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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딴지일보 다시 열렸더군요. 한번씩 들러보시길... ㅎㅎ http://www.ddanzi.com/


[노무현쇼크] '노무현 시대' 이후에도 진보정치는 가능할까?

2009. 4. 20.월요일

'박연차 리스트'의 수사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혹은 그 주변인물들이 '검은 돈'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나자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재미있는 것은 '노빠'와 '비-노빠'의 반응이 예상(?)과는 반대였다는 것이다. 물론 소수의 예외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노무현이란 개인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했던 이들은 이번 사건으로 그에게 크게 실망했으며 이제 그를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반면 이미 예전부터 노무현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이들은 그나마 강변하던 도덕성의 우위조차 지키지 못하게 된 그에 대한 동정심을 표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그 사건을 바라본 나는 굳이 말하자면 후자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노무현을 비판하던 이들은 '박연차 리스트'의 수사가 치명상을 입힌 참여정부의 도덕적 우위라는 것을 대단찮게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애초부터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했거나, 있더라도 그게 뭐가 대수냐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노무현 시대'는 이미 예전에 끝났고,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거다. 지금까지 이런 얘기가 와닿지 않았던 노빠들에게, 이 지면을 빌어 다시 한번 편지를 보낸다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을 조금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촛불시위는 '이명박의 실패' 때문에 생겼나?


얼마 전에 영화 한편을 보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김미례 감독의 신작 <외박>이 그것이다. 이 영화는 2007년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처럼 조명되었던 이랜드 투쟁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외박'이라는 제목은 매장 점거 농성을 시작한 여성노동자들이 시위에서 느꼈던 어떤 쾌락을 드러낸다. 직장에서 일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면 가사일에 종사해야 하는 이 여성노동자들은 역설적으로 이 시위의 현장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같이 시위를 참여하는 이들과의 연대성을 체험했다. 매장에서 업무의 애환을 풍자한 자작시(?)를 읊고, 연극을 공연했다. 그런 그녀들에게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고, 끝내는 매장 바깥으로 끌어냈다. 점거와 진압을 반복하면서 그녀들의 즐거움은 고통으로 변한다. 가족의 압박과 노동조합의 형식적 지원, 무엇보다 생계의 압박이 그녀들을 짓누른다. 이랜드가 매장을 매각하면서 성사된 500여일간 투쟁의 타협은 소수의 해고자를 묵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씁쓸하기만 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위의 비주얼이 2008년 촛불시위를 대표하는 그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시위방식의 발랄함, 물대포를 맞는 조합원들, 자신들을 가로막는 전경버스에 대한 분노, 결국 그것을 밧줄로 묶어 끌어내려는 시도들까지도. 서로를 동여매고 앉아서 버티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내는 것이 여경이라는 것까지도 그때의 풍경과 흡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구성원의 마인드의 차이가 아니라 조건이 만들어낸 차이일 것이다. 매장을 점거하고 지켜야 하는 이랜드 조합원들은 당연히 촛불시위대처럼 경찰의 저지선을 '돌아서' 가는 유연함(?)을 발휘할 수 없었다. 조합원들은 촛불이 그랬듯이 운동권을 배격하지 않고 민주노총 노동운동가들의 구호와 노래 등을 '어색하게' 수용했다. 당장의 물리력이 급한 처지에 그것이 그녀들에게 힘이 될 거라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도를 넘어서는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하길 바라지 않았다는 점에선, 조합원들의 반응은 다시 촛불시민들의 그것에 포개어졌다.


영화 바깥으로 나와 봐도 '노무현 시대'와 촛불시위의 풍경을 연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령 시위대를 막아선 전경차는 '노무현 시대'에 부산의 ASEM 반대 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부산에서 그 업무를 맡았던 경찰 간부가 무려 어청수다. '저건 밧줄로 묶은 후 당기면 돼.' 운동권들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차마 입으로 꺼내진 못했다. 다함께 논란 이후 시위현장에서 운동권들의 발언이 워낙에 조심스러웠던 탓이다. 얼마 후에 시민들은 스스로 밧줄을 묶어 전경차를 당기게 되었다. 이것을 '진화'라고 봐야 할까?


