 한 말 다 까먹고 앞의 절반을 제가 한 말을 인정하는 글로 채워놓고 있더군요. 게시판 시대에 게시판에서 만났으면 '어버버..' 인간의 말이 안 나올 때까지 혼내줄 수 있었겠습니다만, 저도 옛날만큼 격정적이진 않고 바보들과 오래 싸우는게 생산적이지도 않죠. ^^;;

fjkd

2007.10.07 17:41:30
*.131.47.201

--; 386세대와 50대들이 20대에게 일정부분 양보하기로 결정하고, 20대들이 뭉쳐서 나름의 대안을 찾아내자는 내용이 정말 맞나요?
책도 안읽어보고 미디어몹에 걸린 독후감 '우리 시대의 자본론-88만원세대'(http://www.mediamob.co.kr/umberto/Blog.aspx?ID=177091#)에 요약 잘못한거 같다고 댓글달았었는데.
세대간 착취 다룬 책이라고 하고 4,50대가 양보해야 된다고 하더라구요.
뭘 어떤 방법으로 양보할 수 있지? 실없는 얘기로 저자 혹은 독후감 쓴 사람이 물타기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공희준씨가 '서귀포(위미리?)주민은 해군항(혐오시설?)에 협조하고 대신 국민들은 귤 많이 소비해주자'고 했던 게 생각나는데 그때 전 해군항과 귤소비가 대응되는지도 헷갈렸지만 국민들이 정말 귤 많이 사는 연대를 할 거라는 것도 허황돼 보였거든요.

하뉴녕

2007.10.07 17:56:32
*.176.49.134

정책적 대안이 정말 많이 나오는 책이니까 직접 읽어보시는게 제일 낫습니다.

kritiker

2007.10.08 23:39:09
*.250.83.236

"비밀글입니다."

:

Dali

2007.10.09 08:57:43
*.246.187.134

진즉에 거기 가서 읽긴 했지만 '꼬맹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그 사람은 스스로의 찌질이 정체성을 증폭시키더군요.

서민

2007.10.11 21:01:39
*.205.218.169

아...정말 세상은 넓고도 좁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곳에 님께서 링크해놓은 찌질이들이 몰려와 한바탕 난리부르스를 춘 적이 있습니다. 그 찌질이들이 님한테도 시비를 걸었군요 그자들은 온라인이세상의 전부이고,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관심으로 알고 즐기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위해 이런 말이 생겼다지요. "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 님도 그냥 무시하삼. 말꼬리잡기가 주특기거든요.

하뉴녕

2007.10.12 12:51:53
*.46.4.35

"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

-> 맞는 말씀입니다만 그들이 어떤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인터넷이 키워냈거나, 인터넷을 통해 드러난...

N.

2007.10.13 00:19:34
*.5.146.242

그놈들 논리를 그대로 빌어보자면,
컴퓨터에 인터넷 연결해서 블로그 씩이나 꾸리고 있는 지들도 부르주아인 거죠 뭐. 컴퓨터는 뭐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고 전국민이 인터넷 무료로 사용하고 그런 상황도 아닌데. 노동자들한테 장미 따위 사치라고 말하는 놈들이야말로 반민중적인 놈들이죠.

d

2008.03.08 22:56:34
*.250.90.150

찌질이 1, 찌질이 2 의 글을 읽고 한윤형님이 쓰신 줄 알았네요 순간-_- 아연실색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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