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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20installment_id=270&article_id=4717

[스타] 프로게이머 FA, 그 노예계약의 진실을 알려주마
- 무서운 아이들 뒤에 서 있는 노예상인들

2009.9.3.목요일


아아 벌써 이분이 그립다.

김대중이 낳은 아이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 나는 그분이 나의 세대, 20대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 20대들은 대개 노무현 시대에 정치적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노무현을 좋아하게 되었든 싫어하게 되었든 그를 중심에 두고 정치에 대해 토론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담론의 영역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현실조건에 대해 더 큰 영향을 미친 이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서태지와의 교류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듯이 그가 90년대에 탄생한 신세대 문화에 대단히 친화적인 인물이었으며, 문화의 시대를 만들고 싶어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하여 97년 IMF 사태 이후 '신세대 담론'이란 것은 힘을 잃어버렸지만 그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당선된 김대중은 청소년/청년들에게 다른 방식으로라도 문화를 돌려주려고 애썼다. 그 노력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같이 직접적으로 힘을 쏟은 정책의 차원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비약을 해보자면 그가 만들어낸 시대의 분위기 자체가 그랬다. 가령 나는 김대중이 아니라 이회창이 집권했다면 90년대 후반의 PC방 열풍과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일어나기가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가 그후 IT산업 육성을 외치며 벤처 열풍(혹은 거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이 느슨한 연결고리들을 엮어낸 문화비평으로 나는 이택광의 다음과 같은 서술을 추천한다.

"스타크래프트는 이제 단순한 외래 게임이 아니다. 아시아에 위치한 작은 반도국에서 e-스포츠로 탄생하는 순간 스타크래프트는 미국의 컴퓨터게임 회사가 만들어낸 컴퓨터 소프트웨어라는 자기 정체성을 훌쩍 넘어간다. 스포츠계의 '듣보잡'이라고 할 e-스포츠로서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정보기술혁명이라는 '구라'를 멋지게 문화의 영역으로 흡수하면서 신경제주의의 화신처럼 강림했다.

언제나 그렇듯 신종 테크노크라트는 기술력보다 '정보력'으로, 소프트웨어 개발보다 주식 투자로 돈을 벌었다. 신흥 부르주아계급이라고 할 이들이 테헤란로에 몰려들어 현란한 기술도면과 수학공식으로 눈먼 돈을 끌어 모을 때, 밤샘을 불사하고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줬던 '신기술 노가다들'은 인터넷게임이나 하면서 다가올 미래의 불안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는 "게임만 잘해도 대학 간다"는 '현대의 신화'를 창안했고, 이런 신화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일약 고등교육과 연결하는 가치전환의 계기로 만들었다. 김대중 정부의 신기술 담론은 '공부는 못해도 게임은 잘 하는 가난한 10대들'의 로망에 일조했던 '어른의 논리'였던 셈이다. 이른바 시장주의를 전제한 평등의 이념이 여기에서 중요하게 작동했다.

시장을 통해 제도의 보수주의를 개혁하겠다는 '착시 현상'은 정치인들에게 즐거운 환상을 제공하는 한편, 입시경쟁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10대들에게 '프로게이머'라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런 차원에서 스타크래프트는 단순한 컴퓨터게임으로서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의 스포츠 장르로서 '리그'를 만들어내면서까지 그 의미를 극대화했다고 할 수 있다."
- 이택광, <무례한 복음> p293-4


이런 책은 좀 사주자. 비싸긴 하다만...쩝

스타리그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이렇듯 그 시대의 조건 속에서 태어난 이들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행히 이 시장은 생산자들의 정치성이 필요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김대중 노무현 시절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무로 되돌리려는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에도 불구하고 문화부의 탄압을 받지도 않는다.


사실 가카도 스타리그를 사랑하시거든...

