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삶의 사관학교로부터 - 나를 죽게 하지 않은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죽죽 읽다보면 정신이 사납지만 문장 하나 하나는 ‘간지대마왕’인 프리드리히 니체. 그의 대표적인 저서라고 볼 수 있는 <우상의 황혼>의 “잠언과 화살”에 나오는 말이다. <경성스캔들> 3회의 회상씬에서 수현(류진)이 송주(한고은)에게 “죽지 마. 절대루 살아. 너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너를 강하게 만들 뿐이란 사실을 보여줘, 세상한테.”라고 말할 때 불현듯 이 말이 떠올랐다. 철학적 이론에 앞서 그저 삶 자체를 강하게 옹호하는 것은 생철학자들의 일반적인 특성인데, 이것은 한국인들의 심성에 잘 맞는 것 같다. 수현이 내뱉은 말은 굳이 누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많은 한국인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저런 식으로 삶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 종교를 믿지 않고, 인간의 존재나 삶에 목적이 있다는 시각을 거부한다면, 살려는 의지가 죽으려는 의지보다 맹목적으로 선하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힘들다. 맹목적인 삶의 의지는 그저 유전자가 자신을 퍼트리기 위해 개체인 당신에게 부과한 명령일 뿐. 하지만 사람은 생물학적인 본능을 수많은 문화적인 기제로 비틀고 꺾는 존재다. 본능을 거부하는 것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본다면 인간들의 법률의 정당성은 성립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자살도 하나의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군대에는 선임이 후임을 보고 “나같으면 자살했다.”고 말하는 어법이 있다. 필자도 상병쯤 달았을 때, 아직도 남아 있는 고통이 많음을 깨닫고 말 그대로 저런 심경에 빠져든 적이 있다. 이 모든 걸 알았더라면, 그냥 이 모든 것을 겪기 전에 이등병 때 콱 죽어버렸을 텐데. 상병쯤 달면 이른바 ‘박은 돈(sunk cost)’이 아까워져 죽기도 서럽다. 에세이스트 고종석은 어디선가 자신이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 이 고통스런 삶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는 생각이 현재의 자신에게 오히려 힘을 준다고 썼다. 마치 이 직장을 언제든지 때려칠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직장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듯이 말이다. 회의주의자들에게도 열심히 살기 위한 방법은 있기 마련. 어찌 보면, 고통의 효용에 대해서만 논할 뿐 “절대로 살아.”라고 명령하지 않는 니체의 격언은 수현보다는 고종석의 맥락에 더 닿아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한윤형 (드라마틱 25호, 2007년 8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 김규항의 진중권 비평에 대해 [39] [1] 하뉴녕 2010-08-17 7153
13 '꿀벅지' 논란에 대해 [45] [2] 하뉴녕 2009-09-25 1932
12 [작가세계] 문필가는 세상을 어떻게 담아내는가? (부분공개) [9] 하뉴녕 2009-07-25 2259
11 어떻게 한 사람을 지칭할 것인가. [6] 하뉴녕 2008-05-22 918
10 지역주의 뒤집어보기 하뉴녕 2008-01-17 2551
» 문어체 소년의 인용구 노트 2 : 고통과 삶 하뉴녕 2007-08-21 986
8 그들이 개혁당을 잊지 못한 이유는 [4] 하뉴녕 2007-04-16 952
7 정치적 설득과 매혹의 문제 [2] 하뉴녕 2007-03-14 1100
6 진보주의자들이 대통령 억울함까지 헤아릴수야 [1] [1] 하뉴녕 2007-02-17 898
5 솔직함에 대해 [4] [1] 하뉴녕 2007-02-16 1475
4 전통 하뉴녕 2005-12-26 2899
3 강준만의 노무현 비판을 보고 하뉴녕 2004-08-26 1507
2 노빠론 (1) 하뉴녕 2004-06-10 1308
1 유시민, 강준만, 고종석의 진실게임. 하뉴녕 2003-06-21 2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