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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언제나 시기상조

아흐리만(한윤형)의 부끄러운 과거를 여러분 앞에 모두 공개합니다!

최저생계비로 살 수 있는 인간들

조회 수 851 추천 수 0 2004.08.14 23:22:00
이 글도 미디어몹 블로그에 올린 것인데.... 사연이 있다.
이 글은 내가 쓴 글이 아니다. 나보다 더 유명한 어느 오프라인 글쟁이가 네이버 보다가 너무 열받아서 글을 하나 쓰긴 썼는데 자기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리기는 좀 그렇다고 나한테 내 이름으로 올려달라고 부탁해서 올린 글이다. 물론 당시에는 이런 사연을 공개하지 않았다. 몇 년 지나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지만, 내가 쓰지도 않은 글을 내 글인양 올릴 수는 없어서 이런 사연을 고백(?)하며 올린다.

이런 건 '역(逆)-고스트 라이팅'이라고 봐야 하나? ㅡ.,ㅡ;;
(문체를 보면 나보다 훨씬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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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와 아름다운재단이 주최한 한달간의 최저생계비 체험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끈 모양이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아본 것만 기사 링크가 백여 개. 어떤 사실은 주장 이상의 주장이 된다. 최저생계비 기사는 더도 덜도 할 것 없이 '최저 생계비를 인상해야 한다'는 당위를 어떤 설득력있는 주장보다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준다.

그런데 최저생계비 기사에 달린 리플들 중 어떤 것들은 우리 사회의 양식이 '최저양식' 이하임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포털사이트 기사에 달린 리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는지.) 기사에도 나온  ‘왜 그거 가지고 못사냐. 나는 충분히 살겠다’ , ‘가계부 보니 헤어 젤도 샀더라. 완전 사치다’ 등의 반응을 보이는 인간들. 내 보기에 그 인간들, 최저생계비로 살아본 일도 살아볼 일도 없으면서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는 최저 이하의 인간들이다.

최저생계비 수급가족이 핸드폰을 왜 쓰냐고? 저소득층일수록 핸드폰은 필수다. 저소득층에게 핸드폰은 문자 보내면서 시시덕거리는 수단이 아니다. 일자리를 알리는 전화 한통을 받느냐 못받느냐가 하루 혹은 일주일, 한달의 생활을 결정한다. 파출부 일자리, 공사판 노가다 일자리, 이런 일자리일수록 누가 연락을 먼저 받고 일자리를 먼저 움켜쥐느냐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핸드폰은 애인과 소곤거리고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한테 전화해서 짜증내는 도구가 아니라 생존의 수단인 것이다. 애를 마음놓고 맡길 시설도 친지도 없는 사람들에게 아이가 비상시 연락할 수 있는 핸드폰은 아이의 안전보장수단일 수도 있다.

최저생계비 수급가족에 학습지가 웬말이냐? (이런 한심한 리플도 있었다. 정말이다.) 먼저, 교육이라는 것이 갖는 하중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같을 수가 없다는 것을 지적해 두자. 중산층에게 교육은 막말로 여러 분산 투자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저소득층에게 교육은 가난의 대물림을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대학이 우골탑이던 시절 수많은 농촌 가정이 잘난 아들 하나에 가문의 운을 걸어 딸자식을 식모 보내고 공장 보내고, 다른 아들들에게 아무런 지원도 못해주며 오직 그 아들 하나만 바라보았듯이, 저소득층 가정에서 교육은 우선순위 일순위일 수밖에 없다. 뭐 자식한테 커다란 덕을 보자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어느 정도 탈출해서 자식이 제 손으로 벌어먹고 살 수는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과 이 희망이 없다면 살아있어도 산 것이 아닐 터이다. 더구나 저소득층 부모들은 대부분 자식의 학습을 도와줄 수 있는 처지도, 시간 여유도, 교육수준도 안된다.

무형의 자원이 있다면 쓸 수 있는 돈은 절약된다. 만약 나에게 아이가 있고 아이를 학원에 보낼 돈이 없다고 해도, 대학 교육 이상을 받은 나는 아이에게 최소한 중학교까지 국영수 정도는 가르쳐줄 수 있다. 그것만 해도 학원비를 월 몇십 만원은 아낄 수 있으리라. 또, 나는 사야만 하는 물품을 컴퓨터로 가격비교해서 상당히 싸게 살 수 있다. 들쭉날쭉한 소매점 가격을 알아보고 싼 곳을 찾아 교통비를 쓰느니 이쪽이 훨씬 합리적으로 소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일과 시간에 치이는 사람들, 더구나 정보조차 부족한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출발하고 있는가. '충분히 살겠는걸'하고 야지를 보내는 인간들이 야지를 보내는 바로 그 시간조차 그들에게는 우선순위를 선택해 운용해야 하는 자원이다. 남들보다 부족한 정보와 시간을 갖고 살아야 하는 그들이 현실적으로 자기들보다 불리한 출발선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얄팍한 이기심들.

100만원 가지고 4인가족이 넘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은 6.25 전쟁 직후의 '최저생존'이나 아프리카 기아국가의 생존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야무진 착각이다. 그 시대에는 '최저생존'으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과 인프라가 존재했다.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으면 개천가에 가서 빨래라도 할 수 있었고, 보일러가 없으면 연탄아궁이가 있었고 하다못해 산림관의 눈을 속이면서 주워온 나뭇가지로 관솔불이라도 땔 수 있었다. 지금 연탄아궁이가 있는 집이 몇 집이나 되며, 나뭇가지를 주울 수 있는 곳은 어디며, 주워온들 그걸로 집을 데울 수 있는가? 옛날에는 쌀밥은 꿈도 못꾸고 보리밥이나 수제비만 먹었다는 추억담이 꽤 있다. 요즘 잡곡은 쌀보다 더 비싸졌다. 보리밥만 지어먹는다면 돈이 더 들 것이다. 사회의 구조가 달라졌는데, 저소득층만 옛날의 기준에 맞춰 살라는 것은 인도적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불.가.능.하.다.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인간들이 있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챙기려는 노빠들처럼, 이들은 남의 가난조차 갖고 싶은가보다. '나도 그만큼 가난해'라든지, '내가 그 처지라면 더 아끼고 더 노력해서 더 잘 살거야'라고, 이들은 남의 가난마저 전유해 자신의 (상상적인) 가난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이쯤 와서는 질타하거나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논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 버린다. 아, 역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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