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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두 개의 대체역사소설

조회 수 1543 추천 수 0 2008.04.12 17:21:32

사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승리'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이 조합된 기막힌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는 '운이 좋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장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 것만 같은 두 개의 대체역사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하나는 큰 사건에 대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단 좀 더 작은 사건에 대한 가정이다.


첫번째 가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운좋은 일이라 여겨졌던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2년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노무현을 찍을 수밖에 없겠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한다. 그 당시 주어진 자료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왕 한나라당 정권 5년을 견뎌내야 한다면 이명박보다는 이회창 쪽이 훨씬 나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02년의 이회창은 지금의 이회창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성향과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른 두 대선후보의 불꽃튀는 대결이 된 대선정국에서, 이회창은 진보 쪽 표를 흡수하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집권 초에 오히려 상대편을 안배하는 정책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던 간에, 한미 FTA가 그리 갑작스럽게 추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당이 결사반대했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한나라당 경제정책이 전혀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염증으로 그동안 야당정치를 통해 좀더 성숙한 민주당의 노무현이 2007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이건 지금보다 나쁘기는커녕 훨씬 좋은 시나리오다.


이 역사소설의 아이러니는 노무현과 개혁당의 능력치를 높게 잡을수록 우리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회창이 집권하자마자 구민주당계는 노무현과 개혁당을 탄압하려 했을 게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유시민-개혁당계는 가령 이라크 파병 같은 여당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개혁적 유권자들을 결집해 나갔을 것이고... 이들이 이 결집을 통해 민주당을 서서히 바꾸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나리오의 미래는 아주 좋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통합민주당과 접점이 사라져버린 개혁적 지식인 그룹의 의견 역시 청취되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반면 노무현 그룹이 버티지 못하고 쓸려나갔을 거라든가, 버티긴 했으되 어차피 지금처럼 한나라당과 비슷한 경제정책으로 이행해 나갔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정치공학을 생각해 볼 때 이건 좀 극단적인 가정일 것 같은데) 이 시나리오 역시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재수가 없으면 이 시나리오에서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일이 (민주당이 깨지지 않았으므로 박빙 승리였겠지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민주노동당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집권 초기에 분노에 찬 노빠들에게 조낸 밟혀서 사이트가 만신창이가 되었겠지. 이라크 파병할 때 "봐!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는 소리도 들었겠지. 우리 세계를 아는 사람 눈으로 보면 좀 우스운 상황이겠지만,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성장이 억압되어서 자주파에게 점거를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주파들도, 민주당 비판적 지지론자와 민주노동당 접수론자로 양분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군소정당의 운명은 작은 변수에도 요동치기 때문에 소설가가 그리기 나름이다.


두번째 가정은...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조승수가 같잖은 이유로 선거법의 제재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9석의 정당과 10석의 정당이 의정활동에서 크나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주파가 역시 민주노동당을 말아먹었다고 치고, 분당 정국에 들어섰을 때다.


조승수는 우리의 세계에서 선도탈당파였다. 그리고 저쪽 세계에서도 조승수는 선도탈당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역구 의원은 탈당을 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으니까. 노회찬 심상정이 나올 때까지 진보신당이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의원직을 유지한 조승수의 선도탈당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구조의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것이고, 도전할 만한 지역구를 두 개에서 세 개로 늘렸을 것이며, 1명에 불과하지만 의원을 보유한 정당으로서의 진보신당은 우리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여론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신당은 지금보다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 즉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건 득표수로 치면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결과로 치면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이 생각을 하면 약간 속이 쓰린다.


부질없는 짓 같지만, 이런 상황을 상정해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티에프

2008.04.12 18:01:38
*.88.163.114

대체역사라는 가정 재밋죠.

음.. 이회창 후보는 인물면에선 확실히 대통령 할만한 인물이긴 해요. 그렇죠? 적어도 지금의 한나라당 정부보단 나을꺼 같단 생각도 들고. 2007년에는 정동영이 대통령이 될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는데. 2002년에 노무현이 당선안되었을경우, 유시민은 국회의원이 안되었을껍니다. 유시민이 국회의원이 된것은 당시 대통령과 밀약이 있었다고 하거든요.