많은 이들은 명박산성이 국가폭력의 상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르게 본다면, 명박산성은 대립하고 있는 국가와 시민들에게 똑같이 행동의 한계를 부여하는 사물이었다. 경찰 역시 명박산성 너머의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할 수는 없었으니까. 어청수는 말했다. "자꾸 5공 5공하는데, 5공 때 진압이 어땠는지 아느냐."고. 맞는 말이다. 촛불시위 때 경찰의 작전은 독재정권의 그것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 경찰병력으로 시위대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한 '노무현 시대'의 시위 진압 경력을 반영하고 있었다. 물대포가 가장 안전한 진압도구라는 경찰 측의 설명도 그러한 억울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과연 촛불시위는 '새로운' 것이었을까? 그것은 '노무현 시대'의 시위대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새롭게 시위에 합류한 이들에게만 새로운 것이었다. 그 놀랍도록 새롭고 매력적인 시위는 '노무현 시대'의 우리가 미처 보지 않으려고 했던 그 시대의 어둠이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촛불시위에 나온 천주교 신부들은 이 성경구절을 인용했다. 하지만 진실을 말한다면 빛에 서 있는 우리는 결코 어둠을 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비정규직 보호법은 분명히 참여정부의 '공로'였다. 이랜드가 법안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대량 해고를 단행하자 집권여당 쪽에서 손발이 안 맞는다고 툴툴거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최소한 대선 이전까지는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바랐던 것일 게다. 일부 촛불시위대가 결합하여 촛불시위와 비정규직 운동의 결합의 상징이 되었던 기륭분회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떤가. 기륭을 지지한 많은 시민들조차도 그것이 이명박 정권의 문제인 것처럼 대했지만, 그녀들의 투쟁은 사실 2005년부터 시작되었다. 노무현을 싫어한 우리들은 이런 거 다 알고 있었다고 잘난 척 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허구헌날 참여정부를 비판한 나같은 사람도 '노무현 시대'가 끝나기 전에는 민주노동당 표달라는 얘기나 할 줄 알았지 이런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실천적인 관심은 희박했으니까.


이런 얘기를 하면서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였네 아니었네 하는 딱지 붙이기 논쟁을 하지는 말기로 하자. 경제정책적인 분석은 훨씬 더 엄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 같고 내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나는 참여정부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은 광범위하게 시위를 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이전 독재정권의 유산을 관리하는 와중에 생긴 일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정책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점, 그리고 평균적인 상식인들은 그네들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듣지 못했다, 라는 결론에 미친 영향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검열이었다. 참여정부 시대의 노빠들은 노무현 시대의 어둠을 들춰내려는 사람들을 마구 공격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 어둠을, 자신들이 매우 싫어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한 다음에야 대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매우 새로운 것인 양, 매우 끔찍한 것인 것처럼 말이다. 촛불시위대의 뒤늦은 깨달음은 노무현 시대에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가 바로 '시민'을 자처하는 자신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 책임을 이명박에게 돌렸고 그중 일부는 노무현이 그립다고 외쳤다. 하지만 촛불시위는 분명 이명박의 실패가 아닌, 노무현의 실패의 산물이었다.


좌파들은 '노무현 시대'의 실패에 책임이 없나?