그러나 이 세계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스타리그의 팬들이 프로게이머들이 연출해내는 환상의 지도에만 취해 있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현실정치적인 문제가 말이다. 스타리그 본좌론 연재의 마지막 1화를 남겨 두고 있던 나는, 이번에 FA 독소조항이란 형태로 도출된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고 연재를 마감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 생각했다. 즐거운 '본좌 논쟁'을 만들어내는 스타리그의 환상 뒤에 숨어 있는 하부구조의 문제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스타리그를 전혀 즐기지 않는 이들에게도 이 문제를 말하는 의의를 설명하려다 보니, 나는 이 문제를 '김대중(이 만들어낸) 시대의 명과 암'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로 이야기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문화를 사랑한 그의 시기에 대중문화는 융성했지만, 그 문화를 생산하는 이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김대중을 계승하고 더 나아가려는 우리 시대의 정치성은 바로 그러한 현실에 대한 파악과 비판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며, 한낱 몇몇 오덕들의 취미에 불과한 스타리그에 관련된 문제도 큰 틀에서는 그러한 정치성의 문맥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생활과 정치의 연결고리를 찾아 나가야 하는 것이다. 서론 치고는 너무 길었지만 이렇게 길게 써야만 했던 필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왜 e스포츠 팬들은 FA규약에 반발하는가

스타리그 판에 이번에 일어났던 일의 핵심은, 스타리그 팬들이 협회가 이번에 처음으로 만들어내고 시행한 FA규약의 부당함에 반발했다는 것이다. 스타리그 팬들은 'e스포츠를 지켜보는 눈'(이하 이지눈)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http://eznoon.tistory.com/) 그들은 FA규약의 독소조항에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공정위 신고 접수, 협회 측 대표와 선수 대표 그리고 팬 대표가 참여하는 공청회 요구, 언론플레이를 할 것을 선언했다. 내 글은 그들의 이러한 노력에 대한 연대의 표시이기도 하다.


이지눈 친구들이 만든 UCC

이지눈 성명서에서도 지적했듯, FA(자유계약선수)의 본래 목적은 특정시간을 소속팀에서 봉사한 선수에게 직장인 팀을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e스포츠 협회가 이번에 만들어낸 FA규약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 규약이 얼마나 황당한지를 설명하기 위해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설명해 보자.

FA 자격을 획득한 선수는 일차적으로 소속되었던 팀과 협상을 한다. 일정 기간 동안 협상을 하고 그 협상이 결렬되었을 경우, 그는 FA 시장에 나오게 된다. FA 시장에 나온 그는 일정한 기간 동안 다른 구단들의 접촉을 기다려야 한다. 여기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그는 각자의 계약조건을 제시하는 복수의 구단의 접촉을 받을 경우, 스스로 계약을 맺을 구단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하겠지만, 규약이 그렇다. 협회가 그 계약조건을 보고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한 구단을 집어내어 선수와 이어준다. 선수는 오로지 그 구단과만 협상을 할 수 있다. 세상에 계약조건이란 게 돈만 있는게 아니잖은가. 팀분위기도 있을 테고, 내가 가면 얼마나 활약할 수 있는 팀이냐는 계산도 있을 터인데, 선수는 그런 계산을 할 수 없다. 여기까지도 황당하지만, 아직 멀었다. 더 놀라셔야 한다.

협회가 얘기하는 '최고가' 제도는 그냥 최고가 제도가 아니다. '총액 최고가' 제도다. 뭔 소리냐면, 구단 A가 1년에 2억을 제시하고 구단 B가 2년에 3억을 제시했을 경우 협회는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구단 A를 선수에게 이어주는 게 아니라 '총액 최고가'를 제시한 구단 B를 선수에게 이어주고 그 팀이랑만 협상을 하라고 지시한다는 얘기다. 여기까지 오면 그냥 '뭥미?'라는 소리밖에 안 나온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협상을 하고 난 다음에 그 협상조차 결렬된다면 그는 다시 정해진 기간 동안 원소속 구단과 협상을 해야 한다. 원소속 구단과도 다시 협상이 결렬된다면? 그는 1년 동안 선수 자격을 박탈당한다. 구단과 계약하지 않은 그는 협회가 공인한 어떤 리그 예선에도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스타리그의 속도를 감안해봤을 때 1년의 선수 박탈은 사실상 은퇴를 강요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시행된 FA에서도 은퇴자가 탄생했다. 구단의 행동을 제어하는 사전담합 금지 조항 같은 건 없다. 시기상조이기 때문이란다.   


