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참여정치의 추억"을 보고

조회 수 1094 추천 수 0 2007.03.18 22:41:25
 

내가 어떤 식으로든 참여했던 다큐멘터리 <참여정치의 추억>이 오늘 KBS 스폐셜에서 방영되었다. ‘어떤 식으로든’이라고 쓴 건, 이것저것 잡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기획회의도 같이 하고, 촬영도 같이 가고, 내가 안 나오는 장면이라도 혹시 모르니까 따라가서 촬영보조를 했다. 가장 기억나는 건 어느 사람 집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 강아지 두 마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내가 옆방에 가서 그것(!)들을 꼭 끌어안고 있었던 일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 강아지들이 거실로 나와 방방 뛰자 사람들이 “우와,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다니, 정말로 귀여운 강아지다!^^”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물론 그때 내 심정은 ‘참 퍽이나 귀엽겠다...’라는 것이었다. 사소한 일도 하고 좀 중요한 일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조직적으로 하는 일이 늘 그렇듯 결과물이 내 취향에 썩 맞는 것은 아니다. 사실 취향으로만 치면 전혀 안 맞는다고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건 ‘진짜’의 영역도 아니고 ‘가짜’의 영역도 아닌 곳에 속해있는 것 같다. 단순히 다큐멘터리 만드는데 따라다니기만 한 것도 아니고, 도중에 인터넷에 올릴 UCC 두 개를 사실상 미니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물론 영화과를 다니는 친구인 KSW의 프로페셔널한 솜씨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UCC는 KBS와 상관없이 우리 둘이 만들었는데, 초반에 나는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상언어에 대한 내 이해는 더 깊어진 것 같다. 2달이라는 짧은 참여기간에 비하면 말이다. 그래서 방송을 보는 내내 내가 거슬렸던 것은 대사가 아니라 음악이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음악이나 편집의 효과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괜히 기분이 나쁘네...’라고 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이거 굉장히 몽롱한 음악을 틀어주는군...^^’이라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방송은 개혁국민정당에 참여한 개미당원들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에 기초해 있다. 개혁당에 대해서는 나도 높이 평가하는 편이지만, 그렇기에 열린우리당으로의 성급한 이행을 결정했던 유시민류의 정치인을 비판적으로 보는 쪽이고, 덧붙여 결국엔 통상적인 개혁당원들의 정치참여 방식도 그런 식의 실패를 예정한 것이었다는 생각도 있다. 그에 대해서는 내가 쓴 글이 여기 많이 있으니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방송에 나오는 나를 화자로 지정한 나레이션은, ‘거짓말’은 아니지만 내 생각의 일부분이다. 어차피 이 방송이 나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상관은 없다. 문제는 방송의 온정적인 시선이 구체적인 비판대상을 적시하지 않는 모호함과 음악의 몽롱함 때문에, 한때의 참여정부 지지자들에게 위안을 주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 그런 위안도 어느 정도는 필요할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청소감 게시판을 가보니 이제는 노무현이 아니라 노사모에게까지 책임을 묻고 싶어 하는 정치적 반대파들과, ‘감동받은 이’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방송은 결국 한국정치의 소모적인 프레임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못하는 셈이다. 시청률이 어떻게 나올는지는 내일 두고 봐야 알겠지만.


다만 한 가지 의의가 있다면 지금까지 개혁당은 열린우리당의 전신으로만 알려져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개혁당을 독립된 주체로 부각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정도일 게다.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는지는 판단이 잘 안 선다. 그게 ‘성공’이라면, 내 취향에 안 맞는 몽롱한 음악도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 줄 수도 있으련만.   


소회가 없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렇게까지 쿨한 척 하는 사람이 못 된다. 공부 열심히 하고, 새 알바 구하고, (나는 돈 받고 일했다. 후급이라 아직 받지는 못했지만.) 일하다가 친해진 분들이랑 마지막으로 술 푸는 걸로 이 허전함을 달래는 수밖에 없겠다. 



내맘

2007.03.21 11:52:32
*.13.96.122

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TV를 보고 개혁당을 추억하는 포스트를 하나 올렸습니다. 몽롱한 음악 덕인지, 대벙개에 모인 소수 사람들 때문인지, 과거의 영상을 돌리며 추억하는 분위기 때문인지. 대체로 다큐는 우울한 분위기였습니다. 솔직히 다큐가 전달하려는 목적을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개혁당의 정치실험이 있었다는 서술인지. 그게 의미가 있고 현재에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지. 한 정치단체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말 그대로 추억을 보여주는 건지. 정답이야 없겠지만 민감한 시기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다큐를 의도했다면 적어도 명분은 그런 정치실험의 유의미성과 현재적 계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울한 듯 끝나는 결론은 또 다른 정치 허무주의를 유도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 되더군요. 그냥 제 짧은 생각에서 말이죠^^ 어쨌든 추억 됐다는 것 만으로도 의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뉴녕

2007.03.21 17:21:57
*.176.49.134

네 감사합니다. ^^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았는데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극단혹은중용

2007.09.02 21:54:30
*.31.49.223

방금 봤습니다.

왜 이렇게 마음이 휑한지 ;;

술 한 잔 하러 나가야 겠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 [경향신문] 지식소매상 유시민의 'SSM 꿈' [5] 하뉴녕 2011-03-26 4386
18 마지막 순간 [23] 하뉴녕 2011-03-23 5679
17 이글루스 좌파-노빠 전쟁에 대한 잡상 [22] [1] 하뉴녕 2009-12-26 2589
16 [미디어스] 친노신당과 민주통합시민행동에 대해 [6] [1] 하뉴녕 2009-09-01 1268
15 선진당-창조한국당 원내교섭단체 구성 공동 합의를 보고... [1] [1] 하뉴녕 2008-05-23 867
14 두 개의 대체역사소설 [8] 하뉴녕 2008-04-12 1543
13 그들이 개혁당을 잊지 못한 이유는 [4] 하뉴녕 2007-04-16 952
» "참여정치의 추억"을 보고 [3] 하뉴녕 2007-03-18 1094
11 동영상 두 개, 행사도 두 개! [5] 하뉴녕 2007-02-23 908
10 (강준만의 글에 대한)유시민의 반응에 대하여 하뉴녕 2004-08-27 1425
9 개혁당 해산이라는 사기극 [1] 하뉴녕 2004-05-03 2280
8 두 개의 민주주의 -노동당과 개혁당 하뉴녕 2004-01-20 1283
7 노혜경 님의 허수아비 논증에 대해. 하뉴녕 2003-07-25 1536
6 유시민, 강준만, 고종석의 진실게임. 하뉴녕 2003-06-21 2222
5 유시민 의원,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을까? 하뉴녕 2003-04-28 967
4 "국민의 힘" 단상 하뉴녕 2003-04-13 938
3 노동당과 개혁당 -근대와 탈근대 하뉴녕 2003-01-14 1075
2 개혁국민정당 올바른 정체성을 세워라 하뉴녕 2002-11-30 1336
1 [월간말] “꼬마 조선일보"를 경계하라 하뉴녕 2002-10-30 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