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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연금술사 : 마음의 언어에 대해

조회 수 1491 추천 수 0 2006.10.17 16:36:00
카이만, 군인, 병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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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상세보기
파울로 코엘료 지음 | 문학동네 펴냄
1987년 출간이후 전세계 120여 개국에서 변역되어 2,0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책. 신부가 되기 위해 라틴어, 스페인어, 신학을 공부한 산티아고는 어느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양치기가 되어 길을 떠난다. 집시여인, 늙은 왕, 도둑, 화학자, 낙타몰이꾼, 아름다운 연인 파티마, 절대적인 사막의 침묵과 죽음의 위협 그리고 마침내 연금술사를 만나 자신의 보물을 찾게 되는데.....



어느날 저녁, 내무반(공식명칭이 '생활관'으로 바뀌긴 했다.) 침상에서 관물대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던 내 옆에 후임 하나가 와서 같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펴든 책은 파울료 코엘류의 <연금술사>였다. 십분쯤 책을 보다가 그는 뭔가 근질근질했는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 책 읽어보셨습니까?"


"응." (일년 반이 넘는 군생활의 결과 나는 이제 종종 이런 대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입대 초만 해도 <다빈치 코드>도 안 읽었지, <뇌>도 안 읽었지, <연금술사>나 <11분>이나 <베로니카, 죽기를 결심하다>를 읽은 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하루키를 읽기를 했나, 넌 책을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뭘 읽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항의 아닌 항의를 고참들에게 들었다. 어떤 이들은 내가 일부러, 의지적으로 유명한 책들은 피하는 허위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 책, 삼천만부나 팔렸답니다."


읽었다는데,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겉표지나 책날개도 세심하게 뜯어 보는 편이다.


"그야, 세계 인구는 육십 억이나 되니까."


<연금술사>를 읽으면서 나는 <어린왕자>가 얼마나 위대한 소설인지, 그리고 <모모>가 얼마나 담백한 소설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실 이전에는 <모모>도 적당히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명작을 우습게 보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이 다른 어떤 것도 읽지 못한 채 명작만 읽기를 강요받아서인지도 모른다. (하긴, 그런 사람들은 강요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읽지 않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강요'씩이나 할 수 있는 건 명작밖에 없긴 하지만.) 무엇이든 그것 하나 뚝 잘라서 갖다놓고서 비평하기 시작하면 못할 소리가 없다. 노정태의 말처럼, 정치찌라시를 적당히 써보거나 읽지 않은 사람은 레닌이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인간인지를 깨닫기 어렵다.


모모 상세보기
미하엘 엔데 지음 | 비룡소 펴냄
전세계 40여개 언어로 번역된 독일 작가의 장편. 기적과 신비가 가득찬 상상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하는동화이다. 시간을 훔치는 도둑과 그 도둑이 훔쳐간 시간을 찾아주는 한 소녀에 대한 이상한 이야기로 모모 와 친구들,회색신사,거북 카시오페아이 등이 등장한다



<연금술사>의 메시지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세계의 본질은 하나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것은 마음의 언어라는 것, 그리고 그것에 귀기울이면 개개인의 '자아의 신화'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끝이다. <어린왕자>는 이렇게 요약할 수 없다. 주제의식은 분명 존재하지만,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은 제각기 의미를 지닌 채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모>는 어쩌면 저런 식으로 요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주제를 떠받드는 이야기들이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연금술사>에서는, 비의적인 척하는 관념적 언어들이 어떤 구체적인 대상도 지시하지 않고 단지 저 주제를 맴돌고 있다. 그러니까, '에메랄드 판' 하나에 들어갈 지식을 뭘 그리 길게 늘여쓰느냐고 항의하고 싶은 쪽은 오히려 내 쪽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든 학문체계들은 대개 <연금술사>와 같은 소설과는 다르다. 그것들은 그 핵심을 '에메랄드 판' 하나에 기입할 수 있는 핵심으로 요약할 수 없다. 혹은, 요약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때 정작 중요한 건 그 핵심이 아니라 그 핵심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학자들이 난해한 공식을 가지고 지리한 싸움을 하는 이유는 단순하고도 심오한 진리를 외면하려는 욕망 때문이 아니라, 저 '단순한 진리'를 증명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학문을 벗어난 단순한 진리는 위대할지도 모르지만, 서로 모순된다. 흔히 하는 얘기로 속담 중에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가 공존하듯이.