이런걸 규약이라고 만들다니... 팬들의 심정은 이럴 거다.

팬들이 방방 뜨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연예인 노예계약에 대한 팬덤의 반발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별 되먹지 않은 규약 때문에 은퇴의 위기에 몰린다면 당연히 똥줄이 탈게 아닌가? 현재 스타리그를 양분하고 있는 저그 이제동 선수가 FA로 풀려나자, 그리고 그 FA 기간 동안 어떤 팀의 접촉도 받지 못하자 팬들의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다행히 이제동 선수는 원소속팀인 화승과의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팬들의 분노는 가시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e스포츠 팬들의 분노는 단지 FA 규약의 문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간 스타리그가 운영되어온 방식에 대한 반감의 누적이다. 저 FA규약 독소조항들을 보라. 그것은 선수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규약이기는커녕, 선수에 대한 팀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려는 형태의 규약이다. 저 규약이 있기 전에는 저그 박성준 선수처럼 협상이 결렬된 팀을 옮겨다니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왜 팀과 계약을 못했다고 개인리그 출전도 금지하는 것일까? 스타크래프트는 본질적으로 개인과 개인이 맞붙는 스포츠가 아닌가? 협회의 처사는 사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특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개인리그의 비중을 줄이고 팀 대항전인 프로리그에 힘을 쏟아온 협회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는 거다.

스타리그의 현황에 대해

그러나 협회를 손쉽게 비난만 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다. 협회가 팬심을 거스르면서 저런 일을 추진하는 경제적 구조에 대해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스타리그를 운영하는 주최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e스포츠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쓴 스타리그의 열악한 실상에 대해서도 말해야 한다.

방송국 관계자들과는 달리, 나는 e스포츠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으며, 언제나 스타리그라는 명칭을 고집한다. 온게임넷 측은 스타리그가 자신들의 리그의 고유명사라고 보고 있고, 엠비시게임의 리그는 스타리그가 아니라 MSL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가 얘기하는 스타리그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이 참여하는 모든 리그를 가리키는 말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말을 사용하는 까닭은 e스포츠라는 말이 사실 그다지 실체가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게임방송국들은 'e스포츠'가 장래에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미래형 산업인 것처럼 치장하고 있고, 그런 치장을 통해 스폰서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의 관심을 끌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게임방송국들은 스타를 제외한 다른 게임에선 전혀 재미를 못 보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스폐셜 포스 프로리그 결승전 소녀시대 사건이다. 매년 열리는 프로리그 결승전 때문에 e스포츠의 성지가 된 부산 광안리에서 스폐셜 포스 프로리그 결승전이 열렸는데,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에 비해 월등히 처지는 관중 수를 메우기 위함이었는지 오프닝 무대에 소녀시대가 동원되었다. 경기 당일 광안리엔 참으로 많은 관중이 왔다. 하지만 소녀시대의 오프닝 무대가 끝나자,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돌아가 버리고 객석은 휑해졌던 것이다.

다른 스포츠의 경우 적어도 입장료 정도는 받지만, 스타리그는 그렇지 않다. 중계방송 중심의 리그이기 때문에 오프에 오는 사람의 수도 적고, 안 그래도 적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지도 않는다. 스타리그는 기업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치를 통해 기업 스폰서를 끌어들여야 한다. 하지만 스타리그의 주 시청층을 생각해 보면, 이 구매력없는 가난한 세대들을 향한 홍보가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스타리그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은 다른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것보단 훨씬 적은 돈을 쓴다. 하지만 그 적은 돈의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함부로 얘기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적을 것 같은 광고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지금의 시스템이 고안되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듯이, 스타크래프트는 개인 게임이다. 그래서 애초에 스타리그는 리그를 주관하는 방송국 중심으로, 개인리그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스타라는 게임의 인기 자체가 시들해지는 시점에서 이런 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했고 프로게이머에게 연봉을 주면서 팀을 만든 기업은 프로리그의 비중을 늘려가게 되었다. 프로리그 경기 숫자는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리그 기간에는 '주5일' 프로리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프로리그 중심으로 변모되는 스타리그의 시스템 자체에 문제제기를 하는 팬들도 많았다.