하지만 내 의도는 노무현 그룹과 그 지지세력에 대해 '도마뱀 자르기'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그런 욕망을 품어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굳이 내가 '참여정부의 실패'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노무현 시대의 종언'을 말하는 것은, 이 논의가 탄핵 열풍 때 열린우리당이 지갑을 줍다가 흘린 돈을 옆에서 같이 줍고선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헤롱헤롱한 좌파들의 자기 반성을 함께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외박>으로 돌아가면 투쟁의 현장에 내몰린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정치적인 풍경이 나온다. 이들의 투쟁현장이 비정규직 투쟁의 '성소'가 되자 각계각층의 정치인들이 '성지순례’' 오기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이랜드 투쟁을 위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투쟁노동자들의 생계지원금으로 16억원을 결의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제 때 집행되지 못해 투쟁노동자들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따로 분투해야 했다. 노동자들이 그간의 민주노동당의 지원에 감사하며 2007년 권영길 후보 선거운동을 했지만 민주노동당은 대선에서 참패했고 곧 분당을 맞이하게 된다. 이랜드 노조는 이랜드 투쟁을 홍보하기 위해 전략적 비례대표 공천을 결의했는데, 민주노동당에서 이를 받아줄 희망이 보이지 않자 분당으로 탄생한 진보신당 측에 후보를 보낸다. 민주노동당을 '배타적 지지'하는 민주노총은 이런 이랜드 노조의 행동에 불평을 보낸다. 게다가 그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진보신당 비례대표 2번 후보가 된 이남신 위원장도 여의도에 입성하는 데엔 실패한다. 이런 광경들은 영화 속에서 그녀들의 현실과는 붕 뜬 것처럼, 매우 '낯설게' 여겨진다. 각각의 사건들의 내막과 과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것은 '새로운' 체험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진보'의 이름으로, '진보'를 원하는 이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의 실패가 민주화 운동 진영, 그리고 진보 진영의 실패가 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는 가짜 '진보'였고 우리가 진짜 '진보'다."라고 외치기가 심히 민망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실패 때문이다. 2004년도에 10석을 획득했고 9명의 국회의원이 의정활동을 한 민주노동당이 참여정부와 구별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참여정부와 함께 몰락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서민경제를 외면하고 4대 개혁입법에서만 한나라당과 대립각을 세우려고 했던 열린우리당의 노선을 철저히 이어받았다. 말하자면 열린우리당이 4대 개혁입법,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에서 한나라당에 맞서 결연히 싸우지 못하는 것을 질타했다.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에 올인했던 민주노동당은, 그런 의미에서 열린우리당의 노선을 급진적으로 추구하는 정당에 불과했다.


민주화 운동 세력, 소위 말하는 개혁/진보 진영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무력할뿐더러 관심도 없다는 세간의 편견을 강화시키는데 민주노동당 역시 기여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나름대로 경제/민생 문제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몇몇 국회의원들은 뛰어난 의정활동을 했지만, 당내 다수파인 NL의 폭거에 밀려 그렇게 되었다고 변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 원내다수당인 열린우리당에도 보수적인 인사들이 많아 한나라당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노빠들의 변명이 사실이듯이. 하지만 십년 가까이 같이 정당 운동을 해온 입장에서 책임은 피할 수 없다. 분당 과정에서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잔류파를 종북주의자라고 욕했고 그건 천번 만번 맞는 말이었지만, 그 종북주의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요구한 자기 자신들에 대해 진보신당은 충분히 해명하지 못했다. 2008년 심상정, 노회찬 낙선 이후 촛불정서와 진보신당이 결합하면서 진보신당의 '원죄'가 오히려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강화된 편견의 결과가 박연차 리스트가 발표되기 직전의 진보세력의 현황이었다. 다른 건 다 내주고 순수함과 깨끗함, 그리고 도덕성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탈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촛불민심에 자신들을 기탁하려고 했던 야당들은 모두 저 순수함의 판타지가 깨지면서 생긴 파열음에 귓가가 멍멍하다. 마지막 비빌 언덕이 사라졌다는 당혹감에 침울한 것이다. 



국개론과 소비자 대접론을 넘어서


차라리 잘 됐다. 언제까지 반 MB정서에 기대어 날로 표를 먹으려 들 것인가. 언제까지 자신들은 한나라당과는 질적으로 다른 도덕적인 정치세력인 척 할 것인가. 그런 술수로는 지지자들을 오래 묶어둘 수도 없다. 환상은 언제든 깨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2004년에 우리가 벌었던 것을 다 털어먹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진영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은 제로베이스로 돌아갔다. 참여정부가 권력 분립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모르지만, 그 노력은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다시 강력한 국가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모든 것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왜 안 아깝겠는가. 나도 아까워 미치겠는데.


가령 울산 북구 보궐선거에 참여한 진보신당 후보 조승수를 보라. 울산 북구에서 시의원을 한번, 구청장을 한 번 역임했고, 당시에 구청장 평가 전국 최고점을 기록했던 그다. 그렇게 밑바닥부터 올라왔고, 2004년에 지역구의원 당선이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지만, 뭐가 남았는가. 원래의 지역구인 동구를 버리고 날아온 민주노동당 김창현 후보는 이 지역에서라면 애초에 언급될 이도 아니건만 단일화 카드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사람을 애태우고, 노동자 시민들은 단일화가 안 될 경우 양쪽 후보에게 똑같이 책임을 물릴 것이다. 너희들은 책임을 지는 정치세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에서 그토록 오래 일해 왔고 인지도도 높은 조승수이지만, 그가 민주노동당 후보인지 진보신당 후보인지도 구별 못하는 유권자들이 숱하다. 다시 시의원서부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끔찍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먼저 넘어서야할 것은 국개론이다. 이명박 당선 이후 이명박을 찍은 국민들이 개새끼라는 희한한 논리가 넷상에 횡행했다. 덧붙여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펀드든 모든 종류의 투자를 한 이들은 이명박을 찍은 것과 다름없는 나쁜 놈들이라는 논리도 퍼져나갔다. 그토록 칭송하던 미네르바의 가족들이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을 찍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하자 오마이뉴스 독자리플은 '자업자득'이라고 비웃었다. 이명박 찍었으면 자식이 감옥 갔더라도 군소리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일까?