나는 <연금술사>가 말하는 '단순한 진리'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마음의 언어', 그러니까 다른 모든 언어의 유사성을 가능하게 하는, 사물의 본성과 연결되어 있는 본질적인 언어는 없다. 아담의 언어는 없었고, 따라서 바벨탑도 없었다. 이게 중학교 교과서에도 적혀 있는 '언어의 자의성'이라는 문구의 적확한 의미다. 우리의 연금술사는 고작, 바디랭귀지가 통한다는 것을 근거로 마음의 언어의 존재를 추론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각기 다른 언어 간에 소통이 가능한 건 메타-언어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환경의 유사성 때문이다. '마음의 언어' 없이도 바디랭귀지의 효용성을 훨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마음의 언어'는, (물리학에서의) 에테르나 (화학에서의) 플로지스톤처럼 필요없는 '잉여개념'이 된다. 그나마 플로지스톤이나 에테르는 그것의 존재불가능성이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언어의 자의성을 말하는 언어학자들은 아담의 언어가 언어학적 이론에 의해 존재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결국 우리 인간이 현대에 가지고 있는 상식 수준에 비추어 볼 때, 마음의 언어라는 건 없을 거라고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비트겐슈타인 말대로 사자가 말을 해봤자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고, 더군다나 마음의 언어가 해와 달에게까지 통한다고 믿는 건 징그러운 인간 중심주의의 발현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상식 이하'의 소설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심지어 '철학적 알레고리'라는 평가까지 받는다. 여기서 '철학'이란 단어는 '어떤 신비주의'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상식 이하의 것이 각광받는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같은 사람은, 복잡한 건 세상이고 말은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엘류나 그에게서 감명받는 수많은 사람들은, 복잡한 건 말이고 세상은 단순하다고 믿는다. 세상이 단순하고 말이 복잡하므로, 마땅히 말이 세상만큼 단순해져야 한다는 당위가 생긴다.


나는 군대에 와서 [단순한 세상 / 복잡한 말]의 세계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마났다. 그전에도 그들은 내가 살아가는 공간 바로 옆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나는 종시 그들을 만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단순한 세상]에서 어떻게 [복잡한 말]이 도출될 수 있는지를,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의 원인은 지극히 단순한 사태를 지극히 단순하게 표현하는 데에 실패하고 마는 그들의 빈약한 표현력이었다.


내가 언제나 몇 개 안 되는 단어로 똑같이 표현하는 하나의 사건을, 그들은 수십 가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다. 말이 그런 식으로 복잡해질 때에, 나는 말에 집중하지 않고 저 말의 발화자가 이전에 시킨 짓을 떠올리며 그의 말을 해석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토록 단순한 사건을, 맥락을 통해 파악해야 했을 때의 그 황당한 기분이란. 그런 활동에 익숙해져 있는 그들에게, 내가 뭔가 복잡한 것을 말할 때에, 그것 역시 그저 단순한 것을 잘못되게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추정은 정당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단순한 사건을 설명하는 복잡한 표현을 짜내는 것이 그들의 문예였고, 복잡한 말에서 단순했던 전례를 끄집어내는 것이 그들의 정치였다. 그리하여, 군인으로써 우울했던 어느 저녁 날, 나는 지난 세기 말 총선시민연대의 활동을 음모론을 통해 바라보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음의 언어' 없이도.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삼천만 명이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P.S 나는 코엘류씨가 맺음말에서 융의 집단무의식을 끌어들이는 것을 보고 울렁거리는 속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융은 신비주의자이기 이전에 학자였다. 그는 코엘류같은 얼치기와는 달리, 자신의 개념들이 인간의 심성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 학자와 사기꾼의 차이는 적용범위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다.- 그것은 "융은 무신론자"라는 세간의 비난을 유효적절하게 피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던 것이다.