협회와 팬들의 갈등의 정점은 협회가 게임방송국에 중계권료를 요구했던 2007년의 '협회 사태'에서 정점을 찍었다. 팬들은 방송국과 팬들이 가꾸어온 리그에 나중에 끼어든 기업들이 외려 스타리그에 '권리'를 가지고 있는 양 '중계권료'를 요구하는 사태에 분통을 터트렸다. 이 사태는 결국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대해 '진정한 권리'를 지니고 있는 블리자드의 개입으로 종결된다. 블리자드는 중계권료를 받으려면 자신들이 받아야 하지만, 지금의 스타리그에 대해선 당장 중계권료를 받을 생각이 없고, 다른 이들이 중계권료를 받는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것이다.


그때도 팬들이 난리를 쳤다...쩝;
- 출처 :
www.fomos.co.kr

블리자드의 입장은 안 그래도 복잡한 스타리그의 정치지형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사실 블리자드와 같은 게임회사의 입장에서도 한국의 스타리그는 좀 난감한 물건이다. 십년 째 유지되는 스타리그는 정서적으로는 블리자드의 게임 개발자들에게 감격스러운 일일 수 있지만, 사실 상업적으로 볼 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십년 째 그 게임에만 매달려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으니 오히려 기업의 이윤추구에 방해가 된다. 한국 시장에서의 스타1의 기록적인 판매에 대한 반대급부로 현재의 실정을 묵인하는 상황이라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년에 출시가 예정되어 있는 스타2의 경우 애초부터 e스포츠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는 것 같다. 스타2가 출시될 경우 블리자드는 저작권료를 어느 정도 챙기면서 세계 e스포츠 산업을 주도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이 경우 한국의 e스포츠 협회가 어떻게 대응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협회에서는 스타2 시연회에 프로게이머들을 잘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협회와 블리자드가 적절하게 협상하여 스타리그가 스타2로 이전된다면 좋겠지만, 블리자드가 주도하는 스타2리그와 한국의 스타리그가 따로 놀게 되면서 스타리그가 전체적으로 활력을 잃을 가능성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스타리그는 매우 특수한 시장으로 발전해 왔으며, 장래가 불확실하다. 2001년에도 곧 망할 거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임요환이 나타났고, 2003년에도 망한다는 얘기가 돌았지만 일부 기업팀이 생겨났으며, 2005년에도 마재윤이 다 해먹어서 망할 거라는 얘기가 돌았지만 본격적으로 기업 구단 체제가 꾸려지면서 지금까지 왔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 뽑아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뽑아 먹겠다는 심보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협회가 스타리그를 바꾸어온 흐름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팀단위 프로리그를 배격하는 개인리그 체제로 다시 스타리그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물론 스타1은 개인 게임이고, 그걸로 리그가 생긴다면 개인리그 중심으로 운영하고, 지금처럼 협회가 정하는 순위가 아니라 상금랭킹 순위로 프로게이머를 평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협회의 그와 같은 리그 조정이 없었다면 스타리그가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금을 내건 스타리그 대회는 이미 2000년에 스타의 인기가 퇴조함에 따라 세계적으로는 사라졌고, 오직 한국에서만 계속 명맥을 이어 나갔다. 내년에 발매될 스타2가 성공하면 다시 한번 그런 시대가 올지 모르지만, 그것과 우리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스타리그는 아무래도 다른 것이다. 이지눈의 성명에서처럼 협회측, 프로게이머측, 팬측이 서로 발언권을 가지고 지혜로운 협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을 위해서든, 스타2 발매 이후를 위해서든 말이다. 

