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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작가의 의도

조회 수 897 추천 수 0 2006.11.21 13:53:00
말년병장 카이만씨. 지휘통제실에 꽂혀있는 월간중앙을 빼서 볼 정도로 짬을 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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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중앙> 10월호에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의 감독인 이준익 감독의 인터뷰가 실렸다. 그는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유쾌한'이 하나의 강박이 되고 있는 이 시대의 '노력해서 유쾌한 유쾌함 교의 우등생들'과 같은 부류는 아니었다. 쪽팔릴 소리도 쪽팔리는지 모르고 그대로 털어놓는 솔직함 혹은 적당한 무지가 돋보였고, 심성에 배배꼬인 구석이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그는 자기 자신을 배려하기에 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는 나의 관심사인 황산벌에 대해서도 몇 마디 했다.


...수학으로 치면 이차방정식 정도밖에 못 푸는 학생들에게 미적분을 풀라고 하는 거지. 우리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관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갔지만, <황산벌>은 두 번, 세 번, 계속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야. 한번 다시 봐봐....


물론 나처럼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그 영화를 열번이나 본 사람은 감독이 저리 말해주면 고맙다. "우리 역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라는 원인규명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런 혐의를 받아 마땅하지. 왜냐하면 있는 현상을 그렸으니까. 모든 콤플렉스는 그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실마리가 풀려. 진단이 정확하면 처방도 정확한 법이니까. 지역감정을 유발한다는 혐의는 분명히 받을 만하지만 그것이 퇴행적이냐 진보적이냐의 문제야. 나는 분명히 진보적이라고 생각해....


이런 언급은 탁월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다들 그것을 (조폭물과 비슷한 의미에서) 퇴행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성일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사실 작가의 의도는 비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텍스트가 수용되는 방식을 비평할 수도 있고, 아니면 전가의 보도인 무의식을 끌어들여 '무의식적으로' 그 지점을 헛디뎠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황산벌 이후 친구들과 가졌던 숱한 술자리에서 "작가는 (네가 말한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그 경험이 내가 이 블로그에 올린 황산벌 비평문에도 영향을 끼쳤다. 내 친구들 중에선 영화판에 적당히 한발 걸치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전언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너무 조심스럽게 써서 탈이다.

물론 이준익 감독 본인이 '의도'가 있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경우엔 이준익 감독의 말이 솔직한 것 같다. 말하자면 1) 그때 의도가 있었지만 없는 척했거나, 2) 그때 의도가 없었지만 이제와서 <왕의 남자>도 뜨고 했으니 있는 척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도대체 황산벌에 대한 긍정적인 비평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준익 감독이 무언가를 보고 이제와 '있는 척'을 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답은 자연히 1)이 될 수밖에.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사투리 코미디 부분을 적극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한국땅에서 뭔가 의도가 있는 척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밖에 없다. 범인들은 그저 아무 의도가 없는 척 하는 것이 살기 편하다. <라디오 스타>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준익 감독의 건투를 빈다. 아직은 그를 싫어할 때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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