P.P.S 그러고 보면, 상징의 보편성을 근거로 언어의 자의성을 부정하는 논법은 예전에 진보적 정치토론 사이트들을 오가며 바이칼호의 신화학을 강의하시던 수군작님에게서 이미 들은 적이 있다. 아아, 그는 나름대로 세계 수준의 돌아이였던 거다.


P.P.P.S "단순한 사건을 설명하는 복잡한 표현을 짜내는" 족속들 중 하나는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으로 김남일 평전(?) 쓴 어느 작가다. 우연히 내무반에 굴러들어온 책 읽는 내내 토하는 줄 알았다. (이십분밖에 안 걸렸지만.) 사람들은 이택광 같은 사람에게는 "왜, 그냥 웃지 분석해?"라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찬사를 그렇게 복잡하게 짜내면 대충 좋은 말로 알고 용인해준다. 40p에서는 빨갱이로부터 붉은 색을 해방시켜줘서 붉은악마가 멋지다고 하다가, 60p에서는 체 게바라 닮아서 김남일이 멋쟁이라고 말해도, 김남일을 칭찬하는 한 그는 안전한 것이다.

jiva

2007.02.06 19:42:15
*.19.203.125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삼천만 명이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멋진 표현이네요. 저는 친구의 반 강제적인 권유로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읽었는데, 꽤나 힘들었습니다. 사춘기때 한번 쯤 가져보는 삶과 죽음 등에 대한 철학적 관심을 두서없이 나열한 글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많이 읽히고 있었는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공교육에서 철학적 상상력을 조금만 더 짜임새 있게 훈련시켜주었다면, 왠만하면 불편함이 가득하게 읽었을 것 같습니다..만.. 3000만이란 독자가 한국사람만일 수는 없겠네요. -_-;; 한국 교육 문제도 아니겠군요.

하뉴녕

2007.02.07 11:10:42
*.148.250.67

그 책도 한번 찾아서 보고 싶었는데, 못 봤어요. ^^; 전역한 지금은 볼 수 없을지도. '3천만'의 독자는 물론 전세계적인 문제죠. 한국인들은 무슨 책이 됐든 많이 읽지도 않으니까.

서하

2007.03.24 22:53:58
*.249.0.101

마음의 언어 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님과 달리 군대에서 그것을 실제로 체험했습니다....더 쓰면 우리주님을 거듭나 어쩌고 류의 말이 될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경험을 했다고 나라는 인간이 일퍼센트도 거듭난 것은 없지만. 개인적 체험이란 것이 다 그런거겠죠. 나는 확실한데 남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사실 나는 코엘료씨가 상당히 부럽습니다. 어쩜 저렇게 순진할까 하는 것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당당히 말하고 있으니까요. 나 같으면 님처럼 상식적인 사람에게 욕먹는 것이 두려워서 평생 입다물고 살겁니다. 아니면 폴 오스터가 되거나.

서하

2007.03.24 22:56:40
*.249.0.101

더 웃긴 것은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믿어준다는 겁니다. 실제로 겪은 나같은 사람도 왜 내가 이런 바보같은 것을 믿고 있는지 의심하는데 말입니다. 그들이 다 나와같은 체험을 한 걸까요? 아니면 그냥 그럴것 같다고 믿고 싶은 걸까요...
아무튼 그렇게 많이 팔렸다니 솔직하게 순수한 대가를 받는 것 같습니다. 나도 좀 그렇게 되면 좋을텐데.

702

2011.08.04 22:43:36
*.36.33.64

오늘 연금술사를 읽고 글을 좀 쓰려고 했는데, 윤형 님의 이 글보다 더 제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네요. ^^; 그런데 "각기 다른 언어 간에 소통이 가능한 건 메타-언어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생활환경의 유사성 때문이다."와 같은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주류 언어학계에서도 정설로 통용되고 있나요?

호옹이

2013.02.01 08:40:41
*.113.121.37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을 비행하다가 드디어 나와 비슷한 존재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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