프로게이머들을 위하여

그러나 협회의 처지를 인정하자는 말은 결코 현재의 스타리그의 문제점을 용인하자는 말은 아니다. 주어진 조건은 받아들이되, 견제권력이 없는 협회의 독단적인 리그 운영을 통해 침해당하는 프로게이머들의 권리를 최대한 지켜내야 한다. 프로게이머는 수많은 청소년/청년들의 우상이 되었지만, 결코 좋은 직업이라고는 볼 수 없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연습생을 하다가 그만 둔 이들을 생각해보라. 시간은 시간대로 들였으면서 남는 것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그 나이의 2-3년은 20대나 30대의 2-3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기회비용이다. 연습생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스타리그 연봉체계는 소수의 스타 게이머에게는 억대 연봉을 지급하지만, 절대 다수의 나머지 게이머들에게는 사실상 아무것도 지급하지 않는 체제다. 대다수 프로게이머의 연봉이 미공개이며, 심지어 이번 FA 규약에서도 연봉은 미공개로 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연봉이 공개된다면 팬들은 스타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의 감축을 감수하고라도 평균적인 프로게이머들의 처우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전성기가 지난 모 프로게이머의 플레잉 코치 연봉을 1억 수준으로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연봉을 희생했다는 모 감독의 미담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런 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에 불과한 것이다.

꽤 성공적인 프로게이머 생활을 마친 경우라도 문제가 많다. 프로게이머의 전성기는 짧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는 직업의 속성상 다른 일로 새출발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 이슈가 되었던 저그 이제동 선수의 아버지는 인터뷰를 통해 아들이 휴식시간에 다른 일도 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은퇴한 게이머들을 봐도 겜블러 등으로 성공한 소수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다수는 갑갑할 것 같다. 언젠가는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은퇴한 모 프로게이머가 절도죄로 잡혀 들어갔다는 기사를 보고 씁쓸해 했던 기억도 난다. 그들이 짧은 전성기만이라도 자유롭게 활동하기를 바라는 것이 팬들의 심정이다.

협회와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  

사실 스타리그가 기업 입장에서 매력적인 시장이라 볼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협회에게 내가 좋아하는 저 프로게이머 소년들을 모두 억대 연봉자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협회가 스타리그의 특수성을, 이들의 경기에 우리 팬들이 투사하는 로망을 인식했으면 한다. 당장 팬들로부터 돈을 받는 건 아니라도 스타리그는 팬들의 사랑이 없이는 존속이 불가능하다. 주어진 자원 내에서 팬들의 염원과 프로게이머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무서워해야 할 것은 블리자드만이 아니다. 스타2 발매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상황이 안 좋아질 경우 협회가 기댈 수 있는 것도 팬 밖에 없지 않은가.

스타리그에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협회가 프로게이머를 대하는 방식은 노동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고. 이 좁은 스타리그 판의 정치투쟁은 한국 사회의 시장의 룰이라는 것이 특별한 제재가 없을 경우 얼마나 강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나는 이러한 개개 영역의 사람들의 권리를 대변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문화산업도 창조성을 발휘하며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침해받는 프로게이머들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구제하려는 e스포츠 팬들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훌륭하게 정치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MB를 욕하는 것 만큼이나, 혹은 어쩌면 (그것이 단지 추상적인 욕에 그친다면) 그보다 더.

<뉴라이트 사용후기>,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a_hriman@hotmail.com
)


블랙프란시스

2009.09.04 04:53:28
*.223.187.193

우와...e스포츠 FA가 이런 겁니까... 키보드파괴신 FA문제가 이런 일인지 처음 알았네요.

pain_

2009.09.08 04:49:05
*.44.66.56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그 바닥을 죽 지켜봐왔던 사람으로서 지적하고 싶은 게 두가지 있습니다.


1)입장료는 스타1 저작권을 가진 블리자드에서 금지했기 때문에 받지 못하는 것이지 오프 관중이 적기 때문은 아닙니다. 개인리그를 보자면 MSL은 몰라도 OSL은 대개 이스포츠 전용경기장의 만석을 차지하고도 모자라 서서 보고 있고 결승전을 굳이 찾아오는 인원을 생각해봐도 타스포츠에 비해서 경기장 구조상 관람객이 적다 할 수 있어도 열기가 적다곤 하지못할 것입니다.

