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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대학내일] 대학생의 '85', 비정규직

조회 수 1100 추천 수 0 2008.10.03 00:20:00
나보다 6학번이 아래인 여동생을 볼 때 내가 언제나 느끼는 것은 오늘날의 대학생들이 눈코뜰새없이 바쁘다는 것이다. 일단 모든 이들이 학점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수업에 쏟아 부어야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다. 취직에 필수라는 외국어 능력을 쌓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어떤 공부냐의 문제가 있긴 하지만, 대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 자체는 좋은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예전이라면 ‘여가’에 해당했을 활동조차도 ‘취직’이라는 목적에 합치하게 구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동아리 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할 때조차도 여동생은 이력서에 써넣을 수 있는 경력 한 줄을 생각한다. 이것에 놀라는 나는, 제때 졸업하지 못한 ‘옛날 대학생’일 뿐이다.


예전의 대학생은 고등학생과 직장인 사이에 끼어 있었고, 전후(前後)의 두 정체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한가했다. 그리고 ‘엘리트’라는 정체성과 그에 수반되는 책임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성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학생은 ‘진학률 86%’가 말해주듯 특권층도 아니고, 다가올 취업전쟁을 위해 경쟁하는 집단인 데다가, 예전에 운동권들이 담당했던 최소한의 사회과학 세미나의 세례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 결과를 대학생의 보수화, 혹은 원자화라고 본다면, 많은 이들이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이 현상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회문제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시야를 잃어버린 대학생들에게 사회에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부당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는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균적인 대학생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어떤 ‘운동권’ 대학생에게,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소외계층에 대한 연대일 수 있다. 하지만 평균적인 대학생들에게도, 비정규직 문제는 졸업 후 자신이 맞닥트려야 할 잔혹한 현실의 반영이다. 물론 그들은 바로 그것에서 도망치기 위해 청소년기부터 공부해왔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왔건 그렇지 못했건 다시금 취업전쟁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대학생 중 그 망령을 대면하지 않을 이들은 몇 퍼센트나 될까. 지금 이 순간 전체 노동자의 40%가 비정규직이라면,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비정규직 비율은 훨씬 높을 것이다. 대학생의 미래는, 확률적으로 볼 때, 비정규직이다. 


물론 모든 대학생들의 입장이 동일하지는 않다. 학벌 구조의 정점에 서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비정규직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택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사실에 우울해한다. 그 바깥쪽 동심원을 형성하는 명문대생들은 이들의 ‘높은 콧대’를 조소하거나 그것에 안도하면서 인사담당자의 환심을 사 ‘대기업 정규직’의 대열에 비교적 손쉽게 합류한다. 그 바깥쪽 그리고 그 바깥쪽 동심원의 구성원들은 혹시나 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이를테면 이것은 5 대 95의 문제다. 5에 합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을 15로 잡더라도 85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대처의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 15의 경우는 자신이 5에 합류하지 못하는 2/3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어느 동심원에 속했느냐에 따라서 확률의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의 대학생들 중에서 자신이 비정규직 문제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지난 10년간 노동유연화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현 정부는 그 추세를 거스르기는커녕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높으며, 고도성장을 끝낸 한국경제는 ‘고용없는 성장’의 문제에 직면했다.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에 휘청하는 세계경기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 않는다.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지금은 ‘기업을 살리기 위해’ 비정규직의 현실을 감내해야 한다고 사람들이 말할지라도, 앞으로 여기저기서 비정규직 사업장의 노동착취 문제는 불거져 나올 것이다. 기업은 더 값싼 비정규직을 더 많이 쓰려고 노력할 것이며 사람들의 인내에도 한계는 있기 때문이다. 만일 많은 대학생들이 지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연대를 시작하면, 몇 년 후에 그들은 강력한 당사자 운동을 조직하게 된다. 그렇지 못한다면, 몇 년 후 그들은 각자의 사업장에서 외롭게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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