웅스

2008.04.12 21:12:05
*.46.167.140

재미있는 이야기네요...ㅋ 첫 번째 가정에 대해서는 언젠가도 한번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고... 개인적으로 두 번째 가정이 꽤 흥미롭네요. 근데 조금 의문이 드는 건, 제가 현실정치에 과문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과연 국회의원 조승수가 그렇게 쉽게 선도탈당을 할 수 있었을까하는 겁니다. 의원직 상실 이후의 상황에서는 그저 개인만 결단하면 됐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겠죠. 하지만 국회의원직에 있었다면, 아무리 탈당 후에도 의원직을 유지한다고 해도, 어떤 형식으로든 선거승리에 가장 공이 큰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해준 유권자들에게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을텐데 그게 그렇게 쉬웠을까요. 물론 뭐 그런 것 대충 무시하고 탈당을 결행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울산 북구는 '진보신당이 도전할만한 지역구'는 아니지 않았을까요. 오히려 어쩌면 이런 복잡한 문제들을 피하고 차기의 당선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조승수는 탈당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조승수씨를 무시해서가 아님-_- 정치인으로서 이도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택이니깐) 뭐 그냥 뻘생각이긴 하지만 ㅋㅋ

하뉴녕

2008.04.12 21:17:29
*.176.49.134

조승수가 좀 당직에서 자유로운 입장에서 선도탈당파가 되었다는 건 맞는 얘기인데...말씀하신 부분들은 참 따지기가 힘드네요. ^^;

정통고품격찌질찌질

2008.04.14 18:08:34
*.216.114.61

저도 그런 공상이 드는데용. 조승수가 의원직을 유지했다면 "대빵에 대한 주사파의 최소한의 모심"을 받지 않았을까. 조승수가 의원직에서 밀려나고 연합계열과 정책위의장을 겨루게 되면서 "배신자 개털" 취급을 본격적으로 받게 되었거든요. 그때 조승수가 느낀 환멸이 없다면 선도탈당이 있었을까 의문이어용.

임계질량

2008.04.12 21:31:30
*.173.22.177

2002년 대통령이 안되었으면 아마 정계은퇴했을 겁니다. 대선 후에 민주당의 대선자금 문제가 터졌을 것이고, 자의던 타의던 노무현은 재기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그러면 개혁당도 지리멸렬. 이렇게 생각하면 2007년 정몽준이 반한나라당 후보로 나올 수 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하뉴녕

2008.04.13 01:07:33
*.176.49.134

흠, 그런 시나리오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ㅡ.,ㅡ;; 지금에 비해서도 만만치 않게 암울한 시나리오로군요. 쿨럭 ;;;

tango

2008.04.13 01:43:20
*.98.169.215

김영삼도, 김대중도, 노무현도, 따지고 보면 '자력'으로 대통령이 되지 못한 존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야합', '연합', '단일화' 등을 통해 이질적인 세력들의 힘을 보태 당선된 사람들이죠. 그나마 그 과정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나름대로 제일 잘 발휘했던 건 김대중정권이라고 볼 수 있는데, 대북관계에서는 뜻 대로 했을 지 모르나 내외경제여건이 최악이었던지라 과거 자신의 경제노선이었던 '대중경제론'도 포기하고 신자유주의와 덥썩 손을 잡았던 게 문제지요.

자력으로 집권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런 저런 타협으로 전선을 애매모호하게 만들어버린 책임이 그들에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3당 합당이 성사되지 않고 92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이 정신 차려 단일화로 나섰다면, 그리하여 92년,97년에 김대중 김영삼이 사이좋게 차례로 정권을 잡았다면, 그런 가운데 87년 백선본에서, 한노당, 민중당으로 이어진 진보정당운동이 나름대로 뚜벅뚜벅 걸어왔다면, 이른바 '민주개혁 세력'의 정체성과 정치적 성과도, 좌파의 성장도 더 빠르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그놈의 '지역감정' 프레임은 애시당초 없지 않았을까..이런 생각을 한윤형님의 몽상에 덧붙여봅니다^^

(자력으로 집권 못하는 거, 이거 참 골치아픈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좌파 집권 시나리오' '10년 혹은 20년 내 좌파집권플랜' 이런 거, 저는 별로 관심 없다는...

여울바람

2008.04.13 19:11:38
*.143.20.106

한홍구쌤이 첫번째 가정에 대해서 이야기 한 게 생각나네요. 그것도 아직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2007년에 말이죠..역사란게 '가정'이란 게 없지만, 이러한 '상상'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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