굳이 오프관중의 문제를 보자면 프로리그의 경우 팀연고지가 없이 시행된 12팀 풀리그 제도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2)

==
"하지만 스타라는 게임의 인기 자체가 시들해지는 시점에서 이런 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했고 프로게이머에게 연봉을 주면서 팀을 만든 기업은 프로리그의 비중을 늘려가게 되었다. 프로리그 경기 숫자는 점점 늘어나서 이제는 리그 기간에는 '주5일' 프로리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협회의 그와 같은 리그 조정이 없었다면 스타리그가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상금을 내건 스타리그 대회는 이미 2000년에 스타의 인기가 퇴조함에 따라 세계적으로는 사라졌고, 오직 한국에서만 계속 명맥을 이어 나갔다."
==

스타의 황금기라 한다면 2002~2006년까지 임이최마 본좌+사대천왕+신사대천왕의 시대일 겁니다. 동시에 이시대는 개인리그의 전성기이기도 하고 양대 메이저 뿐만이 아닌 프리미어리그같은 새 형식의 새로운 개인리그들이 의욕적으로 시도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주3일제 프로리그와 함께 조화롭게 발전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오프의 열기-외부 언론의 주목-시청률 어느 쪽이든 이때가 가장 역동적으로 상승세를 찍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정 가능성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게 07년 이후의 시청률이 반토막나고 이스포츠 위기론이 대두되게 만든 주5일제 프로리그입니다.


물론, 주5일 프로리그와 12팀 대기업 스폰은 분명 전체 프로게이머와 관계자가 먹고사는 인원수는 늘렸겠지만 스타의 건전성과 생명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진 심히 의문스럽습니다.

스타는 자신의 홍보역량에 맞는 규모를 갖췄어야 합니다. 수요가 있기전에 공급을 무작정 늘리고 팽창된 공급에 따라 수요가 늘기를 바란 것 그리고 공급에 맞춰 밥그릇의 규모를 키운것. 이것이 스타에 자본과 시스템을 들여논 협회의 가장 기본적 실수입니다.

하뉴녕

2009.09.08 05:08:38
*.49.65.16

끄덕끄덕. 1)은 쓰자마자 지적을 들었고, 2)도 pain횽 의견이 맞다고 생각. 다른 곳에도 컨택을 해보고 있으니, 만일 취재의사를 밝히면 이지눈 사람들을 직접 연결해 주는 게 좋을듯 ^.^

pain

2009.09.10 23:49:53
*.44.66.56

(의욕적으로 써주신 글에 호평보다 지적이 먼저라서 죄송했는데, 선뜻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되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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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딴지일보] '반MS단일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 [37] [1] 하뉴녕 2010-04-19 6045
17 딴지일보 심상정 인터뷰 [12] 하뉴녕 2010-02-03 1365
16 [딴지일보] 변희재의 논변 검증 (2) - 논객으로서의 진중권의 능력 검증에 대해 [5] 하뉴녕 2009-09-18 3325
15 [딴지일보] 스타 본좌론 최종화 - 하지만 홍진호가 출동하면 어떨까? [32] 하뉴녕 2009-09-15 7268
14 [딴지일보] 본격 정치평론 : 2PM 재범이 남기고 간 것 [38] [1] 하뉴녕 2009-09-10 1811
13 [딴지일보] 변희재의 논변 검증 (1) - 강의자로서의 진중권의 능력 검증에 대해 [14] 하뉴녕 2009-09-09 11974
12 [딴지일보] 변희재 요정설 [16] [1] 하뉴녕 2009-09-03 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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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딴지일보 기사 리플에 대한 답변 [13] 하뉴녕 2009-08-28 1507
9 [딴지일보] 김영삼을 위하여 [21] 하뉴녕 2009-08-27 2000
8 [딴지일보] 스타리그 본좌론 (5) - 마재윤 이후의 본좌론, 그리고 본좌론에 대한 회의 [5] 하뉴녕 2009-07-31 4938
7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4) - 잊지 마라, 0대 본좌 기욤 패트리를! [8] 하뉴녕 2009-07-13 42085
6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3) - 임이최마 계보론의 정당화 [5] 하뉴녕 2009-07-03 2651
5 [딴지일보] 노무현의 부활 [21] [3] 하뉴녕 2009-06-01 3894
4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2) - 임이최마 계보론의 문제점 [7] 하뉴녕 2009-05-16 1454
3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1) - 마재윤과 본좌론의 탄생 [14] 하뉴녕 2009-05-07 1611
2 [딴지일보] '노무현 시대' 이후에도 진보정치는 가능할까? [15] [2] 하뉴녕 2009-04-21 4701
1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하뉴녕 2008-01-19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