문제의 핵심은 참여정부와 민주노동당이 철저하게 실패한 공간에서 한나라당은 승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아직 보여준 것이 많지 않은 군소정당들에게 밀어줄 수 있는 표는 당연히 한계가 있다. 물론 진보신당 당원 된 입장으로 지난 총선 때 정당지지율 3%만 넘어 비례대표 한 석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지만 (2008년 진보신당의 정당지지율은 2.94%에서 멈췄다.) 그것 자체가 '부당한' 결과는 아닌 것이다.


자산을 다 털어먹은 진보세력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신뢰를 쌓아나갈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게 마땅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이와는 반대방향에서, 자기 자신을 좀 더 적극적인 정치적 주체로 각성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진보진영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말은 옳다.) 자신은 그들이 퍼주는 밥을 입만 벌려 먹을 요량으로 '소비자처럼' 기다리고 있다면 정치적 변혁의 가능성은 미망이 된다. 한나라당에라도 입당하라는 진중권의 촛불시위 정리 발언은 그 미망을 벗어나기 위한 것일 게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딛고 어느 곳이든,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프로슈머라는 말이 유행한다는데 정치 영역에서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노무현 시대의 종언을 말한다는 것은 이명박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대안이 현재의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는 의미다. 그것을 가꾸어내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반 MB 전선은 반 동탁 연합군과 같은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시대 이후에도 진보정치는 가능한 것일까? 쉽지 않다. 만일 그것이 가능하려면, 당신은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묘목에 물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없이 우리가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의 허망함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진짜 숙제는 바로 이러한 어려움이다.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a_hriman@hotmail.com
) 
 


zxczxc

2009.04.21 13:53:22
*.253.79.130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 저자 한윤형' 우왕ㅋ굳ㅋ 멋잇슴ㅇㅋㅇㅋ

leopord

2009.04.21 14:25:27
*.197.203.65

이번 글은 노무현 정부-이랜드 투쟁-08년 촛불-기륭투쟁-진보신당을 잇는 논리흐름이 명쾌합니다. 단순히 반MB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공통정서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는 중에, 여론을 환기시킬만 글이 될 것 같군요.

노무현 시대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04년 때 만들어놓은 걸 다 털어먹은 지금, 진보신당이 진보를 그럴싸한 구호나 도덕적 입지에서 찾을 게 아니라 민생을 책임질 역량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입니다.

비야

2009.04.21 14:38:44
*.10.33.85

ASEM 반대 집회 때 컨테이너를 말하는 것이라면, 쌓아놓은 컨테이너 위에 경찰이 있었음에도 밧줄로 잡아당겨 경찰 몇 명이 컨테이너에 깔려 죽을 뻔 했던 그 장면 말하는 것인지요? 시위형태가 얼마나 폭력적이냐를 따지자면 아무래도 '진화'가 맞는 듯 싶어요.

놀이네트

2009.04.21 15:40:51
*.241.118.90

훈훈하게 잘 읽었습니다.

맞서 싸우지는 않으면서 묘목에 물을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위하고 있다가 무척 뜨끔했습니다.

데학생

2009.04.21 16:44:00
*.146.227.195

최장집 교수의 지적대로 과도한 도덕주의가 네메시스의 검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애초에 노무현의 도덕성에 기대를 하지 않거나,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고 있죠. 제가 걱정되는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해 사람들이 또 한번 탈정치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진보진영에 대해서 지적해주신 점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유시민처럼 '국민이 사기당했다' 는 식의 변형된 국개론이나 펴는 것은 최소한 당시 고위직에 있었던 정치인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LG 가 '우리 제품이 훨씬 더 좋은데 왜 못알아보고 삼성 것을 사냐, 중앙일보에 세뇌된 국개들아!' 라고 외치는 것과 매한가지인 듯.

