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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촛불시위의 효과?

조회 수 923 추천 수 0 2009.01.06 17:48:48


옛날 옛적에(?) 당대비평이라는 훌륭하지만 잘 안팔리는 잡지가 있었다. 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던 이 잡지는 언제부터인가 '당비 편집인'들이 '당비 생각'이라는 이름의 단행본 시리즈를 내는 기획팀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나온 책이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다. 이 훌륭한 님들은 촛불시위를 주제로 하여 당비생각 2권을 만들어낼 거라고 한다. 나도 한꼭지를 청탁받아 이미 연말에 60매 가량의 원고를 넘겼는데, 뒷부분은 좀더 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훨씬 덩치가 큰 마감들에 걸려 건들지 못하고 낑낑거리는 상태다.


어떤 식으로 책이 나올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반적으로 촛불시위와 시간적 간격을 두고 나오는 특집이니만큼 촛불시위에 무작정 열광하기보다는 비판적인 거리를 두는 시각의 글이 많은 것 같다. 이런 컨셉 자체는 마음에 든다. 지난해 가을부터 쏟아져나온 '촛불시위 특집' 중 문화과학 55호와 진보평론 37호는 사서 읽어보았는데, 사실 내가 촛불시위 관련한 원고를 청탁받지 않았다면 그다지 읽고 싶은 종류의 글은 아니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들이 다중인지 아닌지를 논의하는 것이 한국 사회를 해석하거나 변혁하는데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쪽 이론의 맥락을 전혀 몰라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할텐데 그다지 그쪽으로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고.


여하튼 누구처럼 알지도 못하면서 이론가들을 씹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다만 지식인이든 시민 참여자이든 "촛불시위는 이렇게나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언급하는 것은 성급할 뿐더러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촛불시위는 기본적으로 '성과를 거둔' 정치적인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시위 이후에, 더 강해졌다. 그들은 우리가 환상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입증해 주려고 한다. 최근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농성에 대해 들었던 가장 재미있는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대의민주주의가 옳은지는 모르겠는데, 효율적이긴 한 것 같다. 쟤들이 저러지 않으면 사람들 수십만이 거리로 나가야 하잖아." 정치적으로는 공허하기 짝이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수사들에 가슴 부풀리던 한국 사회의 '정치적 시민'이 도달하게 된 이 인식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명박 정부가 정치학에 대한 탁월한 교육자임을 암시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저렇게 무대포로 권력을 틀어쥐고 있는 대상에 대항하려면 우리도 훨씬 더 똑똑해져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행동도 전망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파탄으로 대규모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런데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이런 것을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행동을 제어할 방법이 딱히 보이지는 않지만, 이 시련의 기간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일 게다.
 

촛불시위에서 어떤 것이 새로웠고 어떤 것이 새롭지 않았다는 논의를 하기 위해서는, 2002년의 반미 촛불시위와 2004년의 탄핵 반대 촛불시위와의 연속적인 흐름에서 작년의 촛불시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듯 싶다. 그리고 이 시위에 이런 것과 별개로 '새롭다'고 할 만한 지점을 찾는다면 정치적인 성향보다는 오히려 매체의 문제를 다룰 수가 있겠는데, 그 지점은 진중권이 문화과학 55호에 실린 "개인방송의 현상학"에서 탁월하게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칼라TV의 성공요인으로 "방송이 컴퓨터 게임의 문법을 따르게 되었다."는 역매개 현상을 꼽고 있다. 그의 논의를 좀 더 확장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가령 거리에 나선 시위참여자만이 아니라 인터넷으로 시위중계를 시청하던 이들조차도 촛불시위라는 정치적 사건의 참여자였다는 식으로. 그런데 이런 요소는 이전의 촛불시위와는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지만 오히려 붉은악마의 길거리 응원과 엮어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이 참여했고, 그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배운 '민주주의'를 통해 시위현장에서 '지도부 없는 시위'를 구현하고 있었다면, 인터넷 커뮤니티 운영의 방식이 어떤 특성을 지닌 것인지, 즉 '커뮤니티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훑어보면서 그것이 한국 정치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과 한계를 지닌 부분을 논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것들도 대략 써보고 싶은 것들이었는데, 편집부와 의논 끝에 빼기로 했다. 아무래도 젊은 필자에게 기대했던 것은 그런 식의 개념적 분석(?)이 아니라 맛깔쓰런 체험담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촛불시위의 열렬한 참여자는 아니었다. 시위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시위의 참여자라기보다는 구경꾼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 '체험담'(?)은 그런 한계 혹은 위치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체험담을 지난 여름에 블로그에 올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보니 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의 내용들을 압축하고 재배치한 것처럼 원고가 나왔다. 글 자체는 아예 새로 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나로서는 촛불시위에 대해 이 정도 썼으면 역할을 다한 것 같고, 아마 이 사건을 재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다른 정치적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이 사건에 대해 재검토하는 일이 가능할 것 같다.






Jocelyn

2009.01.07 10:50:48
*.246.187.134

ㄲㄲ 어쩐지 나이들어 보이잖아 ^^ 하지만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하뉴녕

2009.01.07 15:33:46
*.212.62.164

...뭐라는 거야 ;;;

Jocelyn

2009.01.07 18:38:52
*.138.65.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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