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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펌] 잡초와 골초, 송명수 2003/05/09

조회 수 934 추천 수 0 2007.10.03 00:50:43
안티조선 우리모두 초창기에 식견있는 사이버 칼럼니스트로 활약하셨던 송명수님의 글입니다. 이제 이런 분들은 인터넷에 글을 쓰지 않죠. 어떤 원고를 쓰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찾아봤는데 감회가 새롭군요. 이 글은 임기 초 노무현 대통령의 '잡초' 발언에 빗대어 앞으로의 정치담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담담하게 밝힌 것인데, 한국의 정치담론은 이분의 예상처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여전히 골초들의 금단 증상일 뿐이죠. 그리고 거기엔 분명 '노빠'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노무현 지지자들의 책임이 있을 듯 싶군요.

언젠가 일부 인용한 적도 있는 글인데, 그냥 전문을 다 소개합니다.


이 름 송명수
제 목 잡초와 골초


정보가 통제되던 시절에 사람들은 신문기사 안에 숨겨진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고도의 독심술을 발전시켜야만 했었다. 억압된 정치열기가 기형적으로 분출된 결과 정치담론이 심각하게 왜곡된 경우다. 이렇게 왜곡된 정치독심술에 입각해서 언론은 '3김'이라는 왜곡된 정치상징을 개발해냈다. 이것은 잘못된 기초 위에 환상의 궁전을 지은 퇴행적 업그레이드다. 현실인물과 무관한 상징 조작이 영향을 발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정치상징을 단순한 흥미위주의 언론상품으로 애용했지만 또다른 일부 언론은 이를 권력투쟁의 게임소프트로 발전시켜서 유권자를 온라인게임의 참여자로 전락시켰다. 정치9단, 정치10단 승단식을 개최하고 음모론 감상법을 제시하며 미래를 맘대로 예측할 뿐 아니라 미래의 향방을 멋대로 좌우하는 언론권력을 획득해냈다.


상징게임이 현실을 지배하는 정치상황에서 한국에 고유한 정치담론이 형성되었다. 이른바 술자리의 '믿거나 말거나' 가십거리 정치토론이다. 민주헌법을 쟁취한 후에도 사람들은 현실문제의 분석과 해결보다는 게임시장의 정치놀이에서 더 큰 재미와 현장감을 느꼈다. 정계에서는 자질보다는 머리수가 중요했다. 우리편의 머리수와 너희편의 머리수가 정해지면 나머지는 권모술수의 단수가 결정한다. 그리고 밀실 음모가들의 단수는 전지전능한 주필이 정해준다. 이런 식으로 웃고 즐기는 가운데 한국 정치계에는 어느덧 잡초만이 무성해졌다.


잡초제거는 일종의 인적 청산이다. 그러나 한국의 못자리에서는 어떤 품종을 심어도 잡초만 재배된다. 경작자들이 바로 상습적으로 잡초를 말아 환각제를 피워 온 골초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변화된 상황에서 과거의 게임은 계속될 수 없다. '3김'이라는 정치상징이 퇴장했다. 영웅 뒤만 따라다니던 병졸들만 남았으니 이제는 게임이 안된다. 이제는 병졸들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판단과 신념에 따라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현실정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는 감상법이 아니라 정확한 현실분석과 문제진단, 그리고 해결사이자 치유자로서의 각자의 신중한 판단력이 요구된다.


문제는 골초들의 금단현상이다. 과잉된 정치의식과 게임중독증은 그대로 남아있다. 현실은 너무나도 복잡한 전문화와 세분화의 거대한 종합이며, 다양한 이권들과 신념들은 깔끔하게 양분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입장 안에서도 두루 중첩되어 있다. 우리편, 네편 갈라서 싸우고 욕하고 돌던지고 술먹는 놀이가 아니라 신중하게 단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조심스럽게 전진하는 문제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은 싫어한다. 정치게임이 좋았던 것은 그것이 무책임하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여에 책임이 부과된다면, 재미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은 40대부터 연구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했다. 당시 그리스의 40대 시민이면 하급자의 고달픈 일상에서부터 관리자의 무거운 책임성까지 두루 체험해본 사람들이다. 현대인은 보다 일찍, 보다 복잡한 문제의 해결에 참여해야 하며 자신의 다양한 체험을 지속적으로 통합해 나가야 한다. 이념이나 성향, 열정이나 욕망에 따라 깃발들고 줄을 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면상황 안에서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영역을 파악하고 신중한 판단력과 책임성을 습득하는 방법을 체득하는 것이 문제이다.


방향이 뒤틀려 있으면 열심히 전진해서 퇴보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출발점은 현재 당연시되고 있는 정치담론의 허구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구별방법은 단순하다. 스스로 자문해보라. "지금 나의 관심이 문제의 규명과 해결에 놓여 있는가, 아니면 내가 편드는 진영의 영웅이나 그 반대영웅의 영웅적 행동과 언변에 놓여있는가?"


골초의 금단현상은 새로운 영웅상징을 요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나 각자의 판단력과 책임성을 사회적으로 통합하는 협력의 능숙성이다.

노정태

2007.10.03 02:25:58
*.178.27.131

"정치게임이 좋았던 것은 그것이 무책임하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여에 책임이 부과된다면, 재미없다."

아주 탁월한 지적이야. 핸드폰으로 투표를 하네 어쩌네 짹짹거리는 '개혁적 시민'들의 모습이 순간 떠오르는구나. 그들이 '차떼기' 한나라당을 욕하면서 '폰떼기'를 하겠다고 낄낄거리는 것은 그게 유희적인 정치행위가 아니라 정치적인 유희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지. 유시민은 코믹함과 비장함을 오묘하게 버무려 자신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환상을 제공하고 말야.

intherye

2007.10.03 03:01:01
*.49.21.61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 글쎄 저 보고 투표를 하라고 하는데, 그 동안 평생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지라,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누가 누군지도 모르겠어서, 에라 투표날 놀러나 다니고, 대충 1번이나 찍으면서, 별다른 반성도 없이, 정치적 미성년 상태를 몇 년만 더 지속시키자고 마음 먹었었더랬습니다. 일이 년 전에야 비로소, 이거 너무 지체되는 게 아닌가 겁이 덜컥 나서, 이제라도 부랴부랴 따라잡아보려고 하고는 있는데, 이해관계나 권력지형 같은 것에 천성이 무디기도 해서, 독학에 아무래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게으르고 무책임했던 저와는 달리, 일찍부터 할 건 해오신 듯한 한윤형님이나 친구분들의 블로그에서, 요즘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월에 묻힌 글까지 다시 파서 보여주시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 (--) (__) (--)

ps. 읽고 나니, 한 켠에서는 '한 40살까지 게으름 피워도 될 걸 그랬나?'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ㅋㅋㅋ

하뉴녕

2007.10.03 12:58:10
*.176.49.134

ㅎㅎㅎ 감사합니다. 자주 들르세요.

P.S 아리스토텔레스 얘긴 추첨으로 관리가 되었던 그리스 실정에서 나온 얘기구요. 우린 40살까지 비빈다고 누가 공무원 시켜주지 않으니까 잘해봐야죠. 게다가 우리가 지금 '정치학을 연구'씩이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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