여튼 진보진영도 과거와 같은 순혈주의나 도덕주의에서 벗어나 실제 먹고사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기심을 버리라는 식의 공화주의 타령을 하기 전에(물론 이것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만) 우선 각개인의 이기적 욕망을 어떻게 대승적 결과로 이끌어낼지, 그리고 그 욕망과 어떻게 소통할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뉴녕

2009.04.21 17:09:33
*.39.59.11

먹고 사는 문제가 공적인 공간에서 조율해서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성과가 나오게 된다면, 당연히 공공영역에서 논의되는 문제들도 이기적인 문제를 넘어서 다양한 종류의 공적인 담론이 가능하게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문제제기하신 부분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공적인 공간에서 조율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공공의 영역을 호출하는 것 같아요. 가령 진보진영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우리 아파트 값 올려줘."란 요구를 들어주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어떤 공화주의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양자가 같이 가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w0rm9

2009.04.21 22:25:25
*.186.105.140

으악! 허망, 일단은 민주당과의 차별화부터, 그리고 민노당과의 차별화부터. 당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천지니..이거 원!

장쯔이

2009.04.22 00:41:17
*.106.204.111

이번 글은 태그가 너무 많군요.

maybe

2009.04.22 11:18:44
*.165.193.231

"비밀글입니다."

:

하뉴녕

2009.04.22 13:49:34
*.49.65.34

감사합니다. :)

maybe

2009.04.24 17:16:24
*.165.193.231

다 읽지는 못하고 조금 둘러보았는데,
인상 깊었던 구절;
최근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것: **과 *빠,
*빠라, ㅋㅋ...
저는 마빠 니까 패쓰.

장님버드나무

2009.05.26 14:11:58
*.116.143.234

잘 읽었습니다.

근데 이거 미니홈피로 퍼가도 되는 건가요? 음 되는거겠죠? 일단 퍼갑니다~

하뉴녕

2009.05.26 14:29:03
*.46.3.218

물론 퍼가도 되죠. ^^;;

yiaong

2009.05.27 18:38:52
*.46.183.191

엇, 단순 링크만 하려고 했는데 잘못해서 트랙백이 걸려버렸네요. --;;
한윤형님, 제 트랙백이랑 이 덧글은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용 없는 곳으로 다른 분들이 괜히 따라오게 되면, 본의 아니게 낚시가 될 테니까요..)

고기

2009.05.30 21:42:30
*.194.145.155

거리두기와 평가, 비판적 분석은 동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여전히 어려운 표현들 사이를 헤매다 결국 이 글이 정치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가 고민이 됩니다.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아니라고 부정하셨지만 태그에 다신 누구누구와 -빠,-당등 조차도 더 깨끗하고 세밀하고 잘라내고 싶었던거 아닌가요?

도마뱀은 꼬리를 자르고 현장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사라지죠. 촌스럽고 이율배반적인 좌파 같지도 않은 좌파를 자르고, 질기고 깊숙히 살아남아 힘있는 진보정치세력이 제발..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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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딴지일보] 프로게이머 FA, 그 노예계약의 진실 [4] [2] 하뉴녕 2009-09-03 2133
10 딴지일보 기사 리플에 대한 답변 [13] 하뉴녕 2009-08-28 1507
9 [딴지일보] 김영삼을 위하여 [21] 하뉴녕 2009-08-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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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4) - 잊지 마라, 0대 본좌 기욤 패트리를! [8] 하뉴녕 2009-07-13 42092
6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3) - 임이최마 계보론의 정당화 [5] 하뉴녕 2009-07-03 2651
5 [딴지일보] 노무현의 부활 [21] [3] 하뉴녕 2009-06-01 3894
4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2) - 임이최마 계보론의 문제점 [7] 하뉴녕 2009-05-16 1454
3 [딴지일보] 스타리그의 진정한 본좌는 누구인가? (1) - 마재윤과 본좌론의 탄생 [14] 하뉴녕 2009-05-07 1611
» [딴지일보] '노무현 시대' 이후에도 진보정치는 가능할까? [15] [2] 하뉴녕 2009-04-21 4701
1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하뉴녕 2008-01-19 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