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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미안해 형

조회 수 971 추천 수 0 2006.11.07 13:52:00
카이만, 군인, 말년 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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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검색어의 수위로 부상한 '싱하형'에 대해서 들어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들었다면 도대체 왜 그가 유명해졌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을 법도 하다 . 싱하형은 디시인사이드 스타크래프트 갤러리(이하 '디시 스갤')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욕질을 하면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의 발언의 클리셰를 대략 정리해 보면,

"젖같은 꼴통 쉐키들 굴다리로 뛰어와라. 형이 존내 패준다. 8초, 9초, 그런건 없다. 10초만에 뛰어와라. 형한테 존내 맞는거다."

이런 거다. 이런 덧글을 꾸준히(?) 날리면서 디시 스갤의 명사(?)가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싱하형의 표현으로 "대가리 속에 오락밖에 안든 쉐키들"인 스갤 아이들이, 어째서 자신들에게 욕을 하는 싱하를 우상으로 만들어 버렸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럴듯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스갤 사람들 자신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재미있으니까" "싱하형이 좋아서" 따위의 답변들이 나올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이 '스갤'이라는 시스템이 '싱하형'이라는 이물질을 자신의 텍스트 안에 포섭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싱하형의 욕설은 스갤인들이 오히려 그를 추앙하며 '졸라' 따라함으로써 스갤에 전혀 위협을 주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원래 대개의 패러디, 혹은 모방은 원전의 힘을 강화시킨다. 하지만 싱하형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싱하형이 유명해지자 싱하형은 '싸이'를 닫아야 했다. 라깡식으로 말하면, '아버지의 법'이 서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몸'이 죽어야 했던 것이다. 스갤인들은 싱하형의 법을 스갤 안에 세움으로써 사실상 싱하형이라는 인격체를 인터넷에서 살해했다.

살해된 아버지의 법이 추앙된 것, 그것이 싱하형 신드롬의 본질인 것이다. 그리고 스갤인들의 반복적인 모방은 스갤을 넘어 파장을 일으켜 인터넷을 떠돌아다녔다. 그것은 일종의 '찌질이 놀이'였다. '싱하형'과 같은 찌질이의 찌질이짓을 반복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한 것이다. 그것은 '좋은 놀이'였다고 생각한다. 찌질이짓을 하는 것보다는 찌질이 놀이를 하는게 더 나을 테니까.

요약하자면, 이것은 '중심'이 '주변'을 포섭하여 중심의 영향력을 강화시킨 훌륭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라고 2004년에 썼을 때, 나는 실제로 "형이 말이야" 따위의 말로 대화의 서두를 여는 남자들의 맥락을 경험해 본 일이 없었다. 내 주위에는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을 지껄이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행복하게 살았나?) 아마 그때 나는 다른 이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저 코미디를 이해했으리라. 어쨌든, 그래서 "형"을 자칭하는 이들의 세상으로 오게 되었을 때, 나는 이 많은 친구들이 다 싱하를 따라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심히 궁금했다.

남자를 '형' 타입과 '동생' 타입으로 굳이 구별해야 한다면 나는 후자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형 타입의 남자들은 내 앞에 서면 "형이 말이야" 따위의 말을 더욱 더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 같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나는 군대를 살짝 늦게 갔다. 그래서 코미디가 발생했다. 내 1년 고참이었던 화수분씨(가명)는 82년생이었는데 자신이 내무반의 다른 이들보다 나이가 한살쯤 더 많다는 자부심이 지나쳤다. 그가 내 앞에서 하도 "형" "형" 그러길래 빠른 83년생인 나는 부대정밀진단 기간에 실시된 야자타임 때 다음과 같이 대응했다. (그때 나는 일병 초짜쯤 되었던 것 같다.) "너 내 앞에서 형이라고 하지...... 장난하냐?" (내무반 뒤집어졌다. 다들 웃는 바람에 나는 살았다. 그때 일이등병 중에서 야자타임이라고 실제로 말 놓은 건 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고참들이 스스로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그래봤자 한살인데-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6개월 고참을 필두로 "미안해, 형~"이라는 염장 멘트를 날리며 집에 가기 시작한 것이다.

밖에서는 취향 비슷한 사람들끼리 노니까 나이차이를 느낀 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여기서는 세대가 제일 중요했다. 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후임 SHS를 언제나 늙은이라고 놀렸으며, 내 후임들은 늘상 내게 "나이도 많으신 분이..."라고 말했다. 우리 중대에서 [H2]가 야구만화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나와 SHS밖에 없었다. 그웬 스테파니가 예뻤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도 나와 SHS, 그외 음악을 꽤 좋아하는 녀석들 한둘 정도였다. 한번은 V채널에 그웬이 나왔는데 후임 하나가 보더니 "마돈납니까?"라고 물어봤다. 때릴 뻔했다. -_-;;;

'형'을 논한다면 한때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였던 [현대생활백수] 얘기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제목부터가 모 핸드폰 회사 광고의 패러디인 이 코너에서 형은 언제나 승리를 거둔다. 그것도 백수에 불과한 그가, 사회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성공한 '일구'에게 -일구는 언제나 어떤 회사에 취직한 상태거나, 영세자영업자다.- 말이다. 한편 웃찾사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은 [우리형]에서 '형'은 멋있게 등장하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폭로당한다. 두 개의 극의 구조는 정반대인 것 같지만, 사실 메시지는 똑같다. 형은 패배하지만, 우리들은 그의 승리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택광님이 마빡이에 대고 하는 분석을 이 코너들에 대해서도 못할 건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이야 빤한 것이니, '그냥' 웃었다는 사람들 건드리지 않고 나는 그냥 침묵하련다. '형'이 유일하게 승리하는 이 공간에서, 내 '형'들은 지금은 자기가 고참이지만 조금 있으면 나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 되어 버린다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안절부절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미안해, 형"이라고 말할 때면, 나는 그저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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