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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스누나우snunow.com에 보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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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의원,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을까?
 [칼럼- 아흐리만의右왕左왕]

2003년 04월 28일  아흐리만

지난 대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꿈의 실현"으로 여겨졌다. 그 "꿈"이 현실의 너덜너덜함과 구질구질함에 어느 수준까지 타협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줄 즈음에, "노무현 코드"에 걸맞는 강력한 우군이 탄생했다. 4월 24일 유시민 씨가 개혁당과 민주당의 연합공천후보로 경기 고양 덕양갑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것이다.


유시민 씨의 국회의원 당선은 다른 의원의 당선과는 비교하기 힘든 정치적 효과를 지닌다. 조선일보의 반응은, 그 효과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당원들로부터 환호받고 있는 유시민씨. / imbc

유시민 국회의원 당선자는 시사비평가로, 방송진행가로, 저술가로 활동하며 자신의 언론관과 세계관을 밝힌 바 있다. 유 당선자는 조선일보에 대해 “극우신문”이라고 딱지를 붙였고,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극우 헤게모니에 대한 자유주의의 저항”이라고도 말한 바 있다.(조선일보, [덕양갑 유시민 당선자 발언록] "안티조선은 극우에 대한 자유주의 저항", 4.25)

매저키스트 흉내를 내면서까지 조선일보가 전달하려는 메세지는, "이렇게 과격한 인물이 활보하는 세상, 너무나 살기 힘들다."는 류의 푸념일 것이다. 유시민과 노무현은 둘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라고 볼 수 있지만, "당시 정치인"이었던 노무현에 비해 "당시 지식인"이었던 유시민의 발언은 조선일보 기사가 보여주듯 훨씬 직설적이다.


운동권 바깥에서 운동권과 함께 한 정치인 노무현의 책사(策士)가, 운동권 안에서 운동권 바깥의 사유(思惟)를 도외시하지 않은 유시민이란 사실은 참으로 기가 막힌 상징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의 대학시절 운동경력이나 저 유명한 "항소이유서"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나는 "극우 조선일보"가 불편해 할만한 "성향"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중저술을 통해 충분한 지적능력을 보여준 유시민 씨의 당선을 환영한다. "인간 유시민"은 여의도에서 최소한 지금껏 386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모습보다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개혁당 국회의원 유시민"은 "민주당 국회의원 아무개" 보다는 자유로운 면이 있을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개혁세력결집"을 목표로 하는 정계개편은 실현가능성이야 어쨌든 의의가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당선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역시 현명한 일은 못 된다. 정치인 노무현이 현실정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를 대통령 당선 이후 집중적으로 증명해 보였듯이, 국회의원 유시민 역시 당선되기까지 치러야 했던 희생이 있다. 이라크 파병반대 문제에 관한 어정쩡한 태도는 본인이 "역할분담론"이라는 소신이라고 주장, 혹은 치장하고 있으니 생략하기로 하자.


그러나 그간 "민주당과 공조하지 않겠다", "우리가 당선될 능력은 있어도 민주당 떨어뜨릴 능력은 된다"고 밝혔던 그가, 민주당과의 선거공조를 통해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실은 "국회의원 유시민"의 그림자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적 태도"라는 비판이 벌써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러나 명분 역시 현실적인 효과를 지님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 보자. 개혁당의 목표는 정당민주주의의 틀을 가진, 개혁파 의원들로 이루어진 정당을 꾸리는 것이다. 한편 민주당 신주류의 목표는 민주당의 헤게모니를 자신들이 쥠으로써 개혁세력의 표를 흡수하는 것이다. (호남표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반면 민주당 구주류의 목표는 민주당 현상유지다.


여기서 문제는 개혁당이 스스로의 목표를 실현시킬 수단이다. 그런데 유시민의 선거공조 사례는 개혁당이 민주당에 대해 "야박하게" 칼을 들이댈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내년 총선에서 개혁당이 독자 출마하여 민주당을 방해할 가능성은 이제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실력행사 선포가 "공갈포" 취급을 받는 위험을 무릅쓰고 개혁당이 선택한 길은 "국회의원 유시민"을 통한 협상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일까? 보궐선거가 보여준 민심에 대해선 이미 구주류와 신주류가 각각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제 개혁당의 "개혁"시도는 민주당 신주류의 의사를 공격적으로 대변하는 돌격대원 역할에 갇힐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물론 민주당 신주류의 목적도 개혁적인 측면이 있으므로, 개혁당과 유시민 의원의 행보가 민주당 신주류를 지원한다해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의 야심은 그 이상일 것이며, 개혁당 역시 개혁적 열망을 지닌 당원들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요구되는 것은 분별력과 결단력이다. 자신의 역할을 어느 세력이 이용하려고 하는지, 그 세력과 자신의 목표는 어디까지 겹치는 지, 언제 어디서 그 세력과 변별점을 보일 것인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길은 오히려 국회의원 유시민을 만든 지금까지의 과정보다도 험난할 수 있다.  

유시민 의원의 당선을 축하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여의도에 입성한 386 후배들처럼 국회의원이란 집단에 동화(同化)되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트로이의 목마로 규정하는 결연한 자세가 요구된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1년이란 시간은 정계개편을 실행하기에도 짧은데, 문제는 산적해 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미래를 위해 하나의 주문을 보탠다.


현재 국회를 통과했고 금년 7월에 발효될 예정인 경제특구법은 개혁당 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 민주당의 정체성에도 맞지 않는 용납할 수 없는 법이다. 월차휴가 폐지, 주휴·생리휴가 무급화, 파견제 확대 허용, 단체행동권 제약, 장애인, 고령자 의무고용 회피 등을 추진하는 경제특구법은 전 영역의 인권을 후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견해다. 이것은 한마디로 성장지표 하나 때문에 모든 가치를 훼손시키는 70년대적 사고방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유시민 씨는 과거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으로 자처하면서, 공병호 등의 자유주의자를 참칭하는 시장지상주의자들과 싸운 바 있다. 지식소매상으로서 유시민의 역할은 긍정적이었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자신이 소매점에서 팔아온 지식을 "소비"하는 일이다.


경제특구법이 보장하는 성장은 유시민 씨가 자신의 저서 [Why not?]에서 소개했던, 폴 크루그먼이 아시아에 대해 말했던 바로 그 "요소투입 성장"의 전형이다. 주 30시간 일하면서 300만원 버는 사람을, 주 40시간 일하고 380만원 벌게 만들어놓고 성장이라 우기는 바로 그 성장이다. 노무현은 시장의 비합리적인 부분을 개혁하여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말로 자신의 7% 성장 공약을 정당화했다. 유시민 씨는 경제특구법이 바로 그러한 개혁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럴리 없다고 믿는다.  

경제특구법은 이라크 파병결정 이후 마주칠 가장 중요한 이슈다. 그것도 유시민 의원의 임기 안에 닥칠 사건이다. 따라서 나는 유시민 의원에게, 경제특구법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해줄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그러한 행동을 통해 유시민 의원의 개혁의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고, 그가 개혁하고자 노력하는 민주당의 문제도 표면화될 것이다. 개혁은 정계개편과 같은 국회의원의 이합집산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개별문제에 대한 대응방식에서, 이합집산의 기준도 드러나는 것이다. 유시민 의원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아흐리만 (스누나우 칼럼 전문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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